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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달 Mar 09. 2021

긴가민가

긴가민가. 그런지 그렇지 않은지 분명하지 않은 모양을 일컫는 말.

    

인간은 삶을 살아내는 과정에 수많은 선택의 기로를 맞이한다.

순간의 결정이 그 사람의 인생을 좌우할 만큼 중요한 선택의 시점도 있다. 하지만 우리의 일상에는 이러나저러나 별스러울 것이 없는 선택의 순간이 즐비하다. 식당에서 먹고 싶은 음식을 주문할 때에도, 편의점에서 음료수 하나를 고를 때에도 우리는 매번 결정의 순간에 놓이게 된다.      


이렇듯 사소한 결정 하나에도 많은 고민을 하는 이들. 결정 장애자. 나 역시 그중에 한 사람이다. 또한 순(식)간의 결정으로 실패라는 허울을 뒤집어쓸 때도 있다. 거기에 좌절이라는 옵션까지 더해질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실패 중에 대부분은 훗날 기억도 나지 않는다. 사실이 그렇다 해도 그 순간이 아픈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 순간을 이유 삼아 죽는 경우는 있어도 그 순간에 죽는 일은 없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내가 무엇을 잘하는지가 긴가민가한 이들. 그런 이들이 긴가민가한 것은 지금 당장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잘 모른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 중 많은 수는 살아오면서 스스로 결정 지어본 것이 별로 없다는 것이다. 내가 그랬다. 그런 이들에게 특별히 권장하는 놀이. 긴가민가.


함께 하는 동무들이 다 함께 머리를 맞대고, 앞선 친구의 실패를 거울 삼아 한 칸 한 칸 전진하며 더한 실패를 맞기도 하지만, 결국에는 성공으로 이르는 놀이. 맘껏 결정해 보고, 맘껏 실패해 보고, 맘껏 웃어 볼 수 있는 놀이. 이것이야 말로 진정한 협동놀이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긴가민가 놀이 방법     

① 바닥에 가로 4칸, 세로 4칸. 총 16칸의 패턴을 바둑판 모양으로 만든다. (가정에서는 비슷한 크기의 책을  거실 바닥에 놓고 해도 좋다)

긴가민가 놀이판 예시

③ 판정자(팀)은 16칸의 설계도를 종이에 그린다.(출발점과 도착점은 사전 약속으로 지정하고, 대각선으로  이동은 허용하지 않으며 전후좌우로만 진행 가능하고, 한번 갔던 곳은 가지 않는 것을 전제로 하여 설계도를 그린다).

④ 도전자(팀)는 출발선에 서고 판정자(팀)의 출발 신호와 함께 전진한다.

⑤ 판정자(팀)는 도전자(팀)의 선택이 맞을 경우 ‘통과’를, 잘못된 선택 시 ‘삐~’를 외친다.

⑥ 잘못된 선택으로 ‘삐~’ 소리를 들을 경우 도전자는 처음부터 재도전한다(팀으로 시행 시 도전에 실패한 이는 도전팀의 맨 뒷줄로 가고, 다음 순서의 도전자가 재도전).

⑦ 설계도와 일치하게 경로를 통과 시 긴가민가 성공.

※ 도전자(팀)를 두 편으로 나눈 후 도전의 기회를 주고받는 경쟁 놀이로 구성 가능. 대각선 진행을 허용하거나 도착점 미 지정 등으로 난이도 상향 가능.            


긴가민가 놀이는 메모리 게임과 같이 실패를 하더라도 재도전이 가능하며 재도전시 이전의 과정을 기억하여 성공으로 나아가는 방식이다. 다시 말해 진행하는 전 과정에 대한 집중이 필요하며 머리를 써야 하는 놀이다.  하지만 긴가민가가 모든 아이들에게 공명정대하고 즐겁기 만한 놀이는 아니다.



한 여름날의 어느 운동장. 널따란 그늘 아래 긴가민가로 한참을 깔깔대던 아이들과 나. 긴가민가만으로 놀 시간이 다했다. 다음을 기약하고 운동장을 가로지르는 내 뒤를 쫓아오는 한 아이. 녀석의 기척에 뒤돌아선 나와 눈이 마주친 그 아이. 녀석은 한참을 우물쭈물거리기만 한다. 그렇게 내 눈치를 바라보던 녀석의 눈가에 눈물이 비친다.     


“선생님. 긴가민가 담에 또 해요? 그거 안 하면 안 돼요?”     


도전팀의 맨 뒤에 서 있던 아이. 자신의 순서가 다가올수록 심장이 벌렁거렸고 자신의 순서가 되자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고 한다. 드디어 출발점에 선 아이. 머릿속은 하얗게 물들었고 오직 동무들의 외침 소리와 손가락질에 의지하며 한발 한 발을 내딛는다. 그리고 듣게 된 ‘삐~~~’ 소리. 동무들이 알려준 대로 했지만 실패한 자신을 동무들이 비난하는 것 같았다고 한다. 아이의 말을 듣던 내 머릿속에서 “삐~~~‘ 소리가 울렸다.     


놀이판에서 다투는 아이들 사이에 선 어른. 어른은 그들의 잘잘못을 가려 한편에는 사과 하기를, 또 다른 한편에는 사과를 받아들이기를 주문한다. ’ 미안해 ‘와 ’ 괜찮아 ‘는 그렇게 세트를 이루며 놀이의 단절을 막는 방편으로 쓰이기도 한다. 협동놀이 역시 설익은 사과를 주고받는 것처럼 우러나지 않는 협동을 강요하거나 심지어 협동이라는 미명 하에 누군가에게는 상처를 주기도 한다. 그때의 긴가민가가 그랬다.     



그래서 긴가민가를 안 하냐고? 한다. 아주 많이 한다.


한 모둠의 아이들을 만나고 얼마 되지 않는 적당한 시점에서 긴가민가는 요긴한 놀이다.

놀이의 기본적인 규칙만을 알려준 후 협동의 의미나 협동의 방법들은 구구절절 이야기하지 않는다. 대신 놀이를 대하는 아이들의 표정을 세세히 살핀다. 그 속에서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삐~~‘ 소리에도 마냥 즐거워하는 아이. 자신의 순서 내내 타인의 손짓과 목소리에만 의지한 채 발길을 내딛는 아이, 한 발짝도 내딛지 못하는 아이 등등. 긴가민가는 그런 아이들을 알아보는 숨은 그림 찾기 같은 놀이다.     


잘 노는 아이들은 동기부여 같은 특별한 이유가 없어도, 그 곁에 ’놀이하는 어른‘이 없어도 잘 논다. 그렇지 못한 아이들. 동기부여가 필요하고 그것을 위한 지지와 격려를 더해 줄 어른들이 필요한 아이들. 그런 아이들을 발견하고 그런 아이들을 위한 방법을 고민하기 딱 좋은 놀이. 그것이 바로 긴가민가다.

<긴가민가> 궁금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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