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르겠다. 내가 어느 채널에서건 글쓰기를 즐기는 것만 보아도 나는 나를 드러내는 데에 익숙한 사람이다. 문예창작과에서 글을 배우기 시작한 게 열일곱이고 첫 일 년은 거진 나를 드러내야 하는 이유와 방법을 익히는 데 쓴 것 같다.
모든 글은 자기 고백에서 시작한다는 말을 그때 곧바로 이해할 리 없다. 그래서 그 간결하고 지독한 가르침을 위해 나는 끊임없이 자기를 직면하고 치부를 드러내고 자기를 고백하라는 메시지를 전달받았다. 별일 없이 살던 내게 그런 주문은, 지나고 보니 어떤 면에서는 폭력적이었다. 말할 게 없는데 자꾸 말하라니 나를 불행으로 내모는 기분이었다.
물론 지금은 조금 다르다. 어쨌거나 저쨌거나 나는 그러한 배움 속에서 나를 들여다보고 나를 직면하고 나를 고백하며 스스로의 길을 만들어가는 시간을 살게 되었다. 그러니까 그 나이 나에게는 다소 힘든 일이었지만 결국 삶의 방향이라는 것은 이게 맞다고 생각한다.
또 생각해 보면 나는 외로움을 잘 타서 혼자 무언가를 곱씹기보다 누군가와 공유하며 마음을 달래는 날도 많았다. 그런데 그게 다수일 때는 좀 피곤하고 딱 마음 맞는 소수에게만 그렇다. 그러다 보니 그 소수에 대한 의존도도 높다. 내가 결혼을 빨리 하고 싶었던 이유나 여전히 남편이 내 가장 편한 친구인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하지만 어느 관계에서는 나를 드러내는 행위, 나를 고백하고 내 고민을 나누는 행위가 내 약점을 드러내는 행위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이제야 종종 한다. 말은 많이 할수록 안 좋은 것이지만 나는 내 입으로 나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이니 내가 책임지면 될 것이었다. 그런데 또 문득 알게 모르게 자기 약점을 꽁꽁 숨기고 있는 지인들을 보다 보면, 뭘 저렇게까지 감추나 싶다가도 저게 맞는 건가 싶으면서 또 굳이 그렇다면 나는 왜 나를 드러내야 하는가 하는 회의감도 든다. 인생사 모든 게 주고받음의 연속인데, 한참의 시간이 지나고 나면 결국 나만 힘들고 나만 괴로워 보여서 갸우뚱할 때가 많다. 사실 잠깐만 봐도 그게 아닌데 말이다.
관계라는 것은 균형에서 온다,고 생각한다. 단언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내게는 그렇다. 대화의 결이나 이야기의 깊이, 마음씀의 정도. 물론 상대적인 것이지만 절대적으로 느낄 수 있는 영역이기도 하지. 나는 요즘 문득 균형이 맞지 않는 관계에 대해 생각한다. 그럼 나는 말수가 줄겠지. 그 뒤는 그냥 두련다. 이 나이 먹고도 끊임없이 관계에 속박되어야 해서 괴롭지만. 이보다 분주한 일들이 많으므로 그냥 이 글로써 마음을 갈무리한다. 뭐 아무렴. 어찌 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