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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저니맨 Jun 09. 2020

30대 퇴사남이 프로포즈를 받았다.

당연히 결혼은 너와 할 줄 알았어

"우리 결혼하자!"

내가 사랑하는 여자의 입에서 '결혼'이라는 단어가 나왔다. 드라마에서는 아름답던 이 순간이 실제론 그렇지 않았다. 수많은 현실적인 것들이 머리 속에서 계산되기 시작했고 순간 당황한 내 표정을 감지한 그녀는 카페를 박차고 나갔다. 창가에 앉아 있었던 나는 그녀를 잡으러 갈 수 없었다.


그녀가 떠난 자리를 한동안 바라만 보았다.



당연히 결혼은

너와 할 줄 알았어


그녀와 나는 군대에 가기 위해 휴학을 했던 시기에 만났다. 원피스가 잘 어울리는 아름다운 그녀의 외모에 끌렸고 나는 실패했지만 그녀는 나름 잘 운영했던 인터넷 쇼핑몰 경험이 멋져보이기도 했다. 서로가 휴학을 했던 시기에 만나 풋풋한 사랑을 키워갔고 나는 의경으로 군복무를 하게되어 거의 매주 만날 수 있는 여건이 되었다. 휴가나 외출을 나갈 때면 그녀는 1시간이 넘게 걸리는 거리에도 불구하고 부대까지 찾아와 아침부터 내가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내가 *수경이 되었을 때는 빨리 나오라고 내무반까지 찾아왔을 정도로 부대에서는 유명한 커플이었다.


수경: 육군에서는 병장이라고 부르는 계급
그녀는 여자친구라는 단어 들으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사람이다.


나와 그녀의 사랑도 마냥 행복하고 아름답지는 않았다. 종종 다투는 일도 있었고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 화해하는 일을 반복하기도 했다. 자주 싸우는 바람에 헤어져도 주변에 헤어졌다고 말하기 민망할 정도였다. 곧 다시 만나니 헤어졌다는 사실을 번복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였을까? 우리는 서로 헤어져도 현 상태를 이별로 정의하지 않았던 것 같다. 언젠가는 결국 다시 만날 사람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10년간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하면서 서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왔다. 그러면서도 종종 서로의 안부를 물었고 서로의 도전과 선택을 응원했다.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20대 초반의 순수한 사랑을 공유해서인지 현재 만나는 사람에게 무심코 그 시절을 이야기 하는 실수를 곧잘 저지르곤 했던 우리였다. 그렇게 10년을 이어 온 그녀와 내가 다시 연인으로 만나게 되었다. 그리고 서로 같은 이야기를 했다. "사실, 결국 결혼은 너와 하게될 거라고 생각하며 지냈어."


명절에 결혼하라고 압박을 받을 때면 그녀가 떠올랐다.


30대 퇴사남이

결혼을 망설였던 이유


그녀와 나는 다시 연인이 되었고 20살 동갑내기 커플이었던 우리는 어느덧 30대 커플이 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녀가 물어왔다. "우리 결혼하자." 이제 막 퇴사를 하고 유튜브에 퇴사 후 브이로그를 올리며 한량처럼 지내던 나는 당황하며 물었다. "나 지금 백수인데?!". 그러자 그녀는 백수로 평생을 살 것도 아니면서 뭘 걱정하냐고 물었다. 그리고 백수가 된김에 모아둔 돈으로 함께 세계여행을 다녀오고 신혼생활을 시작하자는 말을 했다. 잠시 행복했다. 그녀와 함께 세계여행을 하는 상상을 했고 가정을 이룬 상상을 했다. 하지만 곧이어 현실적인 계산이 시작되었다.


학자금대출 3천만원
퇴사 전 모아둔 3천만원으로 생활 중
부모님 집에서 생활 중

첫 직장에서 1년도 버티지 못해 모아둔 돈은 3천만원뿐이었다. 학자금 대출이 3천만원이나 남아 있어서 사실상 한 푼도 없는 상태였다. 하지만 직장생활 스트레스로 인해 재취업을 고려하고 있지도 않았고 영상관련 프리랜서에 도전을 하기위해 모아둔 돈을 생활비로 쓰고있는 상황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사랑하는 사람으로부터 받은 프로포즈였다. 30대 초반에 결혼을 계획했었다면 퇴사는 하지않았을 것이다. 퇴사를 해도 돈을 충분히 모으고 대책을 세우고 했을 것이다. 그리고 퇴사 당시에는 솔로이었기 때문에 좋아하고 오래할 수 있는 일을 찾는 것이 우선이었다.


아파트 대출
결혼비용
생활비 등

결혼을 한다고 생각했을 때 양가 부모님의 지원을 받지 않는다면 상당한 비용이 지출될 것이 눈에 선했다. 부모님 집에서 지내면서 부모님 차를 이용하던 나는 결국 재취업을 해야만하는 상황이되었다. 하지만 재취업을 해도 행복주택이 아니라면 대부분의 비용은 여자친구가 부담해야하는 상황임이 분명했다. 나름 큰 결심을 하고 퇴사를 했지만 이 프로포즈를 받아들인다면 나는 바로 재취업을 해야했다. 결혼하면 나만을 위한 의사결정은 그녀를 힘들게 할테니까. 아직 나는 결혼할 준비가 안 되어있었다.


마음의 준비는 언제쯤 될까?


인생은 타이밍이라는데, 그녀와의 타이밍은 이렇게 엇갈렸다. 서운한 그녀는 카페를 박차고 나갔다. 창가에 앉아 있었던 나는 그녀를 잡으러 갈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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