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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법과의 만남 May 07. 2024

민법 제427조, "상환무자력자의 부담부분"

제427조(상환무자력자의 부담부분) ①연대채무자 중에 상환할 자력이 없는 자가 있는 때에는 그 채무자의 부담부분은 구상권자 및 다른 자력이 있는 채무자가 그 부담부분에 비례하여 분담한다. 그러나 구상권자에게 과실이 있는 때에는 다른 연대채무자에 대하여 분담을 청구하지 못한다.
②전항의 경우에 상환할 자력이 없는 채무자의 부담부분을 분담할 다른 채무자가 채권자로부터 연대의 면제를 받은 때에는 그 채무자의 분담할 부분은 채권자의 부담으로 한다.


제427조제1항을 보겠습니다. 여기서 '상환무자력'이라는 표현이 나오는데, 지금은 엄밀한 의미까지 파악하기보다 그냥 '갚을 능력이 없다'는 의미 정도로 이해하도록 하겠습니다. 연대채무에서는 채무자가 여러 명이다 보니, 그중 한 두어 명 정도는 혹시 갚을 능력이 안 되는 사태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이런 경우 채권자 입장에서는 이게 어떻게 되는 것인가 불안할 것입니다. 제427조는 그에 대한 답을 주는 조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제1항을 보겠습니다. 연대채무자 중에 상환을 할 수 없는 사람이 있는 경우, 해당 채무자의 부담부분은 다른 채무자들이 스스로의 부담부분에 비례해서 분담한다는 뜻입니다(제1항 본문).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철수, 영희, 민수 3명은 나부자에 대해 9억원의 연대채무를 지고 있었습니다. 각자의 부담부분은 균등(1:1:1)하다고 가정하겠습니다. 이 상황에서 철수가 나부자에게 9억원을 모두 변제하였습니다.


원래대로라면 철수는 영희와 민수에게 각각 3억원씩을 구상하면 됩니다. 그런데 민수의 사업이 갑자기 잘 안 되어, 민수는 땡전 한 푼 없는 빈털터리가 되고 말았다고 합시다. 그러면 제427조제1항 본문에 따라, 민수의 부담부분은 철수(구상권자)와 영희(다른 자력이 있는 채무자)가 자신들의 부담부분에 비례하여 분담하게 됩니다. 즉, 민수가 원래 내야 할 3억원을 철수와 영희가 1:1로 책임져야 하는 것입니다. 결국 최종적으로 철수와 영희 각각 4억 5천만원씩을 부담하게 되고, 그 결과 철수는 영희에게 4억 5천만원을 구상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제1항 단서는 무슨 말일까요? 위의 사례에서, 철수가 9억원을 갚기는 했는데 그 후 영희와 민수에게 구상하지 않고 차일피일 미루었다고 합시다. 원래 민수는 갚을 돈이 있었는데, 구상이 늦어지는 사이 민수의 집에 갑자기 벼락이 떨어져서 전 재산이 불타 버리고 말았습니다. 결국 민수가 돈을 갚지 못하게 된 데에는 구상권자인 철수의 과실도 있다고 볼 것입니다. 즉, 이와 같은 경우에는 철수가 영희에게 "야, 우리가 무자력이 된 민수의 것까지 나눠서 부담하자." 이렇게 주장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민수는 어차피 무자력이니까 돈을 달라고 할 수 없고, 영희에게는 원래 처음부터 영희가 부담하기로 했던 3억원만 구상할 수 있습니다(4억 5천만원을 구상할 수는 없음).


제1항과 같은 규정을 두는 이유는 뭘까요? 일단, 누군가가 재정적으로 궁핍하게 되어 무자력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은 언제나 있습니다. 하지만 연대채무라는 제도를 둔 이상, 1명이 무자력이 된다고 해서 채무를 모두 없던 것으로 해줄 수는 없는 노릇이지요. 왜냐, 채권자의 이익도 보호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무자력해진 사람 외에 다른 채무자가 모두 변제를 했는데, 그 사람이 부담을 모두 떠안는 것도 불공평합니다. 그래서 제1항에서는 무자력으로 인해 발생한 문제를 다른 채무자들이 공평하게 나누어지도록 하여, 먼저 변제한 사람을 보호하고 있는 것입니다(김용덕, 2020).




제2항을 보겠습니다. 여기서는 새로운 개념이 하나 등장하는데요, 바로  '연대의 면제'입니다. 조심해야 할 것이, 여기서 말하는 연대의 면제란 우리가 앞에서 공부한 '채무의 면제'(제419조)와는 구별할 필요가 있다는 점입니다. 제419조에서 공부한 채무면제는 다른 채무자에 대해서는 부담부분에 한하여 절대효(제한적 절대효)를 갖고 있었습니다. 철수, 영희, 민수가 진 9억원의 연대채무가 있는데, 나부자가 철수에게 9억원의 채무를 면제한다면 일단 철수는 아무것도 갚지 않아도 되고, 영희와 민수는 철수의 부담부분(3억원)의 한도에서 채무를 면하게 되어 총 6억원의 채무가 남게 됩니다. 영희와 민수가 1:1로 부담한다면 각각 3억원씩을 부담하면 됩니다. 이것이 '연대채무'의 면제입니다.


반면, '연대'의 면제는 채무자 간의 결합 그 자체를 끊어 버리는 것을 뜻합니다. 즉, 연대하여 이행하는 의무를 면제하되, 채무 전부에 대한 의무를 면하게 해 주고 대신 그 부담부분에만 한정해서 이행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위 사례에서 철수에게 '연대의 면제'를 해주는 경우, 철수는 이제 연대채무가 아니라 분할채무 3억원만을 지게 됩니다. 그래도 3억원을 갚긴 갚아야 합니다. 위의 채무면제 사례에서는 철수의 채무 전액이 없어지게 되는 것과는 구별되는 부분입니다. 철수에게만 연대의 면제가 이루어졌기 때문에, 철수는 연대의 공동체에서 빠져나가게 되고 영희와 민수만 남게 됩니다. 영희와 민수는 여전히 나부자에 대해서 9억원의 연대채무를 부담하면 됩니다.


만약 나부자가 철수, 민수, 영희 3명 각각에게 다 연대의 면제를 해주면 어떻게 될까요? 그런 경우에는 연대채무 자체가 와해되어 버리기 때문에, 각 채무자는 분할채무를 지게 되고 연대채무는 없는 것이 됩니다. 이처럼 모든 채무자에 대해 연대의 면제를 하는 것을 '절대적 연대 면제'로, 연대채무자 중 일부에 대해서만 연대 면제를 하는 것을 '상대적 연대 면제'로 교과서에서 표현하기도 합니다.


제2항의 의미는 뭘까요? 위의 사례를 다시 봅시다. 철수, 영희, 민수 3명이 나부자에게 9억원의 연대채무를 지고 있는데, 민수가 상환이 어려운 상황이라고 합시다. 철수가 9억원을 먼저 나부자에게 변제하였습니다. 이때 상환할 자력이 없는 채무자(민수)의 부담부분을 분담할 다른 채무자 중 영희가 나부자로부터 연대의 면제를 받았습니다. 제2항에 따르면, 이런 경우 (원래대로라면) 영희가 추가로 분담하여야 할 부분 1억 5천만원은 채권자(나부자)가 책임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즉, 철수는 무자력인 민수는 놔두고, 영희에게는 처음 부담부분대로 3억원, 나부자에게 1억 5천만원을 구상하면 되는 것입니다.

*영희는 그래도 연대의 면제를 받았는데 철수가 구상하는 것이 타당한 것이냐, 이런 의문이 드실 수도 있긴 합니다. 하지만 이와 같은 상대적 연대 면제의 경우 채권자의 일방적인 의사표시에 의한 것이므로 채무자 사이의 내부관계에는 영향을 미칠 수 없다고 보아야 합니다(김대정·최창렬, 2020). 그래서 철수가 돈을 대신 갚았으니, 영희도 당연히 그에 따라 이익을 본 만큼 철수에게 돌려주어야 한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것입니다.


그런데 왜 제2항 같은 규정을 두고 있는 걸까요? 이는 연대의 면제를 받은 채무자가 다른 채무자들과의 관계에서도 원래의 부담부분 이상을 추가로 부담하지 않도록 배려하기 위한 것입니다. 위의 사례에서도 알 수 있듯이 연대의 면제를 받은 영희는 처음의 부담부분만큼만 책임을 지면 됩니다. 다만, 이와 같은 제427조제2항에 대해서는 학자들의 비판도 많습니다. 채권자가 연대 면제를 해준 것은 자신이 해당 채무자로부터 부담부분 이상으로는 받지 않겠다고 한 것이지, 채무자들의 내부관계까지 개입해서 영희의 구상의무까지 나부자가 책임지겠다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김대정·최창렬, 2020: 821면). 제2항을 삭제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고 그렇습니다만 자세한 내용은 교과서를 참조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오늘은 상환무자력자가 있는 경우의 구상 관계에 대해서 살펴보았습니다. 참고로, 나중에 공부하게 될 변제자대위권(제481조)이라는 것이 있는데, 얼핏 보기에 지금까지 공부한 구상권과 비슷해 보이기는 합니다. 하지만, 우리 판례는 구상권과 변제자대위권을 구별하고 있으므로(대법원 2015. 11. 12. 선고 2013다214970 판결), 양자의 차이점은 해당 파트에서 자세히 살펴보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제481조(변제자의 법정대위) 변제할 정당한 이익이 있는 자는 변제로 당연히 채권자를 대위한다.


드디어 연대채무에 관한 내용이 완료되었습니다. 내일부터는 보증채무에 관하여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참고문헌

김대정·최창렬, 「채권총론」(전자책), 박영사, 2020, 820-821면.

김용덕 편집대표, 「주석민법 채권총칙2(제5판)」, 한국사법행정학회, 2020, 889면(제철웅).


[심화학습] 부진정연대채무


우리 민법에는 '연대채무' 다음에 바로 보증채무에 대한 규정을 두고 있습니다만, 모든 시중의 교과서에서는 추가로 '부진정연대채무'라는 것을 서술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희도 다루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사실 안 다루기에는 워낙 중요한 부분이기도 하고요. 결국 민법에 명확한 언급은 1도 없는 개념이지만, 학설과 판례에 의하여 인정되어 온 것이 부진정연대채무인 것입니다.


먼저 단어를 살펴볼까요? '부진정' 연대채무입니다. 연대채무는 연대채무인데, '부진정'(不眞正)하다는 겁니다. 한자를 보시면 알겠지만 대충 직역하면 "완전 진짜는 아닌"이란 건데요, 진짜 연대채무는 아닌 특이한 연대채무(?)의 일종 정도인 겁니다. 이 지점에서 약간 감이 오실 텐데, 부진정연대채무는 '연대채무'라는 이름을 달고 있는 만큼 연대채무와 공통점이 있지만, 또 '부진정'이라는 이름을 달고 있는 만큼 연대채무와 다른 점도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인지 지금부터 살펴봅시다.


학설은 "주관적 공동관계 없이 동일한 내용의 급부에 관하여 서로 별개의 원인으로 발생한 독립한 채무이지만, 수인의 채무자 각자가 채무 전부를 이행할 의무가 있고, 1인 또는 수인의 이행이 있으면 다른 자의 채무도 소멸하게 되는 다수당사자 채권관계"라고 부진정연대채무를 정의합니다(박동진, 2020). 이러한 개념 정의를 바탕으로 부진정연대채무의 특성(연대채무와의 비교)을 다음과 같이 도출할 수 있습니다.


1. 여러 명의 채무자가 있고, 각 채무자는 채권자에 대해 독립하여 급부의 전부를 부담할 의무가 있습니다.

이것은 연대채무와의 공통점입니다. 예를 들어 철수, 영희가 나부자에 대해 1억원의 부진정연대채무를 지고 있다면, 철수와 영희는 각각 나부자에게 1억원을 지급할 의무가 있는 것입니다.


2. 채무자 간에는 주관적 공동관계가 없습니다.

이것은 연대채무와의 가장 큰 차이점입니다. 연대채무를 공부할 때, 우리의 통설은 연대채무자 간의 결합관계를 '주관적 공동관계설'로 설명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즉 급부(채권의 목적)를 이행한다는 공동의 목적이 존재하고,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여러 채무자들이 힘을 합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결합이 존재하기 때문에, 연대채무에서는 소위 '절대효'라든가 '구상권' 같은 것이 인정되어 왔습니다. 서로 관련되어 있고, 당사자들도 그것을 잘 알고 있으니까요.


그런데 부진정연대채무는 그렇지 않습니다. 부진정연대채무의 가장 대표적인 예로 등장하는 것이 바로 불법행위입니다. 예를 들어 철수와 영희가 나쁜 마음을 먹고, 같은 동네의 김가난을 별 이유도 없이 폭행해서 전치 12주의 중상을 입혔다고 해봅시다. 이러한 경우 (상해죄 등 형사처벌은 다른 논의로 하고) 철수와 영희는 당연히 김가난에게 손해배상책임을 져야 합니다. 그런데 이 손해배상채무가 철수와 영희의 연대채무일까요?


연대채무로는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철수와 영희는 딱히 "야, 나중에 김가난한테 물어줄 값은 우리 둘이 연대채무로 해서 갚기로 하자. 부담부분은 더 많이 패는 쪽이 더 내는 거다." 이렇게 합의하고 팬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냥 팬 거죠. 연대의 합의가 있었던 것이 아닌 겁니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도 철수와 영희를 세트로 묶어서 김가난에게 돈을 갚도록 할 필요가 있으며, 이처럼 연대채무의 개념만으로는 해결하기 힘든 상황들을 처리하기 위해 '부진정연대채무'의 개념이 등장하게 된 것입니다.


따라서 부진정연대채무의 법리에 따라 김가난은 철수와 영희 아무에게나 손해배상액 전부를 청구할 수 있으며, 1명의 채무자는 일단 돈 전부를 갚아야 합니다. 김가난은 철수와 영희 누구든 돈을 받아낼 수 있기 때문에 분할채무에서보다 더 유리한 입장에 서게 됩니다.


3. 채권자는 여러 채무자 중 1명에게 채무 전부의 이행을 청구할 수 있으며, 채무자 전부에게 동시(순차)적으로 채무 이행을 청구할 수 있습니다.

연대채무와 비슷한 부분입니다. 부진정연대채무에는 연대채무에 관한 제414조가 유추적용된다고 봅니다(김준호, 2017). 이렇게 해야 채권자가 채권을 실효성 있게 행사할 수 있겠지요.

제414조(각 연대채무자에 대한 이행청구) 채권자는 어느 연대채무자에 대하여 또는 동시나 순차로 모든 연대채무자에 대하여 채무의 전부나 일부의 이행을 청구할 수 있다.


4. 급부의 실현을 가져오는 사유는 1명의 채무자에게 발생하더라도 절대효가 있습니다.

이것도 연대채무와의 공통점입니다. 급부의 실현을 가져오는 사유라고 하면 대표적으로 변제, 대물변제, 공탁, 상계 등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위의 사례에서 철수와 영희가 김가난에게 입힌 피해액이 총 1억원이라고 한다면, 철수가 김가난에게 1억원을 변제함으로써 영희의 채무 1억원도 소멸하게 됩니다. 김가난 입장에서야 철수와 영희 간의 분담은 알 바 아니고, 1억원을 무사히 받았으니까 큰 불만은 없습니다. 대물변제, 공탁, 상계도 마찬가지입니다.

*다만, 부진정연대채무에서 상계의 절대효를 인정하여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학설의 논란이 좀 있습니다. 현재 판례는 절대효를 인정하고 있는데요, 자세한 학설의 다툼은 참고문헌을 참조하시기 바랍니다(김대정·최창렬, 2020).


5. 제416조부터 제422조까지의 조문이 적용되지 않습니다.

이것은 연대채무와의 큰 차이점입니다. 부진정연대채무에는 제416조부터 제422조가 적용이 안됩니다. 왜 안 될까요? 이것까지 된다고 하면 일단 연대채무랑 별반 차이도 없지요. 그리고 주관적 공동관계가 없는 사람들끼리 채무를 지는 것이 부진정연대채무인데, 서로 긴밀하게 결합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제416조~제422조에서 정하는 절대효를 넓게 인정해 줄 필요가 없습니다.


따라서 이행청구(제416조), 경개(제417조), 상계(제418조제2항) , 면제(제419조), 혼동(제420조), 소멸시효(제421조), 채권자지체(제422조)는 부진정연대채무에는 적용되지 않으며,  그 결과 이러한 사유는 1명의 채무자에게 발생하여도 오로지 상대효만을 가질 뿐입니다. 다만, 여기서 상계는 앞에서 절대효를 갖는다고 했는데요, 그래서 예외적으로 제418조제1항은 적용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제418조제2항은 적용되지 않으므로, 부진정연대채무에서 상계할 채권이 있는 채무자가 상계를 안 하고 있다고 하여 다른 채무자가 상계를 할 수는 없다고 보아야 합니다(김대정·최창렬, 2020: 829면).


예를 들어 위의 사례에서 피해자인 김가난(손해배상청구권의 채권자)이 영희에게 진심 어린 사과를 받고, 영희에게 채무의 면제를 해주었다고 하여도 이는 오로지 상대효만을 가지는 것입니다. 따라서 철수는 여전히 김가난에게 1억원을 갚아야 합니다(제419조 미적용). 마찬가지로 김가난이 영희에게만 이행청구를 한 경우에는, 철수에게는 시효중단의 효과가 발생하지는 않게 됩니다(제416조 미적용).


6. 연대채무에서와 같은 부담부분이나 구상권이 인정되지 않지만, 특수한 형태로 구상권 비스무리한 것(?)이 인정될 수 있습니다.

이게 도대체 무슨 소리인지 의아하실 겁니다. 저도 처음 부진정연대채무를 공부할 때 당혹스러웠습니다. 그래서 구상권이 있다는 건지, 없다는 건지. 여기서는, 그냥 달달 외우지 마시고 부진정연대채무의 개념을 이해하는 것에서 출발하여야 합니다.


먼저, 부진정연대채무는 앞서 말씀드린 바와 같이 채무자들 사이에 주관적 공동관계가 없으며, 그에 따라 부담부분도 없습니다. 연대를 당사자들이 합의해서 결성한 것이 아니니까, 부담부분도 사전에 정해지기는 어렵습니다. 부담부분이 정해져 있지 않기 때문에 이론적으로는 구상관계도 존재하지 않게 됩니다. "연대채무에서와 같은 부담부분이나 구상권이 인정되지 않는다"라는 것은 이런 의미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대채무와는 다른 형태의 부담부분이나 구상권"은 인정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부진정연대채무에서는 연대의 합의에 의한 주관적 공동관계는 없지만, 적어도 단일한 급부의 실현을 목적으로 하는 객관적 공동관계는 있다고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김대정·최창렬, 2020: 830면). 즉, 연대채무에서처럼 연대의 합의에 의해 발생하는 구상권은 인정될 수 없지만, 특수한 내부적인 법률관계가 있거나 혹은 형평의 원칙에 비추어서 구상관계를 인정할 필요가 있다고 여겨지는 경우에는 부진정연대채무에서도 구상권이 인정될 수 있을 것입니다(박동진, 2020: 430면).


판례도 "부진정연대채무의 관계에 있는 복수의 책임주체 내부관계에 있어서는 형평의 원칙상 일정한 부담 부분이 있을 수 있으며, 그 부담 부분은 각자의 고의 및 과실의 정도에 따라 정하여지는 것으로서 부진정연대채무자 중 1인이 자기의 부담 부분 이상을 변제하여 공동의 면책을 얻게 하였을 때에는 다른 부진정연대채무자에게 그 부담 부분의 비율에 따라 구상권을 행사할 수 있다."라고 하여 같은 입장입니다(대법원 2006. 1. 27. 선고 2005다19378 판결).


"결국 이거나 저거나 먼저 갚은 사람은 구상권 행사하면 되는 거 아니에요? 연대채무랑 딱히 다를 것도 없네."

이렇게 생각하실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구상권이 인정되는 근거가 다른 만큼 그 내용도 동일하지는 않습니다. 예를 들어 부담부분에 관한 제424조나 구상권에 관한 제425조·제426조 같은 조문은 원칙적으로 부진정연대채무에는 적용되지 않는다고 할 것입니다. 예를 들어 제426조에서 정하고 있는 채무자 간의 사전통지, 사후통지 같은 규정은 부진정연대채무자에게는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판례도 "부진정연대채무라고 할 공동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채무에 있어서는 그 변제에 관해서 채무자 상호간에 통지의무관계를 인정할 수 없고 변제로 인한 공동면책이 있는 경우에 있어서는 채무자 상호간에 어떤 대내적인 특별관계에서 또는 형평의 관점에서 손해를 분담하는 관계가 있는데 불과하므로 진정연대채무에 있어서 변제에 관하여 채무자 상호간에 통지의무를 인정하고 있는 민법 제426조의 규정을 유추적용할 수는 없다."라고 하여 같은 입장입니다(대법원 1976. 7. 13. 선고 74다746 판결).




자, 여기서 기본적인 부분으로 돌아가 봅시다. 도대체 이런 부진정연대채무는 왜 학설과 판례가 인정하고 있는 걸까요? 민법에 딱히 규정되어 있지도 않은 개념을 말이지요. 학자들이 바보는 아닌 만큼, 분명히 이유는 있을 것입니다.


부진정연대채무를 인정할 실익이 있는지에 대해서 학설의 논의가 좀 있습니다만, 대체로 논의되는 것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먼저, 우리가 공부했던 연대채무를 돌이켜 보면 상당히 절대효가 인정되는 사유가 많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는 바꿔 말하면 채권자의 입장에서는 채권의 담보력이 약해지는 문제가 있다고 할 수 있지요. 따라서 연대채무에 개념적으로는 포함되지 않지만, 실질적·경제적으로는 하나의 급부에 대해 여러 명이 채무를 부담하는 경우를 규율할 때 '부진정연대채무'라는 개념을 고안해 낸 것입니다(송덕수, 2022). 부진정연대채무는 그 특성상 연대채무보다 절대효가 인정되는 범위가 훨씬 좁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부진정연대채무를 도대체 왜 인정해야 하느냐, 하면서 부정적으로 보는 견해도 존재합니다. 불가분채무의 개념을 활용하면 된다거나, 연대채무의 규정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정도의 소극적인 의미에 불과한 개념을 굳이 사용할 필요가 없다는 등의 논거인데요, 자세한 내용은 참고문헌을 확인하시기 바랍니다(김용덕, 2020). 여기서는 부진정연대채무가 탄생한 의의에 대해서 대략 이해하고 넘어가시면 충분합니다.


지금까지 부진정연대채무의 특성을 살펴보았는데요, 그동안 공부한 연대채무와 다른 듯 또 비슷한 측면이 있어 그 차이점을 잘 비교해 보시면 좋을 것입니다. 특히 위의 특성을 보시면 알겠지만 부진정연대채무는 주로 동일한 사실관계에 기인하여 발생한 손해를, 여러 사람이 각자의 입장에서 전보해 줄 의무를 부담하는 경우에 주로 발생합니다(박동진, 2020; 김용덕, 2020:720면). 대체로 (나중에 공부할) 불법행위와 관련하여 주로 부진정연대채무가 등장하는 이유도 그것입니다.

*다만, 부진정연대채무의 경우 법률의 규정에 의해서 발생하는 것이 대부분이지만, 당사자의 계약에 의해서 발생하는 것도 불가능하지는 않다고 합니다(송덕수, 2022; 김용덕, 2020:720면).


추후 부진정연대채무의 개념은 중요하게 다루어질 것이므로, 기본적인 개념을 숙지하시기를 추천드립니다.


*참고문헌

김대정·최창렬, 「채권총론」(전자책), 박영사, 2020, 828-829면.

김용덕 편집대표, 「주석민법 채권총칙2(제5판)」, 한국사법행정학회, 2020, 716-717면(제철웅).

김준호, 「민법강의(제23판)」, 법문사, 2017, 1289면.

박동진, 「계약법강의(제2판)」, 법문사, 2020, 423면.

송덕수, 「신민법강의(제15판)」(전자책), 박영사, 2022, 919-9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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