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레를 사랑하는 일
<2123년>
작열하는 태양 아래 방열복을 입은 사람들이 일렬로 서있다.
그들은 양손에 붓을 들고 토마토 꽃 앞에 서서 수분*하고 있다.
“벌레요? 곤충이요? 그게 뭔데요?”
“기어 다니거나 날아다니는 개체도 있었다고 하고, 생긴 것 또한 제각각인데 아니 글쎄 한 세기 전인 21세기에는 그런 존재들이 있었다지 뭐야? 그들을 곤충이라고 불렀대.”
“그래, 그땐 곤충이 다 해줬대!”
“어머어머.. 그런 호시절이 다 있었대?”
인간이 수분하지 않으면 그 어떤 열매도 맺지 못하는 22세기.
벌레, 곤충이라 불리던 존재들은 전설 속에서만 존재한다. 그중에서도 오늘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린 건 ‘러브 버그’다.
흙, 바람, 물, 동물들, 지구를 이루는 모든 것들에 대한 사랑을 잊은 인간들에게 마지막 사랑의 불씨를 붙이러 들렀다가 되려 떼죽음을 당한 전설의 존재.
‘러브버그’.
그들이 인간들 눈에 띄게 된 건 2022년 여름 무렵이라고 한다.
이전까지는 잘 알지 못했던 존재의 등장에 인간들은 호들갑을 떨어댔고, 그들의 존재를 제대로 알기도 전에 모두 죽여버려야 한다고 살충제를 뿌려대기 시작했다. 고작 3~7일 정도 사는 러브버그들을 못 견뎌서 말이다.
러브버그의 애벌레는 썩은 흙을 먹어 땅을 정화하고, 날 수 있는 성충이 되면 벌과 나비처럼 꽃을 수분하는 역할을 하는 ‘익충’이라 밝혀졌음에도 러브버그 대학살은 끝나지 않았다.
어쩌면 우리에게 사랑을 알려주려 왔던 존재일, 그들의 겉모습이 문제였던 모양이다. 너무 적나라했던 것이다.
인간들이 하도 못 알아들으니, 있는 그대로 “마! 이게 마 사랑이다!”하고 그들의 사랑 모습을 보여주었더니 그게 또 혐오스럽다는 것 아니겠는가?
인간이란… 정말 구제불능이다.
그렇게 스러져간 곤충들이 세기마다 있어왔다.
20세기에는 ‘송충이’라는 곤충들이 어느 계절이 되면 폭발하듯 많이 생겨났었다. 나무 위에서 쑥 내려와 허공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기도 했고, 땅바닥에도 아주 많아서 밟혀 죽는 송충이들도 허다했다.
송충이들은 쌓이는 낙엽들을 모두 먹어치우는 익충이었지만 그들 또한 인간들의 혐오에 살충제 대학살을 당해 점점 자취를 감추었다.
그 후로 낙엽의 지위는 때마다 인간이 손수 치워야 하는 쓰레기로 전락해 버렸다. 순리대로라면 낙엽은 송충이에게 먹혀 다시 땅으로 돌아가 좋은 영양분이 되었을 텐데.
낙엽이 처치곤란 쓰레기가 된 것과 마찬가지로 2123년, 22세기에는 곤충들이 씨가 말라 인간이 직접 수분을 하지 않으면 모두가 굶어 죽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1990년대 나의 어린 시절 어느 선생님께서 “이렇게 송충이가 다 없어지다간 낙엽이 어마어마하게 쌓여 쓰레기가 되고 말 거라고, 그럼 그것들을 다 태워 없애야 한다고” 그런 이야기를 했었다.
그 시절의 괴담들(물과 공기를 사 마시게 될 것이다, 온갖 쓰레기에 몸살을 앓게 될 것이다 등..)은 채 20년도 안되어 모두 현실이 되었다.
지금 2020년대의 괴담들은 한층 더 레벨업 되었는데.
그렇다면 20년 뒤 우리 인간들은 어찌 될까?
그 괴담 속에 인간은 없다. 인류는 인류세에 묻혀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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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회 섞인 외마디 비명과 함께.
“사랑해, 곤충….”
러브, 버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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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분: 식물이 열매 맺을 수 있도록 꽃의 화분을 옮기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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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곤충을 무서워하는 글쓴이가 곤충을 사랑해야 하는 이유를 찾아가는 여정 중 첫 번째로 쓴 글입니다.
2023년 7월. 온라인상에 연일 ‘러브버그’에 대한 혐오의 기사들과 글들이 올라오는 것을 보고 과장된 공포와 혐오의 마음이 불러올 비극을 떠올리며, 그래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이 글을 썼습니다.
생물학 박사 최재천 교수님의 ‘알면 사랑한다’는 말씀에 깊이 공감하면서도 알수록 무서워지는 것들 또한 만나게 되지만, 사랑의 마음으로 공포를 극복하여 다양한 곤충들과 더불어 살아가는 삶을 살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