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터리(Mr. Lee) #3. 영국, 너 잠깐만!
1화. 조상부터 해적들 맞지?
“산골소년의 꿈은 양파 같은 나라 영국을 하나씩 까 해쳐보는 것이었다. “
그는 초등학교도 입학하기 전부터 영국을 동경하기 시작하였다. 어려서부터 지리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는 사회과부도라는 세계지도책을 끼고 살았다. 산골 소년의 눈에 비친 영국이라는 작은 섬나라는 그를 사로잡기 시작하였다. 한마디로 대단한 나라였다. 그 작은 섬나라 사람들이 궁금해지기 시작한 것이다. 영어는 기본이고 산업혁명과 민주주의가 시작된 나라가 영국이었다. 그 자그마한 섬나라가 전 세계 땅의 2/3를 식민지로 거느리며 해가 지지 않는 나라라니 믿기지 않았다. 초강대국인 미국도 결국은 영국의 후손들이 만든 나라였다. 신기하게도 미국 사람들은 미국 말을 사용하지 않았다. 그 힘세고 잘난 양키들도 결국은 영어를 사용하고 있었다. 미국의 지명 대부분도 영국의 지명을 사용하고 있었다.
영국이라는 나라는 아무리 까도 끝이 보이지 않는 요술나라의 양파 같은 존재였다. 그는 어른이 되면 영국에 도전장을 내밀고 싶었다. 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싶었다. 그러면 그도 영국인들처럼 힘 있는 사람이 되리라 믿었다. 초등학교도 입학하지 않은 어린 산골 소년의 꿈은 그렇게 싹이 터서 자라기 시작하였다. 중고등학교를 다니면서도 머릿속 한 구석에는 영국이라는 다락방이 자리 잡고 있었다. 대학을 가서도 마찬가지였다. 그의 꿈은 군 복무 시절에 더욱 확고해지기 시작하였다.
그는 야전 기갑부대의 중대 행정병으로 3년을 복무하였다. 행정반에서도 서무계라는 막강한 권력을 쥐고 흔들었다. 그의 눈밖에 난 중대원들은 군 생활이 꼬일 수밖에 없었다. 그는 수시로 PX로 불려 다니며 닭발과 만두를 접대받았다. 권력은 달콤하였고 비록 사병이지만 부사관들 마저도 그를 무시할 수 없었다. 군에서 권력의 맛에 취한 그는 사회에 나가서도 그 권력을 위해서라면 뭐든지 해보고 싶었다. 그가 한국에서 성공할 확률은 희박하였다. 한 발 앞서서 권력을 잡아보려면 더 멀리 보아야 했다. 그래서 지구 반대편에 있는 작은 섬나라에 주목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는 전역하자마자 분당 아파트 공사현장에서 5개월의 막노동을 시작하였다. 영국으로 떠날 비행기 표와 약간의 돈을 마련하자마자 런던으로 무작정 떠났다.
”한국의 촌스럽게 생긴 어학연수생이 런던의 중심에 있는 하이드 파크에서 BBC와 인터뷰를 하다니!”
90년대 초반의 수려한 여름날이었다. 춥지도 덥지도 않은 전형적인 영국의 여름날이었다. 어학원에서 1교시 수업 도중 갑자기 피크닉을 가게 되었다. 그날은 금요일이었고 수업하기 싫어서 학생들이 선생을 졸라 만든 야외수업이었다. 야외수업은 매주 한 번은 공원이나 선술집인 펍에서 이루어졌다. 야외수업의 특징은 일단 각자가 마실 캔 맥주부터 사는 것이었다. 말이 야외수업이지 사실 피크닉이었다. 놀랍게도 실전 영어공부에는 그 피크닉만 한 것이 없었다. 한두 달만 다녀도 학생들은 그 야외수업의 효과를 자연스럽게 알게 된다. 맥주 마시며 놀면서 공부한다는데 선생도 마다할 리 없다.
사실 런던의 영어학원에서 3시간 수업을 끝까지 듣는 일은 고행이었다. 실제로 1교시 출석체크만 끝나면 2교시부터는 절반도 남지 않고 줄행랑을 친다. 영어의 본고장이라 기대가 컸지만 영어는 생각처럼 늘지 않았다. 그 이유 중 하나는 30년이 지난 지금도 바이블처럼 사용하고 있는 영어 문법책 때문이다. 대표적인 책이 바로 “Grammar in use”라는 책이다. 영국의 어학원들에서 사용하면서 한국은 물론 전 세계 영어학원에서 교과서처럼 사용하는 교재다. 따분하고 재미없다. 보기만 해도 질린다. 그의 아내가 그의 런던 어학연수 사실 자체를 의심하는 이유다.
베를린 장벽도 무너졌는데 문법책이 건재한 이유는 하나다. 선생 입장에서 따로 수업 준비를 할 필요가 없다. 책에 수업 방식까지 어느 정도 나와 있기 때문이다. 그 때나 지금이나 동서양을 막론하고 문제는 문법책 들이었다. 영어의 본 고장에서 어학연수를 해도 영어가 쉽사리 늘지 않는 이유다.
런던 시내 중심에 있는 하이드 파크라는 곳에서 피크닉이 이루어졌다. 그 당시 선생 이름은 토니였다. 전형적인 잉글리시였다. 그는 남자도 좋아하고 여자도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특히 일본 여학생들에게 인기가 높았고 토니도 일본 여학생들을 좋아하였다. 그날 야외수업의 주제는 양성애에 관한 것이었다. 놀랍게도 선생 토니는 자신은 양성애자라고 고백하였다. 그러면서 돌아가면서 자기의 성적 취향을 이야기하는 것이 그날 수업이었다. 그는 난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가 남자도 좋아하면 양성애자가 맞다. 문제는 남자는 고사하고 여자 친구 한번 제대로 사귀어보지 못하고 전역하자마자 런던에 온 그였다. 영어 문법 이야기만 나오면 기세 등등하던 그가 작아지는 시간이다. 실전 경험이 전무 한(?) 그는 유독 성이나 연애 이야기만 나오면 작아졌다.
그의 팀 말고도 야외수업처럼 보이는 피크닉 팀들이 여기저기에서 금요일의 한가한 여름날을 즐기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BBC 방송국에서 인터뷰를 요청해 왔다. 주제는 동양인이 생각하는 제국주의에 대한 것이었다. 아무도 나서는 학생이 없었다. 선생 토니가 인터뷰를 하려다 거절당하였다. 영국인이 아니라 동양인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순간 모두가 내 얼굴만 바라보고 있었다. 학생 중 절반은 동양인이었지만 대부분 일본 학생들이었다. 한국인은 그가 유일하였다. 눈앞이 캄캄하였다. 그렇지 않아도 무대나 마이크 공포증이 있던 그였다. 한국말도 아닌 영어로 인터뷰를 하란다. 그것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방송국중 하나인 BBC에서 말이다.
그의 속도 모르고 토니는 “Come on man”을 외치며 그를 일으켜 세웠다.
그래 한번 해보자! 그렇지 않아도 일본과 영국의 제국주의에 대해 할 말이 많았는데 기회를 놓칠 순 없었다. 그는 생각보다 용감하였다. 순간 일본 여학생들의 입이 떡 벌어졌다. 정말로 그가 BBC와 인터뷰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그의 옆에는 카메라에 잡히지 않게 선생 토니가 코칭을 하고 있었다. 할 말은 많았지만 카메라 조명들이 들어오자 순간 머릿속이 하얘지면서 학력고사 수학시험 1번 문제가 오버랩되었다. 1번부터 막히면서 고전했던 기억은 평생의 악몽으로 따라다니며 그를 괴롭혔다. 수학만 아니었어도 를 입에 달고 살던 그였다.
결국 NG가 나고 10분 후에 다시 시작한다고 하였다. 그는 선생 토니에게 필사적으로 매달렸다. 그가 막혔던 것은 제국주의라는 단어가 생각이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토니는 Colonialism이라는 단어를 알려주었고 간단하게 제국주의가 어떤 것이고 그것으로 영국이 부를 착취하는 과정을 설명해 보라고 힌트를 주었다. 누가 그걸 모르나! 그놈의 영어가 문제지. 이래 봐도 그는 인문학도였다. 그것도 사회학을 전공 중인 그였다. 물론 학교에서 제대로 수업을 받아본 적은 없다. 시국이 너무 어수선하던 시기에 입학했기 때문이었다.
BBC의 카메라 감독은 다시 조명을 켜고 그를 인터뷰할 리포터를 불렀다. 그렇게 시작된 단독 인터뷰는 30분이나 진행되었다. 인터뷰가 끝나고 그는 맥주잔부터 찾았다. 사실 영국보다도 일본의 제국주의 문제를 더 많이 이야기하였다. 가장 큰 피해 당사 국민의 한 사람으로 제국주의에 대한 배상 문제까지 논한 그였다. 방송은 한 달 후에 BBC 제국주의 특집에서 방영된다고 하였다. 그는 인터뷰 이후 일약 스타가 되었다. 하지만 한 달 후의 방송에서는 15초 정도밖에 나오지 않았다. 그것도 일본의 한반도 지배의 문제점을 이야기하는 장면이었다. 배신감과 함께 육두문자가 그의 입에서 나왔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가 영어를 못해서 통째로 편집당한 것은 아니었다. 불순한 의도가 깔려 있었고 거기에 낚인 것이었다. 화가 났지만 어쩔 도리가 없었다. 그래도 학교 선생인 토니가 엄지 척을 해주었다. BBC에 어학연수생이 출연한다는 사실 자체가 일대 사건이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칭찬에도 불순한 의도가 깔려 있었다. 자기 집으로 초대한 것이다. 대마초는 아니고 해시시가 좀 있는데 나누어 피자는 것이었다. 고민할 것도 없이 정중하게 사양해야 했다. 그는 자타가 공인하는 양성애자이기 때문이었다.
그때 무슨 용기로 인터뷰를 했는지 알 수 없다. 아마 얼떨결에 등 떠밀려서 했을 가능성이 높다. 그가 말하고자 했던 제국주의는 한마디로 역사적 범죄이자 착취라는 것이었다. 영국의 막강한 부와 힘도 제국주의 덕분이었다. 남의 나라를 침략해서 식민통치를 했다는 사실은 어떠한 이유와 명분으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 일본의 한반도 강점기에 당한 수탈의 역사를 합리화할 수 있는 명분은 그 어디에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죄는 고사하고 식민지를 근대화시키고 발전시켜 주었다는 식민지 근대화론이 지금도 먹혀들고 있다. 통탄할 노릇이다. 그들에 의하면 일본의 식민통치가 없었으면 지금의 한국도 없다는 논리다.
영국에서도 일부 극우주의자들이 내세우는 논리다. 영국과 일본의 제국주의에는 차이가 있다. 일본은 독일처럼 전범국가일 뿐이다. 하지만 영국은 영연방을 구성해 아직도 결속력을 과시하고 있다. 그리고 그 작은 섬나라가 그 연방들의 우산 역할을 해주고 있다. 믿기지 않지만 호주나 캐나다 같은 선진 민주주의 나라들의 국가원수가 영국 여왕이다. 영국의 제국주의는 아직도 살아서 꿈틀거리고 있는 것이다. 캐나다는 무시무시한 미국과 러시아를 양쪽에 끼고 있는 나라다. 호주나 뉴질랜드는 인구대국 인도네시아를 지척에 두고 있다. 선진국이고 민주국가인 이들 나라들이 스스로 영연방의 우산에서 벗어나지 않으려는 이유다.
남아프리카 공화국과 파키스탄은 오래전에 영연방에서 탈퇴하였다가 재가입하기도 하였다. 파키스탄의 경우에는 인도와 분쟁 중이다. 힘으로 인도를 이기기에는 역부족이다. 그래서 영국이라는 든든한 중재자가 필요했던 것이다. 미국은 철저하게 자기 실리를 먼저 추구하는 나라다. 반면, 53개국의 영연방은 영국을 중심으로 어떤 위협에도 대처할 수 있는 종신 보험의 성격이 강하다. 재미있는 사실은 이 53개국이 모여서 영연방 올림픽도 한다는 점이다. 캐나다가 러시아와 미국의 틈바구니 속에서도 평화롭게 살아갈 수 있는 이유다. 반면 일본은 어떠하였는가! 식민 통치 기간 중 온갖 만행을 저지르고 약탈과 문화말살 정책을 펴 나갔다. 결과적으로 영국은 식민국을 아직도 영연방이라는 형태로 관리하며 상부상조하고 있다. 그 작은 섬나라가 아직도 큰소리치며 살아가는 이유다. 물론 난민 문제 등 그 후유증도 심각하다.
제국주의를 옹호한 생각은 추호도 없다. 영국의 조상들은 해적들이 맞다.
그들도 많은 사람을 죽였고 착취로 부를 거머쥐었다. 과거의 역사라고 웃으며 이야기할 수 없는 이유다. 특히 일본의 문제는 아직도 진행형이다. 그들은 틈을 노리고 있을 뿐 포기라는 단어를 모르는 족속들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가 이러한 깊은 내용들을 BBC와 인터뷰했는지는 알 길이 없다. 아마 횡설수설했을 가능성이 더 높다. 그렇지 않고서야 30분짜리가 어떻게 15초만 나올 수 있단 말인가! 편집이 많아진 이유를 알 길이 없지만 그의 영어 실력으로 볼 때 이해가 가는 대목이기도 하다. 그 인터뷰를 계기로 그는 영어라는 언어 못지않게 지식도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책을 많이 읽어야겠다고 다짐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그는 언제나처럼 다짐뿐이었다.
나의 브런치에 올려진 모든 글들은 [하루만에 책쓰기]로 써서 별다른 퇴고 없이 올려진 글들이다.
참고로, [나는 매주 한권 책쓴다]란 주제로 정기 강의를 하고 있다. 월출산 국립공원에서는 매주 수요일 14:00~16:00, 서울 선정릉에서는 매주 금요일 19:00~21:00다. 글쓰기와 전혀 상관없는 일반인들이 [하루만에 책쓰기]를 통해서 실제로 매월 또는 매주 한 권 책을 쓸 수 있도록 고정관념을 적나라하게 깨트려주는 강의다. 실제로 필자처럼 매주 한권 책을 쓰는 회원들만 20명 이상이다. 매월 한 권 책을 쓰는 회원들까지 합하면 100여명 이상이다. 그 숫자는 계속 증가하고 있다. 수강신청은 온오프믹스닷컴에서, 월출산 상시 강의 문의는 010 3114 9876의 텍스트로 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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