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 야경이 나에게 던진 질문 : 삼십대 너는 어디 있었니?
야경 투어를 하며 바람이 점점 세게 불기 시작했다.
낮에는 그렇게 더웠는데 갑자기 추워지는 날씨에 가이드는 이제야 제 날씨로 돌아오는 중이라고 했다.
쌀쌀한 날씨이지만 야경을 보는 이들로 강변은 북적였다.
그중에서도 한국인들이 많았는데
듣기로는 한국 관광객이 유독 야경을 좋아한다고 했다.
야경을 좋아하고 멋진 야경을 사진에 담고 싶어 하는 것도 민족의 성향일까?
유독 우리나라 사람들이 야경 스폿에 그토록 매료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바닷가처럼 짠내와 갈매기들의 소리가 들리는 타워브리지가 잘 보이는 곳에서 사진을 찍었다.
런던 야경투어의 마지막 부분은 화이트 타워였다.
이 곳은 정복왕 윌리엄이 런던을 감시하려고 지었고 중세에 지어진 다른 많은 요새의 본보기가 되어 왔다는 점에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고 한다.
1603년까지 이곳은 왕궁이었으며, 반역죄를 저지른 이들을 사형에 처하는 처형장이 있었다고 블러드 타워라고 불린다고 했다. 슬픈 역사 속의 슬픈 영혼들이 있어서일까? 까마귀들이 떠나 버리면 탑이 무너질 거라는 전설이 있어서 이곳의 까마귀들 몇 마리는 날개가 잘려 있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절대 왕권의 이면에는 어디나 그러한 슬픈 역사들이 숨어있는 것 같다. 실제로 영국을 포함해 유럽 쪽은 수세기 동안 유지되는 건물들이 있어서 그러한 다양한 역사들을 눈으로 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나라와 도시, 동네 곳곳이 박물관인 셈이다. 그런 점에서 부러웠고 우리나라의 문화재 보존이 아쉬웠다.
강을 바라보고 있으니 한강이 떠올랐다. 삼십 대 처음 서울로 올라와 한강을 거닐며 보았던 스카이라인. 동행한 직장 동료들은 멀찍이 우뚝 솟은 건물을 가리키며 얼마가 올랐고 어느 유명인이 살고 앞으로 가격 상승에 대해 이야기했다. 여태껏 다양한 사람들과 한강을 걸어보았지만 찬란하거나 아픈 역사이야기로 심장을 뛰게 하는 건물을 찾아 이야기해본 적은 없었다. 그렇다고 그러한 건물이나 요소가 없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한 것들을 찾고 회자하는 이들이 적을 뿐이다.
그런데 그런 한강을 떠올리니 그곳을 거닐던 '삼십 대의 나'가 서서히 걸어왔다.
그곳의 수많은 나는 어떠했는지, 수많은 시간으로 가득 차 있었던 삼십 대는 나에게 무엇을 남겼는지....
야경투어 일행과 헤어지고 나는 잠시 검은 강가를 보며 서 있었다.
바람이 강하게 불었지만 야경투어를 한 것이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저 이 시간을 보내기 아까워 지나가는 이들을 보기도하고 바람 냄새를 맡아보기도 했다.
그런데, 그런 나에게서 몇걸음 떨어진 곳에 아까 나에게 다가온 또다른 내가 여전히 서 있었다.
그 ‘나’는
수많은 세월을 흐름 검은 템즈강과 수세기동안 인간의 굴곡진 삶이 찌든 화이트 타워의 후미진 구석, 야경을 즐기는 이 사람들을 보며 인생의 '시간'에 대해 생각해보라고 했다..
평일 하루 8~9 시간, 삼십 대 대부분의 시간을 직장에서 보냈다. 하지만 직장 생활을은 대부분 즐겁지 않았다. 하루 하루가 버거웠고 그저 버티는 일상이었다. 그것이 내가 인생을 살아가는 최선의 태도였다.
그러나 최근 안타깝게도, 즐기지 못했던 시간은 나의 인생에서 존재감이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즐긴다는 말은 단순히 '즐겁고 행복한'은 아니다. 그것은 온전히 그 시간, ‘현재를 온 몸으로 살았느냐’란 의미와 가깝다.
생각해보니 퇴근 후 대부분의 시간을 과거에 대한 후회나 미래에 대한 걱정으로 시간을 보냈다. 친구를 만나도 안주는 늘 과거와 미래였다. 혹은 '내'가 아닌 '타인'이었다.
그렇게 시간을 보낸 나는 스스로 왜 그렇게 살았냐며 다그치고 외면해왔다.
이 순간 나에게 다가온 또다른 나는 그만 화해하자는 표정으로 한참을 내 옆에 서성였다.
직장에서의 시간은 거의 기억에 없다.
그리고 퇴근 후 수없이 걸었던 동네, 강변에서조차 나는 버거운 하루하루에서 도피하고자 했다.
시간은 그저 주어졌다고 살아지는 것이 아닌 것 같다. 살아지는 데로 보내는 시간은 온전한 나의 시간이 되지 못했다.
그 시간은 검은 연기처럼 어디로 사라진다.
꼭 무언가를 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저 지금 주어진 시간에 온전히 살아보는 시간을 늘리는 것이 필요한 것이다. 나는 늘 마음대로 되지 않는 직장, 사람들 생각에 나에게 주어진 사소한 순간들을 놓치며 살았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튜브에서 나는 그러한 나에게 서서히 말을 걸었다.
그리고 작고 초라한 나의 손은 조금씩 작은 손을 내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