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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님이 Jun 28. 2019

긴장하지 않아도 되는 사이

몇 년 만에 동창 언니들을 만났다.

학교 졸업하고도 꽤 오랫동안 만나온 언니들이라 그런지 몇 년의 공백이 있었는데도 예전처럼 스스럼없었다.


"ㅇㅇ이 점심 먹었니?"

"아뇨, 너무 배고파요."

"ㅇㅇ이 배고프대, 얼른 밥 먹으러 가자."

"근데 ㅇㅇ야, 뭘 이렇게 많이 샀어? 무겁겠다."

"네, 언니, 무거워요. 하나만 들어줘요."

"그래그래."


언니들은 도서전에서 빵 먹고 왔으면서 나 배고프다고 호들갑스레 걸음을 서두르고, 무거운 것도 척척 들어주는 모습을 보니, 그동안 사람 만날 때 습관처럼 장착했던 긴장이 탁 풀렸다.

사실 "너무 배고파요" 하고 대답했을 때부터 이미 긴장은 풀려 있었던 것 같다.


평소에는 '나는 배고픈데 상대방은 배가 안 고프면 어쩌지?' 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는데, 그날은 오후 3시에 만났는데도, 이 생각 저 생각 할 것 없이 솔직한 심정이 호로롱 새어나왔다.


언니들은 잘 챙겨주는 맏언니, 무심한 듯 챙겨주는 둘째언니, 나는 막둥이 같았다.


맏언니의 비과학적이고 의식의 흐름대로 흘러나오는 이야기도, 둘째언니의 무심한듯 무책임한 이야기도 재미있었다.

자신이 실수하고 잘못한 이야기, 힘들었던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흘러나왔다.


'약한 모습 보이면 약점 잡힌다'는 말은 여기서는 통하지 않았다.


나이 차이는 나도 친구 사이니까.

그동안 쌓아온 정이 있으니까.

하고 싶은 이야기를 자기검열 없이 할 수 있었다.

누구에게 피해를 주지도, 불쾌감을 주지도 않는 이야기였다.


평소 맏이 같다는 말을 많이 들어온 둘째인 내가

그날은 언니들한테 스스럼없이 응석을 부렸다.


언니들한테 내가 작업한 책도 선물하고,

쭈꾸미볶음이랑 커피도 얻어 먹었다.

헤어진 다음, 밤에 잘 들어갔느냐는 문자도 보내주고(역시나 맏언니만, 둘째언니는 이런 거 얄짤 없음. ㅎㅎ 그 모습이 좋음).


집순이 오랜만에 서울 나들이 갔다가 좋은 시간,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왔다.

남과 함께하는데도 긴장하지 않은 시간을 보낼 수 있었던 것이 가장 새삼스러우면서 즐거웠다.



막둥이를 하염없이 귀여워하는 언니들 이야기를 쓰다 보니, 떠오른 소설이 있다.


일본 소설 니시 가나코의 <원탁>이다.

원제는 '원탁'인데, 나는 '자포니카 자유공책'이라는 제목으로 먼저 나왔을 때 이 소설을 읽었다.

언니들 이야기는 아주 조금 나오지만, 나도 동생이 있는 입장이라 깊이 공감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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