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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런던남자 Nov 25. 2020

영국의 앰뷸런스를 보면 깍두기가 먹고 싶다

여전히 마스크를 무시하는 영국 사람들

 

2020년 11월 16일 London Westminster 놀이터 모습(2차 Lockdown기간 중인데도 아무도 마스크를 쓰지 않음)


 앰뷸런스 소리가 끊이질 않는 런던의 거리에서 자꾸 깍두기 생각이 난다.

 시도 때도 없이 비상등과 경광등을 켠 채 가장 높은 데시벨의 사이렌 소리를 울리며 어디론가 달려가는 런던 거리의 앰뷸런스들이 측은하고 애처롭다. 앰뷸런스 소리가 넘쳐나는 거리가 런던의 현재 모습이다. 집에 있어도 마트에 가도 공원에 가도 이 소리를 피할 수는 없다. 그런데 어처구니없게도 나는 영국의 앰뷸런스 소리를 들을 때마다 파블로프의 개처럼 군침을 흘린다. 앰뷸런스를 직접 보지 않고 소리만으로도 한국의 맛있는 깍두기가 생각나기 때문이다. 영국의 앰뷸런스는 사각형의 멋대가리라고는 1도 없는 단조로운 디자인이다. 정사각형에 가까운 직사각형의 커다란 종이 상자에 형광 페인트를 칠해 트럭에 올려놓은 모습이 영국의 앰뷸런스 모습이다. 물론 공간 활용의 효율성은 최고다. (내가 직접 타봐서 안다)

 그런데 앰뷸런스의 소리만으로도 나는 왜 한국의 깍두기가 생각나는 것일까. 한국의 유명하다는 설렁탕집에는 김치 겉절이와 깍두기만 반찬으로 나온다. 그중에서도 잘 익은 큼지막한 깍두기의 시큼하고 시원한 맛은 풀이 죽지 않은 아삭 거리는 식감의 겉절이와 반찬으로서의 묘한 궁합을 이루어낸다. 앰뷸런스를 보고 시원하고 시큼한 깍두기 생각으로 군침을 흘리는 나는 도덕성이라고는 말라붙어버린 인간이 아닐까 걱정이 되기도 한다. 저 앰뷸런스 안에서는 코로나 바이러스와 사투를 벌이다 고열로 혼수상태에 빠져있거나, 고열이 아니더라도 호흡곤란 증세로 산소호흡기에 생명을 유지한 채 촌각을 다투며 병원으로 달려가고 있는 환자가 타고 있을 텐데 말이다.


 코로나 19 확진자가 연일 2만 명대에서 오르락내리락하는 영국에서 가장 바쁜 차는 단연 앰뷸런스다. 끊이지 않는 앰뷸런스 소리들은 더 이상의 위기감이나 공포를 조장하지 못한 채 허공을 맴돌 뿐이다. 또 한 사람이 바이러스에 잠식당하고 있다는 위중함 따위는 사라진 지 오래처럼 보인다. 그저 영국 사람들에게는 이제 새롭지도 낯설지도 않은 당연하고 익숙한 일상일 뿐이다. "익숙함"이란 단어 하나가 이처럼 편안함을 선물해 주기도 한다는 사실이 놀라울 뿐이다. 마치 깍두기의 시금털털한 맛의 익숙함처럼 말이다. 런던에 도착한 지 채 2주가 지나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나는 벌써 이곳 일상에 물들어가고 있다. 야외는 당연한 것이고 버스나 지하철에서조차 마스크를 쓰지 않는 런더너들에게조차 익숙해지고 있다. 사람은 정말 환경에 빛의 속도로 적응하는 놀라운 능력이 있다는 사실을 나 자신에게서 실감하고 있는 중이다.

 

2020년 11월 22일 런던 하이드 파크(2차 Lockdown기간 중인데도 아무도 마스크를 쓰지 않음)


 영국 사람들은 마스크를 쓰면 기도가 막혀 죽기라도 하는 것일까. 그들은 정녕 죽음이 두렵지도 않단 말인가.


 아직도 마스크라면 질색을 하는 영국 사람들은 왜 마스크를 그토록 쿨하게 외면하는 것일까. 그래 좋다. 마스크를 쓰지 않을 자유와 권리도 인정하지만 어디 마스크라는 것이 나만 좋으라고 쓰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말이다. 남에게 바이러스를 전파하지 않을 의무는 왜 포기하려 하는 것일까. 비단 영국뿐만의 문제는 아니다. 프랑스와 독일에서는 마스크를 쓰지 않을 자유를 보장해 달라고 수천 명이 모여 시위까지 하지 않았던가. 우리 사고방식으로는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 개인주의의 폭력이 아닐 수 없다. 집단주의를 배척하려는 몸부림은 이해가 가지만 그 행동 자체가 굉장히 위험한 이기주의가 아니고 뭐란 말인가. 자랑스러운 서구의 합리주의가 형체도 없는 바이러스로부터 중대한 도전장을 받고 무너져내리는 중이다. 마치 북극의 거대한 빙벽들이 녹으면서 바다로 무너지듯이 말이다.  허둥대고 갈피를 잡지 하고 있는 듯해서 보기에도 민망할 뿐만 아니라 측은지심까지 들다니. 안타깝기 짝이 없다.


 코로나 19 확진자가 36,000명을 넘어선 다음날인 11월 13일에 나는 런던 히드로 공항을 통해 입국했다. 그리고 2주일이 지나고 있다. 물론 자가격리도 없이 자유롭게 런던 시내를 활보하면서 26개월 만에 다시 런던의 구석구석을 누비고 있다. 마치 고향에 돌아온 듯한 편안함 뒤에는 마스크를 쓰지 않는 사람들이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야외에서니깐 그러려니 했지만 버스나 지하철에서도 마스크 프리로 다니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2차 Lockdown 중이지만 센트럴 런던을 제외한 런던의 거리에는 사람들로 북적인다. 학교나 슈퍼마켓 등의 식료품점은 물론이고 카페나 레스토랑들도 Takeaway는 허용되기 때문에 여전히 운영 중이다. 생필품인 아닌 Shop들과 Pub들은 모두 문을 닫았다. 그래서 영국의 2차 Lockdown을 Pubdown이라고 조롱하는 사람들이 많다.


2020년 11월 22일 런던의 의사당과 총리 관저 앞의 경찰들(2차 Lockdown기간 중인데도 아무도 마스크를 쓰지 않음)


 영국 사람들이 마스크를 쓰지 않는 이유들


 영국 사람들이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바로 마스크가 코로나 바이러스를 차단한다는 "과학적 근거"가 없다는 점이다. 심지어 보건부 장관인 Matt Hancock은 지난 7월에 LBC 라디오 프로그램과의 대담에서 사람들이 마스크를 써야 할 근거가 아주 희박하다고까지 말했다. 물론 지금은 사정이 달라졌지만 영국인들이 여전히 마스크를 불신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심지어 공공장소에서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으면 100파운드의 벌금을 물린다고 해도 여전히 착용하지 않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100파운드의 벌금은 전혀 실효성이 없는 정책이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첫째, 단속하는 사람을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는 점이고 둘째, 심지어 총리 관저나 의사당에서 경비를 서는 경찰들도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셋째, BBC 등 영국의 TV를 보면 마스크를 착용하는 사람들이 아예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한국처럼 뉴스를 전하는 기자들조차 마스크를 착용하는 모습은 찾아볼 수 없다. 그래서일까. 나처럼 KF94 마스크로 중무장한 사람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없다. 그나마 버스나 지하철에서 마스크를 착용한 사람들은 두건이나 파란색 덴탈 마스크가 전부다.


 영국 사람들이 마스크를 쓰지 않은 혹독한 대가

 영국인들이 마스크를 외면한 결과는 너무나 혹독하다. 참고로 내가 런던 히드로 공항에 입국하기 전날 하루 확진자가 36,000명을 넘어서기도 했다. 참고로 현재 영국에서는 150만 명 이상의 코로나 확진자가 나왔고 사망자도 55,000명을 넘어선 지 오래다. 그런 면에서 한국과 한국인들은 대단하다 못해 위대한 국가이지 국민이다. 단, 그 사실을 한국 본토의 일부 언론과 세력들은 여전히 폄하하고 부정하려 든다. 세상 참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엠뷸런스를 보고 깍두기 생각이 나서 군침을 흘리는 나나 그들이나 못되긴 마찬가지가 아닐까.

2020년 11월 22일 런던 하이드 파크(2차 Lockdown기간 중인데도 아무도 마스크를 쓰지 않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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