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잘 지내고 있니. 나도 잘 지내고 있어. 오늘은 시흥으로 개인 상담을 다녀왔어. 가깝지 않은 곳이었지만, 돌아오는 차편을 마련해주셔서 편히 다녀올 수 있었지.
아침에 머리를 자르고, 이른 시간에 먼저 지하철을 타고서 도착했어. 오랜만에 다시 또 홀로 걷는 여행이었지. 나의 여행은 그런 거야. 우선 훌쩍 지하철을 타고서, 그곳에서 어디로 가면 좋을지를 찾아보는거야. 지금 우리가 사는 시대는 참 좋은 시대인지도 몰라. 내가 가야할 곳 언저리를 대충 인터넷에서 찾으면, 주변의 명소를 알 수 있게 되거든. 그러니, '관곡지'라는 곳이 나왔어. 그곳은 말야, 조선 성종 때 좌찬성을 역임했던 강희맹이라는 선생이 명나라에서 처음 연꽃을 들여와 심었던 곳이래. 그래서 그 옆에는 연꽃 공원으로 조성 되어 있었어. 그런데 나는 사실 그런 역사적 사실보다는 그냥 이곳 저곳을 누비면서 새로운 것을 발견하고 싶었어. 지금 이 시기에, 날 좋은 이 가을 날에, 길을 거닐면 분명 새로운 것을 만나리라는 것을 확신했거든.
그래서 신천역에 내려서 약 30분 가량은 걸었어. 그곳을 내렸을 때 말야, 그곳에는 가을이 가득했어. 믿을 수 있니? 가을이 가득했다는 사실이 아니라, 내가 이미 가을 안에 있었는데도 그 가을을 몰랐다는 사실을 말야. 계절은 온도가 아니라, 풍경이라는 사실을 나는 그때에야 다시 깨달았던 거야. 내리자마자, 보이는 파란 하늘과 보도블럭 위의 매뚜기. 그리고 십분이 채 걷기도 전에 보이던 드 넒은 밭. 하천 위에는 햇볕이 부서져 일렁이고 있었어. 가을이 바로 거기에 있었던거야. 나는 그게 우리 곁에 있는지도 모르는 채 달력으로만 가을을 이해했다 믿었던 거지.
그렇게 천천히 노래를 틀고 내리 걸어 가는 길. 사람들을 거의 발견할 수 없었어. 단지, 그제야 느껴지는 교외의 가을의 풍경과 같은 것들이 계속해서 나와 함께 했고, 나는 생각을 하고 또 하며 걸었지. 생각이라는 것은 말야, 내게 있어서 한번도 그친 적이 없었어. 그럴 바에는 그저 그 생각들에 집중하는 것이 내게 좋을 것이라고 생각헀지. 덕분에, 나 못하는 것들을 여전히 하지 못하지만, 나 잘하는 것들은 아직도 여기서 이렇게 잘 하고 있는 것인지도 몰라. 여전히 어떻게 살아야 할지는 하나도 알지 못하지만 말야.
그렇게 도착한 관곡지. 시들어가는 것인지, 무르익어 가는 것인지 알 수 없는 태평하고도 쓸쓸한 풍경이 펼쳐졌어. 바람은 선선했고, 태양은 여전히 청량한 하늘 위에서 나를 내리 쬐고 있었지. 그 묘한 균형 하에서, 나는 담배를 하나 피우고 그 안으로 들어 갔던 거야. 사실 풍경 하나 하나를 섬세하게 바라보지는 않았어. 그저 그렇게 꾸며진 곳에서, 내가 걷고 또 생각할 수 있는 것들이 마련 되어 있다는 것이 좋았던 거야. 풍경조차도 그저 내가 걷는 것에 도움이 되기 위해 존재했던 것처럼. 그렇게 처음 만난 것만 같은 가을에 놀라고, 다시 또 그 가을 안으로 들어가서 그리 걸었던 거지.
그 곳에서 문득, 편지를 써야겠다는 생각을 했어. 결코 편지로 써야할 것을 글로 써야겠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고, 또 앞으로도 그래야 겠다고 생각했지만, 편지의 형식으로 쓸 수 있는 말이 있다고 생각한 거지. 내가 여기까지 이리 적었듯 말이야. 그런데 놀랍게도 그 순간에 나는 어떤 한 공간에 마주하게 되었어. 연못으로 둘러 쌓인 길 가운데에, 자그마한 돔처럼 생긴 공간이었어. 그 안에는 무당벌레 모양의 우체통 하나가 있었고, 그 앞에는 둥근 테이블 위에, 일련의 엽서들이 놓여 있었던거야. 시흥시는 그걸 '느린 우체통'이라고 불렀어. 내가 편지를 쓰면 1년 후에 도착한다는 거야. 1년후에 도착하는 편지라니, 재미있지 않니? 더군다나, 세금으로 이용되는 거여서, 우표를 사서 붙일 필요도 없다는거지!
그래서 나는 우선 그 테이블 앞에 앉아서 누구에게 편지를 써야 할지를 생각했어. 사실 편지를 쓰고 싶은 곳은 많았어. 단지 나는 그 누구의 주소도 제대로 아는 것이 없었다는게 문제였던거야. 사실, 주소를 안다고 해도, 일년 후에도 여전히 거기 그곳에 있을지도 모르는 사람도 태반이었지. 그런 점에서 우리는 아직도 불안한 시기를 보내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그런 생각을 했어. 그래서 나는 가장 확실한 엄마 아빠에게 편지를 썼어. 일년 후의 미래에도 내가 부디 잘 지내고 있기를 바라고, 또 사랑하고 있다고 말하면서 말이야.
평소에는 그리 말하지 못한 것들이, 일년 후의 미래에 쓴다고 말하니 쓸 수 있다는 것은 참 이상한 일이야. 그렇지 않니? 더불어, 그러한 시차를 두고 미래의 누군가를 위해서 쓸 수 있다는 현상도 내게는 사뭇 놀라운 것이었어. 편지라는 것은 그렇게 미묘한 시차를 불러 일으키고, 그 시간 안에서도 마음이 보존되리라 믿을 수 있을 때 적게 되는 것인지도 몰라. 지금 내가 적는 것들이, 미래에도 바뀌지 않으리라. 혹은, 부디 바뀌지 않게 해주세요- 라면서 말야. 설령 그 마음이 사실이 아니라해도, 그리 믿으며 적을 수 있는 순간이 있다는 것은 참 중요한 것 같아.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면, 시작 되지 않는 것들도 너무나 많으니까. 평생을 사랑하겠다 마음 먹을 때야, 사랑한다 말하던 날처럼 말야.
그렇게 편지를 적어 우체통에 넣고서는, 문득 생각을 하게 된거야. 시간을 넘어서는 편지가 있다면, 공간을 넘어선 편지는 어떨까. 그러한 편지의 모습은 어떨까.
그것은 어쩌면 누구에게 배달 될 지 모르는 그런 편지. 누구에게 배달 되어서 상관 없는 그런 편지. 문득 그런 글을 쓰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 나 하고 싶은 말들을, 모두를 위해서 쓸 수 있다면, 그러나 그것이 하나의 편지의 형식으로 서술될 수 있다면 그것은 어떤 느낌일까? 그것은 단지 구구 절절히 적어낸 일기들의 서술어를 편지의 형식으로 바꿔 쓴 것에 불과한 걸까? 만약에 그것이 사실이라면, 나의 시도는 실패한 걸꺼야. 그러나 나의 시도가 성공했다면, 그 편지는 한 사람에게 향하는, 보란듯이 써버린 그런 은밀한 것은 아니라 해도, 그저 일기에 불과한 것일 수도 없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고, 또 새로운 아이디어로 내 생각이 옮겨가자, 나는 갑자기 행복해졌어. 내 앞에 펼쳐진 가을 앞에서, 그리고 그 안에서. 그저 우연한 의뢰를 받고 밟았던 시흥 땅에서. 나는 일년 후의 엄마 아빠에게 편지를 썼고, 그 편지를 쓰면서 네게 이런 말들을 남겨야 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거잖아. 믿을 수 있니? 이 모든 것들은 모두 마법같은 우연으로 내게 찾아왔던거야.
우연은 그저 우연이고, 세상 만사 정말로 다양한 일들이 겹겹이 겹쳐 있는 것이겠지. 하지만, 그 모든 것들이 갑자기 한 순간에 끼워 맞춰지는 것을 느낄 때가 있어. 그 안에서 어떠한 경이를 느끼는 순간이 있어. 너는 그것을 믿을 수 있니? 네가 믿지 않아도 괜찮아. 이건 그저 오늘 내가 느꼈던 그런 기분일 뿐이거든. 단지, 그러한 기분을 느꼈던 날에, 이러한 편지 하나를 쓸 수 있다면, 그것으로도 괜찮은 건지도 모르겠어. 적어도 하루에 하나의 통찰을 할 수 있다면. 그리고 그를 통해서 누군가를 위해 무언가 적어 내릴 수 있다면, 좋겠다고. 문득 그런 생각을 했던거야.
잘 지내고 있니? 모두가 살기 힘든 시기를 나고 있는 것 같아. 그러나 풀밭에는 여전히 아이들이 마스크를 쓰고 선생님들과 뒹굴고 있었어. 사람들은 살아가고 있어. 그를 통해 위로받고 싶은건 아니야. 나도 그저 살아가고 싶은거야. 다들 보고 싶어. 모두 다 잘 지내기를 바라. 어디로 향할지 모르는 나의 말들이 끈기를 가질 수 있다면, 다시 또 하늘을 보고 답장할거야.
그때까지 또 안녕.
2020. 10. 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