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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크시 마을에서 만난 사람들

젤다의 전설 - 브레스 오브 더 와일드 (11)

by 김엘리

컬산 아래에서 보이는 사당에 들렀다가, 나크시 마을로 내려왔다.



나크시는 아담한 어촌 마을이었다. 길을 지나다 파괴된 집터나 마을의 흔적이 있었던 장소만 봤는데, 이렇게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는 마을은 처음 봤다. 100년 전 재앙 가논이 쳐들어온 일과는 전혀 상관없어 보일 정도로 평화롭고, 조용한 곳이었다.


사당에서 내려와 해안선을 따라 돌아다니며 마을을 쭉 둘러봤다. 많은 사람은 아니었지만, 사람들이 살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배를 정박하는 곳에는 작은 생선가게도 있었고, 작살을 들고 돌아다니는 젊은 청년도 있었다. 해안에는 누군가 피워놓은 모닥불에 생선이 먹음직스럽게 구워지고 있었다. 파도가 거의 보이지 않는, 잔잔한 해안은 얕아서, 물 아래가 훤히 보였다.해안가나 물속의 여러 동물들은 처음 보는 것도 있어 신기했다.


마을 안쪽이지만, 바로 펼쳐진 바닷가엔 특히 게가 많았다. 먹음직스러워 보이는 게! 불에 구워 먹으면 맛있겠다~ 싶어서 보이는 대로 다가가 잡았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이곳의 게들은 뭔가 특별한 효능이 있었다.



빨간 껍데기가 아주 단단해 보이는 게는 '갑옷게'라고 하고, 신비한 초록빛이 도는 껍데기를 가진 게는 '칼날게‘이고... 그냥 구워먹으려고 했더니, 요리해서 먹으면 각각 방어력이나 공격력을 올려준다고 한다. 또 신나서 요리할 이유가 생겼다.


나크시 마을의 집들은 모양이 좀 특이하게 생겼다. 어째서 이렇게 둥글게 집을 지었을까? 좀 더 가까이 가서 보려고 마을 입구에 있는 큰 집 가까이 갔다. 집으로 올라가려는데, 사람들이 있어서 잠깐 멈칫했다. 앞마당으로 보이는 작은 모래밭에는 어떤 아주머니가 빨래를 널고 있고, 그 모습을 지켜보는 어린아이가 앉아 있었다.


그 아주머니는 나를 보자마자 반가운 웃음으로 "여행자 맞지?" 하고는 인사를 건넸다. 친절한 아주머니였다. 여기가 나크시 마을이라는 걸 알고는 왔지만, 그래도 이곳에 대해 물으니 아주머니는 나크시 마을에 대해 알려주었다.


"여긴 나크시 마을, 어부의 마을이지. 내 남편도 어부 일을 하고 있어~"

그러더니 아주머니는, 남편이 나가고 없으니 매일매일이 집안일에, 두명의 아들(여긴 한명밖에 안 보이는데, 또 한명이 있는 모양) 육아에 할 일이 태산이라며 푸념을 늘어놓았다.


"아... 그렇군요..."

그런 아주머니의 한탄에 뭐라 말해야 할지, 알 수 없어서 맞장구만 쳤다. 그런데, 아주머니는 내가 뭐라 한들 상관없다는 듯, 앞에 앉아 있는 어린 아들에게 저녁은 뭘 먹고 싶냐며, 무슨 요리를 할까 물어봤다.



아들은 또랑또랑하게 대답했다.

"오늘 저녁은 해물 파에야면 좋겠어! 그거 맛있는데..."


해물 파에야? 처음 들어보는 음식 이름이다. 그 말을 듣고 아주머니는 한숨을 내쉬었다. 해물 파에야... 좋기는 한데 지금은 재료가 부족해서 만들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더니 갑자기 나를 보고는, 재료를 대신 좀 구해다 줄 수 없겠냐고 말했다. 아하... 아주머니가 내게 육아니 집안일이니 힘들다고 푸념한 이유를 이제 알겠다. 아주머니는 자신을 도와 줄 사람이 필요했던 거다. 나는 낯선 사람인데, 이런 부탁을 쉽게 하다니 참... 넉살도 좋으시다. 흣...


어쨌든, 필요한 재료는 맥스소라와... 염소 버터? 라고 한다. 맥스소라는 바닷가에서도 찾을 수 있을 것 같은데, 염소 버터라니... 이 재료는 어디서 구해야 할까? 아주머니에게 물어보려 했더니 다른 일을 하러 사라졌다. 귀여운 아들이 나를 빤히 쳐다보며 웃길래, 나도 같이 미소를 보여줬다. 염소 버터는 아까 마을 가게엔 없었으니, 다른 곳을 알아보거나 누군가에게 물어봐야한다.


일단 맥스 소라를 찾으러 다시 바닷가로 나갔다가, 나는 꽤 큰 작살을 들고 있는 남자를 만났다. 그는 나를 보더니 여행자냐고 물었다. 간단히 인사를 나누다 그의 이름을 들었다. 사바카라고 하는 그 남자는 어부였다. 그는 기분이 그다지 좋지 않아 보였다.


"물고기를 잡을 수 있는 어장이 줄어들었어. 최근 근처 어장을 몬스터에게 점거당해 골머리를 썩고 있지."

"곤란하겠군..."


맞장구를 쳐 주었기 때문인지 모르겠으나 그는 갑자기 나를 한번 쭉 훑어보더니 이렇게 말했다.

"당신, 강해 보이는데... 놈들을 퇴치해 주지 않겠어?"


깜짝 놀랄만한 제안이었다. 내가 어딜 봐서 강해 보인다는 거지? 사바카는 나보다 키도 크고, 어깨 골격도 훨씬 넓은 다부진 체격의 어부였다. 싸움도 꽤 잘 할것 같아 보이는데...


"글쎄... 나의 어디가 강해 보인다는 거지?"

나의 질문에, 사바카는 정색을 하고 대답했다.


"그 등에 있는 무기, 몬스터가 쓰는 것 아냐? 몬스터들이 들고 있는 무기를 빼앗아 쓸 정도라면... 꽤 싸워 봤다는 소리지. 그리고 아까 당신이 게 잡는 것도 봤는데... 아주 빠르고 정확하게 게를 잡더군. 다부진 근육도 그렇고...거기다 당신이 서 있는 자세만 봐도 알 수 있다고. 가슴을 편 당당한 자세는 기사들에서나 볼 수 있는 모습이지."

"... 기사?"


"그래. 당신 어디 출신인지는 모르겠지만, 하일리아인 인것 같은데...옛날 하일리아인 기사들이 유명했지. 거기다가…여기서 북쪽에 있는 하테노 마을에는 옛날에 하이랄 성에서 인정받아 대대로 기사를 배출한 가문이 있다는 이야길 들은 적이 있어...예전에 할아버지한테 들었던 이야긴데..."


사바카의 이야기가 매우 솔깃했다. 하테노 마을이란 곳에 기사 집안이 있었다... 하이랄 왕은 나도 기사였다고 했고…그 마을에 가면 뭔가 나의 잃어버린 기억과 연관된 사람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거다.


"...100년전 재앙이 이 나라를 덮쳐서 많은 기사들이 싸우다 죽었다고 하지. 그래서 지금은 대를 이어 일하는 기사를 찾아보기 어려워. 하이랄 왕국도 거의 멸망했으니, 말 다했지! 그나저나 할아버지가 심심풀이로 이야기해주신 기사들 이야기... 재미있었지. "


사바카는 할아버지에게서 기사들의 활약 이야기를 여러 번 들었고 100년 전보다 더 옛날에는 하이랄 왕국을 지키던 용사가 있었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한다. 그래서 어릴 때는 자기도 기사를 꿈꾼 적이 있었다고 했다.


"그런 기사들이 있다면 저런 몬스터들쯤은 아무 일도 아닐텐데 말이지."

"당신도 꽤 쎄 보이는데... 스스로 해결해 보는 건 어때?"


나의 질문에 그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나에겐 지켜야 할 가족이 있어. 무모한 짓은 할 수 없다고."

"가족?"

"그래... 저기 보이는 집에 내 가족들이 있지."



사바카는 그렇게 말하며 집이 있는 방향을 가리켰다. 그가 손으로 가리킨 쪽을 보니, 해물 파에야를 먹고 싶다고 말했던 아이가 있는 그 집이었다! 그 귀여운 아이의 얼굴이 떠올랐다. 나를 보며 해맑게 웃어주던... 그러고 보니 그 어린아이는 사바카를 닮았다.


"그렇구나... 알았어. 맡겨 둬."

나도 모르게 사바카에게 몬스터 처치를 떠맡겠다고 말해버렸다. 말하고서도 나 스스로 놀랐다. 사바카는 주먹을 불끈 쥐며 이렇게 외쳤다.

"그렇지! 그래야 남자라 할 수 있지!"


그의 부탁을 결국 승낙하게 된 건, 사바카에게서 들은 '나도 모르는 나의 모습'에 조금 놀란 것도 있었다. 사바카가 나의 대단한 무엇을 본 게 아닌데도, 보통 사람 같아 보이지 않았다고 한 말 속에는 뭔가 인정받았다는 느낌이 있었다.


사바카는 몬스터의 위치를 알려주었다.

"장소는 '아라이소 해안'. 몬스터들은 거점을 만들고 점거하고 있어."


아라이소 해안? 어디서 본 이름이긴 한데... 나는 시커 스톤의 지도를 열었다. 아라이소 해안을 금방 찾긴 했는데, 어라? 나크시 마을에서는 꽤나 거리가 있었다. 오히려 필로네 지방에서 더 가깝다. 나크시 마을 어부들은 멀리까지 고기를 낚으러 가는구나...


승낙을 하고 나니 사바카는 잘 부탁한다며 집으로 돌아갔다. 지금 당장 아라이소 해안을 갈까, 어쩔까 하는데 왠 꼬마아이가 해안을 열심히 달리고 있다. 이 꼬마, 혹시 사바카의 또 다른 아들인가? 머리를 정수리에 모아 묶은 모습이 귀여워 인사를 했다.


"안녕~"

"? 어? 여행하는 형인가? 마을에서는 처음 보네."

"...응..."

"저기, 그럼 그거 알아? 야시노 비치에 재미있는 곳이 있는데!"


내가 멀뚱멀뚱 바라보고만 있자, 꼬마는 전에 리가니라는 사람과 간 적이 있다며 유적에 관심 있다면 데려가 준다고 했다. 유적이라니, 뭔가 새로운 일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싶어 일단 꼬마를 따라가 보기로 했다.


꼬마의 이름은 키즈타라고 했다. 유적은 그리 멀지 않다며 따라오라고 하더니 키즈타는 정말 재빠르게 모래 언덕을 넘어갔다. 그런데 마을을 벗어나자마자,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꼬마에게 괜찮냐고 물어보고 싶었지만, 키즈타는 비는 아랑곳하지 않고 휘적휘적 뛰어갔다.


쏟아지는 비에 꼬마의 모습이 잘 보이지 않아, 혹시 놓칠까 싶어 부지런히 쫓아갔다. 그런데 꼬마는 언덕길을 달려 내려가나 싶었더니 수풀 사이에서 갑자기 멈춰 섰다. 그러더니 "골!" 하고 외쳤다. 다 왔다는 뜻인가보다. 주변에는 유적같이 생긴 곳이 보이지 않아, 내가 두리번거리자 키즈타는 언덕 아래를 가리킨다.


키즈타가 가리킨 곳에는 붉은 빛이 나오는 둥근 바닥판이 2개가 있었다.

"저게 유적이야!

비가 내려서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뭔가 시련의 사당과 관련이 있는 것 같았다. 내가 유적이 있는 장소를 보고 있자, 키즈타는 자기는 이만 가 보겠다며 사라졌다.


붉은 빛이 감도는 판을 향해 가는데, 시커 스톤에서 '야시노 유적'이라는 알림이 울렸다. 해변에 도착해보니 왠 남자애가 둥그런 석판을 보며 중얼거리고 있었다.


"으~~음... 도대체 이 비석엔 뭐라고 써 있던 걸까?“


가까이 가서 보니 키즈타가 말했던 리가니라는 사람이지 않을까? 싶었다. 하지만 내가 그 옆에서 서성이는데도 비가 세차게 내려서 그런지 그는 나를 못 보는 것 같았다.


리가니의 말대로라면 그의 앞에 서 있는 둥근 석판은 무언가 글이 새겨진 비석인 듯 한데, 윗부분이 날아가서 없어져 원래의 형태가 무엇이었는지 알기도 어려웠다. 비석에 매우 열중해 있는 남자애는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비석이 부서졌다면 주변에 조각이 흩어져 있지 않을까 생각한 나는 그 주변을 돌아다니며 살펴보았다. 하지만 비석 조각은 유적 주변에는 없었다.


그 붉은 빛이 어린 2개의 받침대는 시련의 사당과 연관이 있을 것 처럼 생겼다. 하지만 유적 앞에서는 시련의 사당을 열 만한 어떤 힌트도 찾을 수 없었다. 나는 포기하고 돌아서서 다시 마을로 돌아가기로 했다.


키즈타가 알려줬던 길을 따라 마을로 다시 돌아가는데, 비가 그쳐 훨씬 시야가 밝았다. 이미 밤이 되어 사방은 고요한데, 아까는 발견하지 못했던 돌산 아래에 굴이 눈에 들어왔다. 굴을 발견한 이유는, 그 안에 빛나는 광상이 여러 개 모여 있었기 때문이다.


내 체력으로는 광상이 있는 곳까지 헤엄칠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지만 도전해 보기로 했다. 예전에 고원의 마구간 주변에서 말을 잡을 때도 광상을 발견해 부순 적이 있는데, 보석이 꽤 많이 나왔었다. 호박 같은 보석은 저렴한 편이지만, 그 이상의 보석을 찾는다면 돈을 버는 데는 그 이상 쉬운 일이 없기 때문에 광상은 지나치기 어렵다.


숨을 참아 가면서 헤엄쳤는데, 다행히도 다른 원기 물약의 도움 없이 굴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들어갔더니 내 예상보다 광상이 더 많았다! 주머니에서 도끼와 망치를 꺼내 들고 신나게 광상을 내리쳤다.


이럴수가! 역시 그냥 이곳을 지나치기 싫었던 이유는 이것이었나? 특이한 빛을 내는 광상을 부수었더니 다이아몬드가 ... 가장 비싼 보석인 다이아몬드가... 2개나 나왔다! 이보다 더 기쁠 수는 없다. 예전에 보았던 루비, 사파이어도 하나씩 나왔고, 처음 보는 광물도 있었다. '암염'이라는데... 요리할 때 쓰면 맛을 더해준다니 귀하게 챙겼다.



동굴에서 발견한 보석에 신이 나서, 양손검을 꺼내 들고 신나게 풀을 벴다. 그런데 어라?... 의외로 '하이랄 쌀을 얻었다. 쌀은 마을에서 재배를 해야 구할 수 있는 작물인 줄 알았는데... 이렇게 들판에서도 자라는구나.



나크시 마을로 다시 돌아가보니, 아침이 되었다. 어쩌다 보니 또 밤을 샜다. 아침 햇살을 받으며 해변을 뛰다가 뭔가 파란 돌 같은 것이 빛나는 것을 발견했다. 뭐지? 또 보석인가? 설마... 하고 가까이 가 보았는데, 그것은 찾고 있었던 '맥스소라' 였다. 사바카네 전해주면 좋아하겠다 싶어 기뻤다. 이제 무슨 버터만 구하면 될 텐데, 그건 대체 어디 있으려나?


맥스소라가 또 어디 있나 찾아보려고 다른 쪽 해안을 뒤지다가, 작살을 들고 가는 다른 청년을 만났다. 혹시 염소 버터인지 젖소 버터인지 어디서 구할 수 있는지 아냐고 물어볼 심산으로 말을 걸었다.


그런데 그는 반갑게 인사를 받아주면서도, 관광하러 왔냐고 내게 물었다. 여기 뭐 관광할 곳이 있나 의아해서 '관광?'하고 그에게 다시 물었는데, 그는 나크시 마을의 명소라고도 할 수 있는 파워 스폿을 모르냐며 더 놀라 내게 물었다.


"어라~ 모르는 거야~~? 사랑이 이루어지는 최강 파워 스폿!"

... 설마, 러브 폰드인가 뭔가 그걸 말하는 건가? 싶었지만 이야기하지 않고 가만히 있었다. 괜히 아는 체 했다가 난처해질수도 있으니까...


하지만 왠지 그럴 것 같은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흣. 그는 컬산의 러브 폰드가 사랑을 이루어주는 곳이라는 소문이 나서 멀리서 일부러 찾아오는 관광객이 있다고 말했다. 그렇다는 말은, 페디는 그 말을 믿고 일부러 이곳을 찾아왔다는 소리겠지? 왠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지만 커플이 된 그 둘이 생각나서 나는 혼자 웃었다.


그 청년은 컬산에 한 번 올라가 보라고 말하고는 쿨하게 사라졌다. 아! 맞다...버터 어디서 구하냐고 물어봤어야 하는데... 다시 불러세우기가 민망해서 나는 다른 방향으로 돌아섰다. 아라이소 어장에도 가야 하는데…..그렇지… 전투 준비도 해야지…


전투를 생각하니 마음이 좀 무거워졌다. 나는 햇살이 부서지는 모래밭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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