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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옥승철 Feb 24. 2023

환경을 위해 프린트도 안하는 덴마크 친구들 9-6

시험 준비를 하려고 프린트를 하다가 혼나다

몸이 점점 더 안좋아지고 있었다. 기침이 잦아졌고 몸이 힘이 하나도 없었다. 조금 쉬면 낫겠지라는 생각으로 학기말 시험 공부를 준비했다. 학교 식당에서 나는 밥보다는 뜨거운 옥수수 죽을 먹었다. 몸이 따뜻해지고 무리가 가지 않았다. 지금도 가끔씩 몸이 안좋아지면 학교 식당에서 먹었던 그 옥수수 죽이 그리워지곤 한다. 그래서 요즘도 가끔식 한국에 그러한 음식이 있는지 찾아보기도 했다. 컨디션이 좋지 않은 것을 눈치챈 동기들이 나에게 따듯한 물과 차를 끌여주고 약도 가져다주었다. 아직은 별거 아니라는 생각에 몸이 좋지 않지만 공부에 집중했다.


나는 처음 보는 시험이라 시험 준비를 열심히 하려고 생각하고 있었다. 시험을 보기 위해서는 일단 시험자료를 프린트로 뽑아야 했다. 그리고 밑줄을 치면서 공부를 해야했다. 그게 내가 공부하는 방식이고 아마 전세계에 가장 보편적인 방법일 것이다.


수업에서 종이를 사용하지 않는 덴마크 학생들


영국 옥스퍼드 석사 공부를 하면서도 그랬지만 나는 종이로밖에 공부를 못하는 성격이었다. 즉 PDF 파일을 열어 놓고 노트북 모니터로 공부하는 것을 좋아하지도 않았고 눈도 매우 아팠다. 그래서 영국의 기숙사 내 방 안에는 항상 프린터와 충전용 잉크가 가득 있었다. 그리고 수업을 들을 때마다, 시험 준비를 할 때마다 몇십몇백장씩 출력을 하는 것이 예사였다.


이번 덴마크 학교의 첫 수업 때도 나는 수업 준비를 위해 일명 복삿집을 찾기 시작했다. 학교 근처에 아주 저렴한 복삿집이 있었고 파일이 들어있는 USB만 가게에 넘겨주면 알아서 제본까지 해준다고 하였다. 이번 수업의 모든 내용물을 출력한다면 800장 정도의 책이 나오고 가격은 1만5000원 정도였다. 나는 이보다 저렴할 수는 없다며 당장 덴마크 친구들에게 가서 이정도 가격밖에 안 나오니 같이 제본을 해서 시험공부를 하자고 말하였다.


나는 당연히 그 친구들이 좋아할 줄 알았다. 하지만 덴마크 친구들의 표정이 어두워지며 그러면 종이가 낭비되고 환경을 해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자신들은 불편하지만 컴퓨터로 보겠다는 것이었다.


나는 그들의 대답이 신선하고도 놀라웠다. 도대체 이게 몇번째 놀라움인지.... 그들과 나는 다른 세계에 사는 사람들인가 싶었다... 내가 이세계에 온 것인가...


생각해보니 수업 중에 종이로 프린트해온 사람은 한 명도 없었고 수업이 끝나고 자습을 할 때도 컴퓨터 모니터로만 공부하는 그들이었다. 뭔가 눈치없이 나와 중국 친구들만 프린트를 하고 있었다. 물론 인쇄를 한다고해서 그게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개인의 가치관이기 때문이니까. 하지만 나는 평소 환경 보호를 외치면서 정작 시험을 위해 수백장씩 프린트를 하니 내 스스로 모순이라고 느껴졌다.


덴마크 친구들도 분명 노트북 스크린을 보는 것이 눈이 아플 것이다. 하지만 자신의 불편함보다 환경을 먼저 생각하는 것과 항상 실천에 옮기는 모습이 오늘따라 유달리 그들과 내가 달라 보였고 부끄러웠다. 그래서 나도 눈이 아프지만 모니터로 공부를 하는 연습을 했다. 눈이 빠질것 같고 시험 공부가 잘 안됬지만 꾹 참고 보았다. 이러한 행동은 내 평소의 태도까지 바꾸어 놓았다. 종이책을 사 모으는 게 취미였는데 이제는 웬만하면 전자책을 사서 읽게 되었다. 하지만 아직까지 공부를 스크린으로 하고 책을 이북으로 보는 것은 적응이 안된다.


우리나라를 포함한 대부분 나라는, 아마 생각건대 북유럽을 제외하고 프린트를 선호할 것이다. 옥스포드에서도 프린트를 쓰는 모습을 많이 봐왔고 한국에서 석사를 했을 때도 마찬가지였으니까.


생각해보니 덴마크 동기들은 등산을 할 때도 나무와 풀과 벌레들이 다치지 않도록 신경쓰면서 걸었다. 환경에 관한 관심이 몸과 마음에 체화된 사람들은 유럽에서도 그들 뿐이었다.


덴마크는 누구나 다 아는 환경강국이다. 덴마크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는 자연의 아름다움과 깨끗함이다. 덴마크의 다음 목표는 2050년까지 석유 및 석탄을 이용한 화력발전의 완전한 폐지이다. 굴뚝에서 조그마한 연기조차 내뿜지 않겠다는 것이다. 덴마크는 현재 신재생에너지 기술을 중국에 수출하는 환경 기술 강국이기도 하다.


덴마크 친구들에게서도 보듯이 덴마크인들의 환경에 대한 가장 큰 특징은 ‘행동으로 실천하는 환경보호’이다. 덴마크 직장인들은 자동차의 배기가스가 오염을 일으킬까 출퇴근 인원의 36%가 자전거를 이용한다고 한다. 그럼 이러한 행동으로 실천하는 환경보호는 어떻게 그들의 DNA에 각인된 것인가? 나중에 물어보니 그들은 어렸을 때부터 환경 보호에 대한 공부 뿐만 아니라 행위를 가르치는 것에 중점을 둔다고 한다. 항상 종이를 아끼고 환경에 대한 보호를 학교에서 가르치고 선생님과 부모들이 솔선수범하면서 자녀들에게도 환경보호의 가치와 태도가 자연스럽게 체화되는 것이었다.


환경이란 이제 좌우의 정치적 이념이 아니다. 예전같으면 환경보호를 외치는 단체는 진보단체였지만 지금은 환경을 지키는 것은 인류의 보편적 가치가 되었다. 환경을 보호하지 못하면 우리는 멸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인류의 생존과도 연관이 있기 때문에 환경에 이제는 정치적 이념이 들어가서는 안되며 표를 위한 정치적 도구가 되어서는 안된다. 우리는 깨끗하고 잘 보전된 자연을 우리 후손과 미래세대에게 넘겨 줄 책임이 있다. 삭막한 도시의 아스팔트가 아닌 깨끗한 물과 시원한 바람 그리고 나무를 남겨주어야 한다. 아스팔트가 아니라 깨끗하고 건강한 땅 위에서 우리 아이들을 뛰어 놀게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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