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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런던남자 Oct 28. 2020

사랑이란 길지가 않더라

남편 유골함을 지하철 선반에 투기하는 사람들

 

 나뭇가지에 이따금씩 매달려있는 저 홍시들을 바라볼 때마다 만감이 교차한다. 이번 여름 지난했던 장마와 연이어 몰아친 매서운 태풍까지 견뎌 낸 홍시지만 그렇다고 겨울까지 견뎌낼 자신은 없을 것이다. 마치 내가 겪었던 인생의 혹독했던 겨울처럼.


 그나저나 나의 별난 호기심은 홍시를 보자 또 발동하기 시작한다. 저 홍시의 일생과 내가 품었던 사랑의 유통기한은 어떤 이 더 길었던 것일까? 저 홍시의 유통기한은 얼마나 될까? 마트의 우유보단 분명 길겠지만 우리의 가슴속에 살고 있는 누군가를 향한 뜨거웠던 사랑보단 짧지 않을까. 때가 되면 자신의 운명을 알고 저 홍시처럼  떨어져서 사라지는 것이 더 행복하진 않았을까. 왜 그토록 인연에 연연해서 고통스러운 나날을 견디고, 회복될 수 없는 그래서 끝내는 홍시처럼 떨어지고 말 관계에 아파하고, 그 관계로 인해 어쩔 수 없이 상대를 힐난하며 주고받았던 말들로 인해 다시 한번 상처를 주고받으며 버텨왔을까. 그 책임이 뭐라고 그것으로부터 도피하지 못하고 아파하면서까지 버티고 견뎌왔을까. 내 한 몸 사그라 들고나면 존재의 의미나 가치 따위는 상실하고 마는 이 광활한 우주에서.


 가을이 깊어간다. 남도에 위치한 감의 고장답게 홍시가 지천이다. 참 곱게도 잘 익었다. 빠알간 홍시가 탐스럽다 못해 터질 것만 같다. 젊디 젊었던 시절, 내 가슴에도 저 홍시 같았던 사랑이 살았던 적이 있었다. 하지만 누구나 알고 있듯이 저 홍시는 그리 오래가지 못한다. 운 좋게 까치밥으로 나무에 매달려 있는 한 유통기한이 없긴 하지만 그래도 겨울을 넘기긴 어렵다. 자연의 이치다. 한 때 나와 당신의 가슴속에서 불꽃보다 뜨겁게 살았던 적이 있던, 저 홍시보다 더 붉고 저 깊어가는 가을의 석양보다 더 아름다웠던, 그래서 주체할 수 없을 도로 넘쳐흐르던 사랑처럼 말이다.


 산중에는 벌써 황량한 겨울이 고개를 내밀고 있다. 겨울 삭풍 들이닥치기 전에 이미 나는 정들었던 이 고장을 떠나 보금자리인 런던으로 돌아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영국에서는 볼 수 없는 저 탐스러운 홍시를 무척 그리워할지도 모른다. 어쩌면 홍시처럼 달콤한 저녁노을 같은 사랑을 찾아 런던의 우중충하지만 그렇다고 마음까지 삭막해져 버렸다고 인정하기 싫은 고색창연한 거리들을 헤맬지도 모른다.

 사실 런던의 운치 있는 거리들을 걷다 보면 가끔 이유도 없이 생뚱맞은 사랑을 떠올리곤 했다. 그 사랑들은 보통의 사랑들이 그러해야만 했던 당위성을 이야기할 때처럼 아름답고 탐스러울 뿐만 아니라 신비롭기까지 했다. 골목의 모퉁이를 돌자마자 마주할 것만 같은 낯선 인연이 움츠리고 있는 듯한 환상이 바로 그것이다. 설사 그날도 여전히 비가 내리다 말다를 반복할지라도 19세기에 런던의 거리를 밝혀주었을 희미한 가스등처럼 어두운 골목들은 결코 우울하거나 우중충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사랑을 찾아 나선 사람에겐 언제나 부푼 가슴에 담을 희망이 있기 때문이다. 그 희망이 먼저 런던의 복잡하고 조용한 골목들을 설레발치며 누비고 다닐지도 모른다. 비가 좀 내리면 어떻고 해가 뜨지 않으면 어떻단 말인가. 마음속에 달달한 사랑 하나 키워보면 그깟 런던의 겨울 날씨 정도는 아무것도 아닐 것이다. 저 탐스러운 홍시를 잊어버리지 않는 한 사랑의 씨앗은 또다시 새싹을 밀어 올릴지도 모른다. 빗줄기를 왜곡시키면서까지 힘겹게 런던의 골목들을 지켜주었을 가스등처럼 말이다.


 비록 남도의 끝자락이긴 해도 제법 깊은 산중이라서 아침저녁으로 추워지고 있다. 아직 서리가 내린 것도 눈발이 날린 것도 아닌데 써부터 홍시들이 사라지고 있다. 마치 내 가슴속에서 살고 있던 사랑이 녹아서 사라지듯이. 그 많던 홍시는 어디로 사라지는 것일까? 이번 가을엔 유난히 많은 까치가 찾아왔던 것일까? 벌써부터 한국의 아름다운 가을이 많이 그리울 것 같다.



 유통기한은 내게 아주 중요한 개념이다. 나는 신선한 우유를 매일 한두 잔씩 마시려 노력한다. 내 기준이긴 하지만 우유가 신선하려면 유통기한이 적어도 5일가량은 남아있어야만 한다. 영국의 마트에서뿐만 아니라 한국의 마트에서도 우유의 유통기한을 꼼꼼히 확인한 후에 가능하면 진열대 뒤쪽에서 우유를 빼내는 범행을 마다하지 않는다. 마트의 직원들에게 알 수 없는 죄책감을 느끼면서까지 말이다. 간혹 재고 정리하는 직원과 눈이라도 마주치면 곤란하다. 애써 정리해 놓은 진열대의 질서와 법칙을 무너트렸기 때문이다. 겸연쩍은 미소를 날리긴 하지만 마치 우유라도 훔치려다 들킨 것처럼 마음이 일렁이는 것은 왜 그런 것일까. 나만 그런 것일까.

 우유 뿐만은 아니다. 마트에서 쇼핑을 하다 보면 유통기간 확인하느라 온갖 인상을 찌푸려댄다. 이게 다 그놈의 노안 때문이다. 쇼핑 시에 안경이 없는 경우가 더 많기 때문에 이런 난감한 경우에는 휴대폰 카메라를 이용한다. 사랑만큼이나 식료품 또한 유통기한이 중요하다. 유통기한이 임박했거나 자칫 지난 사랑에 곰팡이가 독버섯처럼 암울하게 자라 있듯이 식료품 또한 마찬가지다. 그래서 마트 입장에서는 오래된 재고들을 자꾸 앞쪽으로 꺼내놓는다. 하지만 대부분의 고객들은 이 사실들을 알기 때문에 일부러 안쪽에 있는 제품을 꺼내려한다. 치열하지만 한편으로는 너무도 단순한 마트 직원과 고객과의 머릿싸움이다. 나도 그랬고 정신이 온전히 작동하는 한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같은 가격에 가능하면 유통기한이 많이 남아있는 신선한 제품을 구매하고 싶은 마음은 누구나 같기 문이리라. 여기서  자신의 이상한 한 가지 모순을 발견할 수 있다. 신선한 우유를 위해 죄책감까지 느끼며 노력하는데 반해 사랑을 신선하게 유지하기 위해 나는 어떤 노력을 했단 말인가.



 우리가 이성을 만나 연인으로 발전시켜 나갈 때에도 이러한 유형의 행동을 한다. 미래의 배우자감과 얼마나 오래 사랑을 유지할 수 있을지 나름대로 보이지 않는 유통기한을 가늠해보는 것이다. 성격을 파악하면서 나오는 일종의 심리 분석이 될 수도 있다. 치열한 밀당을 통해 탐색전을 하는 것은 동물과 다를 바가 없다. 오히려 그들보다 훨씬 더 했으면 더했지 덜하지 않을 것이다. 이러한 탐색전을 거쳐 비로소 사랑하는 사이가 되면 그다음부터는 세상에 보이는 게 없어지는 블랙홀 단계로 넘어간다. 이미 콩깍지가 씌어진 사람에게 안목이라는 것을 기대하기란 애당초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 되어 간다. 안타깝지만 그것이 현실이고 그것이 바로 사랑이다. 그래서 사랑의 본질은 어쩌면 이처럼 단순한 유통기간 싸움에 있는지도 모른다.      


 사랑이란 위험천만한 리스크를 늘 등짐처럼 지고 살아가는 것이 언제까지 지속될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그렇다고 그 리스크가 무서워 사랑을 피해 갈 수 도 없다. 자석에 빨려 드는 쇠붙이들이 리스크를 따질 겨를이 없는 것처럼 그렇게 사랑은 시작되고 발전한다. 고리타분하게 이제 와서 사랑을 정의할 생각은 없다. 어차피 그럴 능력도 없다. 각자의 처지와 상황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사랑이란 단순한 이차방정식처럼 작동하진 않는다. 사랑이 어떻게 작동하든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는 사실이다. 물론 사랑도 예외일 수는 없다.     


 연애시절을 거쳐 결혼에 이르는 시기에도 다투기도 하고 싸우기도 한다. 달달한 사랑싸움이다. 하지만 결혼을 해서도 사랑은 이처럼 달달하게 이어지리라 믿고 만다. 달달한 사랑싸움 앞에 별거니 이혼이니 따위의 단어는 끼어들 여지가 없다. 결혼식 때 수많은 하객 앞에서도 그렇게 파뿌리 운운하며 영원을 서약한다. 사랑의 유통기한은 의심할 여지없이 죽을 때까지처럼 보인다. 하지만 냉정한 현실은 그렇게 아름답지도 낭만적이지도 않다. 어찌 보면 각기 다른 남녀가 살을 맞대고 마찰이나 갈등 없이 살아간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혼하지 않고 사는 것이 기적이 아닐까 싶은 날이 너무도 많았다.   



 서로 사랑한다고 동네방네  자랑하고 결혼했으면 죽을 때까지 사랑을 이어가야 하는데 현실은 그리 녹녹지 않다. 특히 아이가 생기고 육아문제에 직면하면서 첫 번째 위기가 온다. 두 번째 위기 또한 육아문제다. 모든 가정 문제는 육아문제에서 비롯되고 아내는 육아를 중심으로 가정을 경영한다. 그 과정에서 가정 내의 남편들의 역할은 거의 없다. 없는 게 아니라 하려 들지 않을 뿐이다. 밖에서 열심히 기계처럼 돈을 벌어다 주는 걸로 그 역할을 대신한다고 착각하며 살아간다. 물론 요즘은 남편이 육아휴직을 내는 경우도 많아지는 추세이긴 하다. 실제로 주변에도 그런 젊은 아빠들을 자주 만날 수 있다.
      

 사랑의 유통기한은 보통 신혼이 끝나고 육아에 돌입하면서 찾아오는 경우가 많다. 죽을 때까지도 소위 말하는 금슬이 좋은 부부도 많다. 그런 노부부를 보면 부러움을 넘어 존경스럽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마냥 부럽기만 한 것도 아니다. 이면에 부부라는 이유 때문에 오랜 세월 동안 그들이 삶을 버티고 견뎌내면서 타들어가고 말았을지도 모르는 까만 가슴이 안쓰럽다. 사랑의 위대함을 실천하고 보여주는 성인 같은 분들이기 이전에 그들도 본능을 가진 인간이라는 사실을 간과할 수는 없다. 나의 꿈도 그런 것이었다. 죽을 때까지로 사랑의 유통기한을 잡아 놓았던 것이다. 하지만 20년은 고사하고 몇 년도 채우지 못하고 그 유통기한은 끝나고 말았다.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고만 하기엔 뭔가 석연치 않은 점이 많다.
   

 그렇다면 그 많은 부부들이 홍시처럼 달달하고 작열하는 태양처럼 뜨겁게 사랑해서 결혼하는데 왜 그렇게 쉽게 이혼이란 카드를 꺼내 들고 마는 것일까? 점점 높아지는 이혼율과 1인 가족문제는 심각한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결혼 생활을 직접 해본 사람으로서 느낀 점은 사랑으로 극복할 수 없는 문제들이 너무 많다는 것이다. 좀 더 넓게 보면 모두 사랑으로 극복할 수 있는 문제들이기도 하다. 진짜 문제는 부부간의 끊임없는 소통의 부재였다고 생각한다. 소통이 되지 않기 시작하는 시점에서 우리의 사랑은 멈출 수밖에 없다.  
   
 100세 시대를 맞아 이 문제는 점점 더 심각해지고 있다. 30세에 결혼한 커플의 경우, 사랑의 유통기한은 70년이다. 특별한 사고나 질병 없이 100세까지 산다면 이 부부는 70년 동안을 같이 살아야 한다. 아무리 부부라지만 70년을 같이 산다는 일은 쉽지 않은 일이다. 어쩌면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청소년들에게 이런 질문을 하면 과연 어떤 반응을 보여줄지 궁금해진다.     



 이혼을 논하면서 우리는 서로를 마치 적군 대하듯 하였다. 피아식별 띠만 안 했지 정말 적군이었다. 서로의 아픈 곳을 사정없이 찔러대고 후벼 팠다. 반박에 대한 반박은 점점 험악해졌고 사례도 최악의 경우들이 동원되었다. 나는 절망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내 또한 마찬가지였으리라! 항상 양쪽의 이야기를 들어봐야 문제를 제대로 판단할 수가 있다. 결혼생활 내내 나는 아내와 최소한의 소통만 하고 있었다. 정말 중요한 속내를 들어내 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그것이 배려라고 생각했지만 아내는 무관심으로 받아들였다. 아주 작은 일도 방심하면 눈덩이처럼 커지기 마련이다. 특히 아프다는 이야기를 하면 굉장히 예민해지고 험악해진다. 그래서 아프다는 이야기는 아예 꺼내지도 않았다.     


 한 때는 진실한 사랑이라고 믿었던 아름다웠던 감정들에 대한 배신감에 치를 떨 때가 많아졌다. 한 사람을 사랑하는 일이 이처럼 의미 없고 세상에서 최악의 관계를 만들어낼 수도 있다는 사실이 그저 놀라울 뿐이다. 연애시절 그 아름답고 달달했던 사랑은 모두 허상이었던 것일까. 그 아름다운 사랑을 지킬 수 있는 방법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만일 결혼을 하지 않았더라면 그 사랑은 아직도 유지되었을까. 그 아름다운 사랑은 어디로 증발해 버린 것일까. 과연 사랑의 진정한 조건은 무엇일까. 왜 사랑은 그토록 허약해 빠져서 그깟 삶의 파고들을 견뎌내지 못하도록 설계되어 있는 것일까.
    

 요즘 생각은 한발 더 나아간다. 정말 사랑이라는 것이 있기나 한 것일까? 서로 간에 익숙해질수록 사랑도 익숙해져야 하는데, 그 반대의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사랑이 옮겨간다. 남편에서 자식으로 말이다. 자식에 대한 무조건적이고 헌신적인 사랑에 비해 남편에 대한 사랑은 간헐적이거나 아예 없어져 버린다. 남편의 존재는 돈이나 벌어오는 기계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이는 비단 우리나라만의 문제는 아니다.   
 

 일본도 상당히 심각해 보인다. 남편과 아내가 생각하는 결혼 생활의 간극은 태평양보다 더 넓다. 특히 육아 문제가 관련되면 대부분의 아내들은 흥분하기 시작한다. 남편이라는 존재 자체를 인정하려 들지 않는다. 황혼이혼이나 졸혼이 일본에서 오래전부터 유행처럼 번진 것도 우연이 아니었다. 그만큼 집안일 중 육아는 힘든 일이다. 거기에 직장생활까지 병행하는 아내들의 스트레스를 남편들이 이해하지 못한다. 이해의 부재로 발생하는 문제는 오랫동안 방치된 채로 곪아 터질 날을 기다릴 수밖에 없다. 남편에 대한 복수를 평생 기획하고 실천하기까지 한다. 그 복수중 하나가 남편이 죽으면 화장해서 그 유골함을 지하철 선반에 두고 내리는 것이다.    

 

 가끔은 사랑에 대해 지독할 정도로 깊게 생각해보곤 한다. 그 생각은  현재 살고 있는 땅을 파고들어 지구 반대편의 아르헨티나나 우루과이 어디쯤에서 고개를 내밀 정도로 집요하고 악착같다. 과연 사랑이라는 것이 있기나 한 것일까. 사랑의 본질은 무엇일까? 왜 연애할 때의 사랑이 결혼해서 육아를 시작하면 유통기간이 지난 우유처럼 변해버리는 것일까. 문득 이민 전 서울의 노래방에서 자주 불렀던 아주 오래된 유행가 가사가 떠오른다. 내일이면 잊으리 꼭 잊으리 립스틱 짙게 바르고. 사랑이란 길지가 않더라 영원하지도 않더라. 아침에 피었다가 저녁에 지고 마는. 나팔꽃보다 짧은 사랑아 속절없는 사랑아. 마지막 선물 잊어주리라 립스틱 짙게 바르고. 별이 지고 이 밤도 가고 나면 내 정녕 당신을 잊어주리라. (PS: 본 내용은 픽션과 논픽션이 혼합된 글이며, 이혼을 아내가 아닌 남편의 시각에서 바라본 이야기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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