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셋째 날 #04) 제주에서는 고등어회를 먹어야 한다.
이미 비 맞으며 거의 20km를 걸었다.
버스를 타러 가는 길에 다리가 너무너무 무거운데 배차 시간을 보니 반쯤 뛰어가야 겨우 탈 수 있다.
'원래 가려고 했던 카페 [동백]에서 다음 차까지 잠시 쉬어가는 게 낫지 않을까?'
하지만 이렇게 쫄딱 젖어서 카페에 앉아 있는 건 그다지 좋은 선택은 아닌 것 같다.
‘놓치더라도 일단 가보자.’
하지만 일분 만에 벌써 후회가 된다.
1km를 뛰어가서 버스 탈 생각을 하다니 고등학교 체력장이 따로 없다.
조금 과장하자면 젖 먹던 힘까지 내서 뛰었다.
간신히 버스를 탈 수 있었고 식사는 생각도 안 날 정도로 지쳤다.
점심을 좀 늦은 시간에 많이 먹고도 했고.
바로 숙소로 돌아가 씻고 침대에 널브러져 있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 이미 저녁 식사를 예약해뒀다. 게다가 고등어회다.
제주 현지 사람이 추천하는 동네 맛집인 데다가 전에 한 번 가본 적이 있는데 너무 맛있었던 기억이 난다.
‘그래. 제주에 왔으면 고등어 회를 먹고 가야지!’
간당간당한 휴대폰 배터리를 충전하려고 하는데 라이트닝 케이블 꽂는 데 물이 들어가서 경고 메시지가 뜨더니 충전이 중단됐다. 카메라는 여전히 습기로 뿌옇다.
'오늘 너무 무식하게 돌아다녔구나.'
핸드폰이야 방수가 되니 말리면 될 텐데 카메라를 어떻게 수습할지 덜컥 걱정됐다.
'밥 먹고 생각하자.'
배가 고프면 부정적인 생각을 하기 마련이다.
이미 카메라는 젖었고 난 기술자가 아니다.
한 시간 정도가 지나 제주시외버스터미널에 돌아와서 식당까지 가기는 버스로 갈아탔다.
아침바다에 도착해 고등어회 소자와 소주 한 병을 시켰다.
손님들 중에 혼자 온 사람은 나뿐인 것 같았지만 회를 워낙 좋아하니 혼자서도 다 먹을 자신이 있었다.
그런데 웬걸, 역시 만만찮은 곳이다. 고등어가 두 겹 세 겹으로 쌓여 있어 먹어도 먹어도 계속 있다.
쌈 싸 먹는 걸 좋아해서 쌈을 싸 먹다 보니 배가 터질 것 같은데 아직도 남아 있다.
집에서는 가끔 회 한 접시 배달시켜서 거뜬히 혼자 먹는데 여기 고등어회는 끝이 안 난다.
결국 두 손 들고 아쉬움을 뒤로한 채 계산대로 갔다.
"잘 먹었어요?"
동네 사람 상대로 장사하는 곳이라 주인아주머니가 정겹게 물어보신다.
소주도 한 병 마셨겠다 기분이 좋아 나도 친근하게 말하게 된다.
"너무 잘 먹었어요. 근데 양이 어쩜 이렇게 많아요? 배가 찢어지게 먹었는데도 남았어요. 다음에 또 올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