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의 시선과 마음으로 엮인 동화집인 <우리 여기에 있어!>는 창비아동문고 300권 기념으로 나온 책이다. 10명의 동화작가들이 동물에 관한 단편동화를 썼고 그 이야기가 차곡차곡 모여 있다.
내가 본래 여린 것들에 대해 어떤 마음을 가진 사람이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그러나 언젠가부터 여린 것, 소수자, 약자에 대한 생각들이 늘 나를 에워싸곤 했다. 이 책도 그래서 좋았다.
솔직히 첫 두 편은 동화 서사 자체가 그리 흥미롭거나 새롭지 않아 시큰둥했다. 그러다 세 번째 동화인 “탈출 돼지와 덤”부터 마음이 동하기 시작했다. 이어진 작품들도 다 그랬다. 이 책은 도시를 떠돌아다니는 고양이와 개, 쥐 그리고 생포 위기에 처한 돼지, 먹잇감으로 길러지는 생명과 무자비한 도살이 난무하는 공간이 나온다. 버려진 반려동물과 실험에 이용당한 동물들도 있다. 이 동물들의 목소리를 통해 사람이라는 존재는 무엇인지, 동물의 권리나 동물의 시간들에 대해 우리는 어떻게 생각해왔는지, 거꾸로 그들이 주인이 된 세상에서 사람은 어떻게 그려질 것인지, 이 동화는 동화답게 이야기를 풀어간다.
어른인 나에게도 그렇지만 아이들에게도 많은 깨달음을 줄 것 같다. 실제로 책을 읽은 아이가 사람들이 왜 그렇게 동물들을 가혹하게 대하는 건지 모르겠다고 화를 내고, 동물들에게 인간은 두 발 달린 기괴한 생명체일 뿐이라는 이야기를 했다. 모든 사람들이 저마다 사정이 있고 저마다 귀한 것처럼 동물들도 그럴 수 있다는 것을 여러 맥락에서 생각해보기 좋은 책이다.
코로나라는 새로운 바이러스 앞에서 인간이 얼마나 나약한 존재인지, 기후 위기 앞에서 자연과 인간이 어떤 관계를 맺어야 하는지 이제는 좀 알아야 하는데 우리는 아직 많이 모른다. 혹은 모른 체한다. 사람이 모든 것의 주인이 아니라는 것. 동물은 여전히 여기에 있다는 것. 이제는 알아야 할 때가 아닐까.
다행히 책 속 사람들은 반성한다. 육식을, 생포를, 외면을, 작은 생명을 우습게 여긴 것을 반성한다. 현실 속 우리는 어떨까. 어디쯤 왔을까.
기억에 남는 부분을 올리며 마무리한다. 이렇게 조각난 글로는 다 설명할 수 없게 좋은 부분이 참 많았다. 빌린 책을 반납하며 다시 이 책을 구매했다.
수수는 빗물받이 창살 밖을 올려다보았다. 조금 더 있으면 검은 하늘이 흐려지고 군청색으로 변하겠지. 수수는 궁금했다. 새벽을 불러내는 건 무얼까. 쥐들이 밤을 갉아 내어 새벽이 오는 걸까. 고양이들이 밤을 휘저어 새벽이 오는 걸까. 새알들이 깨어날 꿈을 꾸면 새벽이 오는 걸까. 알 수 없었지만, 몰라도 괜찮았다.
수수의 마음에서 기쁨이 거품처럼 끓어올랐다.
수수는 알았다.
'우린 여기에 있어.‘
수수가, 보니가, 세상의 무수한 것들이 바로 여기에 있었다. (84-85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