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63조(변제로서의 타인의 물건의 인도) 채무의 변제로 타인의 물건을 인도한 채무자는 다시 유효한 변제를 하지 아니하면 그 물건의 반환을 청구하지 못한다.
제463조는 채무자가 남의 물건으로 변제를 시도(?)하는 경우, 다시 유효한 변제를 하지 않으면 줬던 물건을 되돌려 달라고 (채권자에게) 말할 수 없다고 규정합니다. 여기서 '다시 유효한 변제'라고 표현을 하고 있는데, 바꿔 말하면 처음에 줬던 것은 유효한 변제가 아니라는 뜻으로 해석됩니다. 즉, 남의 물건을 건네주어도 그것은 유효한 변제가 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애초부터 자기 물건이 아니었기 때문에 채무자에게는 그 물건에 대한 처분권한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왜 이런 규정을 두고 있는 걸까요?
예를 들어 철수가 나부자에게 맥주 10박스를 납품하여야 하는 채무가 있다고 합시다. 그런데 철수는 이웃집 영희의 맥주 10박스를 훔쳐서 나부자에게 인도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철수는 남의 물건으로 변제를 시도한 것이므로 유효한 변제의 효력이 발생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여전히 나부자의 (철수에 대한) 채권은 살아 있습니다.
만약 제463조와 같은 규정이 없다면, 나부자는 원칙적으로 자신의 채권과 상관없는 물건(맥주 10박스)을 보유하고 있는 것이므로 이것을 채무자(철수)에게 돌려주어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이렇게 되면, 특히 나부자가 철수에게 이미 맥주값을 지불한 상황이라면 나부자는 제대로 된 맥주를 받지도 못한 상황에서 철수에게 맥주까지 돌려줘야 하는 결과가 되어 버립니다. 철수는 여전히 맥주값을 받아간 상태인데 말이죠. 그래서 우리 민법에서는 이러한 상황에서 채권자가 유효한 변제를 확보할 수 있도록 "채무자의 유효한 변제가 있기 전까지 물건을 채무자에게 안 돌려줘도 된다"라는 규정을 두고 있는 것입니다(김준호, 2017).
그런데 이 규정에서는 주의해야 할 것이 2가지 있습니다.
첫째, 제463조는 종류물(불특정물)에 대해서만 적용된다는 점입니다. 왜냐하면 특정물의 경우 "다시 유효한 변제"를 한다는 것이 개념상 있을 수가 없습니다. 특정물은 애초에 당사자의 의사표시로 대체가 되지 않는 물건을 말하는 것이니까요. 특정물인도채무를 지는 채무자라면 일단 모든 합법적인 수단을 동원해서 특정물에 대한 권리를 취득해서 특정물을 인도하는 것이 맞고(제569조), 만약 여기에 실패한다면 나중에 공부할 담보책임을 지게 되므로(제570조 등), 어쨌거나 제463조를 적용할 필요는 없습니다. 이 부분은 추후 담보책임 파트에서 상세히 살펴볼 것입니다.
*다만, 금전채무의 경우 엄밀히는 종류채무의 한 종류라고 할 수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463조가 적용되지는 않는다고 봅니다. 일반적인 종류채권과 금전채권은 다르고, 민법에서도 서로 구별하여 규정(제375조 및 제376조 등)하고 있어 제463조나 제465조가 유추적용되지는 않는다는 것이지요(김용덕, 2020).
둘째, 제463조는 어디까지나 채권자와 채무자 사이에서 적용되는 것이고, 채권자와 (원래의) 물건 소유자 사이에 적용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즉, 위의 사례에서 맥주 10박스의 진정한 소유자인 영희가 나부자를 찾아와 자기 물건을 돌려달라고 하면 나부자는 돌려주어야 합니다. 제463조는 "채무자에 대하여" 반환을 거절할 수 있다고 한 것이지, "원래의 소유자"에 대하여 거절할 수 있다고 규정한 것은 아니니까요. 무엇보다 영희는 맥주 10박스의 진정한 소유자로서 소유권에 기한 반환청구권이 있습니다(제213조).
제213조(소유물반환청구권) 소유자는 그 소유에 속한 물건을 점유한 자에 대하여 반환을 청구할 수 있다. 그러나 점유자가 그 물건을 점유할 권리가 있는 때에는 반환을 거부할 수 있다.
셋째, 우리가 예전에 공부한 '선의취득'이 성립하는 등 채권자가 소유권을 아예 적법하게 취득하는 경우에는 채권자가 적법한 소유자가 되는 것이므로(제249조 파트 참조), 채무자뿐만 아니라 원래의 소유자에게도 물건을 반환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것은 제463조가 적용되어서가 아니라 선의취득 같은 다른 조문이 적용된 결과이므로, 자연스러운 결론이라고 하겠습니다.
제249조(선의취득) 평온, 공연하게 동산을 양수한 자가 선의이며 과실없이 그 동산을 점유한 경우에는 양도인이 정당한 소유자가 아닌 때에도 즉시 그 동산의 소유권을 취득한다.
[복습용] 선의취득의 요건
1. 무권리자인 양도인이 점유하고 있던 물건을 양도하고,
2. 그 물건은 (금전을 제외한) 선의취득이 가능한 동산이며,
3. 거래행위가 유효하고,
4. 양수인이 평온, 공연, 선의, 무과실로 점유를 취득하면 선의취득이 인정된다.
오늘은 다른 사람의 물건으로 변제행위를 하는 경우에 대해 알아보았습니다. 내일은 양도능력이 없는 소유자의 물건 인도에 대하여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참고문헌
김용덕 편집대표, 「주석민법 채권총칙4(제5판)」, 한국사법행정학회, 2020, 44면(정준영).
김준호, 「민법강의(제23판)」, 법문사, 2017, 1201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