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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쉼표 Mar 03. 2023

강릉에 없는 것 대신 있는 것



딱 백일이다. 여름과 겨울, 강릉에서 산 날을 합치니 딱 백일이다. 연인 사이에도 백일은 만남을 기념하기 좋은 날이다. 동시에 딱 백일이 지나면 서로 간 갈등이 불거지기도 한다. 백일의 위기는 연애 시절에 자주 듣던 우스갯소리다. 그런데 나와 강릉의 관계는 그렇지 않다.


나는 지난 여름의 강릉보다 이번 겨울의 강릉이 더 좋았다. 그다음도, 또 그다음도 계속 좋을 것 같다. 터벅터벅 바다를 향해 걷다가 목을 쭉 빼면, 넘실대는 바다와 소나무가 내 안으로 가득 들어왔다. 그 모든 것을 담기 위해, 나는 매번 숨을 크게 들이켰다. 공기 한 줌도 소중한 그런 날들이었다. 나는 회복이 필요할 때마다 이 시공간을 상상할 것이다. 아마도 꽤 오래.


하지만 모두에게 강릉이 이렇지는 않다. "강릉에 연고 없는 분들, 괜찮으신가요?" 강릉과 관련된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심심찮게 보는 질문이다. 보통 직장이나 가족 상황 등의 이유로 어쩔 수 없이 타지에서 강릉으로 이주해야 하는 사람들의 것이다. 어린 아기라도 있다면 그 걱정은 더욱 거세진다. 어린 아기와 함께하다 보면 아무리 다 갖춰진 도시 한복판에 있어도 외딴 섬에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날들이 분명 있다. 그런 시간을 낯선 도시에서 보내야 하는 사람들에게 강릉은 나의 강릉과는 아주 다를 것이다.


보통 이런 질문과 답은 '강릉에 없는 것'에 집중한다. 대도시와 비교하여 무엇이 없고, 무엇이 힘들고 괴로운지 나열한다. 강릉이 좋다는데 무엇이 좋은지 모르겠다는 댓글도 많다. 그럴 수 있다. 대도시에서 누리던 그것들이 내 삶의 중심이라면 강릉은 애초에 틀린 도시가 된다.


하지만 강릉은 그 많은 것이 없는 대신, 다른 많은 것이 있다. 강릉의 자연은 당연히 빼놓을 수 없는 것 중 하나다. 가까운 거리에 바다와 소나무, 크고 작은 숲, 호수가 있다. 언제라도 마음만 먹으면 기댈 자연이 바로 옆에 있다는 것은 삶을 살아낼수록 큰 복처럼 느껴진다. 강릉에서 위아래로 조금만 나서면 쏟아지는 자연은 덤이다. 여름살이를 마친 가을날, 원래 살던 도시에서 나는 자주 바다와 소나무를 떠올렸다. 마음이 힘들어 훌쩍 나서도 기댈 곳이 없었다. 어딜 가도 시끄럽고 분주했다. 도무지 나를 마주할 장소가 없었다. 도시마다 인공적으로 만든 공원들이 있지만, 그 안에서 마음이 편해지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도시 속에 박제된 그 기분은 영 달갑지 않았다. 강릉의 솔밭길이 나를 안아주는 울타리 같았다면 도시의 공원은 마치 동물원의 울타리 같았다. 자연스러운 자연과 위로는 강릉에만 있었다.


강릉에는 각각의 색이 분명한, 다양한 문화 공간도 생각보다 많다. 처음에 왔을 때 놀랐던 부분이다. 마음만 먹으면 다양한 형태의 독립책방이나 갤러리, 편집숍을 찾아갈 수 있다. 대도시의 거대하고 뻔한 콘텐츠 대신 각자의 시선으로 구성된 다양하고 새로운 세계가 강릉 여기저기에 놓여 있다. 바다가 보이는 카페에 갔다가 이 책이 여기 있다고? 놀라기도 하고 단정하게 놓인 책에 마음이 다급해질 때도 있다. 특정 책을 보도록 강요하는 대형 서점에서 혼자 허리 굽히며 다른 책을 찾는 일을, 여기서는 하지 않아도 된다. 주인의 생각과 고민으로 촘촘히 채워진 갤러리를 보며 혼자 마음이 아릴 때도 있다. 어떤 날은 따뜻한 공간에서 전통채색을 경험하며 스스로 색을 내기도 한다. 또 동네 어르신들이 앉아서 쉬는 골목을 걷다 보면, 그곳과 잘 어울리는 작은 카페들을 만날 수도 있다. 거기에는 어디선가 뚝 떼어 온 평온들이 가만히 앉아 있다. 강릉은 조금만 움직여도 각기 다른 세계가 이렇게 곳곳에 있다. 대도시는 대체로 일관된 방향을 만들어 내고 그 취향에 합류하기를 권한다. 그래서 조금 비껴 선 생각을 만나기 위해서는 많은 수고로움을 견뎌야 한다. 가는 길도 분주하고 고되다. 또 그런 곳들은 자주 생겼다가 금세 사라진다. 그래서 피로하고 서글프다.


물론 강릉의 이러한 면면은 '마음을 먹어야' 누릴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또다시 말하면 '마음만 먹으면' 누릴 수 있는 것이기도 하다. 대도시에서 이것을 누리기 위해 들여야 하는 품에 비하면 강릉은 어느 일상 속 한순간으로 아주 충분하다. 게다가 그 일상의 순간으로부터 내 삶이 위로를 받는다. 더더욱 충분하다.


살아가는 데 필요한 것이 많지만 덜어낼 것도 많다. 우리는 강릉에서 사는 백일 동안 무엇을 덜어낼지 알아갔다. 내가 탐하는 많은 것들이 얼마나 하찮은 것인지, 생각지도 못한 것으로부터 내가 얼마나 가득 채워질 수 있는지도 깨달았다. 강릉에는 없는 것보다 있는 것이 더 많다. 양적으로는 몰라도 질적으로는 그렇다. 적어도 나에게는 말이다.



(2023.3.2. 강원도민일보 기고 글. 본인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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