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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해뜻 Mar 20. 2022

억지로 자간을 줄이지 말 것

어쨌든 한 권의 책으로 묶일 이야기




    최근 들어 내겐 사소한 강박 하나가 생겼다. 무엇이냐면, 단어가 끝맺음을 하지 못하고 다음 행으로 넘어가는 걸 두고 보지 못하는 강박.


    브런치 같은 공간에 글을 쓸 때는 사용 기기에 따라 줄바꿈이 달라지기 때문에 크게 신경 쓰지 않지만, PPT 자료를 만들거나 포스터 같은 것을 만들 때는 유난히 줄바꿈에 민감하게 구는 편이다. 예를 들자면 이런 것이다.


    '여러분의 많은 관심과 참여를 부탁 드립

    니다.'


    이런 식으로 행이 쪼개지는 걸 참을 수 없다. 글씨 크기를 줄이든, 자간을 줄이든, 문장 위치를 바꾸든, 어떻게든 한 행 안에 '여러분의 많은 관심과 참여를 부탁드립니다.'를 밀어 넣는다. 며칠 전에도 함께 인턴을 하는 친구와 포스터를 만들던 중, '진짜 미안한데… 이거 한 행 안에 넣어줄 수 있어?'라는 말을 여러 번 했다. 착한 인턴 동기는 흔쾌히 수정 작업을 진행해주었지만, 정말 별 것 아닌 부분에 집착하고 있다는 걸 아는 입장에서는 조금 머쓱한 일이다.


    이런 강박이 생긴 건 예전 회사에서의 경험 때문이었다. 교안 편집을 하는 것 또한 인턴의 업무 중 하나였는데, 그때 나와 함께 일했던 고객사 담당자는 디테일의 왕이나 다름없었다. 말머리 형식부터, 띄어쓰기, 글씨 크기, 자간 모든 것들이 정해진 양식 안에서 이루어져야 했다. 줄바꿈도 그중 하나였다. 줄바꿈으로 인해 단어가 잘리는 경우에는 어김없이 수정, 또 수정이었다.


    '줄바꿈 이렇게 해주세요.'라는 고객사의 요청을 듣고 수정 작업을 할 때까지만 해도, '이런 것까지 신경 쓰는 사람이 있나?' 하는 의문을 가졌던 게 바로 나인데. 그 시간과 경험이 쌓이고 쌓여서, 결국은 나까지도 그 '디테일'에 집착하게 만드는 지경에 이르렀다는 걸 최근 들어서야 깨달았다. 단어의 맺음 없이 줄바꿈이 되어 있으면 그게 못 견디게 거슬리기 시작한 것이다.


    단어는 붙어있는 글자인데, 그것이 각각 윗행의 오른쪽 끝, 아랫행의 왼쪽 끝에 떨어져 있는 모양새가 별로였다. 어쩐지 읽다가 맥이 끊기는 느낌이기도 하고. 이어지는 내용이라면 한 행에 들어가는 게 가장 보기 좋다는 생각에 나는 습관처럼 한 줄 안에 단어와 문장을 꾸역꾸역 넣으려 했다. 어느 음절 하나, 그 행에서 탈락시키지 않으려고.


    그 고집 가득한 행동에 대해 다시 생각해본 건 얼마 전의 일이었다.  우연한 기회로 인턴 동기와 문학동네 시인선이 잔뜩 진열되어 있는 북카페에 방문했다. 시집을 하나하나 훑어보던 나는 한 시집의 제목을 보고 멈칫했다.


    '당신이 있다면 당신이 있기

    를'


    '를' 하나가 아래로 내려와 있었다. 딱 그 음절 하나만. 순간 나는 '왜 한 줄로 안 썼지?'라는 생각을 했다. 자간을 줄이거나, 글씨 크기를 조금 줄인다면 한 줄에 제목을 적을 수도 있었을 텐데. 그 동떨어진 '를' 하나가 계속 눈에 밟혔다.


   시인선인만큼, 표지 또한 정해진 레이아웃 안에서 글씨 크기와 자간이 모두 정해져 있을 게 당연했다. 고작 줄바꿈 하나가 거슬린다고 해서 그때그때 그 모든 걸 유동적으로 조절한다면 통일감이라는 게 사라지겠지. 무엇보다도, 책이라는 틀 안에서 단어가 중간에 잘려 다음 행으로 내려가는 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원칙이다. 누구도 거슬리게 여기지 않는, 당연한 개행(줄바꿈)인 것이다.


    '를' 하나가 아래로 내려와 있다고 해서 해서, '를'이 그 단어에서, 혹은 그 문장에서 탈락한 게 아닌데. 왜 나는 그걸 또 억지로 위로 올리고 싶어 했는지 모르겠다. 이어진 내용이니까 함께 붙어있어야 해, 라는 강박은, 꼭 필요한 고집이었을까?


    행이 달라져도, 음절이 오른쪽 끝과 왼쪽 끝에 서로 멀리 떨어져 있어도, 우리는 위에서 아래, 왼쪽에서 오른쪽으로라는 순서를 알고 있기 때문에 그 단어가 한 단어라는 걸 인식할 수 있다. 누구도 그 음절이 동떨어졌다고 생각하지 않고, 탈락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어져있다고 생각한다. 한 행의 마지막과, 그다음 행의 처음은.


    고로 억지로 자간을 줄이고 글씨 크기를 줄여서 한 행에 밀어 넣을 이유가 없다. 그냥 자연스럽게 써 내려가면 된다. 정해진 간격, 정해진 크기, 정해진 내용 그대로. 행을 넘어가도 괜찮고, 페이지를 넘어가도 괜찮다. 딱 하나만 알면 된다. 우리는 어떤 글이든 순서대로 읽어 내려갈 것이며 모든 음절, 모든 띄어쓰기 하나하나가 그 이야기를 연결 짓고 있다는 걸.


    최근 나는 아주 작은 비밀을 가지고 있었다. 지금 하고 있는 인턴이 전환형 인턴이라는 사실을 숨겼던 것이다. 가족들에게도, 가까운 친구들에게도. 말을 하지 않은 이유는 단순했다. '탈락'이라는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혹여나 전환에 실패했을 때, 내가 탈락했다는 걸 가까운 사람들이 몰라줬으면 했다. 실패의 결과를 알리는 것 자체가 민망하고 부끄러운 것도 물론 있겠지만, 그보다도 더 큰 이유는 결과에 대해 내 일처럼 속상해할 사람이 있다는 걸 알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우연히 갔던 북카페에서, 어느 시집의 제목을 본 순간. 홀로 내려와 있던 '를'을 발견한 순간, 나는 이 비밀을 더 이상 숨기지 않아도 되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써 내려가는 길고 긴 이야기, 수없이 많은 문장 속에서, 점점이 찍어내려 가는 나의 단어와 그 속의 음절은 어느 곳에서도 '탈락'하지 않으니 말이다. 한 행에서 맺어지지 못하고 그 아래 행에서 쓰인다고 한들, 그것이 잘못된 것은 아니니까. 다만 조금 더 늦게 읽힐 뿐이지, 완성되지 못한 것이 아니니까. 어쩌면 내가 이 시도의 끝에서 좌절한다고 해도, 그건 탈락한 음절이 아니라 새로운 행을 시작할 수 있는 음절로 남을 거라는 걸. 비로소 깨달았기 때문에.


    애써서 자간을 줄이거나 크기를 줄여서 정해진 위치 안에 나를 밀어 넣지 않기로 했다. 이, 그저 믿고 적어 내려 간다. 모든 것은 이어져있다는 것. 우리들의 이야기, 문장, 단어, 음절 그 모든 것이 결국은 한 권의 책으로 묶일 것이 분명하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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