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을 떠나 외국에 사는 한국 교포들의 가장 큰 어려움은 김치를 담가 먹는 일이다. 요새는 어디를 가도 한국 슈퍼들이 있기 때문에 한국 채소를 구하는 일이 그다지 어렵지 않지만, 예전 이민 1세대들은 배추를 구하지 못해 양배추로 김치를 담그고, 심지어는 양파나 당근을 절여 먹거나 현지 채소를 활용해 김치를 담가 먹었다. 누구는 몰래 한국 배추나 무 씨를 구해서 뒷 뜰에 재배해 김치를 담가 먹었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도 있다.
음식 입문 2개월 만에 총각김치, 겉절이, 섞박지, 오이소박이, 동치미를 섭렵한 나는 우연히 한인 슈퍼에서 돌산 갓김치를 판매하는 것을 보았다. 이민 온 지 1년이 막 지난 2000년 초 어느 날, 초대받았던 한 교포의 집에서 갓김치를 먹었던 기억이 났다. 밴쿠버에서 갓김치라니... LA 갈비나 다른 어떤 음식보다 보다 손이 많이 갔고, 맛있게 먹는 나의 모습에 주인 할머니는 집에 가서 먹으라고 갓김치를 따로 싸주셨다. 20여 년 전 갓김치의 맛과 추억이 떠올라, 갓김치를 담아 보기로 마음먹었다.
하지만, 채소코너를 아무리 자세히 훑어봐도 '갓'은 찾을 수가 없었다. 지인에게 확인해 보니, 이곳에서는 갓김치를 '갓'으로 담그지 않고, 가이초이로 담근다고 한다. 아무리 한국 채소가 흔해졌다고 해도 외국에서 돌산 '갓'과 같은 특별한 채소들은 구하기 어려울뿐더러, 그 가격 또한 만만치 않다. 이럴 때, 중국인의 채소들은 여러 면에서 활용도가 많은데, 그중에는 한국의 '갓'처럼 톡 쏘는 맛을 내는 머스타드류의 중국 채소인 가이초이 (芥菜, Gai Choy)가 있다. 모양은 한국의 갓과는 다르지만, 맛뿐 아니라 '가이'의 발음 또한 '갓'과 아주 유사하다.
중국 채소인 가이초이 (芥菜, Gai Choy)
가장 한국적인 김치 중 하나로 그동안 맛있게 먹었던 갓김치가 중국 채소로 담근 가이초이 김치였었다. 한인 슈퍼에서 한국의 포장 갓김치가 500g에 13,500원 정도에 판매되는 데 반해, 가이초이는 500g에 3,000원에 판매되고 있다.
(밴쿠버 한인 슈퍼에서 판매되고 있는 갓김치와 가이초이)
다시 한번 블로거들의 레시피와 교포들의 가이초이 김치 글들을 종합해, 기본 레시피를 완성했다. 토요일 아침, 가이초이를 사기 위해 중국 슈퍼 T&T로 향했다. 지인은 Small 가이초이를 구입해야 한다고 했지만, Large 가이초이 밖에 판매하지 않았다. 잎이 배추 잎만큼 크고 줄기는 너무 억세어 도무지 한국의 '갓' 느낌이 전혀 나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하나씩 잎을 떼내 절였고 시작도 하기 전에 실패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결국 절이는 시간은 레시피보다 2시간 더 소요되어, 3시간이 훨씬 넘게 소요됐다.
나중에서야 한인 슈퍼에서 Samll 가이초이를 판매하는 것을 알게 되었다. 등잔 밑이 어두웠다. 그렇게 자주 슈퍼를 다녔는데, 왜 내 눈에는 보이지 않았을까? 아내는 내가 보길 원하는 것만 보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이제 이 채소들이 눈에 들어오니 내가 음식에 관심이 있긴 있는 모양이다.
2. 물기가 살짝 뭍은 상태로 큰 대야에 쭉 펼쳐 넣은 후, 소금 1.5컵을 켜켜이 뿌려 쌓는다.
3. 줄기 부분에 집중해 소금을 뿌리고, 잎 부분에는 약간만 뿌린다.
4. 물 4컵을 골고루 뿌려준 후 1.5시간 동안 절인다. 중간중간 뒤적여 준다
5. 절여진 갓을 찬물에 2~3번 씻은 후, 20분간 물기를 빼 준다
양념장:
홍고추 8개, 마늘 12개, 생강(마늘 크기) 2개, 대파 흰 부분 2단, 무 1토막 (두께 3cm X 지름 6cm), 양파 1/3개, 사과 ½개, 설탕 1스푼, 매실청 1스푼, 소금 2스푼, 고춧가루 2.6컵
6. 물 3컵에 찹쌀가루 8스푼 넣고 잘 풀어, 끓어오르면 5~6분 저어주고 완전히 식힌 후,
7. 양념장에 쪽파 3단을 추가하여 버무린 후, 상온에서 2~3일 상온 보관
* 계량 수치 - 컵: 250ml, 스푼: 15ml
우여곡절 끝에 완성한 갓김치, 이번에도 간이나 맛을 확인하지 않고 마무리하였다. 물론 고춧가루 덕에, 향이나 색깔은 이번에도 참 좋아 보였다.상온 보관 4일 후, 재료에 문제가 있었고 레시피 또한 한국의 '갓'을 기본으로 조정된 것이라 약간 걱정은 됐지만, 계속되는 성공에 자신 있게 김치통을 열었다.
가이초이로 담근 갓김치
열자마자, 갓김치 특유의 톡 쏘는 향기와 잘 숙성된 색깔이 기대감을 높였다. 조금 떼어 맛을 보았다. 그런데 기대했던 맛이 아니다. 짜다!!! 지인들 집에 보내려고 담을 준비까지 해 놓았는데 어떻게 해야 되나? 잠시 고민했다. 이대로 보낼 수는 없고, 그럼 이 많은 김치를 다 어떻게 처리해야 하나... 처음 경험하는 실패, 실망, 좌절이었다.
급히 인터넷 검색으로 짠 김치 해결법을 찾아보았다. 다행히도 생무나 생배추를 적당히 썰어 김치 사이사이에 꼽아 며칠 숙성시키면 간단히 해결된다고 적혀 있다. 정성껏 무와 양배추를 갓김치 사이사이에 잘 꽂아 다시 5일을 더 숙성시켰다. 혹시 짠맛이 해결되지 않았으면, 훨씬 더 많아진 김치를 다 어떻게 하나? 걱정 속에 김치통을 열고 맛을 보았다. 짠맛은 사라지고 잘 익은 갓김치와 묘한 매력의 무김치가 완성되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지인들은 그저 나의 갓김치의 모습과 맛에 감동할 뿐이다. 다음엔 꼭 Small 가이초이를 가지고 다시 한번 갓김치를 담가 보려고 한다. 나에겐 가이초이가 그 어떤 한국채소 보다 더 한국인의 채소로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