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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런던남자 Oct 19. 2020

오빠가 지켜줄께!

#10. 섹시한 아내와 같이 살지만 불행한 남편이야기


 너무 긴장하지 마 오빠가 널 지켜줄께. 이래 봐도 오빤 신사라구. 기사도 정신이 투철하지. (중략)
오빠 내가 여자로서 그렇게 매력이 없는 거야? 나는 정말 큰 맘먹고 여기 모텔에 온 거라구. 근데 어떻게 내 몸에 손끝 하나 대지 않는 거야. 속옷도 특별히 섹시해 보이는 걸로 급히 사서 입고 왔단 말이야. 이거 지켜도 너무 지켜주는 거 아냐? 흑흑흑~~


 내가 알고 있는 어느 여자 후배의 웃지 못할 에피소드다. 그 여자 후배는 몇 달 만에 급하게 서둘러 결혼했는데 결혼 후에도 남편은 자신에게 손 끝 하나 대지 않았다고 한다. 그때 모텔에 갔을 때 알아봤어야 했다. 결혼 후 5개월을 버티다 결국 이혼했다고 한다. 알고 보니 남자는 마마보이 게이였는데 엄마의 성화에 못 이겨 어쩔 수 없이 결혼을 질러버린 것이다. 세상에 이처럼 무책임하고 어이없는 일도 없을 것이다. 부모의 성화에 못 이겨 결혼한 게이 남편도 그렇지만 그의 아내는 얼마나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냈을까? 툭하면 "오빠가 지켜줄께" 라며 자신에게 손끝 하나 대지 않는 남자와 5개월을 같이 산 그 여자 후배는 인생 최악의 악몽을 꾸었던 것이다. 차라리 꿈이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남자들이란 연애를 시작하기 무섭게 어떡하면 여자랑 하룻밤 잘 수 있을까를 끊임없이 탐구한다. 그런데 만약 남자 친구의 눈에서 그런 느끼함이나 음흉함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면 남자로서의 정체성에서부터 섹스 능력까지 조심스럽게 검증하는 단계가 필요하다. 결혼 전 동거가 필수이긴 하지만 그럴사정이 아니라면 적어도 2박 3일 정도 여행을 다녀오는 것이 현명할지도 모른다. 아름답고 고귀한 순결을 지킨답시고 그런 과정을 생략한 채 결혼하는 사람들이 아직도 없지 않을 것이다.

 온갖 호들갑을 떨어대면서 결혼식을 올리고 나서 부부간의 성생활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면 어떠란 말인가. 환불은 고사하고 교환 반품도 불가능하다. 그렇다고 결혼식을 올리고 신혼여행을 다녀오기 무섭게 별거나 이혼하는 일도 쉽지 않다. 보는 눈이 너무 많고 부담스럽다. 소모한 경제비용과 기회비용도 비용이지만 무엇보다 결혼 자체를 사기당했다는 열패감은 모든 것을 무너뜨리고 만다. 단순변심이 아니지만 달리 방법이 없다. 남편의 남성성이란 상품에 심각한 하자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을 땐 늦어도 너무 늦었기 때문이다. 돌다리도 두드려갔어야만 했다. 

 결혼이란 남자와 여자의 신성하고 아름다운 영적 결합 이상이다. 하지만 그 영적 숭고함은 사랑을 토대로 유지 보수 및 관리되어야만 한다. 성경 말씀에도 사랑은 끝없이 인내해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다. 끝없는 인내에는 개인의 자유를 상당 부분 포기하는 자기희생이 필요하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사랑처럼 진부한 단어도 없을 것이다. 나는 사랑 이야기를 할 때마다 종종 사막을 떠올린다. 그러면서 사막 한 복판의 오아시스 마을 위에 떠있는 커다란 쌍무지개를 생각한다. 어쩌면 그 무지개가 사랑의 본질인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 쌍무지개는 언제 어디로 휘발될지 모르지만 화려하고 매혹적인 아름다움을 내포하고 있다. 황량한 모래 바람만이 불어 재끼는 사막에 무지개가 떴을 때의 아름다움이란 치명적일 것이다. 사막에 무지개가 뜨는 일이란 태고적부터 사막에 둥지를 튼 무어인들도 보지 못했을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쌍무지개는 언젠가는 다시 나타나겠지만 백 년이 될지 천 년이 될지 아무도 알지 못한다. 그렇듯 허무하고 맹랑한 것이 사랑의 실체다. 사라진 무지개를 기다리며 인내하는 일은 부단한 노력 없이는 불가능하다.




 오랫동안 알고 지낸 대학 후배 커플이 있다. CC였던 두 후배는 졸업해서 결혼을 했고 나처럼 이민을 가서 잘 살고 있다. 아니 지금도 잘 살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어느 날 남자 후배의 고백은 충격이었다. 물론 술자리에서였다. 술자리에서의 취중 토크는 언제나 솔직 담백하다. 누군가의 속내를 들을 수 있는 유일한 기회기도 하다. 특히 부부간의 문제와 같은 민감한 이야기들은 특히 그렇다.  결혼 후 여차저차 해서 아들과 딸을 낳았다고 한다. 그 뒤로 부부관계는 서서히 줄어들기 시작해 이젠 거의 15년째 각방을 쓰고 있다고 한다. 아이들은 둘 다 대학생이 되었다. 문제는 아내가 남편이 곁에 오는 것 자체도 싫어한다는 것이다. 더 큰 고통은 그의 아내의 이율배반적인 행동이었다고 한다. 그의 아내는 자기 관리가 철저한 커리어 우먼이었다.

 나도 직접 확인했는데, SNS에 올라온 사진들은 중년 여성의 나이를 무색하게 할 정도로 섹시함을 자랑했다. 남편이 만지지도 못하게 하면서 가슴은 C컵으로 확대 수술을 했다고 한다. 복근은 얼마나 탄탄한지 군살 하나 없었다. 가무잡잡한 피부에 큰 눈은 뭇 남성들을 살살 녹일 것만 같았다. 대학시절 보았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그 당시에는 운동복이나 청바지에서 늘 막걸리 냄새가 났다. 꺾어 신은 누르스름한 나이키 운동화는 그 색이 처음부터 흰색이었다는 사실을 어필하기엔 무리였다. 겨우 세수만 하고 수업에 들어와서 졸던 그녀였다. 떡진 머리가 아직도 생각이 난다. 사람이 어쩜 그렇게 변할 수 있는지 의문이 드는 여자 후배였다. 그 남자 후배를 만나기 전까지는 그랬다. 

 하지만 대학에서 지금의 남편을 만나면서 그녀는 점점 세련되어 갔다. 공부 따위에는 관심이 없었다. 연애 못해 죽은 여자처럼 오직 연애애만 매달렸다. 그런데 결혼해서는 딴 사람으로 변했다고 한다. 그럴 거라면 왜 결혼했는지 이해 불가다. 아마도 남편과 섹스 시에 통증이나 두통을 느끼거나 그것도 아니면 남편에게서 성적 매력을 전혀 느끼지 못할 수도 있다. 이유야 어쨌든 그 커플은 지금도 그럭저럭 잘 살고 있다. 무려 15년째 여전히 각방을 쓰지만 이혼하지 않았다. 그녀는 정말 악취미를 가지고 있다. 가슴 확대 수술도 모자라 명품으로 치장하고 항상 아슬아슬한 미니스커트를 입고 다닌다는 것이다. 섹시함을 위해서라면 뭐라도 하겠다는 태도다. 도대체 누구를 위한 섹시함이란 말인가. 놀랍게도 그녀의 초미의 관심사는 무엇보다도 남편인 자신의 여자관계라고 했다. 조금만 이상 징후가 보이면 자신을 달달 볶는다는 것이다.

 제법 오래전에 직장 내 동료 여직원과 외도를 한 번 시도했다가 발각되어 이혼을 당할 뻔한 일도 있었다고 한다. 말은 외도를 시도했다고 했지만 멀리까지 가지도 못한 것 같다. 겨우(?) 몇 번 모텔을 들락거린 모양이다. 그 후배 성격으로 봐서 그게 다였을 것이다. 간이 콩알만 한 녀석이 어찌 그리 큰(?) 일을 저질렀는지 여전히 풀리지 않는 의문이다. 녀석은 어찌어찌해서 무릎 끓고 며칠을 빌어 겨우 이혼은 면했다고 한다. 그렇지만 아내로부터 용서를 받은 것은 아니라고 했다. 그 일이 있고 나서 아내는 더욱 자신을 멀리한다는 것이다. 인생의 아이러니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은 아내와 아이들을 너무너무 사랑한다는 것이다. 지금 이 순간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한다. 언젠가는 아내가 자신에게 곁을 내줄 날이 올 것이라는 희망을 버린 적이 없다고 한다. 그 남자 후배의 말에서 샤무엘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 라는 소설이 생각났다.  




  샤무엘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라는 책이 있다. 나는 대학시절 연극 영화론을 수강하면서 3학점을 위해 이 재미없는 연극을 두 번이나 보는 인내를 감내해야 했다. 신촌 산울림 극단의 연극 무대 중앙에는 낙엽도 없는 작고 앙상한 나무 한 그루가 서 있을 뿐이었다. 무대장치라고는 그게 다였다. 하지만 더 허무한 것은 등장인물들이었다. 50년 동안이나 오지도 않는 고도(God)를 기다리는 두 부랑자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다공이 주인공이다. 그들의 대사들은 이해할 수 없는 것들 투성이었다. 하는 수 없이 비싼 연극표를 두 번이나 사야 했다. 두 번 보고 나서 겨우 리포트를 써서 제출했지만 학점은 형편없었다. C플러스였다. 작가 샤무엘은 2차 대전이라는 전쟁을 통해 우리 인간의 삶이 얼마나 "단순한 기다림"으로 점철되어 있는지를 보여주고 싶었을 것이다. 인내와 단순함이 왜 인간 본성에서 부조리한 측면인지를 이해했더라면 A플러스를 받았을 것이다. 이 작품에서 고도가 무얼 의미하는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어쩌면 작가 자신도 모를 것이라고 추측해 볼 뿐이다. 샤무엘 베게트는 이 작품으로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사랑은 한결같이 비이성적이고 비논리적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옳다. 대부분의 남자들은 에스트라공처럼 사랑을 지나치게 쾌락으로 결부시키려 한다. 반면 대부분의 여자들은 블라디미르처럼 지성을 겸비한 로맨스로 포장하려 한다. 거기까지는 자연스럽고 당연해 보인다. 문제는 사랑의 야누스적 측면, 즉 양면성을 인정하려 들지 않는다는 점이다. 물론 나도 그랬다. 그래서 아내로부터 남편이라는 숭고한 직책에서 해고를 당했다. 부당하다고 우겨도 보고 터무니 없다고 탄원도 해봤지만 아내는 사라진 로맨스를 모두 내 탓으로 돌릴 뿐이었다. 사하라 사막의 어느 오하시스 마을에서 본 쌍무지개를 아직도 기억하고 있었다. 아내는 여전히 잠시 나타났다가 사라진 그 화려하고 커다란 쌍무지개를 기다리고 있는 듯 보였다. 나는 여전히 쌍무지개가 사라지게 한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그렇다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거의 없어 보인다. 나도 쌍무지개를, 고도를 기다리는 두 부랑자인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다공 처럼 기다리는 수 밖엔 달리 방법이 없다.


 사랑의 완성은 정신과 육체의 온전한 결합 없이는 애당초 말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나는 온전하지 못한, 다시 말해서 그럴듯하게 보이는 어정쩡한 사랑의 결합 단계에만 머물러 있었다고 생각한다. 부부관계가 수 년째 끊어진 커플이 아름다운 사랑을 이어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사로잡힌 환상이고 지나친 위선이다. 쇼윈도 부부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검은 머리가 파뿌리 될 때까지 "오빠가 지켜줄께"나 "언젠가는 나의 섹시한 아내가 곁을 내줄지도 몰라"를 바라며 사는 그 남자 후배처럼 쌍무지개를 기다리는 사람이 줄어들기를 바랄 뿐이다. (PS: 본 내용은 픽션과 논픽션이 혼합된 글이며, 이혼을 아내가 아닌 남편의 시각에서 바라본 이야기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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