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위가 이어지고 있다. 낮에도 추웠는데, 밤에는 더 춥다. 그럼에도 가끔 계절과 닮은 것을 먹고 싶을 때가 있어서 아이스크림을 찾는다. 집에서 편의점까지 도보로 고작 2분. 나갈까 말까 망설이지만 결국 그만둔다. 춥고 귀찮다. 내일은 냉동실에 계절의 맛을 넣어두어야지 하는 다소 비장한 결심과 함께.
소설 속 배경은 무더운 여름. 부부인 동규와 혜선은 마트에서 사온, 개별포장이 된 지우개 크기의 아이스크림 '미츠'를 하나씩 벗겨서 먹고 있다. 그러다 '미츠'에서 휘발유 맛을 느낀다. 평소에는 느껴지지 않았던 맛이이었다. 아이스크림에 이상한 물질이 섞인 건 아닐까. 두 사람의 고민과 불안을 따라가다보면 어느 순간 '웃픈' 현실을 자각하게 될지도 모른다.
혜선은 오른손바닥을 펴 반쯤 녹은 아이스크림을 뱉어냈다. 그리고 침대에서 내려 부엌으로 달려가 손을 씻었다. 동규는 그렇게까지는 하지 않았다.
"휘발유 냄새 나지 않아?"
혜선이 물었고 동규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글쎄, 뭔가 다른데."
"우리가 이거 하루 이틀 먹는 거 아니잖아. 뭔가 이상해. 기름 냄새가 난다고."
혜선은 벌써 입을 헹구고 있다. 동규는 손에 들고 있던 나머지 반을 입에 넣었다.
"미쳤어?"
혜선이 소리쳤다. 동규는 아랑곳하지 않고 입을 오물거리며 정말로 기름 냄새가 나는 건지 다시 확인했다. 그는 아이스크림을 삼키지는 않고 싱크대에 뱉었다.
"정말 기름 냄새가 나는데."
"아니 어떻게 이럴 수가 있어?"
-<아이스크림> 중
김영하의 <아이스크림>은 한여름 더위에서 시작된다.
때는 '국제통화기금이 일종의 집달리가 되어 한국을 접수하고 있던 시절'로 흔히 말하는 IMF로 힘든 때였다. 동규와 혜선도 힘든 시기를 거치는 중이었다. 어린이집 교사였던 혜선은 원장과 관계가 좋지 않아 그만둔 뒤로 취업이 되지 않았다. 동규 혼자서 버는 돈은 크지 않았기 때문에 두 사람은 빠듯한 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렇다고 '구약성경책 크기 상자에 스물네 개 아이스크림이 들어있는 제품'인 '미츠'를 사먹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그들에게 '미츠'는 사소한 감동, 시대의 말로 바꾸자면 '소확행'을 느끼게 해주었다.
부부가 사는 80년대 중반에 지어진 스물한 평짜리 아파트는 종일 어두침침했다. 싱크대 타일의 틈새에는 그을음과 기름때로 더러웠고 폭이 좁은 베란다는 빨래를 널기 힘들었다. 부모님이 물려주신 구형 에어컨은 거세게 울부짖는 소리가 났다. 그래도 두 사람이 살기에는 부족함이 없었다. 어느 주말, 마트에서 돌아온 그들은 침대에 누워 텔레비전을 보다가 평소처럼 '미츠'를 먹었다. 그런데 '미츠'의 맛이 이상하다. 어떻게 된 걸까.
즐겨먹던 아이스크림에서 기름 냄새가 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소비자상담실에 전화를 걸까 지식인에 물어봐야 할까 인터넷 카페에 후기를 공유해야 할까.
아이스크림을 놓고 갈등하는 동규와 혜선.
동규가 소비자상담실로 전화를 하려고 하자 혜선이 정말 전화할 거냐며 놀랐다. 동규가 돈도 아깝고 피해가 커지기 전에 알려야 한다고 말하자 혜선은 보상을 받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했다. 대화를 주고받다가 두 사람은 자신들을 돈을 뜯어내는 나쁜 사람들로 의심하면 어떡하냐는 걱정까지 이르렀다. 마침내 동규는 080으로 시작하는 상담실에 전화를 걸었다.
"저희 제품 때문에 심려를 끼쳐드려 죄송합니다. 곧 저희 담당자가 댁을 방문해서 제품을 살펴보고 자세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번거로우시겠지만 주소와 전화번호를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담당자가 온다는 말에 혜선은 '집도 안 치웠다'는 걱정에, 동규는 '나머지 아이스크림이 멀쩡하면 무고죄가 될 수 있다'며 심각한 걱정에 빠졌다.
미츠는 스물네 개가 각기 독립된 포장으로 된 아이스크림이었다. 컨베이어 벨트를 따라 자동으로 재료가 배합되어 사각형의 틀에 부어지고 얼리고 굳힌 다음 포장을 하여 마지막에 종이박스에 집어넣을 것이었다. 동규의 집에 배달된 스물네 개 모두에서 기름 냄새가 날 가능성은 희박했다. 그렇다고 둘이 이미 먹은 두 개에서만 기름 냄새가 날 가능성도 적었다. 그들은 자동화된 아이스크림 제조 공정을 상상하고 있었다.
-<아이스크림> 중
둘의 불안감은 점점 증폭됐다. 그래서 하나만 더 먹어보기로 했다. 이번에는 기름 냄새가 나는지 안 나는지 확신이 들지 않았다. 혜선은 양치질을 하고 다시 먹어보았다. 그러다 '심오한 진리'라도 깨달은 것처럼 '분명히 냄새가 난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동규가 확신하냐고 묻자, 혜선은 '느낌이 그렇다'고 말을 바꿨다.
불안한 시대의 흐름 속에서 그들에게는 확신이라는 말은 꺼내기 힘든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다시 한번 미츠를 먹어본 뒤에야 그들은 기름 냄새가 난다는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
스물네 개의 아이스크림은 이제 스무 개가 남았다.
아이스크림 담당자는 앞머리가 벗어진 중년의 남자로 말끔한 양복을 차려입었고 검은색 서류가방을 두 개나 들고 있었다. 태도가 무척 정중했고 목소리나 태도에 무게가 있었다. 그는 자신을 '소비자상담실의 김성룡 부장'이라고 소개했다.
무더운 여름에 부장의 직위에 있는 사람이 좁고 낡은 아파트에 찾아오다니.
동규는 권위적인 대기업의 간부를 간단하게 굴복시킬 수 있는 소비자라는 존재가 대단하다는 생각을 했다.
담당자 김부장은 아이스크림을 천천히 살피다가 '미츠'를 입안에 넣고 맛을 보았다. 잘 모르겠는지 하나를 또 입안에 넣었다. 벌써 몇 개째인가. 김부장은 미츠를 계속 입에 넣었다.
김부장 앞의 식탁에는 비닐포장이 하나둘 쌓여갔다. 정확히 세보지는 않았지만 족히 여섯 개 이상은 먹어치운 것 같았다. 휘발유 냄새 나는 수상쩍은 아이스크림을 하나둘도 아니고 그렇게까지 삼킬 수 있다는 게 실로 놀라웠다. 그쯤 되자 김부장의 안색도 처음 집에 들어설 때에 비해 확실히 어두워져 있었다. 아니, 어두워졌다기보다 결연한 기세가 엿보인다고 해야 맞을 것이다. 미츠를 정말로 좋아하는 동규와 혜선이었지만 한꺼번에 세 개 이상 먹어본 적은 없었다. 이도 시렸고 생각보다 양이 많아서 금방 배가 더부룩해졌기 때문이었다. 다른 음식과 달리 아이스크림은 그렇게 한몫에 많이 집어넣을 수 없었다. 그런데 그들 눈앞의 김부장은 마치 필름을 빨리 돌리기라도 한 것처럼 순식간에 예닐곱 개의 미츠를 먹어치운 것이었다. '이제는 그만!' 이라고 동규와 햬선이 입을 모아 외치고 싶은 순간, 김부장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김영하 <아이스크림>
김부장은 미츠의 맛에 어떤 평가도 내리지 않았다. 대신 오른쪽에 놓인 서류가방에서 그 회사에서 만든 가장 값비싼 초콜릿 제품 두 박스를 꺼내서 동규와 혜선에게 건넸다. 회사 로고가 새겨있는 계산기 겸용 탁상시계도 식탁 위에 올려놓았다. 왼쪽에 놓은 서류가방에서는 고급 과자 선물세트를 꺼냈다. 그리고 김부장은 인사를 한 뒤 자신이 먹어치운 미츠의 빈 포장지와 뜯지 않은 미츠를 서류가방에 담고 아파트를 떠났다. 김부장이 사라진 뒤 동규와 혜선은 몹시 기뻐했다.
"미츠 값의 열 배는 되겠다."
"그러게 말야. 땡잡았네."
둘은 침대에 누워 제과회사의 소비자상담실에 모여 있는 중년의 남자들에 대해 상상했다. 말쑥한 양복을 입은 남자들은 소비자 피해 접수가 올 때마다 서류가방을 들고 소비자의 집을 방문해서 묵묵히 임무를 수행하는 것이다. 그런 상상 앞에서 개그 프로그램은 하나도 웃기지 않았다.
어느덧 해가 졌다. 둘은 밖으로 나와 상가에 있는 치킨집에서 치킨과 생맥주를 시켰다.
동규가 먼저 닭다리를 쭉 찢어 입에 물었다. 그리고 맥주를 먹었다. 혜선은 가슴살을 포크로 찢어 먹었다. 닭의 흰살이 드러났다. 털이 온통 뭉친 검은색 떠돌이 푸들 한 마리가 조금 떨어진 곳에서 처량한 표정으로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둘은 꾸역꾸역 닭고기와 맥주를 먹고 마셨다. 식욕이 전혀 없다고 생각했지만 그건 그들의 착각이었다. 그들은 계속 먹고 마셨다. 그야말로 꾸역꾸역이었다.
-<아이스크림> 중
삼천 원짜리 아이스크림을 두고 벌어지는 일들이 처음에는 유쾌하고 재미있게 흘러간다. 자신들의 판단에 확신이 들지 않는 동규와 혜선은 양치질까지 하고 아이스크림을 다시 먹어보고도 걱정을 하고 더운 여름에 양복을 입고 나타난 김부장의 캐릭터도 재미있다. 하지만 김부장이 기름이 들어있을지도 모를 ''수상쩍은 아이스크림'을 계속 입안에 넣는 장면부터 불편함이 찾아온다. 회사에서 어떤 지시를 내렸는지 알 수 없으나 기름이 들어있을지도 모를 아이스크림을 계속 먹는 김부장은 회사의 제품에 아무 이상도 없다는 증명서의 대체물처럼 보이기도 한다.
김부장이 아파트에 찾아왔을 때 동규가 느끼는 통쾌함이나 김부장에게 사과 인사와 함께 고급 초콜릿과 탁상시계와 고급 과자세트를 받고서 동규와 혜선 부부가 기뻐하는 모습은 공감을 불러일으킴과 동시에 웃프다. 만약 이런 일이 생긴다면 나도 이 부부와 비슷하게 행동할 것 같기 때문이다.
<아이스크림>은 겉으로는 아이스크림 때문에 벌어지는 에피소드를 그린 것처럼 보이지만, 조금만 더 들여다보면 인간으로 태어난 이상 먹고 사는 일에서 벗어날 수 없는 고통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특히 부부가 주말 벌어진 아이스크림 소동이 끝난 뒤 아파트 상가에서 닭고기와 맥주를 먹는 장면에서는 그 고통이 더 부각된다. 동규는 닭다리를 찢어서 입에 물고 혜선은 가슴살을 포크로 찢어 먹는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는 떠돌이 푸들 한마리가 처량한 표정으로 부부를 보고 있지만, 그들은 '꾸역꾸역' 먹고 마시느라 푸들에는 관심도 없다. 맛을 느낄 겨를도 없이 입안으로 넣어 삼키는 김부장이나, 식욕이 없다고 생각했는데도 '꾸역꾸역' 먹고 마시는 동규와 혜선의 모습은 떠돌이 푸들처럼 처량해 보인다.
'먹는 인간'으로서 태어난 순간부터 우리는 먹는 행위와 숙명적으로 연결될 수 밖에 없다. 다만 그 행위를 '꾸역꾸역' 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