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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런던남자 Oct 10. 2020

Sexless 부부는 정말 괜찮을까?

#4. 본질을 두고 깊은 대화를 시도할 절대적인 용기가 필요하다


 섹스리스 부부도 부부라고 할 수 있을까? 섹스리스 부부는 정말 아무 일 없다는 듯이 결혼생활을 영위해 갈 수 있을까? 있다면 언제까지? 바람 앞에 촛불처럼 위태위태하고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 문제에서 자유로운, 그러니까 부부관계가 원만한 커플들도 험난하고 굴곡진 결혼생활을 헤처 나가기가 쉽지 않은데, 하물며 섹스리스 부부가 검은 머리가 파뿌리가 될 때까지 평생을 같이 할 수 있을까? 그것도 행복하게.


 다 좋은데 단지 섹스만 하지 않는 부부들의 결혼 생활은 그래도 정말 괜찮은지 궁금하다. 배우자 두 사람 다라면 몰라도 한 사람은 간절(?)하게 섹스를 원할 경우, 상대 배우자에게 중차대한 스트레스를 줄 것이다. 부부간의 섹스가 의미하는 것이 단순한 섹스만은 아니기 때문이다. 두 사람이 육체는 물론이고 영적으로도 하나가 될 수 있는 숭고한 행위가 바로 섹스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원만한 부부관계는 섹스 이상의 특별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섹스 없이 친구처럼 데면데면하게 살 거라면 굳이 결혼을 해서 그 많은 스트레스를 감내하며 두통을 달며 살아갈 이유가 없다. 육아도 문제고, 시댁도 문제고, 남편도 문제가 될 것이 뻔한데도 말이다. 그렇게 데면데면하게 소 닭 보듯 살아갈 거라면 결혼하지 말고 친구로 살아가는 것이 현명하고 속 편한 삶일 것이다. 어차피 한 번뿐인 인생 아닌가.

 섹스리스 부부가 되어가는 과정은 두 사람 모두 또는 두 사람 중 한 사람이 부부간의 성관계 시 만족을 얻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예를 들면 남자의 발기부전이라든가 성관계 시 여성의 두통을 초래하는 온갖 종류의 산부인과 질병 같은 경우가 해당된다. 이런 경우에는 부부간의 대화를 통해 전문의 상담을 받고 적극적으로 치료해 나가야 한다. 숨기거나 회피할 문제가 아니다. 출산 후 자녀와 같은 방을 쓰는 경우도 이에 해당된다고 한다. 이는 특히 한국 사회에서 비일비재한 문제다. 물론 나도 여기에 해당된다.


 서울대 의과대학 강동우 성의학 연구소팀이 2015년도에 1,090명을 설문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한국의 섹스 리스 부부의 비율은 36%라고 한다. 라우만(Laumann) 박사 등 미국 NHSLS(National Health and Social Life Survey) 연구팀은 1년에 10회 미만의 성관계를 갖는 부부를 섹스리스(sexless) 부부라고 규정했다. 이 연구팀은 18~59세의 1,749명의 여성과 1,410명의 남성을 대상으로 검사를 진행한 결과, 남성(31%)보다는 여성(43%)이 더 많은 성기능 장애를 보인다고 한다. 일본 성(sex) 과학회는 결혼 후 건강 등 특별한 이유 없이 1개월 이상 부부관계를 맺지 않으면 섹스리스(sexless) 부부라고 규정한다. 일본의 섹스리스 비율은 44.6%로 세계 최고 수준이다. 이는 전 세계 섹스리스 부부의 평균인 20%를 훨씬 상회하는 비율이다. 이 부분에서 일본과 한국은 나란히 1, 2위를 다투고 있다.  

 

 언론에서 위기의 섹스리스 부부에 대한 이야기들이 나올 때마다 민망해서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우리 부부의 문제였기 때문이다. 언제부터 어떤 계기로 그렇게 되었는지도 인지하지 못한 채 자연스럽게 각방을 쓰기 시작했다. 조만간 좋은 기회를 포착해서 이러면 안 된다고 말하리라 다짐만 하다 말았다. 사랑 없이 부부 관계가 언제까지 지속될지는 알 수 없었다. 돌이켜 보니 아내는 아이가 성인이 될 때까지 그저 고통스러운 세월을 견디어 온 것처럼 보였다. 그동안 아내가 받았을 스트레스를 생각하면 나도 아내도 서로의 행위에 대해 이해가 가지 않는다. 두 사람이 아이 하나를 위해 희생한 세월이 너무 길었다. 단지 아이 하나를 위한 부모의 희생이라고 하기에는 정도가 지나쳤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아내를 비롯한 세상의 모든 엄마들은 남편들이 모성애를 이해하지 못해 쉽게 하는 말이라고 나를 비난할 것이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부성애가 모성애를 따라가지 못한다는 점은 인정한다. 동물의 세계에서도 마찬가지다. 백수의 제왕이라 불리는 수컷 사자는 어린 수컷 사자 새끼를 죽이기까지 한다. 성장하면 당연히 무리에서 쫓아낸다. 수컷들은 생산과정에 관여는 해도 양육과정에는 관여하지 않으려 한다. 인간 또한 동물과 크게 다르지 않은 본능을 가지고 있다. 수십만 년을 본능이 탑재된 DNA가 시키는 대로 살아온 남자들이었다. 하지만 21세기에 들어서면서 광속으로 변하는 세상의 진보를 이해는 고사하고 따라가는 것 자체가 애초부터 무리였을지도 모른다. 생각을 바꿀 수는 있지만 DNA를 하루아침에 바꿀 수는 없는 것이다. 남자들의 외도는 물론이고 끊임없이 발생하는 성범죄는 단순히 사회문제라고 치부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사회생활에서 개개인의 이성이 언제나 본능을 통제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 모두는 알고 있다. 원초적 본능을 이성적으로 통제하는 일이 결코 쉽지 않다는 사실을. 

 너 알아? 사실 수컷들이 아무것도 책임지지 않으려 하는 데는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어. 수컷들은 대를 이어야 하기 때문에 어떤 짝짓기 기회라도 놓치려 하지 않아. 어차피 정자가 부족 할리 없기 때문에 수컷들은 무수히 많은 후손을 생산할 수 있어. 부족한 건 후손을 생산할 수 있는 기회야.

 반대로 후손을 임신하고 출산해서 젖을 먹이고 안전하게 보호하는 일은 수컷과 무관하지. 이런 일든은 전부 암컷들의 몫이거든. 이처럼 부담해야 할 손실이 크기 때문에 암컷들은 성행위에서 비교적 보수적이고 수치스러운 태도를 보이는 가야. 물론 암컷들에게도 자신만의 방법이 있지. 암컷들은 자녀들의 생부가 누군지 감출 수 있어. 이 점을 이용해 속임수를 쓰기도 해. 어떤 새의 암컷들은 서너 마리의 수컷들로 하여금 자신을 도와 어린 새끼들을 돌보게 하지. 수컷들이 어린 새들을 전부 자신의 새끼로 잘못 알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야. 봐라, 모든 남자는 여자가 임신한 아이가 자기 아이인지 확신하지 못하잖아. 그래서 그들은 천성적으로 책임지지 않고 고개를 돌려버리는 거야.  < 모든 상처는 이름을 가지고 있다. 량윈다오 저. P285>


   나와 아내의 심야 토론은 치킨게임처럼 겉돌고 있었다. 아내의 이혼 요구와 이혼 사유에 대해 나의 반박은 계속되었다. 사실 반박조차 하고 싶지 않았지만 잘못된 것은 바로잡고 싶었다. 문제는 서로의 입장을 고수하기 때문에 답이 없다는 점이었다. 마주 보고 달리는 기관차처럼 아내는 이미 마음을 정한 상태였다. 내가 외도를 했든 하지 않았든 말이다. 이왕이면 그럴싸한 이혼 사유가 필요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내는 절대 그럴 사람이 아니다. 모든 것은 왜곡되고 뒤틀려서 점점 이상해지고 있을 뿐이었다. 내가 정말 외도를 했더라면 이혼 직후 외도했던 여자와 신나게 새 출발을 했을 것이다.  

 이유야 어떻든 부부간의 신뢰가 깨지면 남는 것은 의심뿐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솔직하게 말하면, 나는 아내를 단 한 번도 의심해본 적이 없다. 아내의 어떤 행동에도 그럴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아내가 왜 각방을 쓰기 시작했는지 물어보고 싶었지만 참았다. 내가 코를 많이 골거나 아니면 아내의 불면증 때문이겠지 라며 그냥 넘어갔다. 정말 중차대한 문제가 있을 수도 있었는데 말이다. 나는 끝내 아무것도 묻지 못했다. 3년 간의 별거 생활 동안에도 1년에 한두 번 만났지만 여전히 각방을 써야만 했다. 사춘기가 되어가는 아이 보기에 부끄러웠다. 하지만 바보처럼 끝내 묻지 않았다. 나는 그것이 아내에 대한 배려라 생각했다. 때가 되면 아내가 내 곁으로 다시 돌아오리라고 생각했다. 바보 같았고 한심했다. 반면 아내는 나의 외도에 대해 팩트 체크를 하고 싶어 했지만 딱히 제시할 수 있는 물증이 없었다. 단지 정황과 개연성만 가지고 있을 뿐이었다. 단지 우리 부부가 동의한 팩트는 우리는 오랫동안 섹스리스 부부로 살아왔다는 사실 뿐이었다. 10년 가까이 말이다. 나는 결코 하고 싶지 않았던 반박을 이어가야만 했다.


 닭이 먼저? or 달걀이 먼저?


  심야토론 내내 우리 부부를 겉돌게 한 핵심 이수였다. 골자는 누가 먼저 원인을 제공했냐는 것이었다. 그것도 남편이 외도를 했다는 가정하에 말이다. 나의 반론은 이어졌다.

 "여보! 한번 생각해 보자고. 전 세계의 남편들이 바람을 피우는 이유는 수도 없이 많을 거야. 부부관계가 정상적이고 가정생활도 원만한데 바람을 피우는 사람들을 이야기하자는 것은 아니야. 그들은 정말 용서받을 수 없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해. 남편이든 아내든 말이야.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우리처럼 극단적인 상황의 부부들 문제야. 생각해봐. 우리가 각방을 쓰기 시작한 지가 거의 10년이 되었고 본의 아니게 별거를 한지가 3년이 넘었잖아. 난 아직도 본능이 꿈틀대는 젊은 남자지만 수도자나 스님처럼 본능을 억제하며 살았다고. 당신이 나를 아무리 의심해도 나는 결백해. 내가 당신을 떠나려 했다면 벌써 많은 준비를 했을 거야. 구체적으로 다른 통장을 만들어 비자금을 비축했겠지? 하지만 당신이 알다시피 나의 영국 계좌는 거의 마이너스들이었잖아. 내가 정말 다른 여자와 외도를 했다면 벌써 이혼을 요구했을 거야. 아내가 남편과 협의나 동의도 없이 각방을 쓰고 부부관계를 10년 가까이 거부했다면 설사 남편이 외도를 해도 할 말이 없을 거야. 하지만 나는 어떤 여자에게도 마음을 준 적이 없어. 외도를 하려 했다면 철저하게 비밀리에 했을 거야. 내가 그 정도로 머리가 나쁜 사람은 아니라고."

 우리 사회가 건강하려면 가정이 건강해야 하고 가정이 건강하려면 가정을 이루는 가족이라는 구성원들의 관계가 원만해야 한다. 결혼 생활중에 문제라고 생각되는 일들은 즉시 해결해야 한다. 다락이나 창고에 처박아두면 곤란하다. 상처가 곪으면 결국 터지고 만다. 물이 고이면 썩듯이 말이다. 사회생활도 마찬가지지만 가정생활에서도 본질을 두고 대화할 절대적인 용기가 필요하다. 용기만이 가정을 살리고 사회를 살릴 수 있다고 생각한다. 아내는 물론이고 세상의 모든 사람들로부터 기꺼이 미움받을 용기가. (PS: 본 내용은 픽션과 논픽션이 혼합된 글이며, 이혼을 아내가 아닌 남편의 시각에서 바라본 이야기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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