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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뮤즐리 Apr 30. 2020

내가 통대 졸업 전에 호주에서 한국에 취업한 비결(2)

통번역사 시작하기

맥쿼리 통번역대학원에서는 번역을 중점적으로 배우진 않았다. 첫 학기 때는 통역과 번역을 모두 배운다. 하지만 내가 다닐 때만 해도 1학년 1학기가 끝나고 번역반과 통역반 중에 한 전공을 선택해야 했는데 나는 번역 전공을 선택했음에도 통역 전공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 이유는 동기들 중에 번역 전공을 선택한 동기들의 수가 너무 적어서, 번역 전공반이 개설되기 않았기 때문이다. 그때는 내가 통역 전공을 해도 잘 버틸 수 있을까 걱정하는 마음이 컸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신의 한 수... 까지는 아니더라도 잘한 일임에는 분명하다.


대학원을 진학하기 전에 잠시 사설학원에서 번역 수업을 들었던 적이 있다. 그때 강사님이 하신 말씀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우리가 아무리 해도 원어민 정도의 아웃풋을 낼 수는 없어요. 그래도 번역을 할 때, 그 번역 주제에 해당하는 자료들을 가급적 많이 보고 공부하고 흡수한다면, 그 주제에서만큼은 원어민에 가까운 아웃풋을 낼 수 있어요."


뭐 이런 요지였다. 다 잘할 수는 없다고 해도 한 가지는 죽게 파라!!

즉 지금의 우리가 모든 분야나 모든 주제에 대해서 원어민과 같은 수준의 아웃풋을 내기에는 힘들겠지만, 지금 해야만 하는 번역물과 그 번역물의 주제에 대해서는 우리의 수준을 원어민에 가까운 수준으로 끌어올릴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방법으로 알려주신 방법이 번역을 하기 전에 그 분야 영어 아티클을 가급적 많이 보고 공부하라는 것이었다.


예를 들어, 내가 오늘 번역하는 내용이 남북 핵문제에 관한 내용이다.

그러면 여기에 관련된 영어 기사나 논문 등등을 가급적 많이 수집해서 공부하고 연구하는 것이다. 그러면 다른 건 몰라도 나는 남북 핵문제라는 주제에 있어서는 원어민에 가까운, 그 정도는 아니더라도 상당한 수준의 영어를 구사할 수 있게 된다.


번역 테스트에 임하는 자세


호주에 2월 말에 와서 6월까지 머물렀다. 6월 중순쯤에 졸업시험을 보고 한국으로 돌아가야 하는데 4월부터 틈틈이 잡사이트를 뒤져가며 취업을 준비했던 것 같다.

가급적 빨리 취업하고 싶었다. 졸업하고 바로 취업한다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었다.

그러던 중 한 철도 관련 회사의 인하우스 번역사 모집공고를 발견했고, 지원했다.

사실 아직 통역에는 자신이 없었는데 번역만 하는 포지션이라 부담이 덜했던 것도 사실이다. 생각보다 빠르게 인사 담당자에게 연락이 왔고 번역 테스트를 진행한다고 했다.

사실 그때가 4, 5월쯤이라 나는 2달 후에나 한국에 들어갈 수 있는 상황이었다. 내 상황에 대해 이야기하자 번역 테스트는 온라인으로 진행한다고 했다. 즉 번역할 내용을 이메일로 받은 후, 정해진 시간 내에 번역을 해서 다시 이메일로 회사 측에 보내는 방식이었다. 뭐 이런 방은 번역 에이전시 등에서도 많이 사용하고 있는 번역 샘플 테스트 방식이다.


번역 테스트지를 받았다. 받은 후 비슷한 내용의 영어 기사란 기사는 다 찾아보았다. 그 회사는 외국계 기업의 한국 지사였고 한국에서 매일매일 발행되는 자사 관련 뉴스를 번역해줄 번역사가 필요한 상황이었다. 그래서 번역 테스트의 내용도 신문기사를 번역하는 것이었다.

예전의 학원 선생님에게 들었던 조언을 떠올리면서 비슷한 내용의 신문기사들을 다 찾아보았고 표현들을 수집했다. 번역 샘플 테스트에 나온 문장과 비슷한 표현들을 원어민들은 어떻게 표현했는지 다 살펴보았고 가급적 원어민들이 사용한 표현들과 비슷하게 쓰려고 노력했다.

그렇게 번역 테스트지를 완성해서 보냈고, 합격 소식을 들었다.


일단 5월 한 달은 재택근무 형식으로 호주에서 번역을 해서 회사로 보내는 방식으로 일을 시작하고, 6월에 졸업하면 그때부터 한국의 사무실로 출근하라고 했다.

나로서는 거절할 이유가 없는 제안이었다. 마침 기숙사비 등을 내느라 모아뒀던 돈이 간당간당하던 참이었는데 5월부터 상당한 액수의 월급을 받을 수 있는 것이었다. 그것도 호주에서 졸업도 하기 전부터!

심지어 내가 처음에 제시한 연봉보다 높은 액수를 제안해왔다. 거기다가 전화통화를 하고 나서, 나의 말투와 목소리가 마음에 든다며... 나를 아주 마음에 들어하는 눈치였다. (이때 쌔~함을 느꼈어야 했는데...)


지금은 세월의 풍파를 맞아서 목소리도 예전 같지 않고, 말투도 예전처럼 상냥하고 밝지만은 않다. 하지만 30대 초반까지만 해도 목소리 좋다는 소리를 종종 들었었다.


그렇게 나는 졸업하기 전에 호주에서 한국으로 취업을 할 수 있었다.



----다음 편은 "금사빠는 연애뿐만 아니라 이직할 때도 위험하다."가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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