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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현유 Jan 25. 2023

파워 J인 내겐 인생도 육아도 너무 어렵다

“아가는 금방 자라지만 커리어는 기다려주지 않는다”

이르게 복직할 수 있었던 건 다 시부모님께서 아가를 봐 주시기로 한 덕분이었다. 어머님은 아직 두 분께서 여력이 될 때 빨리 둘째도 낳으라고, (전문가들이 어린이집에 가는 게 좋다고 추천하는 나이인) 만 세 돌이 될때까지 키워주겠다고 하셨다. 당장 둘째를 가질 계획은 없었지만 말씀만이라도 정말 감사했다.

복직 후 3개월쯤 지났던 어느 날, 아가가 태어나자마자 등록했던 국공립 어린이집에서 연락이 왔다. 내년 3월에 드디어 순번이 빠져서 입소할 수 있다는 거였다. “아, 저희 시부모님이 봐 주시기로 하셔서요.” 국공립 어린이집 순번은 다시 맨 뒤로 밀렸다.

사건사고는 예고 없이 일어난다. 시아버지가 연말 맞아 받아보신 건강검진에서 안 좋은 게 발견됐다. 바로 수술이 이뤄졌다. 다행히 경과는 좋은 편이지만, 당분간 두 분께서 육아를 해주실 수는 없게 됐다.

아가는 절대 혼자 있을 수 없다. 그렇다고 내가 매일 집에 있을 수도 없다. 신랑과 내가 열심히 휴가를 빼서 매일매일을 방어하듯 아가를 돌봤지만 1주, 2주가 넘어가자 한계가 보였다. 매일 육아한다고 휴가를 쓸 순 없다. 아직 1월이 시작한 지도 며칠 안 된 차였다.

국공립 어린이집은 이미 물건너갔다. 친정엄마, 남동생, 시누이, 시조카까지 온 집안의 모두가 총출동했다. 나랑 신랑은 죄인이 된 기분이었다. 우리 아가를 위해서 온 집안 사람들이 다 동원돼야만 했다. 물론 거기도 한계가 있었다. 다행히도 그들 모두가 1, 2월이 비교적 한가한 직업을 갖고 있었지만 3월이 되면 굉장히 바빠질 터였다. 2월도 사실 짬짬이 돌아가면서 교대해야 겨우 메꿔질 상황이긴 했다.

그러던 차에 집 바로 옆에 있는 민간어린이집이 생각나서 연락했더니, 다행히 바로 입소가 가능했다. 어린이집 입소 전에 보통 엄마들이 같이 데려와서 첫날은 한 시간, 둘째 날은 두시간, 셋째 날은 오후 내내, 그리고 넷째 날부터는 풀데이로 아가랑 같이 어린이집에서 시간을 보내고 다섯째날 아가를 교실에 넣어두고 밖에서 지켜보는 식으로 차츰 적응할 시간을 갖는다는데 당장 출근해야 하는 나는 그렇게 여유를 둘 수가 없었다.

원장님은 아가가 잘 적응할 수 있도록 실력있는 쌤들이 최선을 다할 거니 너무 염려 말라고 해주셨고 실제로 쌤들은 딱 봐도 베테랑이셨다. 사실 내 마음에 찬 건 쌤들이나 기관에 대한 불신이 아니라 내 아가에 대한 미안함이었다. 누구보다도 엄마 껌딱지인 아가인데, 그렇게 좋아하는 친할머니 친할아버지랑 있다가도 저녁 무렵쯤 되면 현관을 계속 배회하며 엄마를 찾는 아가인데, 우리 친정에 가서도 엄마랑 잠시만 떨어져도 울고불고 난리를 쳤던 아가인데 친정보다도 낯선 사람들로 가득찬 어린이집은 과연 견딜 수 있을까.

직장을 다니는 게 맞나?

그런 고민이 자꾸 든다. 물론 나는 물욕 넘치는 인간이라 일은 해야만 할 것이다. 문제는 지금의 직장이다. 출퇴근도 확실히 정해진 시간이 없고, 갑자기 주말근무가 잡힐 때도 있고, 매월 1주일 이상 새벽까지 야근을 해야 하는데 이런 분위기는 아기 키우는 데 가끔은 최적이지만 대부분 최악이다. 내가 팀에 도움이 되는 인간인지, 내가 이 일을 하는 게 맞기는 한지, 그런 고민도 동시에 밀려온다. 지금 나를 가장 필요로 하는 건 직장이 아니라 아가라는 생각이 들어서 더더욱.

하지만 동시에 아가는 금방 자라지만 커리어는 기다려주지 않는다던 언니들 얘기도 생각났다. 아가가 나를 이렇게 사랑해주는 시간은 고작 앞으로 길어봐야 오육년이니 지금을 즐기라던 엄마의 말도 떠올랐다. 아아, 나는 어째야 좋을까.

시부모님께 처음에 아기를 맡길 때도 죄송스럽고 아가에게 미안했는데 곧 적응했던 것처럼 어린이집 라이프도 곧 익숙해질까. 그러기에 아가는 원래 시부모님을 좋아했기 때문에 어린이집보다 적응하기가 쉬웠을 것이다. 원래부터 엄마 다음으로 좋아하는 사람이 친할머니였으니까. 또 어디 나가는 게 아니라 우리 집에서 돌봤다는 점도 큰 차이다. 어린이집은 여러모로 친조부모의 돌봄과는 다른 셈이다. 좋은 선생님들이 잘 돌봐주시겠지만 그래도 자주 아플 것이고, 다치기도 할 것이고, 부모나 조부모가 주는만큼 아낌없는 케어와 사랑을 받을 수는 없을 것이다.


당장은 그런 생각만 해도 너무 미안하고 속상해서 가슴이 찢어질 것 같은데. 아무리 계획을 마련했다고 한들 틀어지고 망가지는 게 인생의 진리다. 모든 상황을 통제하지 않으면 미칠 것 같은 파워J 인간에게는 인생도 육아도 너무 어렵고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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