젤다의 전설 - 브레스 오브 더 와일드 (9)
"그 쌍둥이산이 예전에는 하나의 산이었다더라고 하네... 용신님이 산을 쪼개서 길을 만들었기 때문에 저런 모양이 되었다는 전설이 있어..."
용신님이 산을 쪼개 길을 만들었다면, 쌍둥이산이 갈라진 틈에는 길이 있다는 이야기로구나... 그런데, 쌍둥이산과 관련된 이야기는 거기서 끝이었다. 할아버지의 이야기는 약간 두서가 없었지만, 끝까지 말을 들어보니 할아버지가 하고 싶었던 말은 필로네 지역의 플로리아호에 나타난다는 용신에 대한 것이었다. 할아버지의 말을 이어 보면 쌍둥이산에 길을 냈던 커다란 용신은 남쪽 필로네로 내려와 플로리아호에 나타난다는 이야기인 것 같았다.
"이 플로리아호에도 수면에 비친 커다란 그림자를 봤다는 소문이 있다구...어디까지가 진짜일까? "
그 소문이 진짜인지 아닌지 확인해 보라는 것일까? 용신은 누구일까? 할아버지에게 용신은 뭐냐고 물어봤지만, 할아버지는 플로리아호의 그림자를 확인해 보라는 아리송한 말만 되풀이했다. 이런....
레이크 사이드 마구간 앞에는 특이하게 망루가 있었다. 망루는 꽤 높아 보였다. 망루 주변에서 하늘을 바라보는데, 마구간 직원이 인사를 건넸다. 캄포라고 하는 그 직원은 이 주변의 폭포와 경치가 참 멋지다고 말하며 얼마든지 구경하라는 호의를 보여주었다. 그런데 그가 돌아서려는 내게 한마디 더 덧붙이기를,
"그런데 저 큰 폭포 위에 기묘한 무엇인가 있어...저 망루의 사다리로 올라가서 망원경으로 올려다 봐!"
아까 할아버지도 그렇고, 캄포도 그렇고... 자꾸 플로리아 호수 이야기를 하네...뭘까... 나는 일단 캄포의 말대로 망루를 올라갔다. 사다리를 한칸 한칸 밟고 조심스레 올라가 망원경을 켜서 폭포 위편을 살펴보는데, 캄포의 말대로 폭포 주변의 절벽 위에 무언가 솟아오른 돌...같은 것이 보였다. 거리가 멀어 보여서 일단은 마크를 해 두고 망루에서 내려왔다.
마구간 직원에게 마신호에 두고 온 말에 대해 물어보니 말을 불러올까요 하고 내게 물었다. 부탁한다고 하자 잠시 기다리라고 하더니 말을 데리고 왔다! 놀라운 마구간의 서비스였다. 말을 데리고 가냐고 묻길래, 일단은 피곤하니까 말을 맡기겠다고 했다. 나도 좀 자자! 마구간에 들어가서 숙박을 청했다. 마구간 주인은 침대 종류 중 하나를 고르라고 했는데 졸려서 가장 저렴한 침대를 선택했다. 그 다음엔 빈 침대 아무곳에나 벌렁 누웠고, 별 기억이 없다. 눕자마자 잠들었던 것 같다.
낮까지 푹 자고 일어나니 상쾌했다. 장소가 달라지니 주변에서 들리는 새 소리도, 분위기도 꽤 다르다 느껴졌다. 마구간 안에는 나 외엔 아무도 없었다. 일단 밖으로 나와 주변을 탐색해보기로 했다. 왜냐하면, 사당 센서가 반응하는 지점이 있었기 때문이다.
사당 센서의 소리가 강해지는 방향을 찾아 이리저리 마구간 주변 숲을 헤매고 다녔다. 그런데, 이 주변에는 새로 보는 소재들이 많았다. 아름드리 나무들도 지금까지 봤던 나무들보다 훨씬 크다. 큰 나무 사이에서는 장수풍뎅이도 새롭게 찾을 수 있었는데(안타깝게도 모두 놓쳤다), 그 옆을 지나치다 낮은 풀 아래 노란색의 과일이 주렁주렁 달려있는 걸 발견했다. 뭐지? 하고 따 보니 '칼날바나나'라고 한다.
칼날바나나는 그 과육에 근력 증강 효과가 있어서 요리를 해 먹으면, 공격력이 높아진다고 한다. 공격력이 높아진다는 소리에 그냥 한 번 먹어봤는데 달콤하기만 하지 별 효과가 없었다. 반드시 요리해서 먹어야 하는 재료구나 싶어 잘 챙겨 두었다.
그 외에 '칼날초'라는 풀도 찾았다. 칼날초 역시 칼날바나나와 비슷한 효능이 있는 풀이라고 한다. '맥스두리안'과 '맥스순무'라고 하는 식물도 찾았는데, 맥스순무는 보기엔 그냥 예쁜 꽃인 줄 알았다. 뿌리에 달린 순무를 요리해 먹으면 생명력을 최고로 끌어주는 효과가 있다고 한다. 맥스두리안은 겉보기엔 단단한 껍질이 뾰족뾰족해서 어떻게 먹지 난감했다. 하지만 요리하면 맥스순무와 비슷한 효과가 있다고 한다. 필로네 지방에는 좋은 효능이 있는 재료들이 많아서 놀랐다.
이러한 소재들을 모으다가 암벽 사이에서 다소 허술한 돌벽을 발견했다. 폭탄을 놓아 터트리면, 새로운 길이 생길 것 같아 타이머 폭탄을 사용했다. 쾅! 하고 폭탄을 터뜨려 보니 짐작이 맞았다. 동굴 같은 것이 생겼길래 와-하고 들어갔더니, 사당이 그 안에 있어 놀랐다. 주변에 사당도 안 보이는데 센서가 너무 시끄럽게 울려 왜 이러나 이상하게 생각했건만...다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앞으로 사당이 보이지 않는데도 센서의 반응이 높다면, 숨겨져 있는 장소가 있는지 잘 찾아봐야 할 이유가 생겼다.
이번에 들어간 사당은 '사이.우토의 사당'이었는데, 기울어지는 시소를 잘 타고 넘어가야 하는 사당이었다. 보물상자 2개 중 한개를 열지 못하고 그냥 통과해서 아쉬웠다. 어쨌든 극복의 증표를 얻고 나왔는데 비가 내린다. 얻은 소재로 물약도 만들고 요리를 하려고 했더니... 일단 비를 피하자 싶어 마구간 안으로 들어왔다가 '세나의 뜬소문 6호'를 보게 되었다.
지난번에 방문했던 고원의 마구간에서도 세나의 뜬소문이 있었는데.... 여기도 있는 것을 보니 내용이 궁금해졌다. 뜬소문은 사실 믿을 것은 못 되지만, 지난 번 뜬소문 덕분에 고대의 안장을 얻었으니까... 재빨리 책장을 넘겨 내용을 보았다.
< 세나의 뜬소문 6호 >
옛날 옛적에 어떤 솜씨 좋은 사냥꾼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 사냥을 하고 돌아오는 길에 사냥꾼은 어둠 속에서 움직이는 빛을 발견하고, 자기도 모르게 활로 쐈습니다! 그러자 그곳에 루피가 떨어져 있었습니다. 사냥꾼은 그 후, 빛을 발견할 때 마다 활을 쏴서 큰 부자가 되었습니다.
"최근 숲속에서 [빛나는 푸른 토끼]를 봤다는 사람이 속출하고 있다!!! 바로 내 여섯 번째 감이 눈을 뜨드라! 이 옛날 이야기에 나오는 빛은 분명 [빛나는 푸른 토끼]일 끼다! 이건 뭐 추천도 MAX다!"
음... 뭔지 모르겠지만 숲속에서 빛나는 토끼를 보면 화살로 맞추라 이 말이구나... 화살을 맞으면 루피를 떨어뜨리는 토끼라... 신비하고 재미있는 이야기다. 하이랄 왕국은, 원래 이렇게 신기하고 믿기 어려운 숨겨진 이야기가 많은 곳이었나?
시작의 대지에서 탑을 움직인 이후 빛나기 시작한 사당들... 그 사당마다 용사를 기다리며 앉아 있는 각각 다른 도사들... 도사들마다 다른 방법으로 만든 시련들... 신비한 푸른 빛이 가득한 공간... 믿기 어렵지만 떠돌아 다니는 소문들... 아름답게 빛나던 마용의 샘 주변의 식물들... 기묘하게 생긴 초록 봉오리... 쌍둥이산을 둘로 갈라 나누었다는 용신....
내가 기사로 활동하던 100년 전에도 이러한 장소에 대한 이야기들은 하이랄 사람들 사이에서 떠도는 소문이었을지 궁금해졌다. 잠들기 전 기억을 다시 일깨울 수만 있다면... 알 수 있지 않을까 싶었지만, 기억은 어떻게 찾을 수 있을지 지금으로서는 알 수 없으니...
세나의 뜬소문을 읽고 이런 저런 생각을 하는 사이, 비가 그쳤다. 밖으로 다시 나와서 플로리아 호수가 있는 쪽으로 갔다. 쌍둥이산 방향은 아니었지만, 캄포가 말한 그 이상한 봉우리가 궁금하기도 했다. 가는 길에는 다소 위험해 보였지만, 넓은 나무 판자로 만들어진 큰 다리가 있었다. '플로리아 다리'라는 그 위를 터벅터벅 걷는데, 반대편에서 오는 한 무리의 사람들을 만났다.
흰 단발머리의 여성은 내게 요리하는 방법을 물어보았고, 옆에서 당나귀를 끌고 오는 츄민은 나크시 마을에서 오는 상인이라고 했다. 츄민이 팔고 있는 물건들을 보았는데, 특이한 생선이 몇 개 있었다. 식재료는 수중에 많이 있어서 나크시마을에 가면 직접 구경해야겠다는 생각에 츄민의 물건을 사지는 않았다. 츄민은 내게 나크시 마을의 위치를 알려주었다. 조금만 더 동쪽으로 이동하면 바다가 나오고, 그 바닷가에 있는 마을이 나크시 마을이란다. 사람들이 모여 살고 있는 마을의 모습이 궁금했다. 혹시 과거의 나를 알고 있는 존재가 있는 건 아닐까? 일단, 이상한 봉우리부터 가 본 다음 마을도 가봐야지 마음먹었다.
다리를 건너가다, 아까 봐 두었던 봉우리 쪽으로 가려면 산 위로 올라가야겠기에 등산을 시도해 보았다. 그러나 계속 비가 내려 등반은 불가능했다. 필로네 지역의 산들은 경사진 길이 별로 없이 암벽등반이 필수인데, 비가 내리니 안 그래도 미끄러운 벽이 더 미끄러워졌다. 그래서 비가 올 때는 암벽등반이 불가능하다는 걸 배웠다.
다른 방법이 없을까 고민하며 비가 오지 않는 지역을 찾아 필로네 지역을 잠시 벗어났다. 그러다 필로네의 산으로 이어진 산을 하나 찾았다. 그 지역에도 비가 가끔 내렸지만, 거긴 암벽 외에 비탈길이 있어 등산을 할 수 있었다. 얼마나 산을 올랐을까... 오르고 올라 평지로 이루어진 능선에 오르니 멀리 바다가 보이고, 필로네의 깎아지른 벼랑들이 내 발 아래에 있었다. 시간은 좀 걸렸지만, 여기서 패러세일을 타고 내려가면 그 특이한 봉우리에 갈 수 있을 것 같아 뿌듯했다.
내려가기 전에 잠시 필로네 지역의 우거진 숲을 멀리서 바라보았다. 멀리서 보니 노을이 지는 모습이 장관이었다. 여기선 이렇게 해가 보이는데... 내려가기만 하면 낮은 구름이 끼어 있어 비가 계속 오는 필로네 지방이라니. 기후의 변화가 이다지도 심할 수 있을까! 심호흡을 한번 하고 패러세일을 펼쳐 산 아래로 내려갔다. 아래쪽에는 비가 다시 내리기 시작하여 발 아래의 시야가 흐렸다.
지도에 표시해 둔 지점을 찾아 날아가는데, 숲 사이에서 음악소리가 흘러나왔다. 사방에 번개가 치고 있어서, 번개를 맞지 않을까 긴장하고 있었는데... 이 궃은 날씨에 왠 음악이...? 소리를 쫓아 아래를 여기저기 살펴보다 좌악좌악 내리는 빗줄기 사이로, 키 큰 나무 앞에 왠 커다란 새가 악기를 연주하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응? 저 음악소리는 저 새가 연주하는 소리인 건가... 나는 패러세일을 접으며 그 앞에 착지했다.
가까이서 보니 연주를 하는 이는 그저 큰 새가 아니라, 새를 닮은 인간이었다. 그는 키가 컸고, 날개팔로 악기를 든 채 연주하고 있었다. 그가 든 악기는 가로로 늘어났다가 줄어들었다 하며 소리를 냈다. 능숙하게 울려퍼지는 멜로디는 발랄한 것 같기도 했지만 슬픈 구석도 있었다. 연주를 열심히 하는 그와 눈이 마주쳤다.
그는 나를 보더니 깜짝 놀라며 연주를 멈추었다.
"음? 이렇게 비가 오는데 어떻게 이런 곳까지... 여행자님이신가요... ?"
그러더니 나를 잠시 이리저리 살펴보고는 한번 더 놀랐다.
"....음? 허리에 차고 있는 그건......"
시커 스톤을 알아보는 건가 싶어 나는 그에게 "이게 뭔지 아세요?" 라고 시커스톤을 가리켰다. 그런데 그는 오히려 사과의 말을 건넸다.
"......죄송합니다. 아무것도 아닙니다. 초면에 실례했습니다."
매우 정중한 그의 태도에 나는, 멋진 깃털 장식을 달고 이런 곳에서 연주를 하는 그가 궁금해졌다.
"당신은....?" 하고 운을 뗐다.
그러자 그는 의외라는 듯 조금 놀랐지만 차분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음? 리토족을 처음 보십니까?"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그는 자신을 소개했다.
"저는 리토족 음유시인 카시와라고 합니다. 기억해 주십시오."
그리고는 말을 계속 이어갔다.
"저는 세계 각지를 여행하며 고대의 노래를 찾고 있습니다. 당신은 시련을 극복하고 재앙을 잠재웠다는 용사에 얽힌 고대의 노래를 알고 계십니까?"
용사에 얽힌 고대의 노래라... 카시와는 하이랄 왕이 말했던 고대의 용사 전설을 찾아 다니는 건가... 내가 모른다고 하자 그는 고대의 노래에 대해 좀 더 설명해 주었다.
"고대의 노래는 수많은 시련을 극복한 용사를 칭송하는 노래라고 합니다. 여러 지역에 고대의 노래가 전해지고 있는데요...이 지역에서도 시련을 극복한 용사의 노래가 전해지고 있습니다. 어떻습니까, 이 지역에 전해지는 고대의 노래...들어 주시겠습니까?"
내가 기꺼이 듣겠다고 하자 그는 얼굴에 매우 기쁜 미소를 띄었다.
"감사합니다! 그럼 잘 들어 주세요......"
그는 천천히 다시 악기를 연주하면서 시를 읊었다.
"고대의 용사...
하늘의 번개를 이끌어...
바위에 잠든...
용사의 시련을 향한 길을 연다..."
그는 그러면서 내가 찾아가려 했던 봉우리 쪽을 바라보았다. 봉우리 위에서는 번쩍번쩍 번개가 치고 있었다. 연주를 마친 그는 나의 표정을 살피더니, 내 기분을 알아챘는지 미소를 띄며 다시 말을 이어갔다.
"무슨 수수께끼 같지요...? (후훗) 안타깝게도 저는 어떤 의미인지 알 길이 없습니다만..."
무언가 더 설명을 해 줄 것 같았지만, 카시와는 뭔가 이야기하는 대신 나에게 축복을 빌어주었다.
"당신의 여행길에 빛이 함께하기를..."
정말 무슨 소리인지 알 수 없는 노래였다. 고대의 용사는 하늘의 번개를 이끌어... 바위에 잠든 시련을 연다? 나는 다시 연주를 시작한 카시와 앞에서 잠깐 생각하다가, 번개가 치고 있는 봉우리 쪽으로 갔다. 봉우리에 가까이 가니 하얀 무늬가 있는 커다란 바위가 있었다. 노래의 내용을 생각해 보면, 시련을 연다는 말은 이 주변에 사당이 있을 거란 뜻이고, 바위가 번개를 맞으면 그 사당이 나타날 것 같았다. 그런데...번개를 바위로 어떻게 유도하지?
번개를 이끌려면 쇠붙이가 필요하다. 쇠로 만든 물건이라면...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무기 중에서 있을 것 같아 시커 스톤을 열어보았다. 다행히 양손검 하나가 있어 나는 검을 꺼내 바닥에 놓았다. 그리고 마그넷 캐치로 검을 들어 툭 솟아있는 바위 위에 올리려고 애썼다. 그런데, 검을 꺼내놓자마자 번개의 영향을 받아 지지직 빛을 내던 검은 내가 바위 위에 검을 올려놓기도 전에 번개를 맞았다! 얼마나 큰 번개인지, 바로 앞에서 보니 그 소리와 위력에 귀가 멍멍하고 눈이 혼란스러웠다.
어쨌든 검이 번개를 맞으면서 바위가 으스러졌다. 떨어뜨린 검을 찾고 돌아보니 믿을 수 없게도, '류카.나타의 사당'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고대 용사의 노래대로 시련이 나타난 것이었다.
비가 너무도 많이 내리므로, 망설일 것도 없이 사당 안으로 들어갔다. 시커 스톤을 인증하고 들어갔더니 - 지금까지 방문했던 사당과는 모습이 많이 달랐다. 들어가자마자 바로 도사가 앉아 있는 성스런 공간이 나를 마주보고 있었다.
"사당을 찾은 자여, 나는 큐카.나타... 시련을 이겨 내고 여기까지 온 것을 환영하노라..."
축복의 사당이라 일컬어지는 이곳에는 상자를 얻기 위해 힘들일 필요 없이, 도사 앞에 보물 상자가 놓여 있었다. 상자를 열어보니 '러버 타이즈'라는 옷이 들어 있었다. 이게 뭐지? 싶은데 시커 스톤에 알림이 뜬다. 고무라는 특수한 소재로 제작된 옷인데, 현대의 기술로는 만들 수 없는 귀중한 것이라고 한다. 번개의 영향을 막아주는 내전 효과가 있는 옷이다. 번개를 막아준다니! 필로네 지방에서는 꼭 입어야 할 옷이구나 싶어 얼른 옷을 갈아입었다.
큐카.나타에게서 극복의 증표를 받아 밖으로 나왔다. 왠일로 비가 그치고 하늘이 맑게 개었다. 사당에서 나와 뒤를 돌아보는데, 음악 연주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카시와가 있었던 장소에 가 보았지만 그는 어디론가 가고 없었다.
그는 끝내 나를 모른척했지만, 비가 그렇게 내리는데도 카시와가 이 곳에서 연주를 하는 이유는 분명했다. 시커 스톤을 들고 있는 사람(용사)에게 고대의 노래를 전해주는 역할을 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시련을 극복한 용사의 노래를 들어야, 재앙에 맞설 용사도 시련에 도전할 수 있을 테니... 그렇다는 이야기는... 내가 잠에서 깨어나자마자 시커 스톤을 전해 받은 순간부터, 나는 용사의 역할을 해야 한다는 ... 뜻이 아닐까?
그렇게 생각하니 답답했다. 마음이 무거워졌다. 아직 뭐가 뭔지 모르는 내가 그 역할을 맡을 수 있을 것인가!
나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하늘에는 쌍무지개가 떴다. 쌍무지개를 바라보다, 레이크 사이드 마구간 주변으로 워프했다. 말을 타고 다시 길을 떠날 생각이었다. 마구간에서 말을 찾은 다음, 나는 플로리아 호수 쪽으로 말머리를 돌렸다. 쌍둥이산이 있는 북쪽으로 다시 돌아갈까 잠깐 망설였지만, 길은 어디든 나 있으리라 생각하며 - 플로리아 다리 위에서 만났던 사람들 이야기처럼, 나크시 마을 방향으로 접어들기로 마음을 먹었다.
쌍둥이산으로 가 임파라는 사람을 만나 내가 앞으로 해야 할 일을 확인하기보다, 그저 어디론가 떠나고 싶었다. 내가 누구였는지, 어떤 사람이었는지 잘 기억나지도 않는, 이 순간만큼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