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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현유 May 22. 2022

코로나 확진자의 출산과 입원, 그리고 퇴원

코로나 확진자의 출산기 에필로그랄까,,,

와중에 또 문제가 있었다. 퇴원을 어떻게 해야 하나? 남편이 데리러 올 수도 없고, 확진이 안 된 다른 가족이 자차를 끌고 올 경우 감염 위험이 있으니 불가능했다. 그렇다고 일반 택시나 대중교통을 타는 건 더더욱 감염 위험이 있으니 말도 안 되는 일이고, 나흘 전에 배를 찢은 산모가 걸어서 귀가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사실 코로나 확진 상태에서 개복 수술을 받았는데 예전만큼 방역 관련 규정이 엄격하진 않은 탓에 어쨌든 반드시 퇴원해 집으로 돌아가야만 하는 상황 자체가 너무 특수했기에, 이에 대한 완벽한 지침은 존재하지 않았다. 이미 코로나 확진자는 너무 많았다. 모두 각자의 사정이 있고 각자의 상황이 있었다. 특수성을 모두 고려해 제각각의 지침을 내리는 건 불가능했을 것이다.


모범 시민은 일단 보건소에 문의 전화를 걸었고, 방역 택시를 타라는 답변을 받았다. 방역 택시를 검색했더니 전부 인천공항에서 격리소로 가는 것만 떴다. 세 군데 정도 상담을 받았는데 확진자라고 했더니 전부 10만원 중반대의 가격을 불렀다.


우리 집에서 세브란스 병원까지는 걸어서도 30분 내외의 거리였고, 택시를 타면 8000원 정도가 들었다. 근데 거기에 15만원을 태워? 하지만 이것도 뭐 어쩔 도리가 없었다. 보건소의 지침따위 그냥 쌩까고 일반 택시를 타버릴까 잠깐 고민하긴 했지만, 나같은 21세기의 자베르 경감 및 임마누엘 칸트에겐 배가 찢어졌음에도 벌떡 일어나 걸을 수 있는 용기는 있었지만 공공 질서를 위한 규율을 깰 만한 깡은 없었다. 언제 어디서나 규칙을 사랑하는 나는 ESTJ,,,


하지만 규칙은 엉망진창이었다. 병원에서는 퇴원을 위해서는 이중 포장한 귀가용 옷을 따로 가져와야 한다고 말했고, 나는 남동생을 통해 이중 포장한 옷을 받았다. 이중 포장까지 했으니 중간에 옷 갈아입는 구간이 따로 있을 줄 알았는데 이중 포장을 한 옷을 내 병실에 가져와서 그대로 갈아입으라고 하기에 1차로 놀랐다. 이럴 거면 이중 포장이 필요없지 않나...? 병이라는 것은 감염자가 밖으로 나갈 때가 위험한 건데, 바깥 세상에서 감염자만 갇혀 있는 방으로 무언가가 들어올 때 굳이 이중포장을 할 필요가 있을까 싶었지만 규정이 그렇다니 21세기의 자베르 경감 및 임마누엘 칸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방역 택시가 왔을 때도 상황은 비슷했다. 수술을 받기 위해서 음압 카트를 타고 이동했던 것처럼, 이번에는 음압 휠체어를 타고 병동 출구까지 이동했다. 그 어떤 사람과의 접촉도 피하기 위해서였겠지만 문제는 내가 음압 휠체어에서 내린 후, 미감염자인 내 남동생이 감염자인 나와 접촉하는 것에 대해서는 그 누구도 뭐라고 하지 않았다. 2차 충격... 이러면 안 되는 거 아닌지 속으로 백번천번 생각했지만 일단 집에 가는 게 급하니까 별말은 하지 않았고. 이제는 코로나가 거의 끝난 모양새지만 그때까지만해도 끝날랑 말랑 할 때라 확진은 확진대로 중대했고 미감염은 미감염대로 챙겨야 했어서 제대로 된 가이드라인이 내려오지 않았던 듯 싶다.


15만원짜리 방역택시는 순식간에 세브란스를 빠져나갔다. 신촌을 지나며 내 인생 가장 긴 3박 4일이 아니었나 생각했다. 집까지는 놀랄 만큼 순식간에 도착했다.


참, 퇴원은 나 홀로 했다. 남은 격리 기간 동안은 아기와 계속 생이별이었다. 아기는 다행히 코로나 음성이었고, 코로나에 걸린 부모에게 보낼 수는 없다는 게 국가의 방침이었다. 병원에 아기를 우리 격리 기간이 끝날 때까지만 맡아 달라고 요청했지만 - 우리도 영 내키지 않았지만 - 그건 어렵다고 했고, 코로나 확진되지 않은 상태의 가족관계증명서로 증명되는 가족 당사자가 와서 아이를 데려가야 한다고 했다. 그런 가족 당사자라 해봐야 친정부모님과 시부모님 뿐. 정말 다행히 시어머니와 시언니가 나흘 정도 남은 격리기간 동안 아기를 봐 주시기로 했고, 출산 때문에 입원했던 나는 아기 없이 퇴원하게 됐다.


그나저나 코로나는 정말 랜덤병인 모양이다. 백신을 한 차례도 맞지 않았던 나는 무증상이었고, 얀센만 한 차례 맞았던 신랑은 인후통과 콧물 등을 약간 호소했고, 3차 부스터샷까지 맞았던 지인은 며칠째 앓아누웠다고 했다. 출산 전날 나와 우리 집에서 한 그릇에 담긴 떡볶이를 함께 퍼먹었던 김작가(2차 접종자)의 경우 너무나 음성. 누가 걸리고 누가 안 걸리고 누가 증상이 있고 누가 무증상인지 도저히 알 수가 없는 병인 것이다. 그런 점 때문에 코로나가 인류 역사에 기록될 만큼 무서운 병으로 남았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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