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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해뜻 Mar 15. 2021

내게 어울리는 색은 무슨 색일까?

퍼스널컬러 진단을 받아보았다




    올해 버킷리스트 중 하나에 '퍼스널컬러 진단'이 있었다. 여기서 퍼스널 컬러란, '개인이 가진 신체의 색과 어울리는 색'을 의미한다. 즉 퍼스널컬러 진단은, 내 고유의 색과 잘 어우러져 얼굴에 생기가 돌게끔 하고 이미지 연출에도 효과적인 색 계열을 전문가로부터 진단받는 것을 말한다.


    솔직히 몰라도 사는 데 지장이야 없겠지만, 사람 마음이라는 게 중요한 날에는 이왕이면 잘 어울리는 색을 쓰고 싶지 않은가. 평소 눈썰미가 제로에 수렴하는 내게 스스로에게 어울리는 색을 알아차리는 것은 꽤나 힘든 일이었다. '아, 이게 찰떡이네.' 싶은 색이 없으니 괜히 어중간한 것들만 모아 재끼기 바빴다. 그렇게 사놓으면, 묘하게 나랑 어울리지 않아 입지 못하고 나눠준 옷, 쓰지 못하고 방치된 화장품 수는 늘어만 갔다. 그 낭비를 줄이기 위해서라도 퍼스널컬러 진단을 꼭 한 번은 받아보고 싶었다.


    마침 같은 이유로 진단을 받고자 하는 친구들이 있어 엊그제 함께 진단을 받으러 갔다. 진단을 받으려면 화장을 일절 하지 않은 민낯으로 자리에 앉아야 한다. 그 후 상반신에 흰 천을 두르고, 그 위로 색상 천을 한 장씩 대보며 어울리는 색을 찾는다. 나는 먼저 진단을 시작한 친구 앞에서 그 과정을 구경했는데, 처음에는 무슨 차이가 있는지 몰라 갸우뚱하다가, 선생님의 설명을 들으며 감탄사를 남발하기 시작했다. 미세하지만 어떤 색에서는 친구의 얼굴이 화사하게 밝아졌고, 어떤 색에서는 창백하게 질렸고, 어떤 색에서는 거무죽죽하게 죽은 느낌이 들었다. 색을 바꾸면 턱선 윤곽, 입술 주위의 푸른기까지도 조금씩 달라졌다. 와, 퍼스널컬러의 힘이 이런 거구나. 생중계로 그 변화를 지켜보자니 새삼 그 위력이 느껴지는 듯했다.


    내 차례가 되자, 나는 어쩐지 긴장된 얼굴로 자리에 앉았다. 목에 흰 천이 둘러지고, 색색깔의 천들이 하나씩 올라갔다.


    "음, OO님은 우선 웜톤이 아니라 쿨톤이시고…."


    "네? 제가 쿨톤이에요?"


    헐. 앞에 앉아있던 친구의 눈과 내 눈이 동시에 마주쳤다. 함께 온 친구들 모두가 입을 모아 나는 웜톤일 거라고 이야기했었는데, 그리고 나 또한 다른 건 몰라도 나는 웜톤 중 하나에 속할 것이라 몇 년을 믿어왔었는데! 예상치 못한 결과에 당황한 입가가 작게 떨렸다. 얼굴 아래 대보는 색상 천의 개수가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내 진단이 점점 구체화되면 구체화될수록 내 표정은 심각해지기 시작했다.


    이게 OO님 베스트 컬러예요. 하고 선생님이 대주는 색상 천들을 보고 나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내 옷장을 채운 수많은 옷들 중 해당 색에 속한 옷은 거의 없었다. 무슨 말이냐면, 안 어울릴 거라 지레짐작하고 피했던 색상이 내게 가장 어울리는 색이었다는 것이다. 화장품도 마찬가지로, 추천받은 색은 단 한 번도 구매해본 적 없는 색들이었다. 나는 충격받은 얼굴로 계속해서 되물었다.


    제가 팥죽색 립이 잘 받는다고요…?

    보라색 블러셔는 쳐다본 적도 없는데요…?

    탁한 색이 제 베스트라뇨…?


    결과를 전해 들은 친구들도 하나같이 '헐, 대박!'하고 웃기 바빴다. 같이 간 무리 중에 예상과 정반대의 결과가 나온 것은 나 하나뿐이었기 때문이다. 건물을 나서면서도 진단 결과를 쉬이 납득하지 못한 나는, 얼른 근처 화장품 매장에 가 추천받은 립 제품 하나를 결제했다. 발라보면 알겠지. 그리고 내가 그 립을 바르는 순간, 친구들이 하나같이 입을 모았다. 와, OO아. 대박이다!


    친구들의 반응으로 보건대, 진단 결과가 잘못된 것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업체에서 진단해준 게 나의 퍼스널컬러가 맞을 가능성이 점점 높아지면서, 나의 혼란스러움은 더 가중되었다. 여태 어울리지 않은 색을 열심히 바르고 다닌 걸 생각하면 그에 들인 시간과 돈이 아깝기까지 했다. 옷장에 쌓여있는 수많은 옷들은 어떻고. 친구들은 내가 조만간 옷 처분을 위해 크게 벼룩을 열 것이라며 기대가 된다는 말을 남겼다.


    진단을 받은 후로, 단톡방에서는 퍼스널컬러 이야기가 한참 이어졌다. 다음번에 만날 때는 각자 잘 어울리는 색으로 꾸미고 오자고 약속까지 했다. 그들 중 예상치 못한 결과로 가장 당혹스러워했던 나도 이제는 내 진단 결과를 받아들이기로 했다.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이참에 분위기 전환이나 해보겠다며 긍정적으로 마음을 먹었다. 여전히 팥죽색 립이나 보라색 블러셔는 낯설기 그지없지만.


    퍼스널컬러를 정확하게 알기 위해서는 꼭 색상 천을 얼굴에 대보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한다. 사람마다 따라 따뜻한 계열의 색, 차가운 계열의 색을 많이 타는 사람이 있고, 명도를 많이 타는 사람, 채도를 많이 타는 사람 다 다르다고 한다. 예컨대 나는 색의 온도를 조금 타는 편이라 차가운 색 위주로 옷이나 화장품을 골라야 하고, 그중 중간 명도, 저에서 중 채도의 색이 가장 잘 어울리는 색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반면 친구는 색의 온도를 많이 타지 않는 대신에, 명도가 아주 높은 색을 골라야 한다는 진단을 받았다. 색상 천을 대보는 것은 이를 하나씩 알아가기 위한 과정이라고 보면 된다.


    나는 이 진단 과정을 통해 한 가지 깨달음을 얻었다. 결국 무엇이든지 지레짐작하는 것은 '짐작'에 불과하다는 것, 그래서 예기치 못한 결과를 낳기도 한다는 것이었다. 만일 내가 저 색은 제가 안 좋아하는 색이라 안 대볼게요,라고 했다면 내게 가장 잘 어울리는 색을 알지도 못하고 넘어갔을 것이다. 색상 천을 일일이 대보는 과정을 거치지 않았다면 평생 어울리지 않는 색을 온몸에 휘감고 다녔을지도 모를 일이고. 평생 내게 안 어울리는 색이라 여겨 멀리했던 것이 사실 막상 대보면 나를 화사하게 만들어주는 색일 수 있다는 것. 그 사실은 내게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아, 무엇이든 부딪혀보아야 알 수 있는 것이구나. 내게 어울리는 색, 어울리지 않는 색. 내게 어울리는 사람, 어울리지 않는 사람. 내게 어울리는 삶, 어울리지 않는 삶. 그 모든 것들은.


    그렇게 생각하고 보니 어울리지 않는 색에 투자했던 시간과 돈을 더 이상 아까워하지 않게 된다. 그 색상들을 바르고 입으며 만족했던 과거의 마음은 변하지 않는 것이고, 어울리는 색을 알아가기 위한 하나의 부딪힘으로 생각한다면 아쉽게 여길 것도 없다. 딱 보기에 어울리지 않은 색인데 그동안 내가 열심히 입고 다녔다는 건 내가 아마 그 색을 정말 좋아해서였겠지, 라는 생각도 든다. 이제 내게 잘 어울리는 색을 알았다고 해서 그동안 입었던 옷, 썼던 화장품들을 전부 안 쓸까? 나는 그러지 못할 것이다. 좋아하는 색은 어울리든 어울리지 않든 열심히 입고, 열심히 찍어 바르고 다닐 것이 분명하다. 다만 진단을 통해 알게 된 나의 베스트 컬러가 그 좋아하는 색 카테고리에 들어올 뿐이다.


    물론 내가 받은 이번 진단이 확실한 나의 퍼스널컬러라고 장담할 수는 없다. 퍼스널컬러라는 게 워낙 세세한 부분이라 전문가들도 진단 결과를 다르게 내릴 때가 많다고 하니 말이다. 해서 나는, 여러 가지 색들을 계속해서 입혀볼 생각이다. 내 하루, 내 꿈, 내 삶에. 그러다 보면 남들이 보기에도, 내가 보기에도 나에게 '찰떡이다' 싶은 색이 확연히 나타날 게 분명하니 말이다. 그리고 그 과정을 즐기기로 한다. 색칠공부를 하는 어린아이의 마음으로.


    참, 나는 타인 색깔도 눈 여겨볼 것이다. 언젠가 무슨 옷을 입어야 할지 모르는 에게, '너 지난번에 그 옷 입었을 때 참 잘 어울렸어.'라고 말을 해주기 위해서. 혹 그게 아니더라도, 그가 좋아하는 색깔을 알아내 가끔 그 색에 어우러지는 옷을 입기 위해서. 그렇게 더 잘 어우러지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 알록달록하게 빛나는 우리가 되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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