젤다의 전설 - 브레스 오브 더 와일드 (12)
쏴아- 철썩... 잔잔한 파도가 고운 모래를 쓸었다 내뱉는 것을 보며 걸었다.
바라보는 풍경은 잔잔했지만, 내 마음은 폭풍 전야 하늘처럼 무거운 회색빛처럼 느껴졌다. 나는 왜 사바카의 제안을 그렇게 받아들였을까...? 시작의 대지에서 나크시마을까지 오는 동안, 가능하다면 몬스터와의 전투를 피해서 왔다. 사실 길을 선택하는 데 있어서도 몬스터가 없는 길을 선택하는 것이 우선이었다. 그리고 운이 좋게도, 매번 몬스터가 지키는 길목을 피해서 갈 수 있었다.
나는 왜 그랬을까? 진정 몬스터가 두려워서인가?
뭐... 어느 정도는 인정한다. 보코블린이나 리잘포스는 맞서 싸워 봤으니 이제 그렇게 두렵지 않다. 하지만 적은 그게 다가 아니다. 상대를 해 보지 않은 미지의 적, 거기다 여러 명의 몬스터를 혼자서 상대하는 것은 버겁다. 그리고 시작의 대지에서부터 나오면서 답답함을 계속 느꼈다. 그건 기대보다 약한 내 체력 때문이다.
달리기를 해도 숨이 금방 차 오래 뛸 수 없고, 패러세일을 펼쳐도 멀리 날아갈 수 없으며, 수영을 해도 내 기대보다는 오래 헤엄칠 수 없다. 등반 역시 두말하면 입이 아플 지경이다. 그 동안 운이 좋게도 한 번 정도밖에 쓰러지지 않았지만, 몬스터 무리와 싸우면 약한 내 체력을 깨닫게 되어 스스로 화가 났다.
강해 보인다는 소리를 들어도 기분 좋은 것은 잠시 뿐이다. 과거에 내가 대단한 기사였다 한들 현재 이러한 체력과 생명력으로 살아가는 현실은 막막하다. 그래서 하이랄 왕이 시련의 사당을 찾는 방법을 가르쳐 줬겠지만, 사당은 어디나 불쑥 솟아 있는 것은 아니다.
마을에 모여 사는 사람들을 만나고서 비로소 멸망이 다가온 하이랄 왕국을 실감했다. 관광지를 찾아 떠나 여행하는 사람들이나 마을 사람들은 평화로워 보이지만, 사실은 늘 긴장하고 있으며 바깥의 침입에 대해 살 길을 궁리하며 살고 있는 것이다. 마을 사람들을 처음 봤을 땐 아무 걱정 없는 사람들인가 생각한 적도 있었지만, 사바카와 나눈 대화로 그렇지 않다는 걸 알았다.
시작의 대지에서 깨어났던 일이 생각났다. 젤다 공주의 목소리로 일어났던 회생의 사당... (생각해 보니 그곳도 사당이었네) 처음엔 그저 하이랄의 숲과 동물, 아름다운 자연에 감탄하며 그 안을 혼자 탐험하는 것이 재미있었지만, 젤다 공주가 나를 왜 깨웠는지 알고 나서는 혼란스러웠다.
젤다 공주를 지키기 위해 끝까지 싸운 사람은 나라고 했다. 사실이라면 그건 내가 선택한 길이었을 것이다. (사실 다른 선택지도 없었을 것이다. 기사라면 당연히 했어야 할 일) 그러나 100년 전, 거의 죽음까지 갔었던 후의 일은 내가 결정하지 않았다. 젤다 공주가 결정하고, 지금까지의 일을 준비해 둔 것... 두 번째의 빡침은 이것이다. 기억을 잃어버렸기에 모든 것을 의심해야 하고, 내 의지대로 살았다는 느낌도 크지 않다는 것...
그런데 사바카의 부탁으로 소중한 존재를 지키는 것은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다. 나는 명령 때문에 젤다 공주를 지켰을 수 있지만, 사바카는 자신의 삶과 사랑하는 가족 때문에 아라이소 어장을 되찾고 싶어했다. 다만 가족이 있는 몸이라 죽음을 각오하고 몬스터에게 덤벼야 하는 무모한 일은 도전할 수 없다던 그 말...그의 말대로 기사들이 있다면, 하이랄 왕국이 제대로 굴러가고 있다면 그런 고민을 할 필요는 없겠지.
해맑게 웃는 나크시 마을의 아이들과 가족의 행복을 지켜주고 싶었다. 내가 할 수 있을지는 알 수 없지만... 내 의지대로 선택할 수 있는 일이다. 귀여운 아이들의 미소와 활발하게 뛰어다니던 모습이 마음 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만약 이 전투를 이길 수 있다면, 아주 많이 기쁠 것 같다. 기사였다는 나의 능력도 확인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아라이소의 대규모 전투에 도전해 보기로 결심했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해변가를 거닐다 보니 어느 새 밤이 되었다. 나는 구석진 곳에 서 있는 작은 돌상 앞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아무 생각 없이 그 상을 바라보다가 깜짝 놀랐다.
"앗? ... 하일리아의 여신상이 어떻게 여기에..."
상당히 의외의 장소에 숨은 것처럼 놓여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작은 돌상이었지만 하일리아 여신상은 마치 내 고민이라도 듣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 나는 바로 여신상 앞에서 두 손을 맞잡고 서서 기도했다.
하일리아 여신상에 빛이 비추어지면서, 맑은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시련을 넘어서고 극복의 증표를 얻은 자여...그 극복의 증표 4개와 바꾸어 원하는 힘을 내리겠습니다..."
앗? 어느새 극복의 증표를 5개 모았구나. 지금은 체력을 늘리는 것이 시급하니 스테미나의 그릇을 늘리기로 선택했다. 여신상은 나의 소망대로 원기가 가득 채워진 스테미나의 그릇을 보내주었다.
스테미나의 그릇은 한 번 획득할 때 마다 단계별 체력의 1/4를 채워준다. 이 정도로는 아직 한참 부족하지만, 그래도 조금이나마 늘어난 체력은 전투할 때나 이동할 때 상당한 도움이 되어 줄 것이다. 왠지 자신감이 차올랐다.
부족한 생명력은 여관에서 하룻밤 보내는 것으로 채우기로 했다. 임시방편이기는 해도 생명력이 늘어나니 공격을 받을 때 대비할 시간을 벌어 주겠지... 나크시 마을의 여관은 여신상 바로 위에 있었다.
여관에는 나 외에도 다른 손님들이 있었다. 여관 주인의 이름은 치샤. 그녀는 인심 좋아 보이는 웃음을 얼굴에 가득 담고 나를 맞아주었다. 침대 종류는 마구간과 마찬가지로 보통 침대와 푹신푹신 침대가 있었다. 푹신푹신 침대를 선택(하룻밤에 40루피)하고 잠에 들었다.
아침에 일어나 보니 나 외에 손님은 한 명도 없다. 나도 일찍 일어난 편인데 다들 부지런하군... 치샤의 배웅을 받으며 숙소 밖으로 나왔다. 날씨가 참 좋았다.
여관에서 해변으로 내려와 보니 오늘도 먹음직스럽게 커다란 생선들이 화톳불에 지글지글 구워지고 있었다. 무슨 생선일까 싶어 살펴보려고 하는데, 그런 나를 바라보고 있던 나크시 마을 사람이 있었다. 시선을 느껴 그를 바라보고 가볍게 아침 인사를 건넸다. 그는 내 인사를 반갑게 받더니 이렇게 물었다.
"당신, 생선 좋아해?"
생선을 좋아했는지 기억은 없지만, 깨어난 뒤에 접하게 된 요리나 먹을 거라면 늘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고 맛있게 먹었다. 그래서 당연히 생선도 좋아한다고 대답했다.
"그 생선, 맛있어 보이지? 이 근처 바다에서 잡은 거야!"
직접 잡았다는 커다란 생선은 내 키의 절반에 이르는 놀라운 크기였다.
내가 엄지손가락을 위로 치켜들어 보여주자 그는 활짝 웃더니, 이렇게 말했다.
"원하면 마음껏 가져가도 좋아~ 너무 많이 구워 버렸거든. 생선은 충분하니까...나크시 마을의 생선은 맛있기로 유명하니 소문도 많이 내 줘~"
아침에 일어나 아무 것도 먹지 않아 배가 고팠는데, 그의 호의가 고마웠다. 그가 잡았다는 생선은 도미! 흰살 생선 중에서는 꽤 부드럽고 고소한 생선으로 알고 있다. 아주 잘 구워져 먹음직스러웠고 불향이 입혀져 냄새도 좋았다. 바로 그 자리에서 한 마리를 꿀꺽 먹어치우자, 그 나크시 어부는 내 모습을 보고 껄껄 웃었다.
"잘 먹네... 맛있지? 아참, 내 이름은 아메스라고 해. "
고맙다는 인사를 마치고 구운 도미를 하나 더 챙겼다. 가만 있자, 전투를 하려면 요리가 더 필요했다. 원기물약도 만들어야 해서 나는 요리할 수 있는 곳을 찾았다. 그런데 부채 장수 장사하려면 비 온다더니 갑자기 하늘에서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이러면 요리할 수 없는데.... 비는 좋지만!
잠시 비를 피할 곳을 둘러보는데, 여관 앞 나무 아래에 한 여자가 서 있었다. 그곳에서 비를 잠시 피하려는 걸까? 나무를 둘러보다 그녀와 눈이 마주쳐서 인사를 나누었다. 이름은 플레버. 첫 인사가 '사브아크' 인걸 보니, 페니였나... 그 여자와 같은 지역 출신인가 싶었다. 비슷한 피부색에 키도 크고 ... 그쪽 출신들은 다들 체격이 대단하다 생각하는데 그녀가 한숨을 쉬었다.
"후우, 비는 정말 싫어. 고향이 그리워..."
"..고향이 어딘데요?"
"아아, 내 고향은 겔드의 마을. 사막으로 둘러싸인 마을이지. 여기에서 서쪽에 있어."
"겔드의 마을...."
"처음 들어보나봐? 어쨌든, 겔드 지역은 사막이라 비가 오지 않거든. 처음에는 이곳의 비가 신선하게 느껴져 좋았는데... 여기는 너무 자주 내리니까 싫어. 고향이 그립다..."
"겔드 마을 사람들은 모두 당신처럼 그렇게 키가 큰가요?"
그 말에 그녀는 나를 쓱 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셈이지. 나는 겔드족들 중 보통인 편이니까. 나보다 더 큰 사람도 많아."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비가 그쳤다. 비가 그치자 플레버는 다행이다! 라고 말하고는 어디론가 가버렸다. 비가 그치자마자 여관 반대편의 사바카네 요리 냄비에 불이 켜졌다. 나는 잠시 양해를 구하고 그 집의 요리냄비를 빌려 전투에 필요한 여러가지 요리를 했다. 필로네 지역과 나크시 마을에서 구한 재료들로 공격력을 높일 수 있거나 체력을 채울 수 있는 요리, 방어력을 높이는 요리를 했다.
어느새 저녁이 다가온다. 지도를 보니 아라이소로는 컬산에서 뛰어 내려가는 게 가깝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다시 컬산으로 올라갔다. 러브 폰드 주변에 나의 말이 얌전히 서 있었다. 해안에서 벌어지는 전투이니 데려가지 않기로 하고, 오랜만에 본 김에 사과와 하이랄초를 주었다. 그런데 사과만 달랑 먹고는, 하이랄초는 거들떠도 보지 않는다. 그래도 귀여운 말의 콧잔등을 쓰다듬었다. 곧 데릴러 올께~
말을 뒤에 남겨두고 아라이소 어장이 보이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달빛이 환하게 비치는데, 땅속에서 불쑥 스탈 보코블린이 튀어나왔다. 이제는 귀찮기만 한 스탈 보코블린을 해치우고, 지도를 다시 열어보았다. 어장은 내 예상보다 바다로 더 나가야만 했다. 일단 컬산 아래 언덕에서 해변 방향으로 날아 내려갔다.
아라이소 어장 입구에 도착한 시각은 새벽 1시 반 경. 이쯤이라면 몬스터들이 잠들었을지도 모른다! 어장 입구에는 어부들이 묶어 놓은 낡은 뗏목이 하나 있었다. 몬스터들이 점거한 나무 조망대 주변에는 높은 지형이 없어서 위에서의 공격은 어렵겠다. 망원경을 켜서 놈들의 움직임을 살펴보았다.
음? 조망대에는 올라가는 사다리도 없고... 무엇보다 보초를 선 보코블린들이 많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리고 예상과는 다르게 잠들어 있는 몬스터가 한 마리도 없었다.
망원경을 이리저리 돌려보면서, 적들의 수를 세 보았다. 8-9마리 정도... 가장 꼭대기에는 처음 보는 적이 있다. 멀리서 봐도 꽤나 덩치가 커서 신중하게 접근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대충 지형 파악이 끝났다. 오른쪽의 암초 지대로 가서 바위 뒤에 숨어 공격을 하거나, 아니라면 왼쪽으로 접근을 해 보던가... 그게 아니라면? 나루터에 묶여 있는 뗏목을 이용해서 들어가야 했다. 뗏목을 이용하는 방법부터 시도하기로 하고 나루터에 묶인 밧줄을 끊었다. 그래도 파도가 약해서인지 뗏목은 꿈적도 안 했다. 주변을 둘러보다 모래사장에 박혀 있던 노를 찾아 들고는 배를 밀어 봤다. 그런데 배를 때릴 수는 있어도 밀 수는 없었다... 뭐지...? 가만, 그러고 보니 노 젓는 방법은 알고 있나?? (모른다는 결론)
꿈쩍하지 않는 배는 소용이 없다. 일단 가장 가까운 보초 보코블린부터 없애기로 결정하고, 화살을 장전한 후 물로 뛰어들었다. 조용히 수영한다고 했지만, 눈이 밝은 보코블린은 나를 일찍 발견하고 시끄럽게 나팔을 불었다. 제길...! 아무렇게나 뭉친 실타래처럼 일이 꼬여 간다 생각했다.
날아오는 화살을 피해 첫 번째 조망대 아래에 가서 보니 지탱하는 가운데 나무의 굵기가 얇았다. 보코블린은 수영을 못 하니까, 그대로 조망대 나무 기둥을 베어 넘기면 보코블린이 물에 빠지겠지? 도끼가 없었지만, 기사의 검으로 휘둘렀더니 다행히도 나무 기둥은 잘려 넘어졌다. 예상대로다! 물에 빠진 보코블린은 허우적대다 사라졌다.
나를 발견한 다른 사수들이 열심히 화살을 쐈다. 나무 화살은 내가 있는 곳까지 닿지도 않고 위력도 작아 괜찮은데, 오른쪽의 어떤 보코블린은 불의 화살을 들고 있었다. 헉... 일단 피할 수 있는 주변의 암초 뒤에 숨기로 했다.
한마리밖에 처치하지 못했는데 날이 밝아오고 있었다. 암초 뒤에 숨었다가 화살을 장전하는 걸 보고 다른 방향으로 이동해 좀 더 큰 암초로 건너갔다. 여기 올라간 건 좋았는데, 문제는 이 암초에서 적진까지의 거리가 길어서, 패러세일로 날아봤지만 물에 빠질 수 밖에 없었다. 거리 계산 실수로 스테미나를 모두 소진한 나는 여기서 한번 기절했다.
다시 정신이 들어보니 출발했던 암초 뒤였다. 아무래도 오른쪽으로 접근하여 공격하는 것은 무리였다. 다시 아라이소 어장 입구로 가서 공격 방향을 생각해보기로 했다.
아라이소 어장으로 가는 나루터로 다시 왔다. 왼쪽을 살펴보니 어부들이 물목에 그물을 걸어 놓는 나무 기둥이 드문드문 서 있었다. 조망대로는 사다리가 없어 접근이 어려우니 차라리 이 기둥쪽으로 올라가는 게 낫겠다 싶었다. 이 판단은 적중하여, 몬스터들이 화살을 계속 쏘는데도 상대적으로 안전하게 아라이소 기지에 접근할 수 있었다.
계단으로 올라가면서 덤비는 보코블린은 기사의 검으로 밀어 떨어뜨렸고, 멀리서 화살을 쏘는 보코블린도 하나 하나 해치웠다. 그런데, 빨간 보코블린 한 마리는 거리상 화살이 닿지 않았다. 어떡할까 잠깐 고민하다 나도 모르게 몬스터가 있는 방향으로 달려가 뛰어내리며 활시위에 활을 걸었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주변에서 들리던 여러 소음이 한순간 사라지며, 시간이 천천히 흐르는 느낌이었다. 나에겐 목표물이 아주 또렷하게 보였기 때문에 활을 정확하게 쏴서 맞출 수 있었다! 바닥에 착지하여 보니 내가 화살로 맞춘 보코블린은 물에 빠져 사라졌다. 우연이었을까? 싶어 다시 점프해 공중에 뛰며 활을 걸었는데, 어쩌다 이루어진 일이 아니었다. 내가 바닥으로 떨어지는 속도가 느려지면서 주변의 사물이 하나 하나 잘 보였다. 와! 이럴수가... 놀라며 물에 빠졌는데, 아뿔싸. 이렇게 공중 점프를 하는 동안 스테미나가 계속 소진된다는 것을 깜박하여 다시 기절했다...
정신이 다시 들었을 때는 몬스터 기지 중간쯤이었다. 나무로 만든 경사로를 올라가며 보니, 건너편 기지의 몬스터들이 내가 어디 있는지 보지 못하고 있기에 올라가면서 화살을 쏘았다. 화살을 한 대 맞은 블루 보코블린은 바로 물로 추락하지 않았다. 그 녀석은 나를 공격할 무기를 찾다가 포기했는지 다시 제자리로 돌아간다. 그 때, 작은 돌이 날라와 나를 맞추었다.
"아야! 누가 돌을..."
돌이 날아온 곳을 보니, 이번 전투에서 처음 보는 그 몸집이 가장 큰 몬스터가 있었다. 아까 블루 보코블린도 그렇고 이 큰 놈도 활이 없기에, 나를 공격할 무기가 딱히 없는 상황이었다. 차라리 잘 되었다 싶어 시커 스톤의 타이머 폭탄 기능을 켰다.
네모 폭탄을 힘껏 던지며 기폭시켰다. 쾅! 아쉽게도 반대에 있는 커다란 몬스터에게까지 닿진 않았지만, 그 아래에 있는 블루 보코블린에게 타격을 주었다. 다시 한 번! 이번엔 완전 엉뚱한 방향으로 던졌다. 안 되겠다. 다시 활을 꺼내 가장 위에 있는 큰 몬스터에게는 폭탄 화살을(명중!), 아래 있는 블루 보코블린은 그냥 화살을 맞추어 처치했다.
그렇게 몬스터 처치가 모두 끝났다. 헉헉... 땀을 닦고 보니 거의 하루종일 걸렸다. 해가 수평선에 가까워지는 것을 느끼며 건너편 기지로 넘어가 전리품을 챙겼다. 새로 보는 몬스터 소재들이 떨어져 있었다.
소재를 모으고 나서야 그 큰 몬스터 이름이 '모리블린'이라는 것을 알았다. 모리블린...은 보코블린과 다르게 이빨이나 뿔을 보고도 그 이름이 생각나지 않았다. 예전에 별로 싸워 본 적이 없는 것일까...
처음 보는, 초록빛의 물컹하게 생긴 덩어리가 바닥에 떨어져 있어서 시커 스톤을 켰다. '모리블린의 간'이었다. 보코블린의 간 이후로 처음 보는 몬스터의 간이었다.
간을 손에 들어보니 아직 따뜻해서 기분이 이상했다. 생명력이 느껴지는... 얼른 주머니에 넣고 봉했다. 냄새가 심해서 오래 들고 있을 순 없었다. 보기에 기분 나빠도 이 간은 물약을 만들면 아주 좋은 약이 되니 버리고 갈 수수는 없다. 전리품을 챙긴 후 빠진 게 없나 살펴보다, 몬스터 머리 모양의 보물상자를 발견했다.
그래...커다란 기지니까 이런 보물상자 하나쯤은 있어야 전투의 보람이 있지! 보물 상자를 열어 볼 때는 늘 설렌다. 어떤 아이템이 들어 있을까... 제발 좋은 무기가 있었으면! 기도하며 상자의 뚜껑을 밀어 올렸다.
'짠 짜자자잔~'
의외로 '기사의 창'이란 무기가 들어있었다. 손에 쥐고 찔러 보니 내구도가 좋아 보이지는 않지만, 말을 타고 달리며 쓰기에는 아주 적절한 길이와 무게였다. 공격력은 지금 갖고 있는 검보다 낮으니 말을 탈 때 써야겠다고 생각하며 주머니에 잘 챙겨넣었다.
생각보다 전투는 길었지만, 어렵지 않은 싸움이었다. 혼자서 해냈다는 뿌듯함이 온 몸에 남아있었다. 사바카의 말대로, 나는 생각보다 강했다. 공중 점프하며 활을 정확히 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것도 발견했다. 막상 전투에 들어가면, 나도 모르게 알아서 몸이 움직이는 점도 있는 것 같다. 이런 걸 보면... 역시... 나는 기사이긴 했던 걸까...
조용해진 아라이소 어장에 부드러운 분홍빛의 노을빛이 가득 찼다. 긴장이 풀리고 나니 시원한 바닷바람과 파도 소리가 느껴진다. 기쁜 마음으로 아라이소 어장을 정리했다는 소식을 빨리 전해야겠다.
다시 나크시 마을로 돌아가는 길에는 비가 내렸다. 지나가다 코로그가 장난치다 만 듯한 돌 배열을 발견했는데, 러브 폰드 영향인지 이 돌의 배열도 예사롭지 않다. 웃음이 터졌다. 주변의 돌을 찾아 비어 있는 자리에 놓으니 펑~ 코로그가 나타났다. 그런데, 대체 이 꾸리한 냄새가 나는 씨앗은 언제 소용이 있는 걸까...?
다시 나크시 마을로 돌아왔을 때는 자정이 넘었다. 사바카의 집으로 돌아와 보니 다들 편안하게 자고 있다. 사바카의 아이들이 자고 있는 집으로 들어갔다. 두 아이가 누워서 자고 있었다. 둘 중 하나는 역시, 나를 유적까지 데려가 주었던 키즈타였다. 새근새근 새근새근. 잘 자는 아이들의 모습도 아름다운 자연만큼이나 보기 좋다는 걸 알게 되었다.
날이 밝을 때 까지 다른 곳에 있다가 아침에 다시 이 집을 찾았다. 나크시 마을에는 여관과 가게 외에 다소 특이한 보물 상자 가게가 있다. 비가 올 때 나크시 마을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다 알게 된 집인데, 여기에 가면 '내기'를 할 수 있다고 했다.
뭐, 내기를 할 수 있는 가게가 따로 있다는 게 새로워서 언젠가 한번 가 봐야지 했었는데... 결론부터 쓰자면 시간 때우기에 좋은 장소였다고 생각한다. 돈을 걸고 하는 놀이는 언제나 스릴도 있는 법이다. 기회가 되면 보물상자 가게에서 생겼던 일은 다른 일기에 정리해야지.
날이 밝고 나서 다시 사바카를 찾았다. 다행히 집 주변에서 한숨을 쉬고 있는 사바카를 쉽게 만났다. 달려가 아라이소 어장 소식을 전해 주었더니 같이 기뻐해 주었다.
"오오~ 아라이소 해안의 몬스터들을 퇴치해 주었구나! 역시... 넌 해낼 줄 알았어."
사바카의 칭찬을 들으니 좀 멋적었다. 사바카는 환히 웃으며 아라이소 해안에 다시 갈 수 있게 되어 좋다고 말하고는, 기회가 된다면 아라이소에서 잡은 생선 맛도 보여주겠다고 했다.
그러더니 자신의 부탁을 들어 준 답례라며 아주 반짝거리는 실버 루피를 쓱 찔러 주었다. 앗! ... 전혀 기대하지 않았는데…이러면 전투를 한 보람이 ... 너무 있다...
사바카는 바로 아라이소로 출발할 것 같았다. 오랜만에 어장에 빨리 가 보고 싶을 것이다. 그의 말대로, 아라이소는 수심이 얕고 완만해 물고기를 잡기엔 좋은 장소였다. 어부가 아닌 나의 눈에도 그렇게 보일 정도니까... 사바카와 왠지 아쉬운 작별인사를 나누었다. 또 들러 달라며 서둘러 떠나는 사바카를 보며 혼자 중얼거렸다.
'응... 그래... 안그래도 버터를 구하게 되면 다시 와야 해.. 당신 부인 부탁도 들어주기로 했으니...'
이제 나크시 마을을 잠시 떠날 때가 된 것 같다. 다음 행선지는 여기서 북쪽에 있다는 하테노 마을이다! 그곳에 가면 또 어떤 사람들을 만나게 될까...? 내가 찾고 있는 해답의 실마리가 그곳에는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