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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하 Dec 13. 2020

타인의 편지(2) : 가을은 왜 쓸쓸할까

사랑하는 모두에게

잘 지내고 있니. 나는 술먹다가 과외 시간이 바뀐 것을 까먹고 두시간이나 늦어버렸어. 한시로 바꾸자는 학생의 이야기에 대답까지 해놓고 정말 하나도 생각이 안나는거야. 여지것 한번도 늦은 적이 없었는데, 당황하고 말았어. 그래도 허겁지겁 가서, 오늘 해야 할 것들을 잘 하고서는 끝낸거 같아.

돌아오는 길에 문득 뉘엿뉘엿 지는 해를 보면서 가을이 왜 쓸쓸한지를 스스로 물었어. 그건 그냥 지난 시인들이 빗댄 것으로서 축조된 문화적 산물에 불과한 걸까? 너는 어떻게 생각하니. 저물어가는 계절 앞에서, 문득 마음은 갈피를 잡지 못할 것만 같아. 이걸 가을 탄다고 말하잖아. 그렇게 젖어드는 기분이라는게 말야, 나는 배워 익힌 것일까, 아니면 우리의 생득적인 기분인걸까.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복합적인 것일거야 그렇지? 우리는 선천적으로 비유할 수 있게 태어났으니까. 떨어지는 낙엽을 보면서, 시들어가는 꽃나무를 보면서, 황량해져만 가는 들판을 보면서, 죽음과 유사한 것들을 떠올리는 것은 당연한 것인지도 몰라.

너는 알고 있니? 사실은 봄의 평균 기온이 가을보다 더 낮대. 봄이 평균적으로는 더 추운거지. 그런 점에서 가을이 시원하다는 것은, 그리고 봄이 따뜻하다는 것은 시간 안에서야 이루어지는 일일거야. 우리가 과거의 기억들, 찬란하게 펼쳐지던 푸르른 계절을 기억하고 있지 않았다면, 그저 이 가을 한복판에 태어났다면, 우리는 이 계절이 쓸쓸하다고 생각했을까? 그런 점에서 쓸쓸하다는 것은, 무언가를 기억하고 있고, 또 무언가를 앞두고 있다는 것에서부터 시작할지도 몰라. 그래서 계절은 온도일 수는 없을거야.

그러면 말야, 가을이 쓸쓸하다는 것은 일종의 그리움일까? 우리는 지난 계절을 사랑했기 때문에, 그리 그리워서는, 그래서 놓친 것을 생각해버려서는, 이제와 되찾을 수 없는 것 앞에서 쓸쓸해하는 걸까? 

하지만 쓸쓸하다는 것과 그립다는 것은 다르다고 생각했어. 우리는 지난 계절을 기억하고 있기도 하지만, 동시에 찾아올 계절에 대해서도 이해하고 있으니까. 시들어가는 과정 안에서 더 추워질 것을 우리는 천천히 실감하고 있는거야. 지난 계절 뿐만 아니라 찾아올 겨울에 대해서도 생각하고 있는거지. 시들어간다는 것은, 아직 죽지 않은 상태이고 또 죽어가고 있다는 그런 진행형의 말이었던거니까.

그런 점에서 가을의 쓸쓸함은 지난 것에 대한 그리움도, 또 앞으로 찾아올 것에 대한 죽음에 대한 슬픔도 아닌지도 몰라. 그저 하나의 과정과 또 순간이라는 것. 가을이 쓸쓸하다는 것은 가을 자체에 대한 감정인거야. 찬란하던 과거도, 저물어버릴 미래도 아닌 그저 그 사이에 놓인 순간. 가을은 그 순간에 대한 감정. 우리가 보는 것은 삶도 죽음도 아닌 그 사이에 놓인 삶.

해가 짧아지고 있어. 짧아진 해가 쓸쓸한 것은, 낮에 대한 그리움도, 밤에 대한 두려움도 아닐지 모르겠어. 그저 지금의 그 순간에 대한 기분과 같은 것인지도 모르겠어. 황금빛 풍경. 맑은 하늘. 무르익어가는지 시들어가는지 모를 모든 순간들. 놓친 것에 대한 감정이라기엔 아직도 붙들고 있는 무언가. 그러나 사라질 무언가. 가을은 놓친 것이 아니라, 사라질 것이야. 그러나 우리는 여름에서 겨울로 넘어가는 과도기라고 생각하지 않았던 거야. 그 순간을 이미 쥐고서는 그 순간의 감정을 쥐고서는, 그 순간에 계절의 이름을 붙이고야 말았던 거지. 가을은 그래서 실재하게 되었고, 우리는 그 안에서 쓸쓸하다는 생각을 했던 게 아닐까.

그래서 이 쓸쓸함이라는 것은 선천적인 걸까 아니면, 그저 배워 익힌걸까. 

그를 생각하면서 걷다가, 이 기분이라는 것이 어떤 학습의 산물이라고 해도, 이미 늦어버렸다는 것을 알았어. 어차피 기분 안에 들어와 버린 이상, 별 수 없이 그 기분을 누리는 수밖에는 없으니까. 그렇다면 침착하게 그 기분으로 걸어보는거야. 지난 것에 대한 그리움도, 앞으로 찾아올 것에 대해 지레 겁먹는것도 아닌, 그저 여기 놓인 이 계절에 대한 기분을 가지기로 해보는거야.

문득, 피해주지 않는 쓸쓸함을 가지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어.

그래. 미련도 성급한 겁도 없이. 그저 지금에 주어진 기분을 가지는 것. 그게 가을을 나는 방법 아닐까.

천천히 이 계절을 누리고난 뒤에 다시 또 다른 계절이 오면 그때에는 그 마음을 가지면 되니까. 

그렇지 않니? 

날이 추워지고 있어. 온도 말고도 마음을 조심하길. 

2020년 10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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