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잖아."
"응. 왜?"
"사랑한다는 말로도 위로가 되지 않는다고 말한다면, 너는 뭐라고 말할 거야?"
"그게 무슨 뜻이야...?"
"아니, 왜 표정을 죽일 것처럼 그래. 그냥 그런 노래가 있어서 듣다가 말해본 거야."
"누가 죽일 것처럼 봤다고 그래. 죽을 것처럼 본 건데."
"내가 그렇게 말하면 죽을 거 같아?"
"죽을 것 같댔지 누가 죽는 댔냐."
"그렇게 말하면 서운할 거 같아?"
"그럼. 서운하지. 내가 별 도움도 안 된다는 거 아냐."
"그런 건 아니지."
"그럼 뭔데?"
"아니, 그냥 그런 날이 있잖아. 함께 있어도 외로운 날들."
"난 없어."
"네가 없다고 해도, 나는 있을 수도 있는 거잖아."
"그래. 그러니까 서운한 거지."
"..."
"알아. 그런 날 있는 거. 근데, 그래도 사랑하면 뭐든 다 도움이 되고 싶은 거잖아. 그렇게 못하면 슬픈 거고."
"그래도, 위로하려고 사랑하고, 위로받으려고 사랑하는 건 아니잖아."
"그래. 그러려고 사랑하는 건 아니지. 물론. 그렇다고 나 좋자고 하는 것도 아니니까."
"나 좋자고 하는 거 아냐? 그럼 너는 왜 하는 건데?"
"당연히 나 좋자고 하고, 좋아서 하는 거지. 근데, 그래도 나 좋자고 시작하다가 보면, 내가 네 인생이 의미 있는 인간이 되고 싶은 거니까. 다들 그런 거 아닌가."
"그래도, 살다가 보면 모든 것들을 다 좋아하는 사람한테서 받아 갈 수는 없잖아. 모든 것을 다 채울 수도 없는 거고."
"그래. 그래도, 잘 지내다가, 문득 그런 말을 들으면. 내 존재가 네게 별로 위로가 되지 않는 것처럼 들려서, 마음이 슬퍼질 거야. 그리고 아마 그 이유도 사랑하기 때문이겠지."
"그래서, 너는 정말 없어? 사랑해도 위로가 되지 않는 순간들 말야."
"있어. 네가 나한테 그렇게 말할 때."
"진짜, 너 계속 유치하게 그럴래?"
"... 아마도 다른 말을 찾아 봐야겠지."
"무슨 말?"
"사랑한다는 말 말고 다른 말. 사랑한다는 말로도 위로가 되지 않는다고 했으니까. 다른 말을 찾아봐야지."
"그래서 그게 어떤 말인데?"
"음... '일억 가질래?' 어때?"
"와씨. 바로 위로 되는데?"
"참나."
"근데, 너 일억 없잖아. 없는데 그렇게 쉽게 말하면, 더 기분 나쁜 거 아냐?"
"그래. 그럴 거 같은데, 왜 계속 기분은 내가 나빠지지?"
"헤헤"
"그래. 위로하기 위해서 사랑한 것도 아니고, 위로받기 위해서 사랑한 것도 아니지. 어쩌면 그때 사랑이 하는 일은, 그 말 하나에 열등감을 느끼고, 또 와르르 무너지는 건 아닐지도 몰라. 하지만 그렇게 되겠지. 사랑하다 보면 위로하고 싶어지고, 또 도움이 되고 싶으니까. 근데, 그 마음을 넘어설 수 있다면, 그 말 하나에 무너지는 게 아니라, 버티고 서서는, 사랑한다는 말보다 더 위대한 말을, 더 힘이 되는 말을, 생각하고 또 고민하는 게 답일지도 모르지."
"그리고 그 말은, 역시... 일억 가질래? -라는 건가."
"그래, 정말로 그게 위로가 된다면, 그리고 내가 그것을 줄 수 있다면, 그렇게 할 수도 있겠지."
"개이득인데?"
"난 아직 너한테 줄 수 있다고 말하지는 않았거든? 내가 줄 수 있는 능력도 없고."
"그래도, 언젠가 그렇게 될 수 있을지도 모르지."
"반대로 너도 나한테 그렇게 해줄 수 있을지도 모르고 말야!"
"난 아닌데. 난 아닌데."
"그런데 말야."
"응?"
"결국 십 원을 주든, 천 원을 주든, 만 원을 주든, 일억을 주든, 그것도 위로하기 위해서는 아닐 거야. 네가 울 때, 손수건을 건네는 것도, 아프다면 그곳까지 뛰어가서 약을 사서 건네는 것도,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을 뭐든 다 하려는 것도 말야, 위로해 주기 위해서는 아닐 거야."
"십 원을 주는 건 당연히 위로하기 위해서는 아닐 거 같은데?"
"아 진짜 계속 그럴래?"
"미안 미안. 계속해. 듣고 있어."
"사랑한다는 말도 사랑하기 때문에 하는 말이지만, 위로에 성공하기 위해서 고안해낸 모든 말들도 결국 사랑해서겠지."
"흠. 결국 사랑이 최고라는 건가."
"그런 거지."
"짝짝짝. 결국 위대한 사랑의 승리였습니다. 이제 만족하십니까?"
"뭘 또 만족이야. 고민해 봐야지. 그래서 어디까지 내가 말할 수 있는지 말야."
"아직 그런 고민을 할 날은 오지 않았답니다. 자 이제 우리 맛있는 것을 먹으러 갑시다."
*
그래. 그러자 - 라고 너털웃음을 짓는 표정으로부터 뻗어 나온 손을 잡고서 걷던 날에. 사랑한다는 말로도 위로가 되지 않는다는 그 말의 도전에 대해서 생각해 보던 날에. 결국 사랑은 승리했던가. 십 원을 주든, 천 원을 주든, 일억을 주든, 아니면 볼멘소리에 그저 사랑한다고 말하든, 모두 다 사랑 때문에 가능했다고 말하던 그런 날에. 사랑의 위력은 과연 증명되었던가.
그러나 그렇게 대단하다던 사랑은, 어째서 끝까지 위로가 되지 못하였는가. 왜 어느 순간부터 위로가 아닌, 마음에 흠집을 남기고, 또 가장 필요한 날에 그 존재조차 홀연하였는가. 가장 보고 싶은 날에 곁에 하지 않았는가. 가장 사과해야 할 날에 사과하지 않았고, 너무나 사소한 것에서부터 걷잡을 수 없이 마음이 무너져 버려서는, 모든 것을 망쳐버렸는가.
그때, 그 순간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사랑으로 할 수 있는 말이 무엇이었는지를 고민하던 너는 뭐라고 말했을까. 사랑의 위력은 그래서 기각되었음을 인정할까. 우리의 지난 역사들을 통해서 하나의 반례가 되었음을 인정할까.
아마도, 너는 인정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되었던 이유는, 어쩌면 더는 사랑하지 않았던 것일 뿐이라고. 그래서 그것이 해낼 수 있는 대단한 것들은 더 이상 일어나지 못했다고. 이 모든 것들이 조촐하게 끝나버린 이유는, 그 대단한 위력을 가진 사랑이 어느 순간부터 천천히 사라져서는 자연사해버렸기 때문이라고. 그렇게 말하며, 여전히 그 잘 난 사랑의 위력을 드높일지도 모르겠다고.
위로하기 위해서 사랑한 것이 아니었고, 위로받기 위해서 사랑한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래서 위로되던 순간이 있었다. 그것은 그저 사랑했기 때문이었고, 그런 날들은 얼마나 놀라운 위력을 발휘했던가. 그래. 그 마음이 사라지고 난 뒤에 홀연한 모든 것들은, 여전히 그 사랑의 위력에 반례가 아니라, 그 위력의 증거였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래서 어쨌다는 건가. 그 대단한 마음이라는 것은, 이제는 존재하지 않는데 말이다.
그렇지 않니.
문득 철 지난 노래를 들으며, 그리 생각했다.
-타인의 일기-
https://www.youtube.com/watch?v=mSd3dbU9RW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