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추천] 구의 증명 | 최진영
날카롭고 찢어지는 현실이지만 모든 걸 내줄 수 있는 사랑하는 사람이 곁에 있다면, 제 아무리 지독한 현실이라도 함께 이겨낼 수 있다는 스토리는 종종 들어본 것 같다. 그러나 구와 담의 이야기는 그런 희망 찬 이야기에 침이라도 뱉듯, 저 깊은 심해 속에 갇혀 있던 처절함을 담담하게 풀어낸다. 희망이 보이지 않는 막대한 빚, 찢어지는 가난, 보호자의 부재, 그리고 무서운 현실 속 자리 잡은 단단한 사랑과 결속. 단연코 나는 단 한 번도 경험해보지도, 상상해보지도 못한 그런 모든 감정과 상황들.
책을 다 읽고 나는 구와 담의 처절한 사랑 이야기보다, 너무 사실적으로 묘사된 ‘구’라는 인물의 현실이 가슴 속에 무겁게 남는다. 시간이 흐른 후, 이 책을 다시 떠올리면 ‘찢어지는 가난이 선사하는 희망이 결여된 삶’으로 기억될 것 같다. 큰 파도가 아무 잘못 없는 한 사람을 잡아먹는 그 과정 속에는, 잠깐의 희망을 품을 시간도, 사랑을 꿈꾸는 시간도 허락되지 않는다. 하루 벌어 하루 사는 삶 속에서, 매일 죄인이 되어가는 구. 그리고 자꾸만 멀어져 가는 구를 끝까지 붙잡으려는 담. 그들의 삶이 너무도 잔인해서 도저히 ‘나’를 그 이야기 속에 대입하고 싶지 않았다. 그저 그들의 이야기를 따라가는 것만으로도 불쾌함에 가슴이 먹먹해진다. 어느 공포 이야기보다 공포스러운, 가난이라는 그늘막.
한 인간을 잡아먹을 듯 바짝 쫓아오는 가난을, ‘담’은 전쟁이나 전염병과 같다고 말했다.
“전쟁이나 질병은 선택 문제가 아니다. 나는, 구의 생에 덕지덕지 달라붙어 구의 인간다움을 좀먹고 구의 삶을 말라비틀어지게 만드는 돈이 전쟁이나 전염병과 마찬가지라고 생각했다. 구의 잘못이 아니었다. 부모가 물려준 세계였다. 물려받은 세계에서 구는 살아남을 방도를 찾아야 했다.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