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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법 제304조, "건물의 전세권, 지상권, 임차권"

by 법과의 만남
제304조(건물의 전세권, 지상권, 임차권에 대한 효력) ①타인의 토지에 있는 건물에 전세권을 설정한 때에는 전세권의 효력은 그 건물의 소유를 목적으로 한 지상권 또는 임차권에 미친다.
②전항의 경우에 전세권설정자는 전세권자의 동의없이 지상권 또는 임차권을 소멸하게 하는 행위를 하지 못한다.


제304조제1항을 보겠습니다.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여기 작은 땅이 하나 있고, 땅의 소유자는 철수입니다. 그리고 그 땅 위에 건물이 있는데요, 건물의 소유자는 영희입니다. 즉, 제304조는 땅, 그리고 땅 위에 있는 건물의 소유자가 각각 다른 사람인 경우를 상정하고 있는 겁니다.


영희는 어쨌거나 남의 땅 위에 건물을 지어 갖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철수의 땅을 이용할 수 있는 권리가 있어야 합니다. 그것은 제1항에서 말하는 것처럼 지상권이 될 수도 있고, 임차권이 될 수도 있습니다. 여기서는 영희가 철수의 땅에 대한 지상권자라고 가정합시다. 영희는 철수의 땅 위에 건물의 소유를 위한 지상권을 갖고 있는 겁니다.

그런데, 영희는 자신의 건물을 놀리기가 아까워 나부자에게 10억원을 받고 전세권을 설정해 주기로 했습니다(영희=땅에 대한 지상권자, 건물에 대한 전세권 설정자). 그래서 전세권설정계약을 맺고, 나부자는 영희에게 10억원의 전세금을 지급하였습니다. 계약한 다음날, 나부자가 짐을 싸들고 건물에 들어가려는데 웬걸, 철수(땅 소유자)가 길을 가로막습니다.


“당신은 누구요? 나는 영희에게 지상권을 허락해 준 적은 있지만, 나부자 당신에게 지상권을 설정해 준 적은 없어.”

철수(땅 주인)는 이렇게 말하며 나부자에게 나가라고 합니다. 나부자(건물전세권자)는 영희와 체결한 계약서를 보여주지만, 철수는 그건 내가 한 계약이 아니니 자신이 알 바 아니라고 합니다. 얼핏 보면 맞는 말인 것 같습니다. 나부자가 계약한 사람은 영희(건물 주인)이지, 철수(땅 주인)는 아니니까요.


이런 경우, 나부자는 땅 주인인 철수의 허락을 받아야만 건물을 사용할 수 있는 걸까요? 그러면 건물을 빌려 쓰려는 사람(전세권을 따려는 사람)은 항상 건물 주인뿐 아니라 땅 주인과도 계약을 각각 체결해야 하는 걸까요?


그렇게 보면 너무 번거롭고 과하지요. 제1항은 이러한 나부자를 도와주기 위해 있는 조문입니다. 우리의 다수설은 제1항의 의미를 다음과 같이 해석합니다: 건물의 소유자가 이미 그 땅을 사용할 수 있는 적법한 권리(지상권 또는 임차권)을 가지고 있는 경우, 그 건물 소유자와 계약을 한 전세권자는 건물 소유자와 마찬가지로 그 토지를 이용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지원림, 2013). 따라서, 나부자는 제304조제1항을 근거로 철수의 땅을 적법하게 이용할 수 있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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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제1항은 어디까지나 건물 소유자가 적법하게 권리를 갖고 있다는 전제 하에 전세권자를 보호하는 규정이므로, 건물 소유자인 영희가 처음부터 남의 땅을 불법 점거하여 건물을 지은 것이라면 당연히 나부자도 보호받을 수 없다는 점은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참고로, 대법원은 “민법 제304조는 전세권을 설정하는 건물소유자가 건물의 존립에 필요한 지상권 또는 임차권과 같은 토지사용권을 가지고 있는 경우에 관한 것으로서, 그 경우에 건물전세권자로 하여금 토지소유자에 대하여 건물소유자, 즉 전세권설정자의 그러한 토지사용권을 원용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토지소유자 기타 토지에 대하여 권리를 가지는 사람에 대한 관계에서 건물전세권자를 보다 안전한 지위에 놓으려는 취지의 규정”(대법원 2010. 8. 19. 선고 2010다43801 판결)이라고 설명하고 있으니, 제304조의 이해를 이해 한번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다만, 제1항에서 말하는 “지상권 또는 임차권에 미친다”의 구체적인 의미에 대해서는 학설의 견해가 갈립니다. 건물전세권자가 지상권 등에 대해서도 전세권을 취득한다고 보는 견해도 있고, 지상권 등과 같이 토지를 사용·수익할 수 있다는 의미라는 견해도 있는데(박동진, 2022), 상세한 내용은 참고문헌을 참조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이제 제2항을 보겠습니다. 제1항에서 전세권자를 보호하는 취지는 알겠는데, 사실 이것만으로는 좀 부족할 수도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위의 사례를 이용해서 한번 더 생각해 봅시다. 나부자는 자기 땅에서 나가라며 억지를 부리는 철수에게 민법 제304조제1항을 보여주고 당당하게 건물에 입성했습니다.


그런데, 그로부터 한 달 뒤 건물 주인인 영희는 나부자와 개인적인 일로 다투었고, 이에 앙심을 품은 영희는 자신의 지상권을 포기해 버리기로 합니다(실제로는 이렇게 과격한 선택을 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긴 하겠지만, 이해를 돕기 위하여 예를 드는 것입니다). 그러면 영희의 지상권이 없어지게 됨으로써 나부자는 제1항에 따른 토지 이용을 더 이상 할 수 없게 되니까, 이제는 나부자를 영 마음에 안 들어하던 철수가 나부자를 쫓아내 버릴 수 있게 됩니다.


제304조제2항은 이와 같이 전세권설정자(영희)가 전세권자(나부자)의 동의 없이 마음대로 지상권 또는 임차권을 소멸시켜 버림으로써 전세권자에게 불의의 피해를 주는 것을 금지하고 있습니다.


다만, 그렇다고 해서 모든 사안에서 건물전세권자(나부자)가 보호를 받는 것은 아닙니다. 예를 들어 영희(지상권자)가 철수(땅 주인)에게 약속했던 땅세를 2년 이상 주지 않았다고 해봅시다.


그러면 땅 주인은 제287조에 따라 지상권이 소멸했다고 주장할 수 있을 겁니다. 이런 경우는 제304조제2항에 걸리지 않습니다. 즉, 철수(땅 주인)은 땅세를 못 받았다는 것을 이유로 지상권의 소멸을 (영희에게) 주장하면서, 덩달아 나부자(건물전세권자)에게도 지상권이 소멸했다는 것을 유효하게 주장할 수 있습니다. 판례도 같은 입장입니다(대법원 2010. 8. 19. 선고 2010다43801 판결).


오늘은 땅과 건물의 소유자가 서로 다른 경우 우리 민법이 어떻게 전세권자를 보호하고 있는지 알아보았습니다. 내일은 전세권과 법정지상권에 대해 공부하도록 하겠습니다.

*참고문헌,

지원림, 민법강의, 홍문사, 제11판, 2013, 701면.

박동진, 「물권법강의(제2판)」, 법문사, 2022, 356-357면.



2024.1.12. 업데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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