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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곽성숙 Oct 24. 2022

숲 속 음악회


가까이 지내던 사촌 동생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둘째 고모의 자녀들이 자신의 부모님과 외삼촌,

이모들을 모두 모시고 사촌 동생네 주말농장에서

만남의 자리를 만들어 드리고 싶다고 합니다.


이제 다들 연세가 있으셔서

이 만남이 귀한 자리이니

외삼촌(나의 아버지)을 꼭 모시고 오라 합니다


아버지께 말씀드렸더니 못 간다고 하십니다.


-난 늙어서 멀리는 못가. 내 나이가 곧 90이여.

  그냥 너희들이나 다녀와.


몇 번을 말씀드려보았지만 단호하신 아버지.

그래서 우리 부부가 대신 근처에 사시는

셋째 고모님과 함께 가기로 했습니다.


이젠 가족 행사에서도 보기 힘든 어르신들과

사촌들이 모두 자연 속에서 함께 한다는 생각만으로도

기분이 좋습니다.


2시가 지나 도착한 인제의 주말농장은  

마을과 다소 떨어져 있는 산속의 쉼터였습니다.


옆으로는  계곡물이 흐르고

밤에는 산돼지와 고라니도 출몰한다는 깊은 산속.

우리가 없다면 적막 산중입니다.


오늘 이 자연 속에서

우리들만의 세상이 펼쳐지는 겁니다.


막내 고모의 식사 기도로 축제의 서막이 올랐습니다.

정성껏 준비한 식사를 맛있게 먹고,

남자들만을 남겨둔 채 홀연히

여자들끼리 자리를 빠져나왔습니다.


센스쟁이 조카들이 얕게 흐르는

계곡물 한가운데  마련한 테이블.

여기서 우리의 숲 속 음악회 1부가 시작되었습니다.


막내 고모는 자리에 앉자마자

미리 준비해오신 하모니카를 꺼내  드셨습니다.


첫 연주곡은 ‘바위고개‘입니다.

까마득한 60년 전의 추억을 떠올리며

고모가 말씀을 하십니다.


막내 고모가 10살일 때 20살이었던 바로 윗 언니와

고향 행터고개를 넘어 큰 밭으로 심부름을 가는 길.


행터고개 넘는 길에는 큰 바위가 있었는데,

언니는 고개를 넘을 때면 동생 손을 꽉 움켜잡고는

‘바위 고개 언덕을 혼자 넘자니-’하며

꼭  바위고개 노래를 부르셨다고 합니다.


어린 동생은 혼자 생각했습니다.

’호랑이가 저 큰 바위 뒤에 숨어있는거야.

 언니는 호랑이가 너무 무서워서 눈물이 나지만

 겁먹지 않으려고 내 손을 잡고 노래를 부르며

 밭으로 가는 거야.‘


커서 생각하니 그 노래는

님 그리워 부르는 노래였지요.


고모는 지금도 바위고개 노래를 들으면    

그때의 무서운 호랑이 생각이 먼저 난다고 합니다.


막내 고모는 하모니카로 바위고개를  연주하시고  

셋째 고모는 추억의 노래를 부르셨습니다.

노래를 끝낸 고모는 고모부 생각이 난다며

울컥하시네요.


다음 곡은 반달입니다.

환갑을 겨우 넘기시고  병환으로 돌아가신

큰고모가 좋아하셨던 노래랍니다.


시어른 모시고 고된 시집살이를 하셨던 큰고모.

온화한 성품에 지혜가 넘치시고

늘 인자하셨던 큰고모.


큰고모 살아생전에 늘 고모집에는 손님이

끊이지 않았다고 합니다.


시골에서 올라온 손님들이 내 집처럼 편안하시도록

항상 반갑게 맞이하시고 후하게 대접했다고 합니다.


남들은 노래 배우러도 다니고 노래방도 잘 가더만

큰고모는 그럴 여유가 없었답니다.


가족을 위해 희생만 하고 사셨던 고모였습니다

그래서 혼자 부를 수 있는 몇 곡 안 되는 노래 중에

반달을 즐겨 부르셨답니다.


막내 고모가 큰언니 집에 가면 같이 불렀던 반달.

막내 고모는 하모니카를  불고

우리는  합창을 했습니다.


푸른 하늘 은하수 하얀 쪽배엔 계수나무 한 나무-

둘째 고모는 큰언니 생각에 노래를 부르시면서

고이는 눈물을 참으시느라 연신 눈을 껌벅이십니다.


옷 한 벌도 서로 양보하고 배려하며

어린 시절을 보내셨다는 고모들.


단 한 번도 서로 싸워 본 적이 없다는 고모들의

형제애가 지금의 자리를 만드는데 큰 공헌을 했겠지요.


우리는  고향의 봄, 오빠 생각 등의 노래를

하모니카 연주에 맞춰 합창을 하고

고모님들의 옛 추억담을 듣는 시간을 보냈습니다.


어느덧 사촌 제부가 색소폰을 부는 소리가

계곡을 타고 들려옵니다.


우리 만남을 축제의 분위기로 이끄는 연주 소리에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잠시 후면  숲 속의 음악회 2부가 시작되겠지요.

감미로운 색소폰의 음색이 서서히

우리의 흥을 돋우고 있었습니다.


사촌 동생 부부의 멋들어진 색소폰 연주.

막내 고모의 경쾌한 하모니카 연주.

우리의 명가수, 셋째 고모가

그 연주에 맞춰 노래를 합니다.


밤이 깊어갈수록  열기는 점점 더 달아올랐습니다.

모두가 돌아가며 무대에 올라 노래를 부르고

흥에 겨워 춤을 추며 우리의 만남이 무르익어갑니다.


음악이 있는 아름다운 공간에서

따사로운 사랑으로 우리는 하나가 되었습니다.


코로나로 눌려있던 몸과 마음이 힐링된 하루였습니다.


사촌 동생들의 희생과 속 깊은 배려로

따뜻한 정을 나누고 행복을 마음에 싣고

집으로 돌아갈 시간이 되었습니다.


더 놀다 가라.

술 한잔 더하고 아침에 가라.

사촌 동생들이 만류를 하네요.


그러나 밤이 깊어가니

혼자 계실 아버지 생각이 납니다.


언제 만나도  즐거운 사랑스러운 가족들.

곽이응 유창순 할머니의 후예들입니다.


막내 고모의 기도소리가

지금도 귓가에 생생하게 들립니다.

자연을 벗삼아 함께 모이게 해 주심에 감사합니다.


영육 간의 건강한 삶으로 주변에 좋은 영향을 끼치는 삶을 살게 해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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