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마
공무 팀에 자료를 건네고 다친 직원의 통역을 위해, 긴 사무실을 가로질러 반대편의 의무실로 가는 길이었다. 중앙 통로를 이용하는 사람들을 보기 위해 고개를 드는 대부분의 알제리 여성들은 일을 하는지, 마네킹으로 앉아 있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휴대폰으로 문자를 하거나 다른 동료와 대화를 나누었다. 그들 대부분은 쏘나트락 임원들 자녀들로, 낙하산이었다. 대부분 무얼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그렇게 시간을 떼웠다. 그나마 남자들은 해야 할 업무를 알고 있는 듯했지만 여자들은 일을 한다는 인상을 주지 않았다.
의무실 의사를 면담하기 위해 여러 번 지나다녔기 때문에 대부분 안면이 있었다. 눈인사를 하고 지나다가 일에 열중하고 있는 한 여자에게 눈길이 머물렀다. 주변의 소음에도 상관없이 항상 업무에 열중하고 옅은 미소는 꾸미지 않아도 남자들의 애간장을 녹일 만큼 눈부셨다. 벌써 한국 남자들로부터 선물 공세와 청혼이 여러 번 있었다는 사실을 박 과장이 알려주었다.
172센티의 큰 키와 글래머 한 몸매, 조심스럽고 사교적이지만 우아한 몸짓의 소유자는 주변 남자들의 선망의 대상이었지만 거의 웃지도 않고 업무에 열중인 그녀를 알제리 직원들의 도움으로 불러내어 작업 중에 있었다. 언어가 통한다는 게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독학으로 아랍어도 조금 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불어 사용은 차일 두려움을 갖지 않아도 됐다.
한국 문화에 익숙하다는 것은 그만큼 이성끼리 접근하기 힘든 문화적 괴리가 있었다면 프랑스에선 대화를 하거나 수작을 부리는 데는 전혀 거리낌 없는 자연스러움이 있었다. 언어는 문화를 배우는 것이기도 해서 프랑스어로 여자와 어떤 주제의 대화를 나누어도 대화일 뿐, 한국처럼 눈치를 보거나 성희롱의 위험에 빠질 염려도 없이 주제의 다양성이 있었다. 다만, 이슬람 국가라는 괴리감은 그들이 사용하는 불어로 인해 여성들에게 다가서는 것에 대한 두려움은 없었다. 프랑스 생활 20년이 바꿔놓은 의식이었다.
알제리 여자를 만나 결혼 한 한국인이 셋이나 된다고 했다. 모두 제2의 도시 오랑의 대우 현장에서 일하는 한국인들이라고 했다. 협력업체에서 일하는 알제리 여성들은 엘리트 교육을 받아 기본 3개 외국어가 가능했다. 급여도 웬만한 엔지니어들만큼 많았고 남자들만큼 직업 참여도가 높았다. 이슬람 여성으로서의 문화적이고 종교적인 괴리감은 느껴지지 않았지만 대부분 미소를 잃지 않았다. 몇몇은 한국인들과 염문을 뿌리기도 했다. 실제로 알제리에 들어온 중국인들이 도로 건설을 하면서 많은 알제리 여성들을 만나 개종하고 결혼했다고 했다.
사무실을 지나갈 때면 언제나 업무에 열중하면서도 큰 키와 업무에 열중인 그녀에게 반했다. 이름이 이스마라고 했다. 길이 백여 미터의 삼성 사무실에 들아갈 때면 대부분의 알제리 여자들은 휴대폰을 보거나 통화를 하고, 고개를 들어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그에 비하면, 기계 설치부서에서 영어문서 작성을 하는 이스마는 항상 업무에 열중하는 모습이었다.
한 번은 지나는 길에 말을 걸고 초상화를 그려줄 테니 사진을 하나 찍어도 되겠느냐는 제안을 그녀가 거절했던 터였다. 수작을 거는 사이, 사무실의 누군가가 내게 다가오자 미리 눈치채고 휘리릭 자리를 떴다. 그러나, 그녀의 신중하고도 우아한 언행이 기억에 오래 남았다. 데이트 신청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런 감정을 느껴본 적이 오래되었다.
파리에서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할 때, 가끔씩 썸을 타기도 했던 기억에 비해 연애 감정을 그다지 가져본 적이 없었다. 한국 여자는 내게 너무 어렵고 오묘하여 머리를 쓰지 않으면 감당할 수 없는 존재 같았다. 연애 감정이란 게 서로 존중하고 배려해주면 될 거라고 생각했던 것이 아무래도 모자란 생각이었던 것 같았다. 한국 여자와 결혼하지 않겠다는 생각을 한 지 오래되었다. 살다 보면 나타나겠지 싶었는데 알제리에서 기회가 찾아오다니!
알제리 친구들의 정보에 의하면, 업무 중이라도 휴대폰을 끼고 살 듯하면 애인이 있는 증거라고 했지만 그녀는 그런 적이 없고 언행이 조신해서 아무도 그녀에 대해 아는 것이 없다고 했다. 남자들이 한 여자에 대한 정보를 여자들에게 물어볼 수 없으므로 정보엔 한계가 있었지만 그들의 말을 종합해보면, 일할 땐 일만 하고 언행이 조신하여 자신에게 엄격하며 신앙심이 강해서 그녀와 결혼할 생각이라면 틀림없이 이슬람으로 개종은 기본이고 충실한 신앙생활을 해야 할 것이란 것 정도였다. 더욱이 외국인인 내가 여자에게 청혼을 하기 위해서는 여자의 아버지에게 먼저 허락을 받아야 하는 것이 전통이라고 말했다.
신앙에 대한 그녀의 신념이 얼마나 깊은 지 몰라도, 그녀를 프랑스나 한국으로 데리고 다니면 이슬람 세계에 길들여진 그녀가, 삼겹살과 소주가 한국의 전통이며 어른들이 먹으라고 하면 먹어야 하고, 한 번 먹다 보면 익숙해질 수 있을 것이란 막연한 생각만 갖고 있었다. 사실, 그런 고민은 할 필요가 없었다. 술은 없으면 마실 필요가 없고 고기는 삼겹살을 대체할만한 훌륭한 소고기와 양고기가 얼마든지 많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한국인과 결혼한 알제리 여성들이, 이미 삼겹살의 묘미에 빠져, 소주를 곁들인 조화에 익숙해졌다는 얘기를 전해 들은 바가 있었다. 설령, 그녀가 허락하지 않는다면, 알제리에 살고 싶진 않지만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동안, 수도승과 같은 금욕생활이 환경을 바꿀 수 있을 거란 막연한 생각은, 벌써부터 술과 삼겹살의 유혹을 어떻게 견디나...... 김칫국물에 행복한 고민이 들었다.
그렇지만, 실제 무서운 것은 따로 있었다. 새벽 3시에 일어나 기도하고 잠들기 전에 기도하는, 하루 다섯 번의 기도를 어떻게 할까 하는 상상하기 싫은 고역과 라마단 기간이었다. 달콤한 김치 국물 먼저 시원하게 들이켜는 나는 오히려, 그런 신계의 규율이 아닌, 인간세상의 달콤함을 즐기며 주유할 달콤함을 꿈꾸었다.
「에라 모르겠다. 일단 들이밀고 보자! 나머진 알라의 뜻이다!」
알제리 세티프의 여대생들. 그녀들은 불어를 할 줄 몰랐다
친한 알제리 친구에게 부탁해서 캠프 밖 휴식 공간으로 이스마를 불러 감언이설로 작업을 시작했다.
그녀의 가족 사항과 부모가 하는 일, 그녀가 가진 미래의 꿈과 프랑스에서의 생활 등에 대한 얘기가 오갔다. 그녀는 온화한 목소리로 화사한 미소를 유지하며 내 말에 답했다.
"난 알제리 생활이 1년이 다 되어 가. 처음에 알제리 왔을 때는 '동서 고원 고속도로 지질 조사 업체에서 일하면서 500km 구간을 오가면서 알제리를 여행했어. 이슬람에 대해 몰랐고 프랑스에서 만났던 북아프리카 친구들은 질이 너무 나빴기 때문에, 알제리는 더더욱 그러지 않을까 염려했는데 직접 와보니 마치 한국의 70년대 사람들처럼 순박한 사람들이 사는 곳이었어. 중국인이라고 놀리는 사람들, 특히, 젊은 친구들이 많았던 게 아쉽지만 이슬람 사람들 중에 두 사람을 존경하게 됐어. 하나는 십자군 전쟁의 영웅인 아이유비 살라딘이고 하나는 아프가니스탄의 아메드 샤 마쑤드야. 넌 누구를 존경 해?"
이스마가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
"살라딘은 이슬람의 영웅이라 무슬림은 모두 그를 존경하고 추앙해요. 내가 아이를 낳으면 이름을 살라딘이라고 지을 예정이에요. 하지만 아프칸의 마쑤드가 누구인지는 몰라요. 당신은 무슬림이 아니면서도 이슬람을 잘 아네요? 다른 한국인들은 전혀 관심 없는데 말이죠. 한국 사람들은 일에 미친 사람들 같아요. 이렇게 일하는 사람들을 처음 봤어요. 근데, 마쑤드에 대해 사람들이 얘기하는 걸 들었어. 알제리 사람들을 너무 잘 다룬다고."
곤 색 원피스를 입은 단아한 그녀가 두 눈을 똑바로 뜨고 내게 말하고 히잡 밖으로 비집고 나온 머리카락을 안으로 넣기 위해 조심스러운 손길로 히잡을 다듬었다. 우리의 대화가 한 동안 이어졌다. 종교적인 특색 없이 자연스러운 대화가 이루어졌다. 그런데, 갑자기 누군가 휴게소 안으로 들어와 이스마를 쫒아내고 앞에 앉았다.
"야, 너 용병 출신이라매?"