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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법과의 만남 Dec 04. 2023

민법 제409조, "불가분채권"

제409조(불가분채권) 채권의 목적이 그 성질 또는 당사자의 의사표시에 의하여 불가분인 경우에 채권자가 수인인 때에는 각 채권자는 모든 채권자를 위하여 이행을 청구할 수 있고 채무자는 모든 채권자를 위하여 각 채권자에게 이행할 수 있다.


어제 살펴본 '분할채권관계'는 나눌 수 있는 급부(이른바 '가분급부')에 대해 채권자 또는 채무자가 여러 명인 경우를 다루었습니다. 오늘부터 볼 것은 바로 불가분채권과 불가분채무인데요, 이것은 말 그대로 채권의 목적인 급부가 '나눌 수 없는'(불가분) 것을 뜻합니다. 하나의 불가분급부에 대해 채권자가 여러 명이면 불가분채권이라고 부르고요, 채무자가 여러 명이면 불가분채무라고 부릅니다. 제409조는 그중 불가분채권에 대해 다룹니다.


급부를 나눌 수 없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2가지 경우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①먼저 그 성질상 나눌 수가 없는 급부가 있을 겁니다. 예를 들어 고려청자 1개를 인도하는 급부라고 생각해 보면, 채권자가 여러 명이라고 해서 청자를 여러 개로 쪼개서 인도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즉, "성질상 급부의 본질 또는 가치를 훼손하지 않고는 여러 개의 급부로 분할하여 이행할 수 없는 급부"를 뜻한다고 합니다(김대정·최창렬, 2020). 또 실제 자주 볼 수 있는 불가분급부의 예로는 주택의 소유권이전 및 인도 채무를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②다음으로 성질상 아예 나눌 수 없는 것은 아닌데, 당사자 간에 합의를 해가지고 나눌 수 없는 것으로 보자고 하는 사례가 있습니다. 바로 의사표시에 의해 불가분이 되는 경우입니다. 

*위 ①의 경우는 상관없는데, ②의 경우는 나중에 공부하게 될 연대채권과 개념상 비슷해서 구별하기가 쉽지 않은 측면이 있습니다. 이 내용은 나중에 연대채권을 살펴보면서 다시 한번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그런데 얼핏 보기엔 가분적일 것 같은데 성질상 불가분적이라고 보는 경우도 있습니다. 우리 판례는 "건물의 공유자가 공동으로 건물을 임대하고 보증금을 수령한 경우,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그 임대는 각자 공유지분을 임대한 것이 아니고 임대목적물을 다수의 당사자로서 공동으로 임대한 것이고 그 보증금 반환채무는 성질상 불가분채무에 해당된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라고 합니다(대법원 1998. 12. 8. 선고 98다43137 판결). 즉 건물을 여러 명이 공유하고 있는데, 그 건물을 임대하면서 받은 보증금을 반환하는 채무는 '성질상' 불가분채무라는 겁니다. 보증금도 돈이니까, 돈을 돌려주는 채무는 당연히 가분적일 것 같은데 말이죠. 그 외에도 토지거래허가지역 내의 토지에 관한 매매계약이 확정적으로 무효로 되면서 다수의 매도인이 부담하게 된 부당이득반환의무를 성질상 불가분채무로 본 판결 등이 있습니다(대법원 1997. 5. 16. 선고 97다7356 판결).


판례의 이러한 태도에 대해서는 학계에서 긍정하는 반응도 있고, 비판하는 입장도 있습니다. 어쨌거나 결론적으로는 이러한 해석이 불가분급부의 범위를 확대하는 효과가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왜냐하면 원칙상 특별한 의사표시가 없는 금전채무라면, 위 ①과 ② 모두에 해당되지 않게 되어 불가분급부가 아니라 분할채권관계로 해석해야 하는 건데 판례가 가끔 경우에 따라 이걸 ①로 봐버리는 사례가 있다는 거니까요. 도대체 왜 이러는 걸까요? 이를 알기 위해서 우리는 지금부터 불가분채권이 도대체 무엇인지, 어떤 효과가 있는 것인지 살펴볼 것입니다.


제409조를 봅시다. 먼저 불가분채권에서는 채권자가 여러 명인데요, 각각의 채권자는 "모든 채권자를 위하여" 이행을 청구할 수 있고, 또 상대방(채무자)는 "모든 채권자를 위하여" 각 채권자에게 이행할 수 있습니다. 이게 무슨 말인지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김투자, 최투자, 나투자 3명은 힘을 합쳐서 공동으로 주택을 하나 매입하려고 합니다. 투자용으로요. 그리고 열심히 부동산 중개소를 들락거린 결과, 철수의 주택이 가장 적합한 것으로 결정 내렸습니다. 이들은 철수의 주택을 3억원에 매입하는 계약을 체결하였습니다.


위 사례에서 채권자는 김투자, 최투자, 나투자 3명이고, 철수로부터 주택 소유권이전등기와 인도를 받을 수 있는 채권을 갖고 있습니다. 이것은 불가분채권이라고 가정하겠습니다. 주택 소유권이전등기 및 인도채무의 채무자는 철수 1명입니다. 대신 철수는 김투자, 최투자, 나투자로부터 주택 매매대금을 받을 권리가 있습니다. 철수는 주택의 소유권이전등기를 해주고 인도할 채무를 지면서, 한편으로 위 3명에게서 돈을 받을 수 있는, 금전채권을 갖고 있는 것입니다. 

*위 주택의 소유권이전등기채무는 교과서에 따라 성질상 불가분급부라고 보기도 하는데, 지분을 3분의 1씩 떼어서 줄 수도 있으므로 성질상 불가분급부라고 하기엔 의문이 있다는 견해도 있습니다(김대정·최창렬, 2020: 775-776면). 그래서 여기서는 불가분채권이라고 '가정'한다고 명시한 것입니다.


제409조에 따르면, 위 사례에서 김투자는 채무자인 철수에게 단독으로 "너의 주택을 내게 소유권이전등기해주고, 인도해라."라고 청구할 수 있다는 겁니다. 반대로, 채무자인 철수 역시 김투자, 최투자, 나투자 중 원하는 사람으로 1명을 찍어서 자신의 채무를 이행할 수 있습니다. 


"김투자가 혼자서 주택을 먹는(?) 건가요?" 이렇게 생각하실 수도 있지만, 김투자는 제409조에 명시된 대로 "모든 채권자를 위하여" 청구하여야 합니다. 즉, 채무 전체를 변제받은 김투자(채권자)는 다른 채권자들(최투자, 나투자)과 그 이익을 서로 분배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주택을 3분의 1씩 공유지분을 나눠서 등기하는 식으로요(김준호, 2017). 어쨌거나 철수(채무자) 입장에서는 셋 중 아무에게나 채무를 이행하면 되니까 확실히 편리하긴 합니다.


제409조에서 말하는 불가분채권의 특징은, 결국 급부를 '나눌 수 없다'는 데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채무를 나눠서 이행할 수 없기 때문에 채무자는 어쩔 수 없이 여러 명의 채권자 중에 1명에게 이행을 해야 하는 거고요. 채권자는 이행을 받고 나서 그걸 상호 간에 잘 분배해야 하는 거고요. 




자, 이제 앞서 잠깐 얘기했던 문제로 다시 돌아가 보겠습니다. 돈을 돌려주는 채무, 예를 들어 위에서 공유자가 공동으로 건물을 빌려주고 받은 보증금을 나중에 돌려주어야 할 채무는 얼핏 보기에 가분적일 것 같지만(왜냐하면 돈은 쪼갤 수 있기 때문에), 판례는 '성질상' 불가분적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왜 그런 걸까요? 예를 들어 보증금이 3억원이고 공유자가 3명이라면, 1명이 각각 1억원씩 맡아서 반환하면 되지 않을까요? 왜 분할채무가 아닌 걸까요?


우리 민법은 제408조에서 다수당사자 채권관계를 원칙적으로 '분할채권관계'로 보고 있습니다. 분할채권관계는 마치 더치페이처럼 서로 채권과 채무를 딱 나눠서 가져가기 때문에 얼핏 보기에 영역이 명확합니다. 이해하기도 편합니다. 그런데 장점만 있는 것은 아니지요. 이러한 '원칙'을 아주 철저하게 고수하게 되면, 오히려 문제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2가지 문제점이 있습니다. 첫째, 채권자는 여러 채무자에게 각각 권리를 행사하고, 또는 채무자는 여러 채권자에게 따로 채무를 이행해야 하는데 사람이 늘어날수록 이게 굉장히 불편하다는 것입니다. 둘째, 분할채무에서 채무자가 여러 명인 경우에 그 채무자 중 일부가 이행이 어려운 경우(무자력인 경우)에는 채권자가 피해를 볼 수 있다는 점입니다. 대표적인 예로 윤태영(2010)은 회사 동료들이 식당에서 점심 식사를 하는데, 그 음식값을 내는 채무가 '분할채무'라면, 동료 중 1명이 중간에 급한 일로 음식값을 안 내고 집에 간다고 하더라도 식당 주인이 다른 사람들에게 그 음식값을 청구하지 못하게 되는 기괴한 일이 벌어지게 된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동료 중 1명이 매우 가난해서 돈을 못 내게 되더라도 식당 주인이 피를 볼 수 있는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불쌍한 식당주인의 문제 해결방법에 대해서는 계약당사자를 1명으로 확정하여 분석하는 방법, 분할채무로 보는 방법 등 여러 가지 방안이 있는데, 아래 참고문헌을 참조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이런 문제가 있기 때문에, 많은 법학자들은 명문의 규정이 없는 경우에도 분할채권관계가 언제나 성립한다고 보지 않고, 특히 분할채무의 성립을 최대한 제한하여 채권의 효력을 지켜내려는 입장을 취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분할채권관계의 성립 제한론이라고 하며, 우리나라 학계의 통설적인 견해입니다(김대정·최창렬, 2020: 765면). 우리의 판례도 경우에 따라 분할채무의 성립을 제한하고 있고요, 그 결과 나타난 판례가 위에서 제시한 보증금 판례 같은 것입니다. 이에 대해서, 판례와 통설이 "채무자가 다수 있는 경우 본래 가분급부의 성질을 가진 금전급부라고 하더라도, 그 채무가 불가분적으로 향수하는 이익의 대가로서의 의의를 가지는 채무나 불가분급부의 대가로서의 의의를 가지는 채무라면 성질상 불가분채무로 보는 것"으로 분석하기도 합니다(윤태영, 2010: 21면).


어쨌거나 얼핏 보기에 나눌 수 있어 보이는 금전급부라고 하여도 그것이 불가분적인 것(공유자가 건물을 공동으로 빌려 주는 행위)에 대한 대가라면 이 역시 불가분적인 것으로 평가될 수 있다는 것인데요, 이것이 과연 맞는 논리인지는 한번 스스로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비판적인 견해에 대해서는 참고문헌에 잘 제시되어 있으니, 심화학습의 느낌으로 살펴보시면 좋을 것입니다.


오늘은 나눌 수 없는 급부의 개념과 불가분채권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내일은 1인의 채권자에게 생긴 사항의 효력에 대해 공부하도록 하겠습니다.


*참고문헌

김대정·최창렬, 「채권총론」,  박영사, 2020, 775면.

김준호, 「민법강의(제23판)」, 법문사, 2017, 1271면.

윤태영, "다수당사자 채권관계에서의 분할주의원칙 제한을 위한 합리적 모색 -‘연대의 추정’에 대하여 비판적으로 검토하며-", 재산법학회 제26권 제3호, 2010,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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