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84조(시효의 이익의 포기 기타) ①소멸시효의 이익은 미리 포기하지 못한다.
②소멸시효는 법률행위에 의하여 이를 배제, 연장 또는 가중할 수 없으나 이를 단축 또는 경감할 수 있다.
시효의 이익과 포기에 대해서 공부하겠습니다. 우리는 전에 ‘시효의 이익’이라는 개념을 공부한 적이 있었습니다. 기억이 잘 안 나시는 분들은 제176조로 돌아가 복습하고 오셔도 좋겠습니다. 시효의 이익이란, 시효에 의하여 권리를 취득하거나 권리가 상실됨으로써 받게 되는 이익이라고 했습니다.
제176조(압류, 가압류, 가처분과 시효중단) 압류, 가압류 및 가처분은 시효의 이익을 받은 자에 대하여 하지 아니한 때에는 이를 그에게 통지한 후가 아니면 시효중단의 효력이 없다.
그런데 제184조제1항은 소멸시효의 이익은 ‘미리’ 포기할 수 없다고 합니다. 이것은 무슨 말일까요?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철수가 영희에게 1억 원을 빌려 주었다고 합시다. 철수는 채권자, 영희는 채무자입니다. 이 경우 시효의 이익은 영희(채무자)에게 있다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소멸시효가 완성되면, 영희는 더 이상 철수에게 돈을 갚지 않아도 되는 것이니까요.
만약 제184조와 같은 규정이 없다고 해봅시다. 그러면 채권자인 철수의 입장에서는 영희(채무자)에게 미리 시효의 이익을 포기시켜 버릴 유인이 생깁니다.
예를 들자면 이런 거죠. “영희, 네 사정이 급하다고 하니 내가 1억 원을 빌려주기는 할게. 다만, 각서에 [시효의 이익을 포기한다]라고 써.” 사정이 급한 영희는 울며 겨자 먹기로 각서를 씁니다. 그러면 이제 백만 년이 지나도 철수의 채권은 시효가 완성하지 않게 되어 버립니다.
이러한 사태를 막기 위하여 제184조제1항은 시효의 이익을 미리 포기할 수 없도록 하고 있습니다. 결국 철수가 무슨 각서를 영희에게 강요하건 간에 시효의 완성에는 별 문제가 없게 됩니다.
그런데, 제1항은 시효의 이익을 ‘미리’ 포기할 수 없다고 하였으므로, 반대로 해석하면 이는 ‘시효완성 후’에는 포기할 수 있다는 말이 됩니다. 즉, 시효가 완성되었다고 하더라도 채무자인 본인이 스스로 “그래, 나는 너에게 돈을 갚을 것이 있다(내 스스로 시효의 이익을 포기하겠다)”라고 주장한다면, 그것까지 민법에서 굳이 막을 필요는 없다는 겁니다.
판례도 “시효이익을 받을 채무자는 소멸시효가 완성된 후 시효이익을 포기할 수 있고, 이것은 시효의 완성으로 인한 법적인 이익을 받지 않겠다고 하는 의사표시이다. 그리고 그러한 시효이익 포기의 의사표시가 존재하는지의 판단은 표시된 행위 내지 의사표시의 내용과 동기 및 경위, 당사자가 의사표시 등에 의하여 달성하려고 하는 목적과 진정한 의도 등을 종합적으로 고찰하여 사회정의와 형평의 이념에 맞도록 논리와 경험의 법칙, 그리고 사회일반의 상식에 따라 객관적이고 합리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라고 하여 같은 입장입니다(대법원 2013. 2. 28. 선고 2011다21556 판결).
판례는 이러한 ‘시효완성 후’의 시효이익의 포기에 대해서, 시효가 완성된 후에 아래의 3가지 중 하나를 저지르는 경우, 사실상 시효이익의 포기를 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김준호, 2017).
①변제기한의 유예를 요청하는 경우(“시효가 완성되었지만 돈을 갚고 싶어. 대신 2달만 더 시간을 줄래?”)
②일부를 변제하는 경우(“시효가 완성되었지만 돈을 갚고 싶어. 1억 원 중에 1천만 원만 먼저 갚을게.”)
③채무의 승인을 하는 경우(“시효가 완성되었지만 내가 너에게 갚을 돈이 있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어. 갚을게.”)
이와 같이 소멸시효가 완성된 후에 시효이익의 포기가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①포기하려는 사람(시효이익을 받을 당사자 또는 대리인)이 처분능력이나 권한을 가지고 있을 것, ②그리고 포기하려는 사람이 “시효가 이미 완성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포기를 할 것, 이 2가지 요건이 충족되어야 한다고 합니다(김용덕, 2019).
*시효가 완성되었다는 사실을 알았는지 몰랐는지가 애매한 경우의 ‘추정’의 문제에 대해서는 참고문헌을 참조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제2항을 봅시다. 제2항은 소멸시효는 법률행위에 의하여 배제하거나, 그 기간을 늘릴 수 없다고 되어 있습니다. 법률행위에 대해서는 여러 차례 공부하였으니 넘어가도록 하겠습니다.
만약 제2항과 같은 규정이 없다면, 채권자와 채무자가 계약(법률행위)을 통하여 시효기간을 100년으로 해 버릴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사실상 현실적으로는 시효기간이 없는 것과 다름없게 되고, 이는 소멸시효의 이익을 ‘미리’ 포기해 버린 것과 같은 결과가 됩니다. 제1항의 조문을 무력화할 수 있겠지요?
반면 소멸시효의 기간을 짧게 줄이는 것은 가능합니다. 10년의 소멸시효 기간을 서로 합의해서 5년으로 잡는 것도 가능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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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우리는 총 184개에 달하는 민법 총칙(제1편)의 조문들을 하나씩 공부해 보았습니다.
아무래도 방대한 내용을 간략하게 설명하고, 또 최대한 단순한 사례를 들어서 제시하다 보니 세부적인 측면에서는 심도 있는 법학 교과서에 비해서 부족한 측면이 있었다고 생각됩니다.
교양을 높인다는 차원에서 너그러이 봐주시고, 앞으로는 민법의 새로운 파트, 물권편(제2편)으로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
소멸시효가 완성되는 경우 그 효과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중요한 학설의 대립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 내용은 간단하게 「민법」의 얼개를 이해하는 과정에서는 다소 복잡한 논의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여, 별도로 ‘심화학습’으로 구성하게 되었습니다.
소멸시효가 완성되면 정확히 어떤 효과가 발생하는 걸까요? “권리가 소멸하는 것 아닙니까? 지금까지 그렇게 얘기해 왔잖아요.” 이렇게 생각하실 수 있습니다. 맞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내용을 최대한 단순화해서 설명드리기 위한 것이었고, 권리가 소멸하되 어떤 방식으로 소멸하는 것인지는 좀 더 상세한 논의가 필요합니다. 이에 대해서 학자들의 논의가 많았으며, 크게 나누어 2개의 학설이 대립하고 있습니다.
①첫 번째 학설은 “소멸시효가 완성되면 권리는 당연히 소멸한다”라고 보는 견해입니다. 이것을 교과서에서는 보통 ‘절대적 소멸설’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무슨 당연한 소리냐, 이렇게 생각하실 수 있는데 이어지는 다음 견해를 보시면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아실 겁니다.
②두 번째 학설은 “소멸시효가 완성된다고 해서 권리가 당연히 소멸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시효의 이익을 얻을 사람이 ‘권리 소멸을 주장할 수 있는 권리’(권리부인권, 원용권)를 얻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사람이 권리부인권(원용권)을 행사할 때, 바로 그 때 권리가 소멸하게 된다”라고 주장하는 견해입니다(송덕수, 2022; 백태승, 2021; 김준호, 2017:425면).
*주로 교과서에서는 이 파트에서 ‘원용’(援用)한다는 표현을 많이 쓰고 있습니다. ‘취할, 잡을 원’에 ‘쓸 용’의 한자를 쓰는데, 법학에서는 대체로 어떤 사실을 끌어다가 자신을 위해 주장하는 것을 뜻합니다. 보통 “소멸시효의 원용”, “시효이익의 원용” 등으로 사용합니다. 다만, 학계에서 자주 사용되는 ‘원용’이라는 표현이 적절한지, 원용권이라는 개념은 적절하지 않고 항변권으로 보아야 한다고 비판하는 견해도 있으니(황태윤, 2020), 관심 있는 분들은 참고문헌을 확인해 보시기 바랍니다.
결과적으로는 권리가 소멸하게 된다는 점은 같지만, 그 결론에 이르는 과정에서 두 학설의 차이가 발생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게 단순히 탁상공론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현실의 사례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앞서 공부한 제184조를 생각해 봅시다. 소멸시효가 완성한 후에 시효이익의 포기는 가능하다고 했습니다. 그것이 제184조에 대한 해석입니다. 그런데 절대적 소멸설에 따르면 이런 문제가 생깁니다.
“시효가 완성되면 절대적으로 권리가 소멸하는데, 시효의 이익을 포기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시효가 완성되면 채무자는 돈을 갚을 채무가 없어지게 되므로, 시효 이익의 포기는 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이렇게 되는 것입니다. 절대적으로 이미 소멸해 버린 권리를 어떻게 소멸하지 않은 것으로 취급하냐, 이런 겁니다. 정확한 비유는 아니지만 이미 죽은 사람을 어떻게 살려내냐, 이런 거죠. 반면 상대적 소멸설에 따르면, 소멸시효가 완성되었다고 해도 채무자가 원용권을 행사하기 전까지는 권리가 소멸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제184조에서 말하는 시효 이익의 포기는 ‘원용권의 포기’라고 볼 수 있다고 해석합니다. 그래서 이런 이유에서 절대적 소멸설보다 상대적 소멸설이 더 낫다고 보는 학자들도 있습니다.
한편으로 이런 문제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철수(채무자)는 나부자(채권자)에게 1억원의 빚을 지고 있습니다. 10년 동안 나부자는 철수에게 딱히 돈을 갚으라고 말하지 않았고, 시효가 완성되었습니다. 그런데 철수는 11년이 경과한 시점에 나부자에게 1억원의 돈을 갚았습니다. 이런 경우는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요?
절대적 소멸설에 따르면, 철수는 시효이익을 받지 않겠다는 의사표시를 한 것으로서 나중에 공부할 ‘비채변제’에 해당하게 된다고 봅니다(제742조). 비채변제를 자세히 공부할 필요는 없습니다. 철수가 시효완성 사실을 알았건 몰랐건 반환청구가 불가하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는 사실만 말씀드리겠습니다.
제742조(비채변제) 채무없음을 알고 이를 변제한 때에는 그 반환을 청구하지 못한다.
제744조(도의관념에 적합한 비채변제) 채무없는 자가 착오로 인하여 변제한 경우에 그 변제가 도의관념에 적합한 때에는 그 반환을 청구하지 못한다.
상대적 소멸설에 따르면, 철수가 시효완성 사실을 알았건 몰랐건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고 봅니다. 원용권자인 철수가 원용권을 행사하지 않은 상태이기 때문에 당연히 채권은 소멸하지 않은 상태이고, 그런 상태에서 채무를 변제한 것이기 때문에 유효하다고 해석합니다. 결국 철수가 반환을 청구할 수 없다는 결론에서는 두 학설이 같지만, 그 논리는 다르게 구성하고 있습니다.
판례는 이런 학설의 대립을 어떻게 처리하고 있을까요? 판례가 정확히 “나는 절대적 소멸설을 취한다.” 이렇게 명시적으로 언급하지는 않기 때문에, 학자들은 여러 판결을 보면서 판례의 태도를 해석해 왔습니다. 대체로 판례는 절대적 소멸설을 따르고 있다고 설명하는 교과서도 있고(김준호, 2017:426면; 백태승, 2021:562면), 절대적 소멸설을 취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상대적 소멸설을 따르는 것으로 보이는 판결도 있다는 관점에서 분석한 경우도 있습니다(김용덕, 2019: 830-832면(이연갑)).
절대적 소멸설과 상대적 소멸설의 대립은 거의 1950년대부터 이어져 온 아주 오래된 논의이고, 관련 논문도 굉장히 많이 나와 있습니다. 내용이 복잡하고 논거도 다양하고요. 앞에서는 비채변제라든지 시효이익의 포기 같은 문제만 다루었지만, 그 외에도 민사소송법상의 변론주의의 문제, 해외 입법례와의 비교 등 다양한 논의가 있습니다. 여기서 그 모든 논의를 다 담자면 책이 따로 한 권 나와야 하기 때문에, 간단히 학설이 어떻게 대립하고 있는지 정도를 소개하는 차원에서 말씀을 드렸습니다.
과연 어떤 견해가 타당한 것인지 한번 스스로 생각해 보시는 것도 좋은 공부가 될 것입니다.
*참고문헌
김용덕, 「주석민법 총칙3(제5판)」, 한국사법행정학회, 2019, 1039-1042면(전원열).
김준호, 「민법강의(제23판)」, 법문사, 2017, 432면.
백태승, 「민법총칙(제7판)」(전자책), 집현재, 2021, 561면.
송덕수, 「신민법강의(제15판)」(전자책), 박영사, 2022, 254면.
황태윤, “소멸시효완성의 효과에 대한 소고 - 절대적 소멸설과 상대적 소멸설에 대한 비판적 검토 -”, 「동아법학」 제86호, 2020, 148-156면.
20.2.7. 작성
23.1.6. 업데이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