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정말 남편들만 바람을 피우고 남편들만 죽일 놈들일까
어느 드라마에서 이런 대화 장면이 나온다. “세상에는 두 부류의 남자가 있어. 바람피우다 발각된 놈과 아직 발각되지 않은 놈의 두 부류가 있을 뿐이지.”
내 생각에는 여기에 하나의 부류가 더 추가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지금은 아니지만 언젠가는 바람을 피우고야 말 놈이다. 그렇다고 세상이 온통 비도덕적이거나 무너져 내리고 있다고 할 수도 없다. 왜냐하면 아직까지는 일편단심, 검은 머리가 파뿌리가 되도록 아내만을 바라보며 사는 남자들이 더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결혼생활 내내 이들의 마음에 다른 여자들이 들락거리지 않을 확률은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기만큼이나 쉽지 않을 것이다. 세상의 그 어떤 남자도 종족보존이란 수컷의 극히 자연스러운 본능에서 자유롭기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외도의 규정이 법적인 아내 외의 여자와 섹스를 행한 경우이지만 때로는 아내 외의 다른 여자에게 연정을 품었을 것이라는 추측만으로도 외도라 규정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나의 아내처럼 말이다. 나는 그런 아내의 생각을 존중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나에겐 대학 시절부터 알고 지낸 절친이 두세 명 있다. 그중에서도 잘 나간다는 한 친구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그 친구는 소위 말하는 "성공"이라는 사회적 성취를 이루어낸 친구이기도 하다. 대학시절, 나처럼 시골에서 막 상경한 그 친구의 촌스러웠던 라이프 스타일도 그 친구가 이루어낸 성공에 걸맞게 변해갔다. 매주 거르지 않고 평일과 주말에 각각 한 번 정도 필드에 나가서 골프를 즐긴다. S500 시리즈 독일산 수입차를 타고 다니며 대외관계도 당당하게 잘하고 있다. 운영 중인 회사도 성장을 거듭해서 직원이 수백 명에 달한다. 자녀들도 대학에 들어갔거나 졸업해서 별다른 걱정이 없어 보인다. 내가 영국에 살기 때문에 그 친구는 잘해봐야 1년에 한 번 정도 만나곤 했다. 한국에는 매년 거르지 않고 다녀갔기 때문에 그래도 매년 만나서 한 번은 술잔을 기울일 수 있었던 것이다. 그때마다 친구를 통해서 한국이라는 별나디 별난 세상을 알아가는 재미가 쏠쏠했다. 그중에서도 으뜸은 단연 여자 이야기였다.
이제는 중년이 된 남자들의 세상에서 여자 이야기가 아직도 회자되고 있었다. 그것도 이혼해서 다른 여자를 만나기 시작했다거나 아니면 아직도 미혼이어서 자유롭게 여자를 만난다는 등의 떳떳하거나 도덕적인 이야기가 아니었다. 그런 이야기라면 스토리 자체가 너무 뻔하기 때문에 토크 주제로 꺼내지도 않을뿐더러 꺼낸다고 해도 말렸을 것이다. 놀랍게도 어엿하게 아내가 있는 남자들의 이야기였다. 그들의 부부관계가 어찌 되었든 법적으로 아내나 남편인 있는 사람들 이야기였다. 더욱 놀라운 것은 그 이야기의 주인공 중 한 사람이 바로 그 친구 자신이기도 했다는 점이다. 물론 대부분은 그 친구의 지인들 이야기였지만 말이다. 그 친구는 집안에서는 좋은 아빠이자 괜찮은 남편으로 열심히 살아가는 것처럼 보였다. 딱히 뭐 하나 부족하다거나 아쉬워하는 부분도 없어 보였다. 하지만 놀랍게도 그 친구는 술을 마시다 말고 자주 한숨을 쉬곤 했다. 술을 마시다 보면 취기가 오르고, 취기가 오르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한 억눌린 속내를 털어놓기 마련이다. 한숨을 쉴 때마다 친구는 외롭다는 말을 자주 했다.
한국에 와서 그 친구를 만날 때마다 친구는 여자 친구나 애인 이야기를 빠트리지 않았다. 가끔은 나와의 술자리에 애인을 동행시키기도 했다. 그러면서 너도 애인 하나 사귀라며 웃었다. 처음에는 이해가 가지 않는 친구의 행동에 이건 아니라며 쓴소리도 해주고 때로는 꼰대처럼 충고도 해 주었다. 정직하고 바르게 살라고. 마누라를 비롯해 세상의 모든 사람은 속일 수 있지만, 설사 신마저도 속일 수 있지만, 자기 자신만은 결코 속일 수 없다고 말이다. 그럴 때마다 친구는 오히려 나에게 충고했다. 정말 정직하게 사는 것이 뭔지 내 가슴에 손을 대고 한번 생각해 보라고. 세상이 정해놓은 틀에 갇혀 살다가 언젠가는 죽어가는 것이 과연 얼마나 정직한지를 말이다. 이해가 갈듯 말듯한 말들이었다. 술자리에서나 가능한.
결론이 없는 술자리에서의 토크는 깃털보다 가벼웠지만 그렇다고 말이 포함하고 있어야 할 의미까지 상실하진 않았다. 인간의 본능과 사회적 합의에서의 갈등이 클수록 행복을 느낄 확률은 줄어든다. 나의 도덕적인 질문과 충고에 친구의 답변은 한결같았다. 애인이라도 없으면 살아갈 수 없을 정도로 마음이 공허하다고. 아내에게 정말 미안하지만 자신만 애인이 있는 것도 아니라고. 자신의 지인 중 애인 없는 유부남들을 거의 보지 못했다고. 한 번 이 세계에 발을 들이면 빠져나갈 수 없다고. 아내에게는 못할 짓을 했지만 죄의식을 느끼지 않는 것은 아니라고. 들키지만 않으면 별 문제없다고 생각하는 것도 아니라고 말이다. 앞뒤가 이어지지 못하는 답변들의 의미를 어느 정도 헤아릴 수 있었지만 그렇다고 경로를 이탈한 행위 자체를 미화시킬 수도 정당화할 수도 없었다.
또 하나의 놀라운 사실은 1년에 한 번 한국에 들어와서 만날 때마다 친구의 애인이 바뀌어 있었다는 점이다. 여자 친구가 어쩌다 연임을 해서 2~3년을 가기도 했지만 그런 일은 거의 없었다. 면전에서 너 또 바뀌었니?라고 물어보면 옆에 있던 애인이 키득거리며 웃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친구의 여자 친구들도 모두 가정이 있는 사람들이었다. 유부남이나 유부녀의 불륜의 법칙이라 했다. 서로 가정이 있고 배우자가 있기 때문에 한 사람이 배신해서 폭로나 협박을 할 확률이 가장 낮은 연애방식이라는 것이다. 나름 설득력이 있어 보였다.
친구를 만날 때마다 나는 항상 같은 의문이 들었다. 왜 멀쩡한 가정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굳이 위험천만한 모험을 해야 하는지? 내가 물을 때마다 친구는 물론이고 친구의 여자 친구들도 같은 대답을 반복해야 하는지 말이다. 그것도 단순히 “외로워서!” 라니.
영화 “은교”에도 이와 유사한 장면이 나온다. 차 안에서 서지우 작가가 여고생인 은교에게 키스를 하고 몸을 더듬으려 하자 은교가 서지우 작가에게 묻는다. “저한테 왜 이러시는 거예요?” 그러자 행동을 멈추고 서지우 작가가 은교에게 대답한다. “외로워서 외로워서 그랬다. “ 그러자 은교가 다시 묻는다. ”여고생이 왜 남자랑 자는지 아세요? “ 서지우 작가가 답한다. ”서로 사랑해서?” 다시 은교가 답한다. “아니에요. 외로워서 외로워서 그래요. “
여고생이 외로운 이유도, 이제 막 뜨기 시작해 잘 나가는 서지우 작가의 외로움도, 나의 친구나 친구의 여자 친구들의 외로움도 이유가 없다. 단지 인간이기 때문에 외로울 뿐이다. 친구가 없어서도 애인이나 아내가 없어서도 아니다. 고도로 문명화된 현대 사회에서 인간이라면 누구나 피할 수 없는 것이 외로움이다. 아무리 초긍정적인 사람도, 아무리 친구가 많은 사람도, 심지어 수많은 펜을 거느린 유명 연예인들도 외로움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부부 사이에서도 마찬가지다. 어쩌면 부부 사이에서 남편이나 아내가 느끼는 외로움이 가장 크게 느껴질 수도 있다. 믿었던 남편이나 아내에게서 찬바람이 쌕쌕하고 불어올 때, 서로 말도 안 하고 등만 보일 때 부부들이 느끼는 외로움은 여고생이 느끼는 막연한 외로움보다 훨씬 구체적이고 형상화된 외로움일 것이다.
그렇다면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부부 사이에서 배우자를 괴롭히고 끝내는 삶 전체를 무너트리고 마는 외도가 정당화될 수 있을까? 외도의 책임은 과연 누구에게 있을까? 당사자만의 문제일까? 아니면 배우자 때문일까? 아니면 둘 다일까? 그것도 아니면 애초에 그렇게 우리 인간을 설계한 조물주나, 아니면 진화과정에서 심각한 문제가 있었던 것일까? 왜 외도에 대한 대부분의 폭로는 남편이 아닌 아내의 몫일까? 아내가 바람을 피웠다는 이야기보다는 남편이 바람을 피웠다는 이야기가 대부분인 이유는 무엇일까?
그렇다면 나의 친구나 그 친구의 여자 친구가 한 말은 사실이 아니란 말인가? 유부남이 유부녀를 찾고 유부녀 또한 유부남과 만나는 확률이 가장 높다는 그 말은 어떻게 된 것일까? 비록 가벼운 주제들이 오고 가는 술자리 토크라 할지라도 친구와 친구의 여자 친구들이 지구 반대편에 사는 나에게까지 거짓말을 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그렇다면 진실은 무엇일까? 정말 남편들만 바람을 피우고, 남편들만 죽일 놈들일까? 나는 아직도 진실이 궁금할 뿐이다. 어쩌면 진실이란 것 자체가 왜곡된 허상일지도 모른다. 우리가 진실이라고 믿고 있는 것들은 신이 부여한 인간의 원초적 본능을 외면하지 않고는 성립될 수 없는 것처럼. (PS: 본 내용은 픽션과 논픽션이 혼합된 글이며, 이혼을 아내가 아닌 남편의 시각에서 바라본 이야기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