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추억의 장소를 찾아내다

젤다의 전설 - 브레스 오브 더 와일드 (14)

by 김엘리

하테노 마을의 구석 구석을 돌아다녔다. 나크시 마을보다는 훨씬 넓고 큰 마을이기에 집들 사이사이를 돌아다니거나, 밭의 작물을 살펴본다든지 하는 등의 구경을 했다. 풍차도 여럿 돌고 있는데, 그 위로 올라가면 목장도 있다. 한 바퀴 돌아 마을 입구로 다시 와서 보니 들어가보지 못한 샛길이 눈에 들어왔다.


2023112114360500_s.jpg


원래는 샛길 입구에만 가 보고, 그냥 마을 밖으로 빠지는 길인 것 같으면 가지 않으려고 했다. 그런데, 샛길이라 생각했던 곳은 다리가 놓여 있었다. 오래되었지만, 꽤 튼튼하게 신경써서 만든 나무 다리였다. 마을 안에 흐르는 냇물을 건너기 위한 용도의 다리라기 보다, 누군가의 집으로 들어가기 위한 이정표와 같은 역할을 하는 느낌이었다. 그런데... 왜 여기서 보는 이 풍경에 기시감이 느껴지는 것일까?

2023112114361300_s.jpg


여기 와 본 적이 있나? 아닐텐데... 하테노 마을.... 나 처음 아니었나?

갑자기 머릿속을 섬광 하나가 뚫고 지나가는 느낌이 들었다. 아... 이 모습, 어디선가 본 적이 있어... 어디지? 언제였지? 갑자기 입안이 바짝바짝 타들어가는 것 같고, 머리가 어질한 기분도 들었다. 나는 터벅터벅 다리를 건너 집이 있는 마당으로 들어섰다.


2023112114362700_s.jpg


크지는 않아도 아담한 박공지붕집... 쭉 뻗어오른 높은 굴뚝... 오른쪽에 있는 비탈길... 수레를 올렸던... 할아버지.... 무기를 싣고.... 아버지.... 그리고.....!


잠시 눈을 감았다. 무언가 기억나는 모습이 있었다. 정면에 보이는 대문 위에 자라는 덩굴 나무엔, 꽃이 피어 있었다. 어머니가... 그 앞에서 환하게 웃고 계셨었지.... 아버지는 할아버지를 도와서, 비탈길로 수레를 올리려고 애쓰고 계셨다. 하필 수레의 바퀴가 잘 굴러가지 않아서, 두 분이 서로 밀고 끌고를 했던 모습.... 마당 한켠의 큰 나무 아래에서 아버지가 가르쳐 주는 사냥돌 던지기, 새총쏘기를 연습했던 일들...


"쿵-!"

갑자기 크게 울리는 소리에 깜짝 놀라 눈을 떴다. 다리를 건널 때만 해도 몰랐는데, 집 왼편을 누가 커다란 망치로 때리고 있었다. 그는 연신 이마의 땀을 훔쳐 가며 일하고 있었다.

2023112114363500_s.jpg


나는 일단 집 안으로 들어가 보았다. 집 안에는 아무 물건도 없었다. 하지만 - 들어가보니 알 수 있었다. 이 집에서 .... 내가 살았던 적이 있다는 사실을.

2023112114365000_s.jpg
2023112114370400_s.jpg


2층에 있었던 침대에서 눈을 떴던 기억이 났다. 부엌은 저기에 있었고... 식탁은 여기에.... 그리고...

2023112114371200_s.jpg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을 밟고 창문이 나 있는 곳으로 가 보았다. 이 창문 아래에 작은 책상이 있었다. 아버지가 무언가 쓰시던 모습, 어머니가 여기 창 앞에 앉아 편지를 읽으시던 모습도.... 기억났다.


2023112114372300_s.jpg


처음으로 아버지가 목검이 아닌 철검을 내게 전해주셨던 것도 2층에서 있었던 일이었다. 내 생일날이었나... 여하간 특별한 날이었다. 침대 아래에 숨겨두셨던 칼을 조용히 꺼내 겉에 감아놓았던 천을 풀어보라고 주셨던 아버지... 그 칼을 들고 얼마나 신나했었는지....


"쿵!"

밖에서 하는 망치질에 집 전체가 울렸다. 살아나는 기억들을 붙잡고만 있는 게 능사가 아니었다. 이 집을 왜 부수려 하는지 알아봐야겠다는 생각에 서둘러 밖으로 나갔다.

2023112114373500_s.jpg


"이봐!"

내가 망치를 휘두르던 사람을 부르자 그는 일하던 것을 멈추고 망치를 어깨에 걸친 채 내게 인사를 했다.

"안녕하심까!"


인사가 우렁차서 깜짝 놀랐다. 뭐지...? 여하간 뭘 하고 있는지 따져 물어보려 하는데, 그가 힘빠진다는 듯한 얼굴을 하며 한숨을 푹 쉬었다.

2023112114373800_s.jpg


"아이고... 죽겠슴다! 너무 힘듬다..."

망치질을 그렇게 하는데, 당연히 힘은 들 것이다. 나는 그의 한숨에는 신경쓰지 않고 바로 물었다.


"뭐 하는 거야?"

2023112114374300_s.jpg


그는 보면 모르겠냐는 듯이 말했다.

"집을 철거하고 있슴다. 이 집... 아무도 안 산지가 오래되어서 하테노 마을 만장일치로 철거하기로 결정했슴다.


분명히 집 주인이 있을 텐데 당사자가 없다고 마을 사람들이 철거를 결정했다고? 이런...

"아니, 이 집에 살던 사람과는 연락이 안 되었나?"

"제가 알기론... 여기 살던 사람이 성에서 일하게 되고 나서, 그 후로 쭈우~~~~욱 빈 집이었다고 함다."

2023112114375800_s.jpg


....! 성에서 일하게 되고...나서....

그 사람의 말을 듣고서 퍼뜩 생각난 것이 있었다. 맞다.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지만, 아버지는 하이랄 성에서 연락을 받았고... 아버지와 함께 하이랄 성 아래 마을로 떠나게 되어서 어머니와 잠시 헤어졌었던 것 같다... 아버지는 왜 연락을 받았지....? 아버지의 직업이 뭐였지....? 아... 머리가 아팠다.


어쨌든 이 집은 우리 가족의 집이었다. 우리 가족이 이사를 떠난 지 100년이 넘었다 할지라도... 나는 당장 철거를 막아야만 했다.

2023112114380200_s.jpg


"여기, 내가 사고 싶어."

그러자 그 일하던 남자는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나를 쳐다봤다. 그러더니,

"저한테 말하셔봤자 곤란합니다! 철거를 중지시키고 싶으심 저기 사장님께 직접 말씀드릴 수 밖에 없슴다." 라고 말했다.

"사장님?"

나의 짧은 질문에 그 남자는 손가락으로 방향을 가리켰다. 나는 집 뒤로 돌아가 보기로 했다.

2023112114382900_s.jpg


아... 집 뒤쪽으로 돌아오니, 숨바꼭질하던 창고도 보이고... 집 뒤에 자라던 사과나무가 몰라보게 자랐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창고 문은 고장났는지 열리지 않았다.

2023112114383800_s.jpg


이 사과나무에 몇 번이나 올랐던가. 즐거워도 오르고 슬퍼도 오르고.... 동네 친구들과 놀았던 기억들이 하나 둘.... 아니지, 지금은 기억을 찾을 때가 아니지... 그 사장이란 사람은 누구지? 나는 집 뒤에 서 있는 남자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2023112114385000_s.jpg


집 뒤에는 옆구리에 책을 끼고 중얼거리며 뭔가를 체크하면서 분주히 여기 저기를 보고 있는 남자가 서 있었다. 그는 분홍 바지를 입고 이마에는 띠를 둘렀는데... 매우 특이한 복장을 하고 있었다. 이 아저씨가 사장님일 것 같지 않았다. 나는 그를 지나쳐 다른 사람이 없는지 보려고 집 코너를 돌았다.


2023112114385600_s.jpg


코너를 돌기 전에, 역시 망치를 휘두르며 일하고 있는 아주 건장한 남자를 보았다. 선입견일지 모르지만, 왠지 그가 사장님이지 않을까? 나는 침을 한 번 꿀꺽 삼키고 그에게 말을 걸었다. 그는 하던 일을 멈추고 나를 바라보았다.


"왜 그러지?"

"저... 누구시죠?"

나의 질문에 그는 그런 건 왜 묻는 거냐는 얼굴을 했지만, 대답을 해 주었다.

"나는 볼슨 건설의 목수 허드슨이다."

아... 목수구나... 사장이 아니구나... 그런데 목수가 여기서 뭘 하는 거지?

2023112114390400_s.jpg


"뭐 해요?"

"여기를 철거 중이다."

허드슨의 대답은 아까의 남자와는 매우 다르게 단답형이었다. 뭔가 시시콜콜 설명해 주기보다 간단하게 대답하는 걸 좋아하는 걸까... 나는 허드슨에게도 여기를 왜 철거하는지 물어보기로 했다.

2023112114390800_s.jpg


"왜죠?"

"... 아무도 살지 않기 때문이다."

역시나 단답형. 나는 왜 아무도 살지 않을지를 한번 더 물었다.

2023112114391300_s.jpg


".. 주인이 이사 갔나보지."

"어디에요?"


2023112114391800_s.jpg


이사 갔나 보다라고 하는 걸 보니 잘 모르는 것 같긴 했지만, 혹시나 내가 기억할 수 있는 다른 단서를 알고 있을까 싶어 한번 더 물어봤다.

2023112114392300_s.jpg


"몰라. 야반도주인가?"

정말 이 사람은 아무것도 모르는구나. 괜한 기대를 했다. 내가 그냥 '그렇구나' 하고 고개를 끄덕이는데 - 허드슨은 야반도주라고 해도 무리가 아니라는 듯 말했다.

2023112114393200_s.jpg


"요 100년간 많은 일이 있었지... 음... 대재앙이 일어난 이후 사라진 사람이 많으니까... 야반도주이건 이사를 했건 그런 건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해... 우리는 그 대재앙 이후 이제 겨우 다시 추스르고 있는 중이니까."


그 말을 들으니, 허드슨은 내 기대보다 속 깊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마을에 또 빈집이 어디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오랫동안 비어있었다는 이 집... 대재앙을 생각하면, 마을 사람들은 살았을지 모를 집주인이 돌아오기를 기다렸을 수 있다. 하지만 100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고, 이제는... 여기 누가 살았는지 기억하는 사람들도 거의 없을 지 모른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마을 사람들은 허드슨의 말대로 대재앙을 추스르기 위해 이 집을 철거하기로 결정했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본다면...어쩌면, 오늘 내가 여기를 온 것도 운명이진 않을까... 대재앙을 추스르기 위해서...?

2023112114394100_s.jpg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나를 보며, 허드슨은 마음이 따뜻해지는 말을 건네왔다.


"너도 힘내라."

"...예!"


나는 힘차게 대답했다. 그래. 과거의 일을 기억하는 것도, 지금 내게 주어진 일이 맞는지 확인하고 나아갈 바를 결정하는 것도... 힘내야 할 수 있는 일이다.


허드슨이 사장이 아니라는 걸 확인했으니, 이제 남은 건 한 사람. 그런데, 이 사람... 정말 사장이라고?

2023112114394800_s.jpg


내 뒤에 서서 혼자 뭔가 흥얼거리며 일하고 있는 이 남자에게 이야기를 해야 한다.

과연, 철거를 멈추고 이 집을 살 수 있을까?

keyword
이전 13화또 다른 마을, 하테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