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지킬 앤 하이드>로 본 임상시험 윤리-헬싱키 선언과 IRB
2004년 초연 이래, 올라왔다 하면, 연일 매진을 기록하는 뮤지컬 지킬 앤 하이드는 지킬박사와 하이드라는 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있다. 그리고 그 극은 지킬의 친구인 어터슨의 1888년 가을에 대한 회상으로부터 시작한다.
원작 소설의 지킬은 법학박사이자 의학박사이고 나이도 훨씬 많지만, 뮤지컬의 지킬은 젊고 직업도 하나다. 그리고 그 직업은 의사이다. 현대와 같은 전문의 제도가 확립되지 않은 시점이었겠지만, 그는 여러 질환 중에서도 특히 정신질환에 관심이 많다. 선과 악을 분리하는 일에 말이다. 물론 사연은 있다. 헨리 존 알버트 지킬의 저택에 누워있는 그의 아버지 때문이다.
지킬이 하려는 것은 FIH(First In Human) 연구다. 임상 1상 또는 임상 1/2상 복합구조로, 인체 즉 사람에게 맨 처음으로 적용하는 시험이다. 극 중 지킬의 실험실은 약물을 합성하는 곳이라면, 즉 실험 Experimental에 가까운 행위라면, 지금 지킬이 이사회에 나서는 이유는 그가 하려는 것은 실험이 아니라, 시험(trial), 즉 시도에 가까운 일 이기 때문이다. '시험'은 주로 시험 삼아 무엇을 해 볼 때, 즉 검증의 의미가 강하다면, '실험'은 실제로 해 보는 것, 이론이나 현상을 관찰하고 예측하는 것을 이르는 말로 전혀 알려지지 않은 새로운 일을 하는 것으로, 지킬이 실험실에서 거의 다 완성한 그 행동, 흔히 물리학이나 화학 같은 이학적 시험이나, 지금은 전임상이라고 부르는 동물실험이 이 분류에 가깝다.
FIH 연구는, 신약 후보물질 혹은 유망한 치료법이 있을 때, 실험실의 연구 및 동물 실험을 모두 끝내고 나서, 첫 번째로 사람에게 투여하는 연구다. 전임상 시험에서 얻은 독성과 ADME(흡수, 분포, 대사, 배설) 및 약리작용을 바탕으로 비교적 한정된 인원의 건강 자원자에게 신약을 투여하고, 그 약의 체내동태(PK) 및 인체에서의 약리작용(PD), 부작용 및 안전 투약량(내약량) 등을 결정할 것을 목적으로 한다. 에이즈 환자를 대상으로 하거나, 항암제 등을 제외하고, 1상 임상시험은 환자를 대상으로 하지 않는다. 그리고 항암제 또는 희귀 질환의 경우, 1 상의 인원이 적은 편이지만, 일반적으로는 20~80명 범위, 가끔 20명 이하의 인원으로 수행되기도 한다.
지킬은 실험이 아니라, 시험을 하려다 보니, 이사회에 나가 자신의 연구 계획의 타당함을 설명한다. 마치 이 구성이 IRB(임상시험심사위원회 및 임상시험윤리위원회로 약칭으로는 IRB: Institutional Review Board이다) 같기도 하다. 물론 현대의 눈으로 보면 말이 되지 않는 부분 투성이지만 말이다.
여기서 지킬이 뱉는 대사는
" 딱 한 명이면 됩니다. 정신병이 있고, 주거도 없는 저런 환자 한 명쯤 투여 대상으로 한다고 무슨 문제가 있습니까. 제발 딱 한 명만"
듣는 순간.... 하이고........ 싶지만,
어디서부터 고쳐줘야 할지 저 발언을 싶은 대목이 한 둘이 아니지만, 1753년 린드의 괴혈병 연구나, 1794년 러시의 사혈을 통한 치료, 처음으로 수학적 반응평가를 도입하자고 주장한 1834년의 루이에 이르러서야 방법론이 조금씩 정립되기 시작하는 격이니, 지킬이 살다 간 그 시대엔 임상시험이라는 개념이 제대로 정립되지는 않았으니 말이다.
딱 한 명은 우연을 배제할 수 없기에, 대조군이 없는 시험이기도 하고(물론 1/2상에서 또 환자가 매우 위중한, 그래서 치료약제를 모두에게 다 주어야만 하는 경우, 드물게 단일 군 연구가 진행되기도 한다. 그렇지만 지킬이 하려는 시험은 그런 약제를 가지고 진행하는 시험은 아니지 않은가. 물론 매우 비윤리적이다), 충분한 통계 처리가 이루어질 수도 없기에, 이러한 임상은 성립할 수 없다. 치료 목적 승인이라는 이름으로 진행되는 MAP/CUP는 이미 안전성이 확보된 약을, 타 적응증에 사용하는 것으로 조금 다른 그림이니 말이다.
그것도 모자라 연고도 없는 부랑자, 정신병자를 언급하는데. 하. 지킬 너란 사람 정말, 연구윤리가 아주 빵점이구나.라는 말 밖에 나오지 않는다. IRB 가기도 전에, 임상연구자 자격 및 교육과정에서 이미 Certification이 안 나올 지경이다.
그런데 이런 상식 이하의 연구자들이 지킬 하나만은 아니었다. 놀랍게도 말이다.
멀리 갈 것도 없이, 히틀러의 나치 하에서 자행된 상식 이하의 연구와, 동시대 한국의 많은 젊은이들을 앗아갔던, 그러면서도 그 존재를 부정하고 있는 731부대를 보면 알지 않는가.
아이러니하게도, 이들의 비인간적이고 비윤리적인 행태로 인해, 임상시험의 윤리가 바로 세워지는 계기가 되었으니 말이다.
이렇게 임상 시험 윤리와 관련한 최초의 윤리 강령인 뉘른베르크 강령이 세계 2차 대전이 끝난 다음인 1947년에 만들어지게 됐다. 뉘른베르크에서 나치 휘하에서 비윤리적 의학 실험을 단행했던 의학자들에게 전범재판의 결과로 사형을 선고한 이 판결문의 부속으로, 허용되는 의학실험(현재 기준에서의 시험)의 조건을 제시하는 데, 이때 피험자의 자발적 동의를 그 선결 조건으로 포함하게 된 것이다.
판사, 즉 법조인들이 생각해 만들어 낸 뉘른베르크 강령은 제1항으로 그 동의의 가치를 설파하고 있다.
인체 실험대상자의 ''충분한 정보에 근거한 자발적인 동의''는 절대적으로 필수적이다. 이것은 실험대상자가 동의를 할 수 있는 법적 능력이 있어야 한다는 의미이며, 어떠한 폭력, 사기, 기만, 협박, 술책의 요소가 개입되지 않고, 배후의 압박이나 강제가 존재하지 않는 가운데 스스로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권한이 주어진 상태이어야 하며, 이해와 분명한 지식에 근거한 결정을 할 수 있도록 충분한 지식과 주관적 요소들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여야 한다는 의미이다. 후자를 충족시키기 위해서는 실험대상자가 내린 긍정적인 결정을 받아들이기 전에, 그에게 실험의 성격, 기간, 목적, 실험 방법 및 수단, 예상되는 불편 및 위험, 실험에 참여함으로써 생길 수 있는 건강 이상 등 영향에 대하여 알려야 한다. 동의의 질을 보장하기 위한 의무와 책임은 실험을 시작하고 지도하며 참여하는 연구자 개개인에게 있다. 이것은 타인에게 법적인 책임을 지지 않고서는 위임할 수 없는 개인적 의무이자 책임이다.
그리고 이를 보다 발전시켜, 임상 연구를 수행하는 의학자들 스스로 만들어 낸 것이 바로, 현재에도 통용되고 있는 헬싱키 선언이다. 1964년 세계 의사회의에서 최초 버전이 선포된 헬싱키 선언은 아래와 같은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뉘른베르크 강령에서의 동의에 대한 내용이 보다 간략하면서도 구체화되었고(9~11항) 특히 법률상 무능력자, 즉 금치산자나 한정치산자의 경우, 보호자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는 항목이 포함되었다. 지킬이 무엇을 얼마나 틀리고 있는지는 뭐, 차라리 몇 개나 지켰는지를 세는 게 빠를 지경이지만, 단적으로 저 환자를 성 쥬드 병원에 맡긴 보호자를 찾아서, 그의 동의를 받지 않는 다면 해서는 안 되는 일 인 셈이다.
1. 인간을 대상으로 하는 생명의료연구는 일반적으로 승인된 과학 원칙에 따라야 하며, 적절히 시행된 실험·동물실험의 근거가 있어야 한다.
2. 실험의 계획 및 시행은 국내법 규정에 따라 독립적인 위원회의 사전 심의를 거쳐야 한다.
3. 자격 있는 유능한 과학자의 책임 하에 연구를 진행해야 한다.
4. 연구 목적의 중요성은 위험과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
5. 피험자의 이익에 대한 고려를 과학 및 사회의 이익에 우선시해야 한다.
6. 신체의 완전성에 대한 권리, 프라이버시를 존중해야 한다.
7. 연구에 따른 위험이 잠재적 이익보다 크다고 판단할 때에는 연구를 중단해야 한다.
8. 연구결과를 발표할 때 의료진은 결과의 정확성을 유지하고, 이 선언에 규정된 원칙을 따라야 한다.
9. 연구 자체의 목적과 방법, 예견되는 이익과 내재하는 위험성, 그에 따르는 고통 등에 관하여 피험자에게 사전에 충분히 알려주어야 하며 또한 그들로부터 충분한 설명에 근거하여 자유로이 이루어진 동의를 받아야 한다.
10. 이때 동의는 그 연구에 참가하지 않고, 독립된 지위에 있는 의료인이 받아야 한다.
11. 법률상 무능력자에 대해서는 국내법에 따라 법적 대리인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12. 연구자는 모든 재정적 이해관계를 윤리심사위원회와 잠재적 연구 참여자에게 밝혀야 하며, 간행되는 논문에도 이를 명시해야 한다.
13. 새로운 치료의 유효성을 지지하지 않는 반대 연구의 결과도 발표되어야 한다.
14. 학술잡지는 이 선언의 원칙을 준수하지 않는 보고서를 수용해서는 안 된다.
그래서 오늘날 수행되는 임상시험에서는 지킬과 같은 우를 범하지 않도록 많은 제도적 장치가 들어가 있다. 임상시험의 환자 등록 기준에는, 맨 마지막 항목에 대개 임상시험에 대해 충분히 이해하였으며, 자발적으로 동의하였음을 포함하거나, 또는 헬싱키 선언을 준수하는 항목이 반드시 들어간다. 이른바 고지된 동의 항목이다. 아래 신장이식을 받은 환자들 중, 2차 코로나 백신 접종을 완료한 환자들에게, 부스터 샷의 효과를 확인하기 위한 임상 시험 설계 역시도 마찬가지다.
이러한 고지된 동의와 더불어, 헬싱키 선언은 별도의 독립적 위원회를 두고, 해당 임상시험의 타당성에 대한 검토를 거치도록 했는데, 이것이 바로 임상윤리위원회로, 약칭 IRB라 불리며, 임상시험을 시행하는 각 병원 기관마다 별도의 기구 형태로 유지하고 있다.
물론 IRB는 독립적 위원회여야 하며, 임상시험의 윤리적, 과학적, 의학적인 측면을 검토 평가할 수 있는 경험과 자격을 갖춘 자들로 구성되어, 연구의 타당성 여부 심의, 임상시험에 대한 관리, 시험책임자에 대한 평가, 임상시험 지속 검토를 수행한다는 점에서, 뭐랄까 성 쥬드 병원의 이사회와 면면의 구성은 다를지 몰라도 적어도 헨리 지킬의 임상시험에 대해 하는 그 기능은 매우 비슷한 모습이다.
현재의 규정에서 임상윤리 위험회, 즉 IRB는 5인 이상으로 구성하되, 이들 중에는 의학, 치의학, 한의학, 약학 또는 간호학을 전공하지 않은 즉 비전공자로서 변호사 혹은 종교인이 1인 이상, 해당 기관과 관련이 없는, 즉 이해관계가 없는 사람이 1인 이상 포함되어야 한다. 주교의 포함으로 종교인 조건까지 충족한, 분명 IRB가 존재하지 않는 시대, 자신의 이익에 골몰하는 위선자들로 가득한 성 주드 병원의 이사회가 현대의 IRB와 닮았다는 것 또한 흥미로운 부분이다.
결국 이들 이사회 멤버들은
네이 네이 네이, 절대 반대
를 외치며, 지킬이 주장하는 선과 악을 분리하는 실험을 부결시킨다.
해당 내용이 타당하지 않고, 지킬이라는 연구자가 신뢰할 만한 사람이 못된다는 점에서, 해당 임상시험의 개시를 놓고 표결 결과 그의 임상 시험을 불허한 것이다.
물론 지킬의 시험 혹은 실험의 결과를 놓고 보면, 이들은 철저히 병원의 이익을 생각했기에 그 과정이 합리적이진 못했어도, 이 결과는 매우 타당해 보인다. 시험이라고 보기도 어려운 비윤리적인 실험은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이었으니, 조기에 중지하도록 허용해 준 것은 매우 옳은 결정이었다. 막다른 길에 몰린 지킬이 자신을 실험 대상으로 삼아버리는 바람에, 예견된 비극을 막지는 못했지만 말이다.
사실 이사회의 구성원들은 엠마의 아버지인 댄버스 경을 제외하고는 사회 명망가라고 보기에는 행실이 올바르다고 보기 어렵지만, 그들의 이사회 위원으로서의 결정은 의외로 훌륭한 결정이었다. 비록 그 사고의 과정이나 동기나 아주 타당했던 건 아니지만 말이다. 일탈의 가능성이 농후한 연구자의 자질도 알아봤고 말이다. 물론 이들의 의사 결정 과정이 투명하고, 윤리적이었다면 더욱 완벽했겠지만.
어떠한 이유에서건,
지킬의 실험은 임상시험의 요건을 갖추지 못했고, 진행되서도 안 되는 부분이었다.
어디서부터 뜯어고쳐야 하냐를 묻는다면, 합목적성이나, 이전 동물 실험의 완료 여부부터(물론 원작에서는 동물 실험을 마쳤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이 임상 시험이 가져올 이익과 해악의 비교에서부터 다시 따져봐야 하겠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고지된 동의, 피험자의 의사표현 능력과 관련한 부분들을 하나도 지키지 않은 지킬의 실험은 정당하지 못했다.
아마도, 1888년이 아니라 2022년이었더라면,
지킬의 실험은 지속 아니 개시될 수 없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