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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토리 Jul 10. 2023

러브, 버그.

벌레를 사랑하는 일


<2123>

작열하는 태양 아래 방열복을 입은 사람들이 일렬로 서있다.

그들은 양손에 붓을 들고 토마토 꽃 앞에 서서 수분*하고 있다.


“벌레요? 곤충이요? 그게 뭔데요?”

“기어 다니거나 날아다니는 개체도 있었다고 하고, 생긴 것 또한 제각각인데 아니 글쎄 한 세기 전인 21세기에는 그런 존재들이 있었다지 뭐야? 그들을 곤충이라고 불렀대.”

“그래, 그땐 곤충이 다 해줬대!”

“어머어머.. 그런 호시절이 다 있었대?”


인간이 수분하지 않으면 그 어떤 열매도 맺지 못하는 22세기.

벌레, 곤충이라 불리던 존재들은 전설 속에서만 존재한다. 그중에서도 오늘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린 건 ‘러브 버그’다.


, 바람, , 동물들, 지구를 이루는 모든 것들에 대한 사랑을 잊은 인간들에게 마지막 사랑의 불씨를 붙이러 들렀다가 되려 떼죽음을 당한 전설의 존재.

러브버그’.


그들이 인간들 눈에 띄게 된 건 2022년 여름 무렵이라고 한다.

이전까지는 잘 알지 못했던 존재의 등장에 인간들은 호들갑을 떨어댔고, 그들의 존재를 제대로 알기도 전에 모두 죽여버려야 한다고 살충제를 뿌려대기 시작했다. 고작 3~7일 정도 사는 러브버그들을 못 견뎌서 말이다.


러브버그의 애벌레는 썩은 흙을 먹어 땅을 정화하고, 날 수 있는 성충이 되면 벌과 나비처럼 꽃을 수분하는 역할을 하는 ‘익충’이라 밝혀졌음에도 러브버그 대학살은 끝나지 않았다.


어쩌면 우리에게 사랑을 알려주려 왔던 존재일, 그들의 겉모습이 문제였던 모양이다. 너무 적나라했던 것이다.

인간들이 하도 못 알아들으니, 있는 그대로 “마! 이게 마 사랑이다!”하고 그들의 사랑 모습을 보여주었더니 그게 또 혐오스럽다는 것 아니겠는가?

인간이란… 정말 구제불능이다.


그렇게 스러져간 곤충들이 세기마다 있어왔다.


20세기에는 ‘송충이’라는 곤충들이 어느 계절이 되면 폭발하듯 많이 생겨났었다. 나무 위에서 쑥 내려와 허공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기도 했고, 땅바닥에도 아주 많아서 밟혀 죽는 송충이들도 허다했다.

송충이들은 쌓이는 낙엽들을 모두 먹어치우는 익충이었지만 그들 또한 인간들의 혐오에 살충제 대학살을 당해 점점 자취를 감추었다.


그 후로 낙엽의 지위는 때마다 인간이 손수 치워야 하는 쓰레기로 전락해 버렸다. 순리대로라면 낙엽은 송충이에게 먹혀 다시 땅으로 돌아가 좋은 영양분이 되었을 텐데.


낙엽이 처치곤란 쓰레기가  것과 마찬가지로 2123년, 22세기에는 곤충들이 씨가 말라 인간이 직접 수분을 하지 않으면 모두가 굶어 죽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1990년대 나의 어린 시절 어느 선생님께서 “이렇게 송충이가 다 없어지다간 낙엽이 어마어마하게 쌓여 쓰레기가 되고 말 거라고, 그럼 그것들을 다 태워 없애야 한다고” 그런 이야기를 했었다.

그 시절의 괴담들(물과 공기를 사 마시게 될 것이다, 온갖 쓰레기에 몸살을 앓게 될 것이다 등..)은 채 20년도 안되어 모두 현실이 되었다.


지금 2020년대의 괴담들은 한층 더 레벨업 되었는데.

그렇다면 20년 뒤 우리 인간들은 어찌 될까?

그 괴담 속에 인간은 없다. 인류는 인류세에 묻혀 사라진다.

.

.

.

후회 섞인 외마디 비명과 함께.


“사랑해, 곤충….”


러브, 버그.





-

*수분: 식물이 열매 맺을 수 있도록 꽃의 화분을 옮기는 일.

 

-


이 글은 곤충을 무서워하는 글쓴이가 곤충을 사랑해야 하는 이유를 찾아가는 여정 중 첫 번째로 쓴 글입니다.

2023 7. 온라인상에 연일 ‘러브버그 대한 혐오의 기사들과 글들이 올라오는 것을 보고 과장된 공포와 혐오의 마음이 불러올 비극을 떠올리며, 그래서는  된다는 생각에  글을 썼습니다.

생물학 박사 최재천 교수님의 ‘알면 사랑한다’는 말씀에 깊이 공감하면서도 알수록 무서워지는 것들 또한 만나게 되지만, 사랑의 마음으로 공포를 극복하여 다양한 곤충들과 더불어 살아가는 삶을 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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