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41조(수탁보증인의 구상권) ①주채무자의 부탁으로 보증인이 된 자가 과실없이 변제 기타의 출재로 주채무를 소멸하게 한 때에는 주채무자에 대하여 구상권이 있다.
②제425조제2항의 규정은 전항의 경우에 준용한다.
오늘부터는 구상권에 대해 알아봅니다. 우리가 앞서 연대채무를 공부할 때 중요하게 다루었던 개념이지요. 보증인이 보증채무를 이행하게 되면, 주채무자 입장에서는 자신의 채무가 없어지게 되는 것이니까 보증인은 주채무자에게 구상권을 가지게 될 것입니다.
우리의 판례 역시 "보증인이 채권자와의 보증계약에 바탕하여 보증채무를 이행하는 것은 실질적으로는 타인(주채무자)의 채무를 변제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므로 보증인은 주채무자에 대하여 자기의 출연의 반환을 구하는 권리로서의 구상권을 갖게 되는 것이며 이밖에도 민법 제482조 제1항에 따라 위에서 본 변제로 인하여 소멸된 채권자의 주채무자에 대한 채권이나 보증인(연대보증인)에 대한 보증채권(연대보증채권)을 변제자가 취득한 구상권의 범위내에서 행사할 수가 있는 것이다(변제자대위의 제도)."라고 하여 같은 입장입니다(대법원 1990. 3. 27. 선고 89다카19337 판결).
본격적으로 들어가기 전에 하나 짚고 가겠습니다. 제441조에서는 낯선 표현이 나옵니다. '수탁보증인'이라는 건데요. 수탁(受託)이란 받을 수, 부탁할 탁의 한자를 씁니다. 간단히 말하자면, '부탁을 받은 보증인'이라는 뜻입니다. 간단한 의미인데 또 한자어로 쓰니까 좀 생소해 보이긴 하지요. 어쨌거나 어떤 부탁이냐 하면, 주채무자의 부탁으로 보증인이 된 사람을 말합니다. 바꿔 말하면 보증인 중에 주채무자의 부탁을 받지 않고 다른 경로로 보증인이 된 사람은 제441조가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을 뜻합니다. 현실적으로는 아마 대부분 주채무자의 부탁을 받고 보증인이 되는 경우가 많겠지만, 그렇지 않은 사례도 얼마든지 있을 수 있기 때문에 일단 구별할 필요가 있습니다.
제441조제1항은 ①수탁보증인이 ②별다른 과실 없이 ③출재를 하여 주채무를 소멸하게 한 경우, 주채무자에게 구상권을 갖게 된다고 정합니다. 그리고 그 구상권의 범위에 있어서는 연대채무자에 관한 제425조제2항을 준용하므로, 면책된 날 이후의 법정이자, 피할 수 없는 비용, 그 밖에 손해배상을 포함하게 됩니다.
제425조(출재채무자의 구상권) ①어느 연대채무자가 변제 기타 자기의 출재로 공동면책이 된 때에는 다른 연대채무자의 부담부분에 대하여 구상권을 행사할 수 있다.
②전항의 구상권은 면책된 날 이후의 법정이자 및 피할 수 없는 비용 기타 손해배상을 포함한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궁금한 것은 이겁니다. 왜 민법에서는 부탁을 받은 보증인과 그렇지 않은 사람을 나누어 보고 있는 걸까요? 의미가 있는 걸까요? 그 이유는 부탁을 받았는지 아닌지에 따라 주채무자와 보증인 간의 법률관계가 다르게 해석되기 때문입니다. 사실 이 부분을 명확히 이해하려면 나중에 공부할 위임과 사무관리에 대해 알고 있어야 하는데, 여기서는 간단하게만 언급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부탁을 받은 보증인(수탁보증인)의 경우 위임관계로 해석되어, 원칙적으로 위임계약에 관한 규정이 적용됩니다. 위임이란, 사무처리를 위탁하고 상대방이 승낙하는 계약입니다(제680조). 현실에서 주로 찾아볼 수 있는 위임은 대표적으로 변호사에게 소송을 맡긴다거나, 의사에게 진료를 의뢰한다거나 하는 것 등이 있습니다. 원칙적으로 위임계약은 무상계약이지만, 현실에서는 돈을 받고 하는 경우가 많기는 합니다.
우리가 총칙에서 '대리' 파트를 공부할 때 잠깐 살펴보았는데, 대리와 위임은 타인을 위한 행위라는 점에서 비슷해 보이지만 법적인 성질은 다르므로 구별하여야 합니다. 위임은 채권관계에 따른 계약이고, 수권행위는 (학설의 논란은 다소 있지만) 상대방 있는 단독행위입니다. 위임은 대리의 기초적 법률관계가 될 수는 있어 서로 밀접히 관련되기도 합니다만, 위임 그 자체만으로 대리권이 반드시 수여된다고 보기는 어려우므로 '위임'과 '대리'의 개념은 확실히 구분하여야 합니다. 자세한 내용은 총칙에서의 대리 파트를 참조하시길 바랍니다.
제680조(위임의 의의) 위임은 당사자 일방이 상대방에 대하여 사무의 처리를 위탁하고 상대방이 이를 승낙함으로써 그 효력이 생긴다.
참고로, 이렇게 보면 왜 제441조에서 굳이 '과실이 없을 것'을 요건으로 요구하고 있는지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위임에서는 수임인(위임의 상대방)이 선량한 관리자로서 주의를 기울일 의무를 부과하고 있는데요, 수탁보증인도 수임인이라고 한다면 역시 선관주의의무를 부담한다고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채권자에게 문제가 있어서 주채무를 안 갚아도 되는 상황인데, 보증인이 그런 면책을 주장하지 않고 빚부터 갚아버린 경우라면 주채무자 입장에서는 어이가 없을 것입니다. 이런 경우에는 과실이 있으므로 수탁보증인이 구상권을 행사할 수 없다고 보아야겠지요(김대정·최창렬, 2020).
제681조(수임인의 선관의무) 수임인은 위임의 본지에 따라 선량한 관리자의 주의로써 위임사무를 처리하여야 한다.
수탁보증인은 주채무자에게 부탁을 받았고, 그것을 승낙하였으므로 그 모양새는 바로 위임이라고 할 수 있고, 이에 학자들은 주채무자와 수탁보증인 간의 관계를 위임 관계로 해석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수탁보증인의 구상권도 위임에서의 비용상환에 준해서 처리하게 됩니다(제687조 및 제688조). 다만, 제441조 등 수탁보증인의 구상권에 대한 규정이 이에 대한 특별규정이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제687조(수임인의 비용선급청구권) 위임사무의 처리에 비용을 요하는 때에는 위임인은 수임인의 청구에 의하여 이를 선급하여야 한다.
제688조(수임인의 비용상환청구권 등) ①수임인이 위임사무의 처리에 관하여 필요비를 지출한 때에는 위임인에 대하여 지출한 날 이후의 이자를 청구할 수 있다.
②수임인이 위임사무의 처리에 필요한 채무를 부담한 때에는 위임인에게 자기에 갈음하여 이를 변제하게 할 수 있고 그 채무가 변제기에 있지 아니한 때에는 상당한 담보를 제공하게 할 수 있다.
③수임인이 위임사무의 처리를 위하여 과실없이 손해를 받은 때에는 위임인에 대하여 그 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
반면, 부탁을 받지 않은 보증인은 어떨까요? 이 경우 주채무자와 보증인 간의 관계는 사무관리로 해석됩니다. 사무관리란, 계약이나 법률의 규정에 따른 의무가 없는데도 불구하고 다른 사람을 위하여 사무를 수행하는 것을 말합니다. 예를 들어 철수가 휴가를 간 사이 폭우가 쏟아져 철수네 집 지붕이 거의 무너지려고 했고, 이것을 본 이웃의 영희가 철수네 지붕을 수리해 준 것을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영희는 철수네 지붕을 고쳐 줄 어떤 의무도 없지만, 선의로 그것을 해준 것입니다. 우리 민법에서는 요건을 갖추면 이런 경우에도 채권채무관계가 발생하는 것으로 보는데, 이것이 사무관리입니다.
부탁을 받지 않은 보증인의 경우, 구상권도 사무관리에서의 비용상환청구권(제739조)에 준해서 처리하게 됩니다. 다만, 나중에 공부할 제444조 등 부탁을 받지 않은 보증인에 대한 규정이 이에 대한 특별규정이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제739조(관리자의 비용상환청구권) ①관리자가 본인을 위하여 필요비 또는 유익비를 지출한 때에는 본인에 대하여 그 상환을 청구할 수 있다.
②관리자가 본인을 위하여 필요 또는 유익한 채무를 부담한 때에는 제688조제2항의 규정을 준용한다.
③관리자가 본인의 의사에 반하여 관리한 때에는 본인의 현존이익의 한도에서 전2항의 규정을 준용한다.
종합하자면, 수탁보증인과 부탁받지 않은 보증인은 다르게 취급되며, 앞으로 배울 민법의 규정들도 그런 전제 하에 마련된 것입니다. 여기서 위임이나 사무관리를 꼼꼼하게 다 이해하시는 것은 좀 부담스러울 수 있으므로, 일단 간단한 개념 정도한 이해하시고, 나머지는 다른 규정들을 보면서 다시 복습해 보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오늘은 수탁보증인의 구상권에 대해 알아보았습니다. 내일은 수탁보증인의 '사전' 구상권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참고문헌
김대정·최창렬, 「채권총론」(전자책), 박영사, 2020, 887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