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해뜻 Aug 30. 2022

현재 위치 검색 중

어느 주말, 버스 안에서

     모처럼 친구들과 여행을 떠났다.


    여행지는 우리가 사는 지역에서 버스로만 4시간 넘게  걸리는 곳이었다. 심지어 버스 외에 다른 교통편이 없던 터라 뚜벅이인 우리에게는 그것만이 유일한 선택지였다. 국내라 하더라도 어쨌든 낯선 지역에 간다는 것에 대한 긴장, 거기에 가는 길이 멀다는 사실까지 더해지니 출발 전부터 정신이 아득해지는 느낌이었다. 그래도 가야 하는 길이라면 즐겁게 다녀오자는 생각으로 열심히 짐을 챙겼다.


    여행 첫날. 버스에 올라탄 나는 바로 눈부터 붙였다. 친구들의 기척이나 대화가 종종 들렸지만 일단 빠지는 것을 택했다. 가는 동안 체력을 비축하고 멀미를 하지 않기 위함이었다. 혹시 잠에 못 들까 걱정한 것은 기우였는지 눈을 붙이고 얼마 안가 바로 잠에 들었던 것 같다. 그러나 느닷없이 울린 다른 승객의 알람 소리가 애꿎은 내 잠을 쫓아냈다. 출발한 지 한 시간 정도 지났을 무렵이었다.


    한번 뜨인 눈이 좀처럼 감기지 않길래 눕혀져 있던 좌석을 세웠다. 가는 길 조금이라도 편하게 가자며 프리미엄 버스를 끊었는데, 이왕 깬 김에 버스 구경이나 해볼까 싶었다. 괜히 발 받침대도 움직여보고, 무선충전대에 휴대폰도 올려보고, 앞에 있는 모니터도 만지작거렸다. 한 시간 지났으니까 경기도는 벗어났으려나. 모니터 속 '운행 정보' 메뉴를 누르며 그런 생각을 했다.


    들어간 메뉴에는 '출발지'와 '도착지' 그리고 그 사이에 도착까지 남은 시간이 적혀있었다. '현재 위치 검색중…' 이라는 표시가 바뀌길 잠자코 기다리던 나는 내내 요지부동인 화면을 보고 깨달았다. 도착할 때까지 '현재 위치 검색 중'  떠있을 거란 걸.


    여전히 '검색 중'인 화면을 보며 지도 앱을 열까 말까 잠시 고민했다. 그렇지만 금방 포기하고 뒤로 누웠다. 저 화면에, 또는 지도 앱에 도착까지 남은 시간이 뜬다고 해도 그게 완벽한 정보라고 할 수 있을까. 중간에 어디서 막힐지도 모르고, 돌아오지 않은 승객을 기다리느라 휴게소에서 시간을 지체하게 될지도 모르고, 혹은 가는 중에 어떤 사고를 마주하게 될지도 모르는데. 분 단위로 도착 시간을 예상하기에는 아직 갈 길이 멀었다. 모니터를 끈 나는 출발 직전 차 앞유리에 붙어있던 행선지를 생각하면서 다시 잠을 청했다.


* * *


   나는 대체 어디쯤에 있을까, 라는 고민을 꽤 자주 했던 것 같다. 대학 입시를 준비할 때도 그랬고 취업을 준비할 때도 그랬다. 가끔은 인생 전체 두고 그런 고민을 했다. 내가 원하는 목표에, 그 끝에 가까워지고는 있는 건지, 지금 가는 길이 올바른 길인지 늘 궁금했다. 그 답을 찾기 위해서 자주 남들을 훔쳐보곤 했다. 다른 사람들이 가는 길, 그들이 도착한 방법, 도착까지 걸린 시간 같은 것을 답지 삼고 나아갔다. 그래야 내가 가는 길에 대한 확신을 가질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그들의 결과값들이 나의 의문에 대한 해답이 되어주지는 못했다. 오히려 불안을 더 키울 때가 많았다. 그들이 말한 시간보다 조금 늦어지는 것 같으면 불현듯 걱정이 휘몰아쳤다.


    난 어디쯤 온 걸까? 도착하려면 얼마큼의 시간이 걸릴까?


    이렇게 가다 보면 도착할 수 있는 걸까?


    머릿속을 가득 채우는 질문들에 대한 답은 누구도 말해주지 못했다. '조금만 더 가면 돼.', '이만큼만 더 투자하면 돼'라는 말조차 가끔은 혼란스럽게 느껴졌다. 얼마큼 더? 얼마나 오래?


    그토록 찾던 정답들은 예외 없이 단 한 곳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원하는 목적지. 그곳에 도착해야만 그 질문들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있었다. 이곳에 도착하기 위해 나는 어디를 거쳐왔는지, 또 얼마큼의 시간이 걸렸는지. 그 먼 길과 긴 시간을 거쳐 결국은 완주를 해냈는지에 대한 답이 모조리 그곳에 있었다. '예상 소요 시간', '예상 도착 시간'에 미처 다 반영되지 못했던, 나만의 속도와 가는 길에서의 크고 작은 변수들을 모두 반영한 결과가.


    얼마큼의 시간이 걸릴지 장담할 수 없는 상황에서 새로운 목적지를 향해 나아갈 때면, 늘 크고 작은 불안들이 나를 괴롭힌다. 처음에는 먼지 같던 것들도 나중에는 저들끼리 뭉쳐 내 발 앞에 장애물처럼 버티고 선다. 원래 이 시간이면 이쯤 와야 하는데, 너무 늦은 거 아니냐며 마음을 쪼아댄다. 그럴 때면 잠시 숨을 고르며 생각하는 것이다.


     누구는 국도를 타고 누구는 고속도로를 다. 어쩌다 보니 비포장 도로를 달리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또 누구는 휴게소를 한 번 들 동안 다른 누구는 휴게소만 네다섯 번 들수도 있다. 운 좋게 뻥뻥 뚫린 길을 달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예기치 못한 사고로 꽉 막힌 도로에서 고전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우리가 달리는 길에는 너무 많은 변수가 있기 때문에, 도착하는 시간은 저마다 다를 수밖에 없다. 다만 변하지 않는 건, 결국 모두가 원하는 목적지에 내릴 것이란 사실이다.


    지금 타고 있는 버스가 어디쯤을 달리고 있는지는 모르더라도 도착지가 내가 택한 여행지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그러니 목적지에 도달해야만 알 수 있는 답을 억지로 찾지도, 가는 길에 생길 수 있는 변수를 생각하고 예측하면서 미리 불안해할 것도 없다.

    

    어디쯤인지는 몰라도 잘 가고 있을 것이다. 그것만 믿고 앞으로 나아가면 된다. 우리는 원하는 목적지로 향하는 버스에 올라탔으니까.

이전 10화 작은 행복에 연연할 것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