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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스토리 Jul 18. 2022

50만 원짜리 아이슬란드 여행

고군분투 6박 7일

오로라 사진을 보며 남편은 가끔 이야기한다. 정말 아름답지 않았느냐. 또 가고 싶어 진다.

남편의 아름다운 추억과 달리 그 사진을 보면 그때의 한기가 느껴져 발가락을 오므리고 어깨를 움츠린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한 번쯤 꿈꾸는 아이슬란드. 그곳엔 오로라와 빙하, 대자연을 마주할 수 있다. 살면서 몇 번 가보지 못할 아이슬란드에서 어떤 추억을 만들고 돌아올지는 각자의 선택에 달렸다. 


우리 부부는 보통 몇 백 단위의 예산을 들고 찾아오는 아이슬란드에서 6박 7일 동안 1인 50만 원으로 버텨냈다. 여행을 싫어하는 나도 버텨냈으니 꿈꾸는 자들에겐 해볼 만한 도전이자 행복한 고생이 아닐까? 진정 원한다면 분명 나보다 더 잘 해낼 수 있으리라. 그리고 나보다 더 뜨거운 것을 가슴에 새길 지도 모르겠다. 어떤 여행이 될지는 가봐야지만 알 수 있다... 그대여, 도전하겠는가?


참전 부부 모집


저렴하게 아이슬란드를 여행하기 동행이 필요했다. 숙박비와 식비 또 렌트비를 반으로 쪼갤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기 때문이다. 이미 북유럽을 여행을 하며 배를 곯을 대로 곯아보고 어느새 그런 고생은 몸에 배어져 버렸다. 내가 왜 이렇게까지 여행을 하는지도 모르는 무념무상의 상태에 도달해 버렸다. 


아이슬란드 동행을 구하는 글은 웹사이트, SNS에서 종종 있는 편이다. 물론 마음에 쏙 들고 여행 스타일이 비슷한 취향의 동행을 찾는 건 하늘의 별따기 일 것 같다. 채팅방에서 함께 동행하자는 부부가 있었으나 겁이나 쉽게 응하지 못했다. 혹시나 그들은 넉넉한 여행자금으로 하루 세끼를 다 챙겨 먹는다거나 좋은 숙소를 구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비용적으로 한계가 있는 우리에게 그런 동행은 낭패일 수 있다. 서로가 불편한 여행이 될 수도 있기에 우린 여행을 하면서 만났던 부부들 중 우리의 여행 방식에 가장 비슷할 것 같은 부부를 동행으로 찾기로 했다. 


그리고 우리와 금전적으로 비슷한 처지의 부부는 쉽게 떠올릴 수 있었다. 바로 '밍둥부부'였다. 프랑스의 가장 저렴한 캠핑장에서 처음 만났고 그다음 약속을 하지 않았음에도 다른 지역의 가장 저렴한 캠핑장에서 만날 수 있던 부부. 우린 '밍둥부부'에게 아이슬란드를 함께 하자며 계속 러브콜을 했다. 그리고 끝내 승낙을 받았다.


우리의 짜고 짜 액젓 냄새가 진동할 듯 한 여행에 동행이 생겼다.


전투준비

아이슬란드로 가기 전 영국에서 배낭을 재정비했다. 물 마저 비싼 아이슬란드에서 버티기 위해 버리긴 아까워 꼬깃꼬깃 가지고 다녔던 후줄근한 옷들을 버렸다. 대신 배낭 속에 2리터짜리 물 2병을 넣고 시리얼과 빵, 쨈 등 간편하게 허기를 채울 것들로 배낭을 꾸렸다. 옷을 버리고 식량을 챙기는 꼴이 흡사 전쟁을 준비하는 것 같았다. 


우린 밍둥부부보다 하루 일찍 아이슬란드에 도착했는데 하루 숙박비를 아끼기 위해 도착하자마자 공항에서 노숙을 해야 했다. 도대체 언제 마지막으로 씻은 건지... 온몸이 뻐근한 컨디션 최악의 상황에서도 기댈 곳은 공항 한 구석 자리 잡은 에어매트와 차디찬 벽뿐이었다.  짐은 자기가 지킬 테니 나만 믿고 자라던 남편은 몸을 기대자마자 드르렁 소리를 내며 곯아떨어졌다. 



따뜻한 물이 담긴 욕조, 온수매트, 포근한 이불, 넷플릭스... 한국에서 누렸던 안락한 나의 삶.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두고 떠나온 지 1년이 지난 지금 이게 뭐하는 짓인가. 이게 행복이란 말인가. 공항에 쪼그리고 앉아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사이 새벽 5시가 되었다.  인적 드물던 공항은 어느새 하나 둘 사람들이 걸어 다니기 시작했고 공항 관계자가 와서 자리에서 일어나라며 주의를 주었다. 남편을 깨워 다시 짐을 짊어지고 자리를 옮겼다. 아침해가 뜨고 가방에 있던 찌부된 크로와상으로 허기를 채웠다. 그리고 침낭을 꺼내 덮고 한 자리 차지해 몸을 뉘었다. 틀림없는 공항 노숙자의 모습이다. 나는 분명 남의 눈치를 잘 보고 체면을 중요시하는 사람인데, 내가 중요시하던 체면은 지금 챙길 수가 없다. 남의 시선 따위 신경 쓸 여력이 없다. 몸이 너무 힘들어 사람들이 눈살을 찌푸리더라도 한자리 찾이해 몸을 기대야겠고 빵 부스러기가 바닥에 떨어지더라도 배를 채워야 한다.



링로드 전투

튼튼한 갑옷이 없는 우리는 여러 겹을 두텁게 입어 최대한 몸을 보호했다. 좋은 갑옷을 입은 다른 전사들을 보고 있자니 무기 하나 없어 농기계를 들고 출전하는 초라한 우리가 이겨낼 수 있을까 걱정이 앞섰다. 


나는 아이슬란드 일정을 잘 모른다. 남편이 같이 공부하자며 손을 이끌었지만 관심을 두지 않아서 어디를 어떻게 어딜 거쳐 갔는지 기억하지 못한다. 남편이 우리 부부의 일정 코스를 담당하는 여행매니저라면 밍둥부부는 아내 현정이가 그 역할이었다. 남편인 둥이 오빠는 나와 같이 그저 계획에 따라 움직였다. 나보다 능동적이긴 했지만 나처럼 일정에 맞춰 그저 계획에 따르는 모습에 나와 같은 사람이 있다는 게 안심이 되었다.


 나보다 2살 아래의 현정이는 모든 면에서 나보다 언니 같았던 친구다. 

두 부부가 함께했기에 다른 여행지와는 다르게 부부의 사진을 많이 남길 수 있어 좋기도 했지만 티격태격하는 못 볼 꼴을 보여줘야 하는 단점도 있었다.


 6박 7일 동안 무지개가 뜬 폭포를 보고 바다에 둥둥 떠다니는 유빙을 보고 넘실대는 오로라를 보았다. 빙하를 오르고 화산재로 새까만 바다 벌판을 걸었고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촬영지에서 월터를 따라 하기도 했다.


그 모든 것을 보고 경험하기 위해 영하의 날씨에 텐트 안에서 난로도 없이 물통에 뜨거운 물을 넣어 끓어 안고 자야 했다. 식비를 아끼기 위해 아침 일찍 도시락을 싸서 출발했고 시리얼과 빵으로 허기를 채우며 다녔다.

입이 얼어붙고 정신이 혼미한 추위에서도 오로라를 보겠다며 정신을 붙잡았다. 

1분에 2유로 하는 샤워비를 아끼기 위해 1분 만에 샤워하는 법을 익혔다.  4유로 하는 핫도그를 사서 넷이서 한입씩 나눠먹었다.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생각이 들법한 이 여행에 밍둥부부가 있음으로써 참아내고 심지어 즐기기까지 했다.


다른 부부와 이렇게 가까이서 동거 동락하다 보니  우리 부부와 다른 점들이 눈에 띄기 시작했다. 


첫째로 밍둥부부는 우리와는 다르게 손을 잡고 걸었다. 항상은 아니지만 뒤돌아 보면 손을 잡고 걷고 있었고 앞을 보면 역시 팔짱을 끼고 함께 걷고 있었다. 내 남편은 대부분 나보다 느린 걸음걸이 때문인지 대부분 뒤에 있었다. 그리고 늘 사진을 찍느라 나에게 손을 내줄 수 없었다.  그러다 한 번은 손을 꼭 잡은 채 앞서 걸어가는 밍둥부부를 보고 질투가 나 눈물이 났다.  

그저 서로 속도를 맞춰 손을 잡으면 끝나는 일이다. 한데 우린 그럴 생각을 못했다. 남편은 아이슬란드를 사진기에 담아내느라 내게 손을 내어 줄 수 없었고 나는 빨리 여행을 끝내고 한국에 가고 싶어 하는 마음처럼 빠른 걸음으로 앞으로 내달리거나 무기력함에 뒤쳐져 걸었다.


두 번째로 밍둥부부는 서로 여행 일정에 대해 대화를 했다. 아이슬란드에선 현정이가 주도권이 있어 보였지만 오빠도 관심을 갖고 함께 찾으며 일정을 계획했다. 하지만 나는 아니었다. '네가 끌고 왔다. 모든 건 네가 감당해야 한다'라는 생각.. 그 고집을 끝까지 바꾸려 하지 않았다. 진짜 관심이 가질 않았고 귀찮았다. 물이 왜 끓어오르다 폭발하는지 신기하고 궁금하지만 찾아보고 싶진 않았다. 남편이 공부해 알려주기만 바랬다. 남편은 일정을 계획하고 여행지에 대해 공부하고 숙박할 곳을 찾느라 나와 대화할 시간이 없었다. 지금 와서 보면 모든 걸 혼자 책임지는 남편은 바쁠 수밖에 없었다. 일정 하나라도 삐끗하는 날엔 내가 쏟아내는 불호령을 감당해야 할 테니 말이다.


셋째로 밍둥부부는 춥고 힘들어도 여행을 즐겼다. 두 손이 꽁꽁 얼고 귀가 떨어져 나갈 것 같은 추위에도 사진에 담고 함께 이겨냈다. 하지만 나는 내 몸 하나 건사하기도 힘들었다. 춥다고 차 안에서 나가지 않았다. 남편은 그곳에서 열정적이었고 난 냉랭했다.


전투 후에 오는 것들


오로라의 아름다움을 사람의 눈으로는 볼 수 없다. 인간의 눈에는 밤하늘에 구름 같은 하얀 무언가가 넘실넘실 울렁울렁거리는 게 전부다. 운이 좋아 오로라 강도가 센 날에는 연한 녹색과 보랏빛이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사진에서 보았던 선명한 오로라는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다.  만약 미리 알았더라면 오로라를 보겠다고 들뜬 남편을 말렸을 것 같다.  여행은 내가 생각했던 만큼의 기대와 낭만을 주지 않는다. 기대가 큰 만큼 실망도 클 것이다. 나는 이 여행에 기대가 없었다. 


 사실 눈으로 보이지 않았던 오로라와 아이슬란드의 대자연 보다 아름다웠던 건 강추위에도 서로 의지하고 함께 견디며 추억을 남기려 셔터를 누르는 우리의 열정과 노력이었던 것 같다.


경량 패딩 하나에 의지에 그 추위를 견디고 적은 예산으로 6박 7일 링로드 일주를 마칠 수 있었던 건 오로라도 아니고 아이슬란의 대자연도 아니었다. 바로 서로 의지하고 함께 참아낸 전우애였다.  밍둥부부가 아니었다면 또 한 바탕 여행이 싫다고, 너를 따라온 게 미친 듯 후회된다며 상처되는 말만 내뱉었을 것이고 참고 이겨내지 못했을 것이다. 


아이슬란드 여행을 통해 나는 부부애와 전우애를 배웠다. 

밍둥부부가 여행하며 보여준 사소한 모든 일상이 내가 이상하다는 걸, 우리가 이상하다는 걸 생각하게 했다.

동행이 있었기에 내가 또 조금 달라지는 순간이다.



오로라보다 빙하보다
더 귀중한 걸 얻었다
이게 여행의 이유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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