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시장이 냉각되어 있어서
거래는 많지 않지만,
요즘 2030 세대도 내 집마련에 적극적으로
관심을 가지고 매수를 고려하는
분들이 많다.
80년대 생인 내가 20대일 때,
라떼는 또래에 그런 생각을 하는 친구는 거의 없었다.
아예 없진 않았겠지만
친구들에게 집 구매에 대해 요즘처럼
공공연히 이야기하거나 대화를 나누는 광경은 거의 전무했다.
요즘에는 젊은이들이 모여
주로 하는 이야기에 내 집마련이
중요한 이슈다.
이런 걸 보면 확실히 세대차이를 느낀다고 할까?
인간이 집에 대해 관심을 갖는 것은 당연하지만
실제로 집을 구매한다는 것은 나에게 아주 먼 이야기처럼 보였다.
나는 인생 절반을 비혼으로 살아왔고
앞으로도 비혼으로 살 가능성이 높다.
더군다나 나는 한 직업을 평생 지속할 마음이 없다.
머지않은 날 희망퇴직이든 명예퇴직을 할 꿈을
꾸고 있다.
그런 나에게 내 집 마련은 사치이고
꿈꾸는 자체만으로 부담이었다.
하지만 그런 나도 집이 갖고 싶어졌다.
결정적인 계기는 고양이를 기르면서였다.
아니 고양이를 가족으로 받아들이면서였다.
다른 동물도 그렇겠지만
고양이는 철저히 영역동물이다.
고양이와 함께 하지 않을 때는
2년 심지어 1년 만에 이사를 해야 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혹자는 내가 역마살이 단단히
껴서?라고 했다.
자신이 공부한 사주명리학으로
나의 대운 세운을 살피더니
30대에는 이동운이 있으며
40대나 가까워서야 정착을 하게 될 거란다.--;
한 10년을 1~2년 단위로 이사하는
삶을 살다 보니 이사를 할 때 이전에
이사하며 싸놓은 박스를 그대로 옮기는
경우도 종종 벌어졌다.
하지만, 뭐 어떠랴.
나는 혼자고 그렇게 지낸들 누가 뭐라 할
이는 없으니 상관없었다.
그러나 고양이와 살면서
이사를 하는 과정 그 후에
고양이가 겪는 고통? 아픔?을
찐하게 겪고는 집을 구할 때
최우선으로 보는 것이 얼마나 오래 머물 수 있냐이다.
그런 간절함을 비웃듯
현실은 바뀌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 보니 혹자의 역마살 이론이 맞는지도;)
그 후로도 계약기간에 맞추어
심지어 계약 만료 전인데도
주인이 실거주 필요로
집을 내주고 새 보금자리를 얻어야 하는
상황에 내몰리게 되었다.
그때,
내가 데리고 있던 고양이는 (임시보호 중인 고양이까지)
총 4마리였다. ;;
고양이가 한 마리 일 때와 여러 마리 일 때
집을 구하는 건 아주 큰 차이가 있다.
다른 조건은 다 차치하고서
고양이가 여러 마리라는 이유만으로
임대를 거부하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그렇다고 미리 말을 안 하고 들어갈 수는
없는 일이다. (내가 주인이라도 화날 듯)
휴....!
사람이 결혼을 하고 아이가 생기면
내 집 마련을 하고 싶어 하는 심정을
백 프로 이해하게 되었다.
이 아이들(고양이 4마리)을 데리고
나는 어디로 가야 한단 말인가?
하필 그때는 눈도 내리지 않는
1월의 깡추위가 기승을 부리고 있었다.
나는 꽁꽁 얼은 창밖을 보며 다짐했다.
'빚을 내서 집을 사자!'
라고 말이다.
그렇게 나는 인생 경로에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은
하우스푸어의 길을
검색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