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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원 Jul 14. 2019

여름방학 냄새

복숭아 삶은 옥수수 그리고 치자꽃

‘얼굴 보려고’

얼굴 보려고는 무슨 뜻일까. 비슷한 말이나 반대말은 뭘까. 나라마다 번역하면 무슨 뜻일까. 얼굴이나 보자며 만났다.


편하게 집 근처 공원엘 갔다. 아침에 온 비가 그치고 밤에는 더욱 시원한 밤이었다. 복숭아와 삶은 옥수수, 병에 담은 시원한 물을 펼쳐서 야금야금 물을 뚝뚝하며 먹었다. 만원이 넘는 카페 빙수나 망고 구아바 같은 열대과일이 아닌 평범한 제철과일 채소가 우리들의 오래된 여름 기억을 소환할 줄 몰랐다. 어린 시절 여름 방학이 떠올랐다. 그때는 한여름에도 밤에는 시원한 바람이 불어 집에 모든 문을 열고 맞바람을 맞거나 집 앞에 나가 동네 평상에서 이런 것들을 먹었다. 어쩌다 우리들이 집에서 챙겨 온 간식이 서로의 어린 소년소녀를 만나게 했다.

음악소리 없는 공원에는 혼자 농구공 튀기는 소리만 났다. 산책 나온 사람들은 이 곳의  조용함을 지키기 위해 서로 간격을 멀찍이 엇갈려 걸었다. 우리는 오솔길을 걷다가 잔디를 걸었다. 한 명은 잔디를 어색해했다. 푹신하고 미끄러운 잔디를 걷다가 보도블록이 나오면 물속에서 나와 걷는 듯 다리가 무겁게 마찰이 느껴졌다. 다시 잔디로 걸어 되돌아가자고 했다. 벚나무가 어두컴컴한 터널을 만들 정도로 무성했다. 하지만 그것은 봄에나 알아볼 일. 지금은 어둠 속에서도 하얗게 빛나는 치자꽃이 여름 밤 존재감을 뽐내고 있었다. 수분이 많은 꽃들은 지는 모습이 추했다. 하지만 활짝 핀 모습은 어디에 견주어도 지지 않을 만큼 화려하고 고상한 모습이었다. 일생의 미모를 짧은 순간 모두 쓸 수 있다면 이런 모습일 것이다. 나는 치자꽃 향이 나는 향수들이 좋았다. 진하고 고혹적인 향. 하지만 그 향을 맡을 때면 갈색으로 시드는 모습이 항상 떠올랐다. 작은 꽃잎을 가진 향이 없는 꽃들은 말려도 비슷한 모습이었다. 그 귀여운 모습이 오래도록 간직하는 것도 좋았지만 지나치지 못할 향과 화려한 미모를 가진 꽃이, 이 여름밤에 식히지 못한 열정처럼 못내 부러웠다. 한 명이 준비한 음악은 celso fonseca 앨범이었다. 본인은 뜨겁고 열정적인 남미음악보다 이런 살랑살랑한 보사노바가 좋다고 했다. 오늘 밤에 어울리는 곡이라며. (한 명은 Joao Gilberto의 eatate를 듣고 싶었지만 참았다) 좋아하는 계절은 여름이라고 했다. 초여름의 분위기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따끔거리는 햇볕조차 좋을 때가 있고 무엇보다 더위가 가신 밤, 여름이 끝나가는 것이 느껴지는 시원한 밤이 좋다고 했다. 반면에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가는 그 쌀쌀한 변화를 못 견딘다고 했다. 하지만 오늘 우리를 늦은 밤에 불러낸 이 우울감은 아주 뜨겁고 찬란한 것이 도래하기 전 찾아온 꽤 괜찮은 하루라는 평범함이었다. 사라져 가는 변화에만 몸과 마음이 앓는 것은 아니었다. 더위가 두려워서도 오늘이 흐려서도 아니었다. 우리는 이번 여름을 어떻게 보내야 할까. 원하는대로 보낼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었다. 한 명은 20대의 청춘이 잔인하게 장악했을 때 특히 여름이 벅차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인생에 계절과 시간에 맞춰가지 못한다는 느낌이 들 때였다.



https://youtu.be/o4LGElPXjh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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