젤다의 전설 - 브레스 오브 더 와일드 (13)
나크시 마을을 떠나 북쪽 산길로 올라갔다. 컬산과 만나는 코기 계곡을 넘어 계속 북쪽으로 올라가는 길이다. 햇살은 따사로웠고 바람도 잔잔한 편인데다 길은 평탄하여 걷기 좋았다. (앗, 말을 데리고 오는 것을 깜박...) 언덕을 내려가보니 지형은 오르막과 내리막이 섞인 구릉이 이어지는데, 군데 군데 습지가 눈에 띄었다.
나무들 사이로 이상한 구조물이 보였다. 망원경으로 살펴보니 무슨 동물의 뼈 같은 것이 땅 위로 크게 드러나 있었다. 모양으로 보아 갈비뼈인 것으로 보이는데... 저 정도의 크기라면 어떤 동물의 화석일까? 그러다 흠칫 놀랐다. 망원경 앵글 안에 초록색의 우람한 몬스터가 잡혔기 때문이다.
조금 더 가까이 가 보니 그 몬스터는 작은 집채만한 크기로, 누워서 자고 있었다. 그르렁 거리는 기분나쁜 숨소리... 이 느낌, 분명 예전에도 만난 적이 있었다. 그래...! 히녹스다! 짙은 초록색에 가까운 피부인 것을 보니 그 중에서도 등급이 있는 블루 히녹스임에 틀림없을 터였다.
히녹스는 움직임이 매우 느리지만, 한 번 휘두르는 위력이 꽤 세서 해치우려면 공격력이 좀 높은 양손 무기가 있어야 했다. 지금 내 주머니에 있는 무기로는 블루 히녹스를 처치하기는 버거웠다. 최대한 조용히 지나가는 것이 나을 것 같아, 히녹스가 있는 자리를 피해 멀리 돌아서 다른 언덕으로 올라갔다.
언덕 하나를 넘으니 또 다른 화석이 드러난 습지가 나타났다. 그런데, 여기도 또 히녹스가 자고 있다... 이번엔 붉은 히녹스인 것을 보니 가장 등급이 낮은 녀석이다. 등급이 낮다고는 해도 히녹스끼리의 비교일 뿐. 히녹스가 맨손을 휘두르기만 해도 꽤 타격이 큰데, 무기까지 들고 있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나는 가던 길을 다시 돌아서 가기로 결심했다.
작은 돌산 사이로 난 계곡길을 따라가다 보니 앞에 밝히지 못한 탑이 보였다. 지도를 꺼내 보니, 이 산을 넘으면 미지의 세계로 들어가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탑을 밝혀야겠다 싶어 서둘러 뛰었다. 곧 비가 올 것이므로 등산을 하려면 지금이 기회였다.
탑은 높은 구릉 위에 우뚝 서 있었는데, 구릉으로 올라가는 비탈길에는 모리블린과 보코블린 무리가 둘, 셋씩 깔려 있었다. 최대한 몬스터 무리를 피하면서 암벽 등반으로 구릉에 올랐다. 다행히 타이밍이 맞아 구릉 위에 오르고 나니 하늘이 흐려지며 빗줄기가 후두둑후두둑 떨어졌다. 휴.
탑으로 향하는 길에는 아름드리 나무가 하나 서 있는데, 그 아래에서 보코블린 한 마리가 있었다. 불을 피우고 뭔가 하고 있었는데, 비가 내려 불이 꺼졌다. 혼자서 당황하는 듯한 보코블린을 뒤에서 공격했다. (좀 비겁했나) 붉은 보코블린이라 쉽게 처치했는데...... 나는 그 자리에서 탑을 바라보다 할 말을 잃었다. 탑에 바로 올라갈 수 없게 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탑에 가까이 가 보았다. 시커 스톤에 '하테노의 탑'이라는 메시지가 떴다.
탑 주변에는 가시나무 덩굴이 쭉 깔려 있었고, 탑으로 올라가는 기둥에도 가시덩굴이 자라 쉽게 오를 수 없었다. 가까이 가서 칼로 덩굴을 쳐 보았으나 아무런 영향이 없었다. 어떡하지?
주변을 서성이다, 혹시 불에 타지는 않을까 싶어 아끼던 불화살을 꺼냈다. 펑! 화살을 쏘았지만... 불이 붙다가 치익- 소리를 내며 꺼졌다. 아참! 지금 비가 오고 있었지... 초조한 마음에 멍청한 실수를 저질렀다. 이대로는 탑에 오를 수 없으니, 비가 그치기를 기다리는 수 밖에.
나는 보코블린이 있었던 나무 아래로 가서 비가 멎기를 기다렸다.
얼마나 지났을까. 밤이 더 깊어져 자정이 가까이 되자 비가 그쳤다. 다시 불화살을 쏴 볼까 하고 주머니를 열었는데 불화살이 5개 정도 뿐이다. 가시덩굴의 범위가 꽤 넓은데, 5개의 불화살을 모두 쓰는 것은 아까웠다. 그러고 보니 나무 아래에는 요리를 할 수 있는 솥이 모닥불 위에 놓여 있었고, 나무에는 횃불 하나가 세워져 있었다.
"아, 횃불이 있다면 이 모닥불에 불만 붙이면 되잖아?"
불을 붙이려면 부싯돌이 필요하다. 주머니를 보니 어찌어찌 모아두었던 부싯돌이 8개나 있다. 다행이었다! 타다 남은 장작 가까이에 부싯돌을 놓고 칼로 쳤다. 파팍 불꽃이 일더니 타닥거리며 나무에 불이 붙었다. 비가 온 다음이라 장작이 젖었을까 걱정했는데, 솥 아래 있어서 괜찮았나보다.
횃불에 불을 붙인 다음 탑 아래로 달려가 덩굴 여기 저기에 불을 놓았다. 비가 내려서 그런가 덩굴에 쉽게 불이 붙지는 않았다. 여러번 시도한 끝에, 불은 결국 붙더니 덩굴길을 따라 활활 타오르기 시작했다. 사방에 날리는 재에 눈이 따가웠지만 와우! 야밤에 급 불놀이를 하게 됐다. 불이 번져 탑의 기둥에 꼬인 가시덩굴에도 불이 붙어 타올랐다. 공기의 흐름이 바뀔 정도로 센 불은 상승 기류를 만들어내며 불꽃이 점점 커졌다.
가시덩굴이 타서 없어진 자리를 확인하고, 탑을 오르기 시작했다. 중간에 쉴 수 있는 턱에 올랐더니, 그 위 기둥에 꼬여 있는 가시덩굴에는 불이 붙지 않았는지 그대로인 것을 알 수 있었다. 다시 내려가서 횃불의 불을 가져오기는 조금 귀찮아, 결국 불화살을 꺼냈다. 화살을 쏴서 기둥 위쪽의 가시덩굴을 태웠는데... 다 타기 전에 다시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아... 여기는 왜 이렇게 비가 자주 오지? (화난다)
비가 그치기를 기다렸다가 계속 이어서 탑을 올랐다. 기둥에 타다 남은 가시덩굴이 엉켜 있어 찔리지 않게 조심해야 했다. 가시덩굴을 피해 옆 기둥으로 올라가는데, 앗! 거기도 미처 보지 못한 가시덩굴이 있었다. 아야! 가시에 찔려 놀라 기둥을 놓쳤다. 그대로 고꾸라져 떨어지는데... 다행히 땅에 떨어지기 전, 패러세일을 펴서 추락사는 면할 수 있었다.
회복하는 음식 하나를 먹은 후, 다시 심기일전하여 기둥을 올랐다. 이번엔 아래에서 가시덩굴이 없는 자리를 꼼꼼히 확인했다. 탑 입구 주변에 가시덩굴이 남아 있는 부분이 있었지만, 코너를 잘 공략하면 오를 수 있을 것 같았다. 천천히 가시를 조심하면서 차근차근 올랐더니, 아까와 같은 실수 없이 탑에 도착했다. 시커 스톤을 인증했더니 붉은 빛이 파랗게 바뀌며 탑이 작동했다.
탑 작동이 멈추더니 주변의 지도를 입력받기 시작했다. 매번 보는 거지만, 시커 스톤에 파란 물방울이 떨어지며 지도가 추가되는 모습은 신기하다. 새로 열린 지도를 보니, 내가 가야 할 목적지(임파가 있다는 곳)에 오히려 가까워지고 있는 것 같았다.
탑을 한바퀴 돌면서 지도와 실제 지형을 비교했다. 가야 할 방향은 왼쪽이었지만, 나는 그 전에 하테노 마을을 찾아 볼 생각이었다. 지도에는 하테노 마을이 어디인지 표시가 되어 있지 않았다. 나크시 마을의 북쪽이라 했으니 대강 짐작만 할 수 있을 뿐이었다.
지도를 좀 더 확대해 보니, '하테노 비치'라는 지명이 있다는 걸 발견할 수 있었다. 하테노 비치 주변에 하테노 마을도 있지 않을까? (나크시 마을의 경우 나크시 비치가 따로 있지는 않았지만) 일단 엑스퍼의 숲을 목표로 하자 생각하고 그 방향으로 서 봤다. 저 멀리 작은 집들의 지붕이 길을 따라 옹기종기 모여 있는 것이 보였다.
'저기가 하테노 마을이 분명해.'
마을이 보이는 곳으로 패러세일을 펼쳐 하강한 후, 바닥에 착지하여 돌길을 부지런히 올랐다. 길 중간에 창을 들고 돌아다니는 블루 보코블린들이 보여서 그들을 피해 뛰었다. 수풀을 헤치고 올라 짧게 풀이 깎인 길로 들어서자, 시커 스톤에 '하테노 마을'이라는 메시지가 떴다.
제대로 찾아왔다는 생각에 기분이 좋아졌다. 그대로 길을 달려 마을 입구로 보이는 문에 도착했다. 문에는 모자를 쓴 사람 한 명이 쇠스랑을 들고 서 있다가, 나를 보자마자 공격 태세로 자세를 바꾸었다.
'설마, 나를 보고 공격하려는 걸까?'
좀 더 가까이 다가가 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싶어 그에게 다가갔다. 그는 나를 유심히 보더니, 쇠스랑을 다시 세워 들고는 "자세히 보니 우리와 같은 하일리아인이잖아!" 라고 말했다.
여기는 어디냐고 내가 묻자, 그는 하테노 마을이라고 확인을 시켜 주었다. 나에게 여행자냐 물은 그는 하테노 마을에서 잘 쉬었다 가라며 편안한 손짓을 보여주었다.
마을 안으로 들어서니, 산에 자리잡은 마을이라 그런지 길의 경사가 심했다. 경사로를 따라 들어선 집들 중에는 가게도 있어 보였고, 사람들이 모여 있는 모습도 보였다. 나크시 마을보다 훨씬 큰 마을이라는 걸 단박에 알 수 있었다.
마을에 도착하자마자 다시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비가 내리니 사람들이 비를 피해 어디론가 움직였다. 하지만 나에게 다가온 아이는 비가 내려도 상관하지 않는 것 같았다. 안경을 낀 아이는 걸어다니다 나를 보더니 말을 걸었다.
"형... 여행자야?"
"응."
"있잖아, 있잖아!"
"뭔데?"
"내가 엄청난 걸 찾았어...! 보고 싶어??"
엄청난 거라니 뭘까? 어린아이 눈에 엄청난 거니까 대단하지 않은 것일 수도 있지만... 꼬마가 열심히 엄청나다고 강조하니 궁금해져서 그러자고 했다. 꼬마는 자기를 따라오라며 먼저 길을 나섰다. 꼬마는 마을의 주 도로가 아닌 옆길 아래로 들어가더니 어딘가 으슥한 느낌의 샛길로 들어섰다.
뭐지 싶었지만, 그래도 꼬마가 가자는 대로 말없이 따라갔더니 꼬마는 뿔이 달린 커다란 조각상 앞에 서서 가리키며 나에게 멋있지 않냐며 자랑했다.
그러더니 자신의 양 귀에 손을 대고는, 손가락으로 뿔 모양을 흉내냈다! (아학... 귀여워...) 그러면서 하는 말이, 이 조각상이 뭔지는 모르겠단다.
"이거... 촌장님 집에 있는 조각상이랑 닮았는데 대체 뭘까?"
촌장님 집이 어딘지는 모르겠지만 이 시커먼 조각을 닮았다면... 하일리아 여신상이 있단 소린가? 어쨌든, 이 검은 조각상은 여신상을 닮은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했다. 일단 천사같은 날개가 달려 있다는 점은 여신상과 비슷한데... 이마에 뾰족하게 솟은 뿔은 뭔가 불길해 보이기도 하고...
그런데, 조각상을 바라보니 기도를 할 수 있는 것 같다. ......? 지금 극복의 증표는 충분치 않기는 한데... 일단 정체를 알려면 기도라도 시도를 해 봐야 하겠지... 두 손을 모으고 '여신님'을 부르자, 무시무시한 목소리가 갑자기 들려와서 깜짝 놀랐다.
"오호... 이 몸도 아직 쓸만한 모양이군..."
여신상에게서 들리던 목소리와는 딴판인 이 검은 조각상은 공동 묘지에서 들었을 법한 소름끼치는 목소리를 지녔다. 여신상은 마음으로부터 울리는 텔레파시 같은 느낌이라면, 이 조각상은 그냥 말을 하는 것도 다른 점이었다.
"말을 하네?!"
놀라서 이렇게 묻자, 검은 조각상은 웃음을 흘리며, 자신도 놀랍다고 대답했다. 그러더니 자신의 목소리가 들리느냐고 재차 확인했다. 그렇다고 했더니, 나에게 무엇을 기도하고 있었냐고 다시 묻는다.
"너는 무엇을 기도하고 있었지? 생명이냐? 아니면... 돈?"
'....돈?'
돈과 여신과는 뭔가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하는데, 그런 나의 생각을 읽었는지 검은 조각상은 자신의 이야기를 계속했다.
"나는 오랜 옛날부터 생명과 힘을 관장해왔다... 내가 돈과 생명을 거래하는 것이 여신 하일리아의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인지 여신은 나를 이런 석상의 모습으로 바꾸었고, 엄청난 시간이 흘렀다... 사람들은 나를 악마상이라 부르며 새똥도 치워 주려고 하지 않지... 크크..."
뭐가 우스운 것일까 싶었지만, 검은 석상... 아니, 악마상은 이야기를 계속 이어갔다.
"마음을 고쳐먹었냐고 묻는다면? 말도 안 되는 소리지... 나는 줄곧 기다리고 있었다. 너처럼 이야기가 통하는 자가 나타나기만을.... 아아, 너무 오랜만이라 말을 많이 했군... 그럼, 거래를 시작해 볼까?"
무슨 거래를 하려는 거지? 불안한 기분이 들어 이 악마상 앞을 떠나고 싶었지만 발이 딱 붙어 움직여지지 않았다. 기분나쁜 목소리가 계속 이어졌다.
"... 너는 그대로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된다... "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갑자기 가슴 언저리가 뜨거워졌다. 앗! 내 몸에서 무언가 환하게 빛나는 기운이 빠져나오더니 악마상에게로 흡수되었다. 뭐지? 뭐 한거야? 시커 스톤을 열었더니, 생명력이 하나 줄었다!
악마상은 싱글거리며 자신의 기술이 녹슬지 않았다고 기뻐하더니 무사히 나의 그릇을 맡았다고 알려왔다.
무엇을 거래하려고 내게서 생명의 그릇을 가져갔지? 나는 분노가 치밀어 낮은 목소리로 악마상에게 요구했다. 내 그릇 돌려달라고. 악마상은 다시 내게 말을 시작했다.
"후후후... 속았다고 생각했느냐? 나는 오래도록 너와 거래하고 싶다... 속일 리가 없지..."
그러더니 본격적으로 거래의 조건을 말했다. 악마상이 내게서 받은 그릇은 내가 원하는 그릇으로 돌려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나에게 어떤 그릇으로 돌려받겠냐고 물어보기에, 생명의 그릇으로 돌려달라고 했다. 그는 내게 생명의 그릇을 돌려주면서, 부족했던 생명력까지 모두 채워주었다. 좀 의심스럽긴 했지만 시커 스톤을 확인하니 틀림없긴 했다.
그런 의심스런 얼굴은 거두어도 좋다고 알린 악마상은 내게 거래 조건을 다시 이야기했다. 스테미나와 생명의 그릇을 조절하고 싶다면, 자신에게 와서 기도를 하란다. 악마상이 어떤 그릇이든 가져갈 때 그는 내게 100루피를 줄 것이다. 단 그 그릇을 다시 돌려받을 때는 생명이든, 스테미나든 내가 원하는 쪽으로 돌려주되 나는 120루피를 내야 한다. 결국, 악마상은 20루피에 내가 가지고 있는 생명력이나 스테미나를 다른 그릇으로 바꾸어 준다는 이야기였다. (간단하게 20루피 받고 해준다고 루피받고 가져갔다 돌려준다고 하면 되지, 왜 큰 돈을 주고 받고 해야 하지? 이해는 안 가지만....)
악마상은 이번만 체험이고, 다음부터는 제.대.로. 돈을 받겠다고 으름장을 내고는 말을 멈추었다. 악마상에게서 빛이 사라지자, 옆에서 계속 보고 있었던 꼬마가 내게 말을 걸었다.
"형아... 방금 이 조각상하고 말했어?"
다시 조각상 흉내를 내는 꼬마가 귀여워서 그렇다고 했더니 깜짝 놀라며 '대단하다'고 감탄했다. 꼬마는 진기한 걸 봤다고 신나하더니 먼저 돌아가 버렸다. 악마상이 서 있는 곳은 하테노 마을의 뒤편인 것 같아 다시 하테노 마을 입구로 돌아왔다. 입구 주변에는 여러 작물을 키우는 밭이 군데 군데 있는데, 그 중에서 비가 와도 열심히 작업을 하고 있는 한 농부가 눈에 들어왔다.
그 농부에게 그저 말을 걸었을 뿐인데, 농부는 반갑게 인사를 받아주더니 뜬금없이 길을 잃었냐고 물었다. 그런 건 아니라고 말을 하려는데...
"어디로 가려고 했지? 이상한 곳? 아니면 굉장히 이상한 곳? 쉴 수 있는 곳?"
빠르게 되묻는 그의 질문이 오히려 재미있었다. 하테노 마을에 이상한 곳이 있다고? 고개를 갸웃하다, 그래도 쉴 수 있는 곳의 정보가 먼저다 싶어 그에게 쉴 수 있는 장소를 알려달라 했다.
이름이 '나크'인 이 농부는 여관이 아닌 다른 장소를 찾는 것 아니었냐며, 흥미로운 사실 하나를 알려 주었다. 나는 여관 외에 다른 곳은 솔직히 생각하지 못 했는데...
바로 건너편 만물상점인 이스트 윈드 뒤편에는 최근 열심히 활동중인 '볼슨 건설'에서 지은 모델하우스가 있다는 것이었다. 누구에게나 개방된 건물인데다 새 건물이므로 새로운 나무 냄새가 나는 곳에서 쉬어갈 수 있다고 있다고 했다. 하지만 나는 볼슨 건설이 뭔지 잘 모르겠어서 더 물어봤다.
"볼슨 건설이라뇨?"
"아, 볼슨 건설...은 사람들에게 집을 지어주는 일을 하는 곳인데, 사장인 볼슨이 사람들을 데리고 이 근처에서 왔다갔다 하곤 해. 너도 이 주변을 둘러보다 보면 만날 수 있을 거야. 물론, 여행자니까 크게 관심은 없겠지만..."
여관에서 묵는다면 돈이 들지만 모델 하우스라는 곳에서 쉴 수 있다면 돈도 들지 않겠네? 하테노 마을은 참 여행자들을 많이 배려하는 마을인건가....
나는 이상한 곳이 어딘지 궁금해서 그것도 물어보았다. 나크는 '셔셔 쇼쇼'를 말하는 것 아니냐고 되묻더니, 마을 주 도로를 올라가다 보면 보이는 염색 가게를 알려주었다. 본래 가게 이름은 셔셔 쇼쇼가 아닌데, 왜 그렇게 부르는지 모르겠다면서 염색숍 주인인 '세지'씨가 매우 독특한 사람이라 했다.
염색을 잘 한다는 세지 씨가 궁금해졌지만, 그 다음 나크가 말했던 '아주 이상한 곳'에 대해서 물어봤다. 나크는 이어지는 내 질문에 귀찮다는 기색도 없이 '하테노 고대 연구소'에 대해 알려주었다. 하테노 고대 연구소는 하이랄 왕국의 평화를 위해 매일 연구에 힘쓰고 있는 곳으로(정말? 뭔가 거창하네...) 그 곳 소장님이 아이를 싫어하기 때문에 오히려 마을의 꼬마들이 하테노 고대 연구소에 몰래 구경을 하러 간다고 하였다.
아이를 유난히 싫어한다고? 흐음... 왠지 생각날 것 같은 사람이 한 명... 떠오를 것 같은 간질간질함이 ... 하지만 거기까지. 더 기억이 나지는 않았다. 나크가 알려준 곳들은 모두 가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길 안내를 해주어 고맙다고 인사를 하고, 바로 맞은편에 있는 만물상에 갔다.
만물상 입구에는 친절한 인상의 아가씨가 빗자루를 들고 청소를 하고 있었다. 내가 가게에 가까이 다가가자 손을 번쩍 들더니 '거기 오빠!'라며 친근하게 인사했다. 처음 보는 데 오빠라니.... 나쁘진 않네.
그녀의 이름은 아이비. 만물상 이스트 윈드 앞에서 청소를 하며 사람들을 끌어모으고 있었다. 비가 오고 있지만 이스트 윈드는 영업중이라면서 얼른 들어가 보란다.
이스트 윈드에는 '만물상' 이름에 어울리는 다양한 물건을 팔고 있었다. 우유, 하이랄 쌀, 맥스트러플(도 파네?), 새의 알, 활력버섯, 그리고 화살 종류 몇 개... 불의 화살은 팔고 있지 않아서 아쉬웠다. 일단 화살을 비상용으로 더 구매하고, 만물상 주인으로 보이는 사람에게 말을 걸었다.
그의 이름은 프루스이며 이스트 윈드를 운영하고 있다 했다. 나를 그저 여행자로 보았는지, 하테노 마을 사람들은 다 상냥하다며, 편하게 말을 걸어보라고 권하기도 했다. 하지만 프루스의 말은 사실이 아니었다.
이스트 윈드에서 나와 마을 안쪽으로 더 들어가려고 봤는데, 만물상 바로 옆에서 두 아주머니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무슨 이야기를 나누나 궁금해서 가다 잠시 멈추었는데, 그런 나를 보자마자 아주머니가 짜증을 냈다.
"정말이지 요즘 애들은...엿듣는 것도 참 당당하게도 듣네!"
아니, 꼭 들으려고 한 건 아니었다는 말을 할까 말까 망설이다 그냥 자리를 피했다. 기분 상한 아주머니는 무슨 말을 해도 통하지 않을 것 같은 느낌이니까... 하지만 왠지 오기가 생겨서, 아주머니들이 서 있는 자리 바로 옆의 선반 뒤로 돌아가 숨었다. 예상대로 그들의 이야기를 몰래 들을 수 있었다.
아주머니들의 가십거리란, 바로 하테노 고대 연구소의 소장에 대한 것이었다. 하테노 연구소에 언제부터인지는 모른다지만, 작은 여자아이가 들락거린다면서... 소장님을 의심하고 있었다. 왜 의심하는지(그런 짓을 하실 분은 아니라고 하는데 그런 짓.....?이 뭘까?)는 정말 모르겠다. 둘 중 키가 좀 작은 아주머니는 혹시 그 여자아이가 귀신일 수는 없지 않냐는 뼈있는 농담을 했다.
대단한 이야기를 하는 것도 아닌걸? 하고는 주변을 돌아보는데, 어딜 봐도 새로 지은 것이 분명한 모델하우스가 몇 채 있었고, 그 위에는 시련의 사당도 있었다. 나크가 말했던 집이 여기구나 ...
계속 비가 내리고 있어서 나는 모델하우스에 먼저 들어갔다. 세 개의 집이 나란히 있지만, 구조는 모두 달랐다. 2층이 있는 집과 아닌 집... 집은 생각보다 매우 좁았는데 아늑한 부분도 있었다. 의외의 문제는, 어느 집에 들어가도 침대에는 누울 수 없다는 점이었다... 그냥 잠깐 비를 피할 정도의 집이고, 역시 잠을 자려면 여관을 이용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모델하우스 구경을 마치고 나오니 비가 그쳤다. 바로 사당으로 뛰어올라가 나는 시련을 극복했다. 미야마.가나의 사당이라는 곳인데, 이상한 장치를 작동시켜서 보주(돌구슬)를 위치에 넣어야 하는 곳이었다. 보물상자에서는 '일심의 활'이라는 특이한 무기를 얻었다.
사당에서 나오니 노을 지는 풍경이 아름다웠다. 이렇게 하루가 또 갔구나... 볼 것도 많고 할 일도 많은 것 같은 하테노 마을이다. 나크시 마을에서는 느끼지 못했는데, 왠지 마음이 편안해지는 곳이기도 했다. 이 곳에선 혹시 나의 기억을 찾을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