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자
"용병 출신이라며?"
라고 말하고는 누군가 내 앞으로 예고 없이 불쑥 엉덩이를 들이밀었다.
관리부장이었다. 이스마가 자리에서 일어나 부서로 돌아갔다. 업무 시간이었지만 중요치 않았다. 머리에 찬바람도 좀 넣고 연애도 하면서 일해야지...... 그런 내게 불쑥 반말을 하며 들어온 관리부장...... 황당하고도 공허한 미소를 날렸다. 공식적인 첫 만남이었다.
"용병 아닙니다"
"용병의 정의가 뭔데?"
그가 오만하게 물으며 권위적인 눈짓으로 나를 노려보았고 나는 미소로 답해줬다. 시답잖은 기싸움을 하며 관리부를 위해 일해줄 사람이 필요하다는 언질을 주면서 협력업체의 어떤 박사와 나를 비교했다. 나는 토목 쪽 일이 마음에 든다고 말하고 필요하다면 다른 외인부대 출신을 소개해 주겠다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내일 6시에 사무실로 와!"
6시에 사무실에서 나오면서 그는,
"지금 회의 들어가야 하니까 조금만 기다려!"
"저는 운동 가야 해서 이만 가보겠습니다."
테스트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 현장의 서열 3위의 막강한 권력자라고 소문이 자자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잔머리 굴릴 필요 없이 필요한 말을 하면 될 것을... 가만 생각하니 관리부의 일도 재미있겠다 싶어서 캠프 관리뿐만 아니라 토목 현장 관리도 같이하게 된다면 관리부에 일할 수 있다는 조건부 제시를 이 차장에게 했다. 관리부장이 오후에 사무실로 나를 불렀다.
그는 한동안 아무 말 없이 나를 노려보았다. 권위적이었다. 아, 미치겠네!
제법 긴 시간이 흘러 내가 눈을 내려 깔자 대화가 시작되었다.
3개월 동안 자신의 미션을 잘 수행해주면 정직원은 힘들지만 어디서든 먹고살게 해 주겠다. 지금 당장 급여는 맞춰줄 수 없지만 3개월 후엔 요구조건을 들어주겠다. 내 태도와 품행에 문제가 있으니 고쳐라면서 하청업체의 어느 박사와 나를 비교했다. 내가 고졸 출신임에도 자기가 호의를 베푼다는 것을 알아 달라는 것인가?
그의 권위적인 행동으로 보아 분명 나를 잡고 휘어잡을 게 분명했다. 나는 섬세하고 끈질기게 머리 쓰는 업무를 못했다. 그는 캠프 관리를 내게 맡기려고 했다. 박 과장이 미리 귀띔해줘서 알고 있었다. 벌써 네 명이 교체되고 온갖 잡일로 휴식을 중요시하는 내겐 어울리지 않는 포지션이고 내게 어울리지 않는다는 충고를 들었다. 무엇보다 권위주의 체제에 들어가는 게 싫었고 요구조건은 3개월 이후에 몰려 있었으므로 이런 시험에 들고 싶지 않았다.
"제가 할 일이 아닌 것 같습니다. 그만 일어나겠습니다"
"얘기도 안 끝났는데 일어서?"
"제가 좀 도도합니다"
식당에서 삼성 직원들 회식 파티가 있었다. 관리부의 과장이 찾으러 와 가보니 관리부장이 이발을 해서 깔끔한 모습이라 귀여워서 웃었다. 그는 또 내일 다시 사무실로 나를 불렀다.
“진지하게 생각해 봤어. 네 도움이 필요해.”
진지하게 예를 갖춘 그의 태도가 의아하게 다가왔다. 삼성의 조직력이 다른 사람을 충분히 구할 수 있을 것임에도 내게 이런 관심을 보이는 이유가 궁금했다. 주변의 사람들도 관리부장이 그렇게 내게 눈독 들이는 이유를 궁금해했다. 현장에서 고작 그런 일들을 처리했다고 해서 관리 쪽에 내가 해야 할 일이 있을지도 궁금했고, 캠프 관리 같이 틀 안에 갇힌 업무는 쉬워 보여도 행동에 제약을 받는 일은 발목을 잡을 게 분명했다. 부장이 과장에게 업무를 가르쳐 주라고 지시를 내렸다.
나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사무실을 나갔다.
소장이 급하게 의무실로 호출했다. 의무실 의사는 항상 미소를 잃지 않고 정성으로 사람들을 대하는 독실한 신앙인이었다. 나도 식중독과 두통 때문에 만난 적이 있었고 환자 진단을 위해 동행해서 여러 번 만났음에도 변하지 않는 일관성이 마음을 편하게 했다. 그는 자신의 언행을 명예롭게 헌신한다는 의미로, 자주 코란의 내용을 언급하고는 ‘비스밀라’(알라의 이름으로), ‘알 함두릴라’(신께 찬미합니다), ‘인샬라’(신의 뜻대로)를 입에 달고 살았다.
현장에서 내려온 환자는, 다리의 뼈가 보일 정도로 깊은 상처를 입고 피를 흘렸다. 의사가 침상에 누운 환자를 심각하게 살펴보고 응급조치를 시작하자 한국인 인부가 고통스러운 신음 소리를 냈다.
“마쑤드, 이 사람은 큰 병원으로 보내야 해. 응급차를 불렀으니 동행해서 응급 수술하고 입원시켜야 해. 전화해놨으니 동행해 쥐. 네가 있어서 다행이야. 다른 한국인들은 통역 없이 혼자 와서 치료받고 가는데 넌 항상 환자와 동행해.”
소장이 곤란한 표정을 지으며 머리를 감쌌다. 누워 있는 환자에게 공상처리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산재처리를 해야 하는 거 아니냐고 되묻자, 모르면 가만있으라고 나무랐다. 응급차에 환자를 싣고 시내 큰 병원으로 가서 수술 절차를 밟고 곧장 수술에 들어갔다. 한 참 후에 다리에 깁스를 한 환자를 데리고 입원절차를 마치고 저녁에 오겠다는 메모를 침상에 놔두었다. 마취에 취해 잠들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자고 일어나면 낯 선 환경에 대한 두려움을 내일 찾아오겠다는 편지가 위안을 줄지도 모를 일이었다.
사무실 캠프 휴게소에서 만난 관리부장은 저녁에 다시 나를 불렀다. 그의 부탁이 간절했다. 아마도 삼성과는 직접 계약이 어려운 모양이었다. 그렇다면 확실한 업무를 보장할 수 있는 조건을 제시하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막연하게 자신감이 없었다. 아무래도 휘어잡을 것이 두려운 것 같았다. 업무로 잡히면 끽소리 못하고 무능해질지도 모를 일이 두려운 것이었다. 그의 요청에 생각해보겠다고 답하고 시내 병원으로 향했다.
모기가 날아다니는 위생적으로도 못마땅한 병실에 간병인도 없이 혼자 적적 했을 텐데 혼자 찾아가자 반색을 했다. 안면은 많았지만 한 번도 교류가 없던 사람이었다. 1개월 동안 입원에 3개월 동안 작업을 할 수 없다는 진단이 떨어졌다. 회사에서는 삼성 캠프 의무실에 입원하는 걸로 가닥을 잡고 있었다. 그리고 한국으로 귀국시키는 쪽으로 정한 모양이었다.
병원 관계자들은 불친절한 것을 넘어 인종차별적인 언행을 일삼았다. 파리에서도 일상적으로 볼 수 있는, 이슬람을 욕보이는 이슬람 젊은이들의 전형적인 비하와 차별을 알제리 본토에서 경험한다는 것은 슬픈 일이었다. 원체 일상화된 현상이라, 좋은 사람을 만나면 오히려 고마울 지경일 정도로 화가 치밀었다. 그들의 언행에 비친 아시아인 비하는 대게, 중국인으로 착각하는 데서 비롯된 것이었고 나처럼 언어가 되는 데다 화까지 내는 사람을 보지 못했기 때문에, 얼굴을 붉히고 외인 부대식 욕을 하면 벌벌 떨었다.
“바보 천치 같은 새끼! 너 같은 놈이 무슬림이란 건 전체 무슬림에 대한 수치야! 아시아엔 언어와 문화가 다른 수많은 나라가 있어! 너 같은 놈은 단 한마디 말로 내 국가와 문화를 바꿔버리는 양아치야! 썅 간나 새끼!”
내 분노는, 상대가 젊을수록 너무 많았고 눈빛과 단순한 제스처 하나만으로도 금방 구분할 수 있었기 때문에 피곤하기만 할 뿐, 회사 차원의 전반적인 홍보와 한국 문화 알리기는, 모스크와 방송을 통한 홍보가 필수 불가결한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그러한 그들의 비하 발언과 제스처, 의도를 알지 못하는 한국인들이 당할 모욕은 눈에 선했지만 개인의 화병으로 그칠 뿐이었다.
특히, 현지 여자들이 더러운 듯, 혐오스러운 표정과 행동엔 모가지를 비틀어버리고 싶은 증오를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환자에게 하루에 한 번씩 찾아오겠다고 말하고 병원을 나섰다. 차라리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것이 나을지도 몰랐으나 마치 더러운 것을 만지는 듯한 얼굴 표정에 속상할 생각을 하니 가슴이 아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