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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북한댁 Nov 16. 2019

바다를 보니 김장철이 생각났어.

택배를 보내고 싶어서...


희야. 안녕~

오랜만에 편지를 쓰네. 그동안 잘 지냈어?

하루 종일 이런저런 이야기로 너에게 편지 쓰고 싶은데 요즘 좀 바빴어. 넌 어떻게 지냈어? 거긴 많이 춥겠다.

입동도 지났고 본격적인 겨울이 시작되었는데 여긴 여름이와 가을이가 파티를 하고 있어서 아직 따뜻해. 한국의 산은 나무가 많아서 가을이면 울긋불긋해. 시기와 다툼도 없이 각자의 색깔을 뽐내며 조화롭게 이쁜 풍경을 만드는 것이 아름다워!

여름이와 가을이가  파티 하는 모습
 가을만 뽐내는 단풍

북한의 산은 나무도 많지 않아 이런 풍경을 보는 것도 힘들었지.

희야. 오늘은 출장 중에 계획에 없던 바다를 잠시 다녀왔어. 난 여름보다는 겨울바다가 더 좋더라. 차가운 바닷바람은 따뜻함과 시원함을 동시에 느낄 수 있거든. 가슴속 깊이 스며드는 겨울바다의 시원함은 여름바다보다 훨씬 상쾌해!

그곳에선 바다가 보고 싶어도 마음대로 갈수 없잖아. 금수강산 삼천리라고 하는데 30리, 300리도 자유롭게 다닐 수 없다는 게 그곳의 나쁜 현실이야.

울산 커피숍에서 바라본 바다

희야. 넓은 바다를 바라보고 있는데 북한의 김장철이 생각나더라.

이 바다를 함께 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곳은 지금 한창 겨울나기 준비 중이겠지?

특히 네가 사는 지역은 북쪽에서도 가장 북쪽인 곳이라 정말 추울 텐데 손으로 입김을 불어가며 김장할 너의 모습이 훤하다. 고무장갑과 핸드크림도 (손에 바르는 거야.) 없을 텐데...

김장철이면 소금값이 비싸 김치를 제대로 담그지 못할 때도 잖아.

그럴 때면 외할머니가 이렇게 말하셨지.

“바닷물에 배추를 절여도 된다. 그래도 맛있다.”

바닷물이 배추를 절여도 될 만큼 짜다는 사실을 그때 알았던 것 같아.

그곳에선 비싼 소금을 배추에 바로 뿌리지는 못하고 소금물을 만들어 배추를 절였고

그 소금물은 계속 재사용했었지.  


희야. 겨울나기 식량인 김장을 올해는 얼마나 했어? 300kg? 600kg? 김치라도 많이 담그면 좋겠다. 겨우내 먹을 수 있는 든든한 식량이니까.

너희 집 김치 움은 아직도 그렇게 깊어?

네가 만든 김치 맛은 어떨지 궁금하네.

한국은 밖에 있는 김치 움이 아닌 집안에 김치냉장고가 있고 김장김치도 따뜻한 집에서 담그고 김치냉장고에 보관해.

그런데 김장독에 담아 땅속 김치 움에 숙성시키는 김치가 더 맛있어. 김치냉장고의 편리함은 있지만, 김장독에서 숙성시킨 그 맛을 따라가진 못하더라.

한국에서 오래 살다 보니 김치냉장고 김치 맛에 길들어서 이제 김장독 김치 맛도 잊어버리는 것 같아. 아! 참 우리 집엔 김치냉장고가 아직 없어.

왜 없냐고? 일반 냉장고 하나로도 우리가 먹을 김치 보관은 충분해서 김치냉장고가 꼭 필요하진 않더라고. 여긴 돈만 있으면 언제든 원하는 것을

살 수 있는 곳이지만, 갖고 싶은 게 있다고 바로 사고 그러지는 않아. 너무 쉽게 결핍을 채우면 그것의 소중함을 금방 잊어버리게 되더라고.

아이러니하게도 나에게만 없다는 것이 나를 기쁘고 행복하게 할 때도 있어.

결핍과 불편함이 불행하거나 슬프기만 한건 아니거든.  결핍과 불편함이 반대로 나를 성장시키고 내 삶의 원동력이 될 때가 많아.

그래서 뭐든 꼭 다 갖추려고 하지는 않아.

하나씩 채워가는 재미도 있으니까.


너도 그렇지 않아?

그곳에서도 쓰지 않고 아껴 모은 것으로 가전을 하나 사면 온 집안에 큰 경사가 난 듯이 행복해하고 기뻐했던 그런 순간들 말이야.

하지만 아무리 좋은 가전을 사도 그곳에선 전기가 없어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고 장식용으로 고이 모셔놓고 있잖아. 전기밥솥이 있어도 아궁이에 불을 지펴 가마솥에 밥을 해야 하고 세탁기가 있어도 물이 안 나오고 전기가 없어 겨울이고 여름이고 손빨래를 해야 하니까.

희야. 언제면 그곳에도 전기를 마음껏 사용할 수 있을까? 한국에 시집온 후로 나는 한 번도 전기가 없는 세상을 상상해본 적이 없어.

밝은 곳에 사는 걸 당연하게 여기며 사는데 반대로 너는 어둠 속에 사는 것이 더 익숙할 거고 아직도 등잔불과 촛불에 의지해 살고 있잖아. 

언제쯤이면 너와 나 모두 밝은 세상에서 사는 그날이 올까?

너와 나는 같은 하늘 아래서 지금 이렇듯 다른 곳에 사는 거야. 나는 민주주의 사회에서, 희야는 가장 권위적인 봉건사회에서 전혀 다른 삶을 살고 있으니 너와 나의 삶이 얼마나 많은 것이 다르겠어!

이렇게 다른 세상 속에서 사는 너와 나의 정서 또한 얼마나 다를까?

많은 생각을 하게 해주는 바다를 뒤로 하고...

 그래도 우리는 형제고 한민족이니까 서로의 닮음을 알아보고 이해하고 받아들이면서 통하겠지? 내가 쓰는 이 글을 통해 희야가 민주주의 사회를 간접적으로나마 경험하면 얼마나 좋을까? 그래서 너와 나의 삶이 너무 많이 다르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지만, 이런 나의 바람이 과연 이루어질까?

너에게 전하지 못하는 이 글을 쓸 때마다 허무함이 밀려와. 돌아오지 않는 메아리 같은 거니까...

그런데도 이 편지를 쓰라고 내 마음이 이끄는 이유는 아마도 우리는 하나기 때문이겠지?

언젠가는 서로 마주하게 될 더 나은 세상을 위해서겠지?

희야. 우리가 만나는 그날까지 자유로운 땅 대한민국에 사는 이 언니가 이곳의 이야기를

계속 들려줄게. 그러니 희야도 꼭 잘 살아야 해.


희야. 오늘은 여기까지만 쓸게.

날씨가 무척 추워졌으니 감기 조심하고 건강하게 잘 지내. 손이 트지 않도록 고무장갑, 핸드크림을 택배로 보내 줄게.(라고 말하고 싶어서...)


                                    한국에 시집 온 언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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