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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런던남자 Nov 30. 2022

고양이가 죽었다!

슬픔이라는 감정에 대하여


 고양이가 죽었다. 2021년 5월 5일에. 나의 사랑하는 둘째 아들 단오가 죽었다. 런던의 집에 있는 첫째 아이는 이 사실을 울먹이면서 나에게 알렸다. 그것도 평소에 사용하지 않던 화상통화를 통해서 말이다. 우리 둘째 아들이었던 단오는 왼쪽 얼굴 하단에 암이 발생하여 만 15세 생일날 생을 마감해야만 했다. 자기가 평생을 다닌 동물병원에서 자기의 주치의 손에 의해 말이다. 사실 단오가 죽는다는 사실은 이미 알고 있었고 직접 면회도 한번 다녀왔었지만 죽음이 믿기지 않았다. 고양이의 부고를 들었을 때 집체만 한 슬픔이 파도처럼 밀려들었다. 하루 종일 아무 일도 할 수 없었다.


 단오는 자기가 다닌 병원에서 안락사했다. 암이 심해지면서 왼쪽 뺨이 푹 꺼지면서 완전히 무너져 내릴 정도였다. 매일 강력한 진통제로 연명하는 삶은 말을 하지 못하는 단오도, 그걸 지켜보는 가족도 고통의 나날이었다. 특히 단오를 안락사시키기로 결정하고 동물병원으로 엄마와 함께 차를 몰고 갔을 아이를 생각하면 더욱 가슴이 미어진다. 그 병원은 우리가 처음 정착해서 살았던 런던 서쪽의 리치몬드라는 곳에 있다. 지금의 집에서는 차로 15분 정도의 거리다. 자기 친동생처럼 여기며 유치원 때부터 같이 살았던 고양이를 안락시키러 가는 길! 리치몬드 파크를 가로질러 가면서 아이는 얼마나 슬펐을까! 5월 초, 봄이 절정일 리치몬드 파크는 또 얼마나 아름다웠을까! 병원으로 가는 도중 단오와는 눈을 몇 번이나 마주쳤을까! 엄마와는 무슨 대화를 나누었을까! 단오 또한 알고 있었을 이다. 오늘 병원에 가면 예전처럼 치료를 받고 다시 집으로 돌아올 수 없다는 실을.


 다행히 단오가 죽기 전에 비록 한 번이긴 하지만 단오를 만날 수 있었다. 내가 런던에 도착하고 호텔 격리 중 아이와 호텔 인근의 공동묘지에서 잠시 만났었다. 말이 공동묘지이지 산책하는 사람들로 북적이던 공원이었다. 거기에서 만난 지 몇 달 지나지 않아 잠시 런던 집에 다녀왔었다. 시한부 생을 살고 있는 단오를 보기 위해서. 아내와 이혼 후 처음 가보는 집은 그대로였지만 모든 것이 낯설고 생경했다. 단오의 생이 며칠 남지 않은 4월의 어느 일요일이었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2층의 아이 방 침대에서 자고 있는 단오에게로 달려갔다. 거의 3년 만에 처음 보는 아빠를 단오가 알아볼 수 있을까 걱정이 되었다. 단오가 곧 죽는다는 걱정보다 그 걱정이 앞섰다.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다.      


 현관에서 2층으로 올라가는 몇 개 안 되는 계단을 올라가면서 세상의 모든 신들에게 기도했다. 제발 우리 둘째 아이를 살려달라고 말이다. 사실 단오는 암에 걸렸지만, 인간으로 치면 노환으로 죽는 것이나 다름없다. 고양이 수명이 평균 15년 정도이기 때문이다. 그 사실을 알면서도 자꾸 욕심이 생긴다. 아니 억지를 부리고 싶어 진다. 단오가 암에 걸린 의학적인 이유는 모르겠다 하지만 가정을 이혼으로 이끈 이 못난 아빠도 일말의 책임이 있지 않을까! 마지막으로 단오를 보면 꼭 용서를 구하고 싶었다. 이제 몇 초 후면 2층이다. 그리고 거기에는 단오가 나를 기다리고 있다. 이 못난 아빠를 말이다.      


 2층에 올라가니 맨 먼저 내가 서재로 쓰던 작은 박스룸이 보인다. 내가 쓰던 물건들이 있어야 할 자리에는 모두 다른 물건들로 채워져 있었다. 이 또한 익숙하지만 생경한 풍경이었다. 2층 복도 중간 욕실 앞에는 내가 몇 년 전에 아마존에서 구입한 단오의 원형 곰 발바닥 무늬의 침대가 보였다. 하지만 단오는 거기에 없었다. 아이가 자기 방문을 열자 마침내 단오가 보였다. 단오는 눈을 뜬 채 형의 침대에 누워 있었다. 단오는 암에 걸리고 나서부터 형의 침대에서 같이 잔다고 했다. 죽음을 앞둔 생명체의 초췌한 모습! 꺼져가는 생명이 지금 내 눈앞에 있다.   


 마침내 단오와 나의 눈이 마주쳤다. 나도 모르게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렸다. 아이 앞에서 처음 보이는 아빠의 눈물이었다. 평소에 강한 아빠라고 알고 있던 아빠가 눈물을 보이다니! 나의 눈물에 아이가 당황한 모습이 보였다. 예상과 달리 단오는 나를 알아보고 내 얼굴에 자신의 얼굴과 머리를 비비며 좋아했다. 아빠 어디 갔다가 이제야 나타난 거야! 그것도 3년 만에 라고 말하고 싶은 표정이었다. 잠시 후 조금 진정이 되자 우리는 서로를 정면으로 바라보았다. 단오 또한 눈물을 흘렸는지 양쪽 눈가가 촉촉하게 젖어 있었다.     


 아이는 단오를 침대에서 내려 주었다. 나는 단오를 안고 또 한참을 흐느꼈다. 단오는 나에게는 특별한 아이였다. 특히 내가 3년 동안 런던에서 역기러기 아빠로 있을 때 둘째 아들 역할을 톡톡히 해주었기 때문이다. 건강 문제로 치료차 한국으로 아이와 함께 떠난 아내는 3년이 지나서야 다시 런던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아이는 그때 막 중학생이 되어 첫 학기인 가을 학기 입학을 기다리고 있었다. 런던에서 생업을 책임져야 하는 아빠 대신에 엄마 보호자로 기꺼이 따라나섰던 것이다.      

 

 아내와 아이는 1년 일정으로 한국으로 떠났지만 만 3년이 되어서야 돌아올 수 있었다. 아내는 친정이 있는 대전의 여동생 아파트 바로 옆 동에 거처를 정했다. 다행히 대전에도 국제학교가 있어서 아이는 국제학교에 입학하고 졸업까지 하고서 엄마와 한국에 돌아왔다. 아이가 한국말을 할 수 없어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그 3년의 세월 동안 나는 런던 집에서 혼자 지내야 했다. 다행히 곁에는 늘 단오가 있었다.     

 

 엄마와 형의 부재를 알고 나서부터 단오 또한 나에게 더욱 의지하는 듯 보였다. 가끔 잡아 오던 쥐도 거의 매일 잡아 왔다. 하지만 엄마와 형의 갑작스러운 부재를 단오에게 설명할 길이 없었다. 엄마가 많이 아파서 치료 및 휴양차 한국으로 떠났다고 몇 번이나 큰소리로 말해 주었는지 모른다. 소통의 어려움 때문에 답답하고 안타까웠다. 비록 소통이 불가능하지만 나는 단오를 정말 사람처럼 대해 주었다. 그래서 많은 대화를 시도했다. 비록 일방적이지만. 그러던 단오가 이제 채 한 달도 남지 않은 고양이의 마지막 남은 시간 앞에서 힘들어하고 있다. 그것도 너무나 고통스러운 암으로 말이다.      


  슬픔이란 감정 앞에서 나는 천하에 둘도 없는 불효자다. 물론 지금은 어머니를 생각하면 회환의 눈물이 난다. 하지만 그때는 그렇지 못했다. 8년 전, 어느 평화로운 일요일 아침이었다. 한국에 있는 여동생에게서 전화가 왔다. 느낌이 이상했다. 웬만해서는 한국에서 전화로 연락하는 일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전화였다.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니! 믿기지 않았다. 슬픔이 파도처럼 밀려들었지만, 이상하게 눈물이 나질 않았다. 정말 이상한 감정이었다. 살면서 이보다 더 슬픈 일이 또 있을까! 물론 슬픔을 계량화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이 상황에서는 반드시 눈물이 나와야만 했다. 그날로 비행기표를 끊어서 한국으로 달려가 어머니의 장례를 치러드렸지만 끝내 눈물이 나지 않았다. 어머니의 관이 화장장 안으로 들어갈 때도 하얀 가루가 되어 나왔을 때도 말이다. 흔히 말하는 악어의 눈물조차 흘리지 못했다. 카뮈의 소설 이방인에 나오는 주인공인 뫼르소보다 더한 냉혈 인간이 바로 나였다.      


 그런데 이번에는 아니었다. 그것도 사람이 아닌 반려동물의 다가오는 죽음 앞에서 그만 눈물샘이 터져 버린 것이다. 이 감정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단오와 오전을 같이 보내면서 어떤 추억이라도 만들고 싶었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전혀 없었다. 만져주고 안아주고 쓰다듬어주고 눈을 맞춰주는 일이 내가 할 수 있는 일의 전부였다.    


 내가 집을 방문해 단오를 만났던 그다음 달인 5월 초에 단오는 세상을 떠났다. 그것도 자기 생일날에 말이다. 단오라는 이름도 내가 지어 준 이름이다. 단오는 2007년 5월 5일 단옷날에 태어났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단오가 되었다.    

  

 엊그제부터 겨울비가 내리더니 부쩍 추워졌다. 단오가 유독 생각나는 날이다. 단오야 그곳에선 아프지 말고 행복하게 지내렴. 사랑한다.



PS: 런던에서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네요. 브런치엔 2년 만에 복귀네요. 죄송합니다. 앞으로 열심히 활동하겠습니다. 이 글은 다시 시작한 하루 만에 책 쓰기에 실린 내용 중 일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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