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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로네의 맥스트러플

젤다의 전설 - 브레스 오브 더 와일드 (8)

by 김엘리

말이 이끄는 대로 신나서 달리다 보니, 아차 싶었다. 나는 쌍둥이산을 찾아가야 하는데...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 거지? 당황한 마음에 시커 스톤의 지도를 꺼냈다. 내가 가야 할 목표 지점과는 점점 멀어지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말을 타고 달리며 마음껏 하이랄의 풍경을 만끽하고 있었다. 쌍둥이산을 지금 꼭 찾아가야 할까? 어차피 달리다 보면 가게 되는 것은 아닐까? 상쾌한 바람이 내 머리카락을 간질이며 지나가고, 말발굽 소리에 맞춰 들리는 새들의 지저귐은 음악처럼 들렸다. 솔직히 즐거웠다. 아직 말은 내 뜻대로 움직이지 않고 있어서 고삐를 단단히 잡고 이리저리 말을 몰아야 하긴 했지만, 승마는 재미있는 일이다.


잠시 쌍둥이산 생각은 접어두기로 했다. 그런데, 지도를 보다 보니 아까 읽었던 '세나의 뜬소문 3호'가 생각났다. 고원의 마구간에서 멀지 않은 곳에 '마용의 샘' 이란 곳이 있는데, 이곳의 지명은 그 뜬소문에 실려 있던 장소 '말의 화신의 신비한 샘'을 떠올리게 했다. 거기다가 지금 달려가고 있는 길에서 멀지 않았다. 고대의 마구가 이 근처에 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나는 달리던 말의 고삐를 다른 방향으로 틀어 마용의 샘 쪽으로 들어갔다.

바위 절벽이 커튼처럼 사방을 둘러싸고 있는 골짜기라고 해야 할까, 마용의 샘은 참 독특한 장소였다. 샘은 정말로 투명하여 물 속이 훤히 비쳐 보였는데, 그 깊은 샘 안에는 처음 보는 신기한 식물과 꽃들이 가득했다. 양갈래로 흐르는 물이 만나는 한 가운데에는 아주 커다란 초록 봉오리가 하나 떠 있었다. 향기로운 풀냄새와 함께 하늘로 올라가는 바람의 기운이 느껴지는 곳이라 나는 그 주변을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분명... 이 주변에 고대의 마구가 있을 텐데..."


여기저기를 살펴보다 봉오리 뒤편, 바닥에서 바람이 새어 나오는 어느 구석에서 상자 하나가 있는 것을 발견했다! 분명 이 상자일 거야...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상자를 열었더니, '고대의 안장'이 그 모습을 드러냈다. 야호!

어떻게 만들었는지 알 수도 없고 짐작도 가지 않지만, 아마도 시커라는 사람들이 만들었을 고대의 안장을 두 눈으로 보니 신비하다는 생각도 들면서 놀라웠다. 이 안장을 말에 얹은 후, 휘파람을 불면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는 말이라도 내가 있는 곳으로 불러낼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한다. 그러니까, 말을 워프시키는 기능이라고 해도 좋을 것 같았다. 당장 시험해보고 싶지만, 안장은 마구간에 가야 바꿀 수 있으므로 기회가 생기면 시도해 보기로 하고 잘 챙겨 넣었다.


그렇게 마용의 샘을 돌아 나오려는데, 초록 봉오리가 살짝 움직였다. 음? 내가 뭘 잘못 봤나? 아니면 꽃이 피려고 하는 걸까? 가만히 봉오리를 몇 분 정도 지켜보았지만 움직임이 없길래 다시 발걸음을 돌리는데, '으음...' 하는 소리가 들렸다. 뒤를 돌아보니 아무도 없고...


혹시 봉오리 안에 꽃이 아니라 다른 것이 있는 건가 싶어 봉오리를 조사해 보기로 했다. 봉오리에 가까이 다가가 둘러보는데, 지금까지 들어본 적이 없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처음에는 뭐라고 하는지 알 수가 없었는데, 그의 목소리가 점점 명확해졌다.


"...이여... 소년이여..."

조금 더 귀를 갖다대니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달라며 부탁을 한다.


"...내... 아니, 나의 이름은 마용...

그대...아니...너, 애마를 잃고 슬퍼한 적은 없어?"


애마를 잃고 슬퍼한 적이라.... 기억은 나지 않지만 분명 있을 것 같았다. 100년전의 나에겐 분명 아끼는 말이 있었을 거다. 그 재앙 가논과의 전쟁에서 많은 사람들이 세상을 떠났듯이 말도 희생되었을테지. 그런데 이 마용이라는 존재는 뭐길래 이런 이야기를 꺼내는 것일까...


"내가 힘을 되찾으면 손을 써 줄 수 있는데..."


손을 어떻게 쓴다는 거지? 하고 생각하는데, 그 신비한 목소리는 이야기를 이어갔다.

"그러니 부탁이야... 나에게 약간의 루피를 베풀어 주지 않겠어?"


약간의 루피??? 돈을 달라고? 눈이 휘둥그레지는데, 이 신비한 목소리가 말하는 금액은 내 상상 이상이었다.

"1,000루피만 있으면...충분...해... 얼른...."


1,000루피가 어디 땅에 굴러다니는 돈이라도 된단 말인가... 어이가 없긴 했지만 애마에 대한 기억만 난다면 잃었던 말에 대해 어떻게 해 준다는 것인지 더 묻고 싶긴 했다. 그러나 내게는 돈도 충분치 않았다.


"내가 ... 원래대로 돌아가면... 말을 사랑하는 너에게도 도움이 될 거다..."


말을 사랑하는 사람을 알아채는 이 신통력... 보통의 존재는 아닌 것 같았다. 혹시나 해서 주머니를 다시 보았지만 내 수중에 있는 돈은 고작 400루피 정도? 그런 생각을 골똘히 하고 있는데, 갑자기 봉오리 한 구석이 쓰윽 열리더니 짙은 갈색의 커다란 손이 나왔다. 그 손은 나를 향해 손바닥을 벌리며, 돈을 달라고 했다.


"...자아... 갖고 있지? 얼른 루피를 건네줘...내가 힘을 되찾기 위해선... 1,000루피가 필요하단다...."


나는 일단 수중에 있는 모든 돈을 긁어 그 손바닥에 올려놓았다. 1,000루피가 되진 않지만 이게 가지고 있는 전부라고 했다. 그랬더니 그 손은 손가락을 쥐었다 펴 보고 내게 다시 돈을 돌려주었다.


"흐음... 돈이 모자라는군... 안 돼... 1,000루피가 생기면 다시 찾아오렴...."

그러더니 손은 다시 제자리를 찾아 돌아가고, 벌어진 봉오리는 닫혔다. 뭔가 돈을 밝히는 존재인 것을 보니 신통력이 있기는 할까 의심이 들었다. 하지만 그렇다고는 해도 확실하지는 않으니... 언젠가 다시 찾아올 일은 있을까 생각을 하며 나는 마용의 샘을 돌아 밖으로 나왔다.


다시 말을 타고 가면서 마신호를 건너던 순간이었다. 말은 마신호 위로 건너가지 않고 다른 길로 가려고 했다. 말을 달래가며 고삐를 잡아당기는데, 그러다 다리에 잘못된 방향으로 들어서게 되어 우리는 다리아래로 떨어져버리고 말았다. 물에 빠진 순간 말이 걱정되어 얼른 수면 위로 다시 올라왔다. 주변을 돌아보니 말은 아주 여유롭게 수영을 하여 이미 물가 가까이 도착해 있었다.


말을 데리고 위로 올라갈 수 있을까 이리저리 길을 살펴봤지만, 말이 쉽게 올라갈 수 있는 길은 보이지 않았다. 어떻게든 데리고 가고 싶었는데... 아쉬운 마음에 나는 말에게 사과 몇 개를 더 주고 등을 쓰다듬어 준 후 혼자 절벽을 기어올랐다. 마구간에 가서 물어보면 너를 구출할 방법을 알려주겠지? 조금만 기다려!

다시 혼자가 되어 길을 떠났다. 절벽을 올라와 보니 작은 바위가 일정한 패턴을 그리며 놓여있는 초원이 나왔다. 코로그 녀석이 숨어 있으려나 싶어 바위가 빠진 빈 자리에 다른 바위를 찾아 옮겨두었다. 그랬더니 펑! 하는 소리와 함께 또 다른 코로그가 나와서 이상한 냄새가 나는 그것을 준다.


코로그를 등지고 뒤를 돌아보니 건너편의 나무들은 아주 다르게 생겼다. 그 나무는 열대지방에서 주로 보이는 종류인 것 같았다. 우거진 숲 위에 붉은 기둥이 뻗어 있는 것이 보이기에 망원경으로 살펴보니 지도를 얻을 수 있는 또 다른 탑을 확인할 수 있었다. 망원경으로 사방을 살피다 왼편을 바라보니 앗? 쌍둥이산이 살짝 보였다. 지도와 풍경을 번갈아 보고 있으니 지금까지 쌍둥이산 주변을 크게 빙글빙글 돌고 있는 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했다.


야자수로 보이는 나무의 숲으로 건너가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에 부지런히 뛰었다. 언덕을 내려가 다시 절벽을 오르기를 여러 번, 숲속에 들어갔다. 확실히 온도가 올라간 숲속은 햇볕이 잘 들어오지 않을 정도로 우거졌고 습했다. 그래도 사람의 왕래가 있는 길을 금방 찾았다. 길을 따라 걸어가는데 뭔가 풀을 뒤지는 바스락 소리가 들려 나는 무기를 뽑아 들고 전투 준비를 했다. 아니나다를까, 왠 젊은 여성 2명이 보코블린에게 쫓기고 있었다.


나는 재빨리 그들의 전투에 끼어들었다. 머리가 짧은 여성은 보코블린을 막아보려고는 했으나 무기가 없어서 이리저리 피하고 있었고, 다른 한명은 이미 바닥에 쓰러져 기절해 있었다. 나는 짧은 머리 여성을 노리는 보코블린 뒤로 돌아가 창으로 녀석을 크게 찔렀다. 보코블린은 이내 나를 보고 공격해왔지만, 짧은 수는 쉽게 읽혔다. 보코블린 두 마리를 모두 해치우고 다친 곳은 없는지 짧은 머리의 여성에게 말을 걸었다.

그녀는 다행이 다친 곳은 없어 보였다. 다행이라고 고개를 끄덕이며 뭘 하고 있었냐고 물었더니, 그녀는 약간 불만이라는 듯한 표정으로 버섯을 캐고 있었다고 말했다. 그녀의 이름은 메구라고 했다.


"우린 여기서 버섯을 캐고 있었는데 갑자기 몬스터의 습격을 받았어..."

그러더니 우리 뒤에서 기절했다 깨어난 사람 쪽을 보면서 툴툴거렸다.


"이건 맥스트러플을 찾을 때 까지 집에 안 간다는 언니 잘못이야!"


단발머리를 한 또 다른 여성의 이름은 나츠. 메구의 언니라고 한다. 나츠는 나에게 메구의 말은 신경쓸 것 없다고 말했다.


"찾고 있다는 그 맥스트러플...? 이 무슨 버섯인데?"

내가 묻자, 나츠는 맥스트러플 찬양을 시작했다. 맥스트러플은 이 지방에서 볼 수 있는 매우 희귀한 버섯으로, 색이 매우 짙다고 했다. 하지만 한 번 맡으면 잊을 수 없는 독특한 향이 있고 효능도 매우 좋기 때문에 아주 매력적이라고 강조했다.


"메구는 찾기 힘들다고 무모하다고만 하지. 하지만 그 매력적인 버섯 앞에서는 누구든 무모라는 말조차 잊을걸?"

그러더니 다시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커다란 나무 밑둥 아래에서 맥스트러플을 뒤지기 시작했다. 메구가 계속 투덜댔지만 그럴 때마다 시끄럽다고 하면서.... 사이 좋은 자매인 듯 하면서도 아닌 듯... 여자들의 마음은 잘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몬스터에게 습격을 받으면 안 될 텐데.... 약간 걱정이 되었지만, 나도 갈 길을 가야지 싶어 다른 방향으로 돌아 숲 안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그녀들이 버섯을 찾고 있는 곳과 다른 방향의 나무 아래에 뭔가 까만 색의 호박처럼 생긴 열매가 달려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뭔지 모르겠어서 일단 열매를 땄는데, 생전 처음 맡는 독특한 향에 머리가 어질어질할 지경이었다. 시커 스톤의 알림을 보니 바로 그것이 '맥스트러플'이었다!

맥스트러플은 상당히 귀중한 버섯 중 하나이며 땅속에서 자라난다는 특이한 버섯이다. 요리에 사용하면 생명력의 회복치가 매우 높다는 설명에 '오' 감탄했다. 깊은 땅 속 흙에서 나는 것 같은 묘한 향은 농도가 짙었는데, 과연 요리를 하면 어떤 맛이 날까?


맥스트러플을 하나 발견하고 돌아보니 그 주변에 서너 개가 흩어져 자라고 있었다. 이 소식을 메구와 나츠에게 알려주어야 할 거 같아 그녀들이 버섯을 찾고 있는 장소로 다시 돌아갔다.

"저기... 여기 맥스트러플이..."


나는 나츠에게 가서 말을 걸었는데, 나츠는 내 말을 듣기는 하는 건지 맥스트러플을 뒤지느라 정신이 없어 보였다. 맥스트러플을 꼭 찾아내서 돈을 벌 거라는 말을 되풀이했는데, 그 말을 들은 메구는 벌떡 일어나서 이렇게 외쳤다.


"잠깐, 언니! 나까지 돈에 눈이 먼 사람인 것처럼 말하지 마!"


메구에게 가서 말을 걸어보았지만, 메구는 언니와 함께 버섯을 찾기 보다는 다른 여행을 하고 싶었을 뿐이라고 말했다. 그저 빨리 집으로 돌아가고 싶다고만 해서 내 말을 들을 것 같지 않았다.


나는 그녀들을 바라보다가, 메구와 나츠의 사이에 맥스트러플 하나를 떨어뜨리고는 다시 길을 나섰다. 향이 아주 독특하므로 금방 알아차릴 것도 같은데, 다시 돌아보며 그들을 살펴봐도 메구와 나츠는 맥스트러플 향을 모르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관심이 없었다.


"정말 등잔 밑이 어둡군..."

그들을 뒤로하고 길을 걷다 보니 어디선가 시원하게 물이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폭포가 멀지 않은 모양이었다. 폭포 소리가 나는 쪽으로 길을 쭉 걸었더니 숲 사이로 연기가 피어오르는 것이 보였다.


'혹시 또 다른 마구간일까?'

나의 예상은 보기좋게 적중했다. 이번에 찾은 마구간은 '레이크 사이드 마구간'. 이 마구간에 이야기하면 마신호에서 떨어진 내 말을 찾아올 수 있겠지? 지난 번 마구간에선 잘 쉬지도 못했는데, 여기선 좀 쉬어가야겠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마구간 입구로 다가가는데 왠 할아버지가 내게 말을 걸었다.


"이봐 형씨... 지도 갖고 있어?"

음? 이 할아버지는 왜 지도를 찾지? 일단은 있다고 말해두었는데... 그러자 이 할아버지, 전혀 의외의 이야기를 시작했다.


"여기서 북쪽을 보면 쌍둥이산이라고 있지?"

음? 여기서 북쪽이라고??? 그렇구나... 북쪽이구나... 잘 몰랐지만, 할아버지의 말에 그저 고개만 끄덕였다. 나는 쌍둥이산 방향으로 간다고 숲을 뒤져 왔지만, 그게 아니라 반대로 왔다는 것을 확인한 순간이었다. 할아버지는 나를 바라보며 이야기를 계속했다.


"형씨 혹시, 용에 대한 전설을 알고 있나? 그 쌍둥이 산과 관련된 용신님 말일세..."

쌍둥이 산과 관련된 용신이라니? 나는 내가 찾아가야 할 지역과 무언가 연관된 이야기인가 싶어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자세히 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할아버지는 몸을 좀 더 굽혀 내게 가까이 다가와 목소리를 낮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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