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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해뜻 May 22. 2022

신발끈이 말썽인 하루

풀린 신발끈을 발견한다는 건




    늘 그렇듯 정신없고 분주한 아침 출근길. 졸음이 가시지 않은 채로 버스에 올라탄 나는 빈 좌석에 엉덩이를 붙이자마자 눈을 감았다. 어제 일찍 잘 걸…. 매번 하는 후회를 또 하면서 말이다. 창에 머리를 기대고 슬슬 잠을 청하려는데, 옆에서 툭툭 치는 손길이 느껴졌다. 순간 놀 옆자리를 바라보니, 어떤 중년 남성분이 내 발을 가리켰다.


    "신발끈, 신발끈."


    고개를 숙이고 아래를 내려다보자, 왼쪽 신발끈이 풀어져있었다. 아, 감사합니다…. 나는 꾸벅 작게 인사하고선 신발끈을 다시 묶었다. 어쩐지 민망한 마음에 후다닥 한번 묶어두곤 다시 눈을 감았다.


    그날은 유달리 신발끈이 말썽인 하루였다.


    "어? 신발끈 풀렸어요."


    점심을 먹기 위해 엘리베이터를 기다리고 있는데, 옆에 있던 동료가 내 발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 손가락 끝에는 또다시 풀린 내 신발끈이 있었다. 이게 그새 또 풀렸네. 순간 귀찮음이 몰려왔지만 풀린 채로 밖을 돌아다닐 수는 없으니 얼른 쪼그려 앉아 새로 매듭을 지었다. 엘리베이터가 곧 올 것처럼 등이 반짝반짝거리기에, 또 후다닥 묶고 몸을 일으켜 세웠다.


    놀랍게도 이 상황이 퇴근길에 또 벌어졌다. 뒷문 앞에 서있던 내게 근처에 앉아계시던 할머니께서 손짓을 하셨다. 아가씨, 신발끈 풀렸네. 하차를 하려고 서있던 나는 그 말에 재빨리 내 발을 내려다보았다. 또 풀려있었다. 왼쪽 신발의 끈이. 움직이는 버스 안에서 쭈그려 앉아 끈을 묶을 수는 없는 노릇이니, 이번엔 바로 묶지 않고 할머니께 내리면 바로 묶겠다 인사만 전해드렸다.


    버스에서 내린 나는 정류장 의자에 털썩 앉았다. 이놈의 신발끈은 왜 자꾸 풀리는지. 아무렇게나 풀어진 끈을 잠깐 노려보았다가 허리를 굽혔다. 그리고 다시 천천히 신발끈을 묶기 시작했다.


    신발끈 이렇게 묶으면 절대 안 풀어지거든? 다음부턴 이렇게 묶어라.


    초등학교 때, 운동장에서 달리기를 하다가 크게 넘어진 적이 있었다. 뛰다가 신발끈이 풀렸는데 그걸 밟고 넘어진 것이다. 흙모래에 쓸려 피가 맺힌 다리를 붙들고, 엉엉 울며 교무실에 찾아갔다. 그때 교무실에 계시던 한 선생님이 내 상처를 치료해주시곤 풀린 신발끈을 새로 묶어주시며 그렇게 말씀하셨다. 이렇게 묶으면 절대 안 풀어진다고. 그가 알려준 방법은 쉬웠다. 한번 리본 매듭을 묶고 나서, 리본 고리로 다시 한번 매듭을 짓는 것이었다. 마지막으로는 이렇게 양끝을 꽉 당겨주라며, 쭈그려 앉아 내 신발끈을 꽉 당겨주던 선생님의 목소리나, 다 묶은 후 눈을 마주치며 웃어주셨던 그 모습아직도 생생하다.


     오래 전의 기억을 떠올리며 나는 신발끈을 새로 묶었다. 아침과 점심때처럼 대충 빠르게 한번 묶는 것이 아니라, 묶은 매듭 위로 한번 더 매듭을 짓고, 마지막에는 양끝으로 꽉 당겼다. 이렇게 하면 잘 안 풀린다는 걸 그 어릴 때의 가르침 이후 나 또한 알고 있었으니까. 그렇게 왼쪽 신발끈을 다 묶은 후에는 오른쪽 신발끈도 풀어 새로 꽉 묶어주었다.


    유난히 신발끈이 존재감을 자랑했던 하루를 보내며, 그런 깨달음을 얻었다. 나는 다른 사람들의 신발끈이 풀린 걸 많이 보지 못한 것 같다고. 나를 제외한 모두가 신발끈을 잘 묶어서 그런 건 아니겠지. 그저 내가 어떤 면에서는 무심한 사람이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풀린 신발끈을 알아본다는 건 어쩌면, 그 사람의 다정한 세계를 보여주는 것일지도 모른다. 모두가 핸드폰을 보거나 눈을 감고 살아가는 풍경 속에서 남의 풀린 신발끈을 발견할 수 있는 세심함. 모른 척 지나갈 수 있는 상황 속에서도 기어코 풀린 신발끈의 존재를 알려주는 따뜻함. 바로 그런 것들을.


    그래서 그런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다. 나도 이제는 누군가의 발끝을 바라볼 줄 아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얼굴이나 몸매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입고 있는 옷과 차고 있는 액세서리가 얼마나 비싸고 값진 것인지를 보는 사람이 아니라, 그냥 그 사람의 신발끈이 잘 묶여 있는지만 관찰할 수 있는 사람이고 싶다고 말이다.


    혹시 풀린 신발끈을 발견한다면 풀려있으니 다시 잘 묶는 게 좋겠다 말해주어야지. 그래야 그 사람이 실수로라도 끈을 밟고서 넘어지는 일이 없을 테니. 묶는 것을 어려워한다면 언제든 쪼그려 앉아 대신 묶어주고 안 풀리게 묶는 방법을 설명해주어야지. 그래야 그 사람의 신발끈이 다시 풀리는 일은 없을 테니.


    그렇게 서로의 신발끈을 꽉 묶어준다면, 함께 걸어가는 과정에서 우리 모두 끈 하나에 넘어져 다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이렇게 꽉, 서로의 마음을 매듭지어 놓는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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